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나는 거짓말 안한다니깐 그러네
나도 모르게 튀어 나간 욕설에 진채원이 내 팔뚝을 찰싹 내리쳤다.
“또라이라뇨 대표님! 저런 천사한테 그런 말 하면 벌 받아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뉴스를 보던 김선기가 나지막한 감탄을 내뱉었다.
“정말 대단하네요. 저런 거액을, 그것도 익명으로 기부하다니 말입니다. 정치뉴스 때문에 기분이 썩 좋진 않았는데 아직 세상은 살만한가 봐요.”
진채원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누굴까요? 저런 큰돈을 현찰로 가지고 있을 정도면 엄청 부자일 것 같은데···. 왜 정체를 숨긴 거지? 좋은 일 하는 건데?”
“주목받는 걸 원치않는 선비 같은 분인가 보네요.”
“그건 아닐걸…?”
망나니 중에 개망나니한테 선비는 개뿔.
비록 모자이크와 마스크로 가려져 있지만 나는 단번에 꿰뚫어 볼 수 있었다.
특유의 걸음걸이까지는 숨기진 못했으니깐.
“문상호 저 또라이···. 익명으로 기부하랬다고 저런 무식한 방법을 택한다고?”
내 상식을 단단히 벗어난 규격 외 캐릭터였다.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건가?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정상은 아닌게 확실했다.
과거를 회상해보면 나는 그에게 기부 시 ‘익명’이라는 옵션을 추가했다.
왜냐고? 나로 인한 억지 기부로 그 망나니에게 ‘기부천사’라는 칭호가 붙는 게 싫었으니깐.
이후에는 기부할 단체까지 친히 지정해줬다.
“그래도 뭐···. 저기면 기부금 가지고 장난질은 안 하겠지.’
저 ‘아이들과 미래재단’이라는 곳에 관해 정말 철저한 사전 조사를 했다.
저 재단은 경기도에 있는 보육원 재단 중에서도 ‘비영리단체 회계 투명성 평가’에서 전 항목 만점을 받은 유일한 기관이기도 했다.
기부금으로 딴짓거리 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는 뜻이기도 했다.
너무 유별난 거 아니냐고 반문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사회 복지 재단이나 비영리 단체에 대해 신뢰가 낮은 편이었다.
어린 시절 새싹보육원에 들어온 기부금을 당시 재단 대표가 몰래 횡령하다가 걸린 사건이 내 뇌리에 문신처럼 박혀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사명감 있는 비영리 단체들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한번 크게 데인 것을.
‘이런 수고 안 하려면 역시 직접 하는 게 속 편해.’
향후에는 내가 직접 복지재단을 설립하고 운영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아직은 시기상조였지만서도.
“좋든 나쁘든 요즘 뉴스들이 전부 스펙타클하네요.”
“그러니까요. 누구는 뇌물을 받고, 또 누구는 돈을 기부하다니···. 뭔가 아이러니하네요.”
더 아이러니한 것은 두 뉴스 모두 나와 깊이 관련되어있다는 사실이었다.
김현철과 관련된 비리가 세상에 까발려진 것도 그러했고, 문상호에게 강제 기부를 지시한 것도 나였으니깐.
물론 세상에 밝혀지지 않을 이야기지만 뭔가 우습긴 했다.
“뭔가···. 벨소리가 굉장히 대표님스럽네요.”
진채원의 칭찬(?)에 나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어때?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을 울리지 않아?”
“그건 모르겠고 전화 건 사람 애간장은 타겠네요. 누구 전화에요? 빨리 받으세요.”
[셔틀 1호 문상호]“있어. 성질 고약한 내 기부 셔틀.”
“기부 셔틀요?”
씨익 미소로 답을 대신한 나는 조용한 곳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야! 뉴스 봤지? 이 정도면 인정인 거지?]“아니. 익명으로 하랬다고 누가 복면 뒤집어쓰고 기부를 해요? 이거 뭐 소소한 반항입니까?”
“익명으로 하라고만 했지 어떻게 하라고는 얘기 안 해줬잖아 인마!”
아뿔싸. 이 인간한테는 밥 숟가락 쥐는 각도와 방향까지 전부 알려줘야 하는구나.
문충원 회장의 성질이 그렇게 된 것에 문상호가 상당한 일조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봤다.
[그리고 괜히 계좌 흔적 남겼다가 골치 아파지는 것보단 이게 나아.]“뭐···. 어찌됐건 성공만 했으면 됐죠. 잘했어요.”
[그럼 너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은 전부 청산된 거야? 나 이 돈 구하느라고 개지랄 염병을 다 했다고. 이제는 네가 약속 지킬 차례야.]“그럼요. 전 누구와 다르게 한번 약속한 거는 지킵니다. 오늘 문 회장님한테 전화 한 통 드릴게요.”
[아으···. 됐다 그럼. 똥 한번 제대로 밟았네. 앞으로 다신 보지 말자.]생각보다 뒤끝이 있는 스타일은 아닌 듯했다.
보통은 복수를 꿈꾸며 으름장을 놓을 텐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대로 문상호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 채운 목줄인데 그리 쉽게 방생하겠는가.
“어쩌죠? 조만간 또 볼일이 있을 것 같은데?”
[무, 무슨 개소리야? 약속은 지킨다며!]“그건 무조건 지킨다니까요. 속고만 사셨나. 그거 말고 다른 일이 터졌으니깐 그러는 거 아닙니까.”
[뭐? 또 뭐!? 난 이제 너한테 잘못한 거 없다고.]“그런 소소한 문제가 아니에요. 뉴스 보셨죠? 문 사장님이 열렬히 추앙하시는 김현철 도지사와 그 측근들이 지금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타이밍이 영 쎄하다고 느끼지 않아요?”
[서, 설마···. 그거 네 작품이냐? 아니지···. 그럴 리가 없잖아. 아무리 네가 난 놈이라도 그런 거물들을 이렇게 엮어서 보낸다고? 말도 안 되지.]“작품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고 설계 정도는 했죠. 시공은 다른 사람들이 했지만.”
[허업···. 진짜 네가 한 거라고? 이런 미친.]수줍은 내 커밍아웃에 수화기 너머로 문상호의 헛바람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밑밥이 아주 잘 깔리고 있다는 좋은 징조였다.
“이거 진짜 비밀입니다. 어디 가서 절대 얘기하면 안 돼요? 아니면 나 얘기 안할랍니다.”
비밀하곤 전혀 무관한 내가 지어낸 말이었지만 효과는 즉방이었다.
[뭐, 뭔데? 나 입 무겁다고 소문난 놈이야. 말해봐.]“어제 검사한테 전화가 왔거든요? 도대체 뭘 어디까지 아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니 글쎄 김현철 도지사랑 문상호씨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엄청 집요하게 물어보더라고요.”
[나, 나에 관해 물어봤다고?]“그럼요. 문 사장님이 남몰래 뒤에서 김현철 도지사 후원하던 키다리 아저씨잖아요? 어디서 정보 하나 물어서 나한테 꼬치꼬치 캐묻는거 같긴 한데…쓰읍. 이거 참 난감하더라고요.”
[내, 내가 언제 후원회장이라고 그랬어!? 나 그 양반이랑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야!]호오. 발뺌하시겠다?
“잠깐만요.”
나는 셔츠 앞주머니에서 볼펜을 빼내어 휴대폰 앞에 가져다 댔다.
-근데 그쪽은 김현철 도지사 대변인이라도 돼요? 누가 보면 팬클럽 회장인 줄 알겠네.
-크흐흐. 후원회장 정도는 되지. 그러지 말고 그냥 내 밑으로 들어와라. 그냥 가입비라고 생각하고. 너 돈 많다며? 그 정도는 푼돈일 거 아냐?”
[…………..]수화기 너머로 흐르는 무거운 정적.
지금 그의 표정이 어떠할지 안봐도 선명히 그려졌다.
아마 눈알이 붕어마냥 튀어나와 소리 없는 욕지거리 내뱉고 있겠지.
“그, 그거 다 거짓말이야! 그냥 너한테 가오잡으려고 구라친거라고.”
후훗. 궁지에 몰리니깐 아주 발악을 하는구만.
쥐덫에 걸린 생쥐가 파닥파닥 거리는 것 같아 귀엽기까지 했다.
“아~ 그래요? 그러면 됐네! 검사한테 전화해서 사실 그대로 얘기해도 되겠네요? 어차피 거짓말이면 수사해도 아무것도 안 나올 테니까. 그쵸? 잘됐다. 안 그래도 검사님 앞에서 있는 사실 숨기려니 양심이 콕콕 찔렸는데 휴우. 아무튼, 고생했어요. 저는 그럼 이만······.”
[야야야야야야야야! 자, 잠깐! 스톱! 멈춰!]꽁지에 불이라도 붙은 쥐새끼처럼 다급한 문상호의 부름에 내 한쪽 입꼬리가 쓰윽 올라갔다.
누가 보면 내가 엄한 사람 괴롭히는 줄 알겠다.
“왜요? 더 할 말 있어요?”
[아 씨팔. 좆같이 엮였네 진짜.]“갑자기 욕을 하고 그래요? 아물었던 심장이 또다시 바운스 하려고 하네?”
[하아···. 원하는게 뭐냐?]“뭐가요?”
[지금 이렇게 나 쪼는 거 보면 뭔가 원하는 게 있을 거 아냐!?]영 머리가 없진 않나 보다.
“뭐 제가 문 사장님한테 돈을 요구하겠습니까? 술을 사달라고 하겠습니까? 그냥 심플하게 기부 한 번 더 가시죠.”
[뭐? 이 짓을 또 하라고?]“한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니까요?”
[야! 나 이제 백억 없어 이 새끼야!]“누가 백억이라고 했어요? 두 번째 하는 기부인데 그 두 배는 해야지.”
[뭐, 뭐라고? 야이 씹···. 미쳤어!? 나 이제 돈 한 푼도 없다고!]“없으면 어쩔 수 없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누가 하라고 등 떠밀었나? 알았어요. 이만 끊을게요. 대신 진술은······.”
[야이씨! 잠깐. 하아···. 한번만 살려줘라. 비상금이고 뭐고 싹 털어서 만든 백억이라고. 그런데 이백억을 어디서 만들어오냐. 응?]씨알도 안 먹힐 것 같으니 이제는 태세를 바꿔 불쌍한 척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모습을 보일수록 나의 심술 지수는 무섭게 우상향으로 치솟았다.
“자. 우리 문 대표님? 아니지. 그래도 이 정도면 좀 친해졌으니깐 그냥 형이라고 부를게. 괜찮지? 응 괜찮을 거야. 자. 내 말 잘 들어봐. 우리 시뮬레이션을 한번 돌려보자. 검찰에서 본격적으로 형 계좌니 뭐니 수색 들어가면 안 털릴 자신 있어? 나는 없다고 보거든? 그러면 거기서 설마 김현철하고 엮인 것만 털릴까? 검찰이 바보도 아니고 다른 수두룩한 먼지까지 싹 다 털지 않을까? 그 사람들한테는 그게 다 실적일 텐데 안 그래?”
[…………..]자고로 진한 침묵은 긍정이라고 했다.
“아마 내가 파악한 형 스타일상 김현철한테 갖다 바친 돈 만큼 어떻게든 뽑아먹으려고 온갖 개짓거리는 다 했을 거야? 그치?”
[지, 지금 무슨 소릴!]“에이 왜 이래 아마추어처럼. 비공개 정보 악용해서 내부자 거래도 했을거고, 회계 조작도 당연히 했을거고, 투자하라고 준 돈으로 부동산도 좀 사고 그랬을 거 아냐. 장사 한두 번 하나.”
물론 확인된 바는 없었다.
그냥 찔러보기였을 뿐.
하지만 반응은 확실했다.
[그, 그걸 어떻게···?]“그건 영업비밀이고. 중요한 건 지금 어떻게든 살아야 하지 않겠어? 이거 제대로 터지면 대현그룹 전체에 엄청난 타격이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문 회장님이 과연 해외 유배 정도로 끝낼까? 내가 아는 문회장님이라면 아예 호적에서 파버릴 것 같은데.”
[하아···.]온갖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인 한숨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아무튼, 잘 생각해봐. 기한은 이번 주까지.”
[하아···. 됐다. 어차피 빠져나갈 구멍도 없겠구만. 시팔. 똥물에 발 한번 담갔다가 도대체 몇 배를 게워내는 건지. 이런 좆같은 아오!]본인이 구정물이라는 생각은 별로 안 하나 보다.
[시팔 알았어. 알겠다고.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할게. 그러면 이번 건 입 다물어주는 거지?]“물론이지. 내 입에서 형 얘기가 나올 일은 절대 없을 거야.”
[그 약속 무조건 지켜라.]“어허. 나는 거짓말 안 한다니깐 그러네.”
[일단···. 돈 좀···. 만들어봐야 하니깐 이주만 시간 줘.]“오케이. 우리 사이에 내가 그 정도 못 기다리겠어? 아무튼, 준비 끝나면 다시 연락해.] [씨팔! 으아악!!! #$%$#%&$%@@#@]
뚝
수화기 너머로 거친 욕설과 함께 무언가 내던져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완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약속은 지킬 거냐고?
당연히 지킬 거다. 문상호의 2회차 강제 기부가 지켜진다면.
“나는 분명 내 입으로만 얘기 안 한다고 했다?”
이래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거다.
***
며칠 후. 강남 테헤란로 한복판.
“저기에요?”
“네. 저 건물 맞습니다.”
간만에 나서는 강남 나들이였다.
황금빛의 주인공인 김선기 상무와 김정남 소장이 머리를 맞대고 고르고 고른 건물 중 하나를 픽(pick)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