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운용의 묘(妙)를 한번 살려보죠?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날씨. 우리는 따사로운 봄볕이 내리는 강남 거리를 나란히 걸었다.
평일 낮이었음에도 강남 도심의 도로에는 수많은 자동차가 빌딩 숲 사이를 오가고 있고, 대로변에는 생명의 태동을 알리는 원색의 봄꽃들이 춘흥에 겨워 아우성이었다.
김정남이 손가락으로 강남 한복판에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건물들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주변 한번 둘러봐 보세요. 테헤란로 대로변에 있는 건물 규모가 이렇게 큰데도 비어있는 곳이 하나도 없죠? 그만큼 들어오고 싶어 하는 임차인이 차고 넘친다는 얘기거든요. 아무리 강남이 비싸다 비싸다 욕을 해도 결국 업무 편의성 때문에 강남을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꿩 대신 닭이라도 찾자는 심정으로 그 주변 꼬마 빌딩으로 눈이 갈 수밖에 없어요.”
나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더구나 강남에서 일한다는 그 어떤 상징성도 있을 테고.
“근데 이 꼬마 빌딩 사이에도 나름 서열이 있습니다. 대형 오피스에 가까이 붙어 있을수록 임대료도 더 높게 책정되거든요.”
이번에는 김선기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좌(左)정남, 우(右)선기라···.
이거야말로 좌청룡 우백호가 아니겠는가?
“이유가 뭔가요?”
“아무래도 꼬마 빌딩은 건물 내 인프라가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대형빌딩과 딱 붙어 있는 소형빌딩은 그 대형빌딩의 인프라를 같이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메리트가 되는 거죠. 가령 카페나, 구내식당, 약국 같은 걸 말할 수 있겠군요.”
그렇게 우리 세 사람은 강남 대로변을 나란히 걸으며 건물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물론 주로 내가 듣는 쪽이었지만.
“이 건물입니다.”
드디어 멈춰선 김선기와 김정남이 동시에 건물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뭐야? 왜 이렇게 합이 잘 맞는 건데?
주소지상으로는 역삼동에 소재한 빌딩이었다.
김정남이 마치 쇼호스트처럼 내게 건물의 프로필에 대해 쭉 읊기 시작했다.
“지하 3층에서 지상 15층으로 구성된 건물입니다. 15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라 살짝 낡은 느낌은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위치 하나는 기가 막히죠?”
기가 막혔다.
거대한 4차선 도로가 있는 대로변 코너에 떡하니 위치해있었으니깐.
더구나 바로 건물 바로 앞에는 역삼역 출입구가 자리하고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30초 이내에 역 안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위치는 확실히 마음에 드는데···. 건물이 어쩐지 옆에 애들보다 좀 홀쭉해 보이네요?”
“아하하···. 맞습니다. 층당 면적이 타 건물들에 비해 그리 넓지 않습니다.”
“가격은 얼마죠?”
“300억입니다.”
“300억이라···. 가격은 딱 적당하네요.”
30억도 아닌 300억이라는 금액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자 김정남의 몸이 움찔했다.
그런데 목소리가 다소 컸던지 횡단보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를 힐끔 곁눈질하며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헐. 재벌이야? 350억을 무슨 장난처럼 얘기하네?”
“그냥 자기들끼리 재벌인 척 노는 거 아냐? 셋 다 너무 젊어 보이는데?”
“그런가? 참 할 짓도 없네. 젊은 사람들이 일할 생각을 해야지 저렇게 망상에 빠져서 쯧쯧···.”
다 들립니다 여러분.
통장 잔고를 보여줄 수도 없고 괜스레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신호가 바뀌자 우리는 걸음을 재촉하여 빠르게 건물로 들어섰다.
건물 1층에는 뼈 해장국집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유리 너머로 슬쩍 훑어보니 파리만 날리는 모습이 역력했다.
“여긴 장사가···. 영 별로네요? 위치가 이렇게 좋은데···.”
“그럴만하죠. 이 근처에 맛집으로 소문난 구내식당이 있거든요. 여기 해장국 한 그릇이 만 이천 원입니다. 그런데 그 구내식당은 9,000원이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죠. 더구나 반찬 가짓수도 많고 원하는 대로 퍼담아 먹을 수 있습니다. 대표님 같으면 어디를 가시겠습니까?”
“당연히 구내식당이죠.”
“그게 이 식당이 인기가 없는 이윱니다.”
김정남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 구내식당 가봤는데 영양사분 솜씨가 기가 막히더라고요. 강남 올 때마다 애용하고 있습니다.”
명쾌한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은 우리는 한층 한층 면밀이 살펴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째 텅 빈 곳들이 너무 많았는데 총 세어보니 5계층 전체가 비어있을 정도로 공실 상황이 심각해 보였다.
“아까 강남에 사무실 못 구해서 난리라고 하지 않았나요? 아까 그 말 하고 괴리감이 너무 심한데요?”
“그래서 이 건물을 대표님께 보여드릴지 말지 끝까지 고민했던 겁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공간이 너무 나누어져 있고 협소한 느낌이 있어서 사무실로 쓰기엔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있거든요.”
“흐음···. 그래요?”
김정남이 보여준 건물은 총 세 개.
가격대는 셋 다 비슷했다.
처음 봤던 두 건물은 층수는 좀 낮아도 평수가 넓어서 사무실로 쓰기엔 적합했고, 지어진 지도 얼마 안 되어 시설도 깔끔했다. 하지만 위치가 다소 마음에 걸렸다.
역에서도 한 십여 분 걸어야 했고 주변 고층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어 눈에 잘 안 띈다고나 할까?
흡사 일진 무리 사이에 둘러싸인 왕따 소년의 모양새였다.
단순 위치만 따졌을 때는 지금 이 건물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지만 말했다시피 공실률이 문제였다.
기껏 투자 명목으로 사놓은 건물에 공실이 이토록 많다면 투자의 의미가 무색하지 않겠는가.
“이거 고민되네.”
그렇게 건물을 다시 한번 꼼꼼히 훑어본 우리 세 사람은 건물 맞은편 대로변에 위치한 카페에 들어왔다.
“으어. 은근히 덥네요. 벌써 초여름이 오려고 하나.”
커피 세잔이 담긴 쟁반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김정남이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그러게요. 햇살이 은근 따가운 게 오래는 못 돌아다니겠네요.”
그러고 보면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과거에 공장과 기숙사만 오갔을 때는 시간이 너무 안 간다고 한탄하곤 했는데.
빨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껏 흡입한 나는 창밖을 내다보며 감상에 젖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가요. 신기하지 않나요? 어렸을 땐 그렇게도 시간이 안 가더니···.”
축축함이 서린 내 감상에 김선기가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아! 그게 왜 그러냐면요. 사람은 오감(五感) 정보를 한가지 통합된 사건으로 만든 다음 시간 가격에 따라 배치하거든요. 즉 사건이 나열되는 순서에 따라 주관적으로 시간을 느끼게 되는 거죠. 이 과정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 물질이 쓰이는데 그 분비량에 따라 뇌의 신경회로가 자극받아 기억의 강도가 정해집니다. 결론만 말씀드리면 나이가 들수록 도파민 분비량이 떨어지고 뇌의 신경회로 자극도 덩달아 감소합니다. 당연히 기억의 강도도 약해지면서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죠.”
와장창창
내 안에 감성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설마하니 저런 건조하기 짝이 없는 답변이 튀어나올 줄이야···.
내가 MBTI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모르긴 몰라도 김선기는 ‘T’가 분명해 보였다.
“좋은···. 정보 감사하네요. 정말 별걸 다 아세요.”
“하하하. 별말씀을요. 마침 며칠 전에 봤던 책에 그 내용이 있더라고요.”
이 양반은 문과 출신이면서 참 별걸 다 안다.
김선기의 말에 김정남이 눈을 반짝이면서 엄지를 들어 올렸다.
“와. 역시 선기 형님은 모르는 게 없으십니다. 저도 형님이 추천해주신 책 읽기 시작했어요.”
“오! 그래? 혹시 ‘미움받을 용기’?”
“네! 그 책이요. 어후. 내용이 너무 좋더라고요. 덕분에 멘탈도 많이 좋아졌어요. 감사합니다 형님.”
“후훗. 아우님한테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 그거 다 읽으면 다른 책도 추천해줄게.”
얼씨구? 형님? 아우? 아주 분위기가 핑크 핑크하네?
진채원이 보면 질투에 부들부들하겠는걸?
근데 이 두 사람은 언제 이렇게 친해진 거지?
“두 분 많이 친해졌나 보네요?”
“아! 네. 같이 임장다니면서 이런저런 얘기 많이 하다 보니깐 그렇게 됐네요.”
“혹시 술도 한잔 했어요?”
“네. 자주 마셔요. 마침 선기 형님 사는 동네가 저희집이랑 멀지 않더라고요.”
이상하게 소외감이 드는 기분이다.
“친해졌다니 보기 좋네요.”
“참 배울 점 많은 형님이에요. 선기 형님은.”
“뭐가 그렇게 배울 점이 많던가요?”
이거 심술 난 거 아니다. 궁금해서 묻는 거다. 정말로.
“일단 모르는 분야가 없으세요. 금융이면 금융, 부동산이면 부동산, 역사까지. 뭐든 물어보기만 하면 자판기처럼 답변이 척척 나온다니까요.”
그건 인정하는 부분이다.
잡학다식의 대명사로 불려도 좋을 만큼 김선기는 대방면에서 풍부한 지식을 자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이 두 쪽 나도 신문은 무조건 챙겨봤고, 독서광이라 불려도 손색없을 정도로 늘 책을 끼고 살았다.
“동생이야말로 내가 보고 배우는 게 많아. 항상 성실하고 또 활력이 넘치지. 나는 생각만 많지 능동적이진 못하거든. 그런 부분은 확실히 본받을 만해.”
덤덤한 김선기의 칭찬에 김정남이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였다.
“뭐···. 제가 내세울 수 있는 거야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으니까요. 하하하. 형님 입에서 칭찬받으니 그래도 기분은 좋네요.”
깨가 쏟아진다 쏟아져.
둘 다 황금빛의 주인공이다 보니 어떤 시너지가 있지 않을까 해서 붙여놨더니 아주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된 듯하다.
마치 소개팅 주선자라도 된듯했지만,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어찌 됐건 두 사람 모두 나에겐 소중한 인연이었고 그 교집합엔 나란 존재가 있었으니.
“그나저나 대표님. 어떤 건물로 하실지는 선택하셨습니까?”
김선기의 물음에 나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얹고는 턱을 괴었다.
“하아···. 고민이 많이 되긴 하네요. 셋 다 워낙 장단점이 명확해서···.”
“어차피 투자가 목적이고 김정남 소장의 말대로 오피스가 주력이면 첫 번째 건물이 낫지 않겠습니까? 역하고 거리가 좀 있다고는 해도 15분 정도면 감수할 만하지 않습니까?”
“틀린 말은 아닌데···. 흐음.”
이상하게 내키지 않았다.
내게 청개구리 심보라도 있는 것일까?
대놓고 괜찮아 보이면 오히려 끌리지 않았다.
짧은 고민을 마친 나는 덤덤히 입을 열었다.
“마지막에 봤던 대로 하죠.”
“괜찮겠습니까?”
건물이 가지고 있는 단점들은 상관없는지 묻는 것이었다.
“위치가 가진 메리트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 여기 카페 안에서도 저 건물만 눈에 확 들어오잖아요.”
내 말에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이 카페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건물을 응시했다.
“확실히 입지 하나는 훌륭하죠.”
“대신···. 돈 좀 더 써서 아예 싹 다 바꾸는 걸로 하죠.”
“네?”
고개를 갸웃하는 김선기에서 시선을 떼어 김정남을 쳐다봤다.
“1층에 뼈 해장국집. 계약 기간 많이 남았나요?”
“아뇨. 이번 달까지 계약만료인데 장사가 너무 안돼서 그냥 가게 뺀답니다.”
“좋네요. 그러면 일단 1층 해장국집이랑 지금 비어있는 층들은 싹 다 리모델링하는걸로 하죠.”
“어떻게 말씀입니까?”
“사무실로 쓰기엔 공간이 부족하다면서요. 벽들 싹 다 밀어버리죠.”
“전부 다 말입니까?”
“예. 아주 그냥 싸그리 다. 탁 트인 느낌 들게. 아! 다른 층에 피해 입힐 순 없으니깐 공사는 저녁하고 주말에만 진행하는 걸로 해주세요. 어차피 급할 건 없으니깐.”
내 말에 가방에서 수첩을 꺼낸 김정남이 열심히 메모하기 시작했다.
다소 아날로그적이긴 했지만 나는 저 모습이 더 보기가 좋았다.
사람이 성실해 보이잖아.
“더 지시할 거 있으십니까?”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번득이는 김정남의 눈빛이 꽤나 다부지다.
“으흠···. 중요한 게 하나 남아 있어요.”
“뭐죠 그게?”
“운용의 묘(妙)를 한번 살려보죠?”
교차로 대각선에 떡하니 자리 잡은 건물을 보다 보니 머릿속으로 무언가 번득 스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