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스펙타클한 하루
‘학부모 참관수업, 혹은 학부모 공개수업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행사는 아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수업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일각에선 맞벌이로 인해 부모가 오지 못한 아이들을 위축시킨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
경기도 의왕시 백곡 초등학교.
겉보기엔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교실 풍경이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평상시와는 다른 긴장이 엿보였다.
다소 의아한 것은 아이마다 얼굴에서 희(喜)와 비(悲)가 엇갈린다는 점이었다.
어떤 아이의 얼굴에는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반면, 다른 아이의 얼굴에는 불안과 초조 혹은 실망감으로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아이도 있었다.
“너는 부모님이 온데?”
짝꿍인 예주의 물음에 재철이가 심드렁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부모님은···. 못 오시고 삼촌이 오신다고는 하는데···. 잘 모르겠어.”
“으앙. 그래도 부럽다. 우리 엄마아빠는 회사에서 안 보내줘서 못 오신데···. 히잉.”
울상을 짓는 예주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 재철이가 고개를 돌려 하염없이 창문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청명한 하늘이었지만 이상하게 재철의 가슴은 먹먹하기만 했다.
‘진짜 올까···?’
자신도 안다. 말도 안 되는 생떼를 부렸다는 것을.
그래선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날만은 그러고 싶었다.
1학년 때는 잘 몰랐다. 학부모 참관 수업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렇게 여덟 살의 이재철은 선생님께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게 된다.
부모님이 바쁘셔서 오시지 못할 것 같다고.
2학년 때는 또 느낌이 사뭇 달랐다.
남들 다 오는 부모님이 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조금씩 부끄러워졌다.
그렇다고 없는 부모님을 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보육원에 살고 있음을 친구들이 절대 알아선 안 됐다.
그건 정말 죽기보다 싫었으니깐.
그래서 2학년 때도 부모님이 바빠서 못 오실 것 같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거짓말도 자꾸 하다 보니 익숙해져 갔다.
3학년이 되었다. 이쯤 되면 제법 아는 것도 많아지고 세상 물정에 대해서도 알아가는 단계라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아진다.
그런 이재철에게 얼마 전, 지울 수 없는 상흔처럼 새겨진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반 친구 몇몇과 학교 앞 토스트 가게로 향했을 때 일이었다.
**
“애들아! 이거 먹고 우리 집 가서 놀래?
해 맑게 웃으며 말하는 정호의 제안에 반장 민기가 손에 쥔 토스트를 삼키며 단호하게 답했다.
“아니 싫어!”
“왜 싫어?”
“너네 집 임대 아파트잖아. 엄마가 그런 데는 가지 말라고 했어.”
민기의 말에 시무룩해진 정호는 그때부터 아무 말 없이 토스트만 깨작깨작 물었다.
“재철이 너는 어디 살아? 아파트야?”
민기의 기습 질문에 당황한 이재철은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나···? 아닌데···?”
“그럼 주택이야? 월세야 전세야? 혹시 빌거는 아니지?”
이제 막 열 살이 된 이재철 어린이는 눈앞에 민기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대개 보육원 아이들이 그렇듯 대충 눈치로 당시 위기를 어물쩍 잘 넘길 수 있었다.
“우린 그런 거 아냐. 대따 큰 마당도 있고 집도 4층이야.”
재철이의 답변에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우와. 너 엄청 부자구나.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으응···. 그래.”
이후로도 알 수 없는 외계어들이 민기의 입에서 계속 튀어나왔다.
보육원으로 돌아온 재철은 곧장 컴퓨터방으로 들어가 오늘 들었던 것들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 이해하기엔 다소 난해한 것들이 많았지만 얼추 알아먹을 수는 있었다.
엘거지라는 말은 임대 아파트에 사는 것을 의미했고, 빌거지라는 말은 빌라에서 사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백충이란 단어가 아버지의 월급 수준을 칭한다는 것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해당하는 아이들이 묘하게 따돌림을 받는다는 사실까지도.
가족들이 지낼 보금자리가 있고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좋아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게 왜 따돌림의 이유가 되는 것인지 이재철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야 이재철! 이번엔 너네 부모님 오시는거 확실하지?”
반장인 홍민기가 재철의 자리로 다가와 집요하게 물었다.
“으응···. 삼촌이 대신 온대.”
“삼촌? 이번엔 진짜지?”
사실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 홍민기에서 비롯된 거나 다름없었다.
집과 가족에 관한 그 어떤 질문도 두루뭉술하게 넘기는 재철을 보며 홍민기는 계속해서 의심의 눈초리로 보내왔고 이번 학부모 참관 수업에 누구든 오게 하라며 은근히 압박을 해왔던 것이었다.
만약 이번에 그냥 넘긴다면 거짓말쟁이로 단단히 낙인찍을 기세였다.
“올 거야. 온다고 했으니···.”
입 밖으로 내뱉은 말과 달리 이재철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눈칫밥은 아이를 일찍 철들게 한다 했던가.
비록 10살에 불과한 나이였지만 이재철도 그 정도는 알았다.
보육원의 환경이 점점 좋아지는 것에 송대운이라는 후원자가 존재하며,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선 얼마나 바빠야 하는지 말이다.
연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초조함을 숨기지 못하고 있을때 담임 선생 채송화가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선생은 학부모 참관 수업이 처음인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잠시 후.
드르르륵
교실의 뒷문이 열리며 학부모들이 하나둘씩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재철의 눈에 짙은 실망감이 들어찼지만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아무렇지 않게 정면을 바라봤다.
“지유!”
교실에 들어선 학부모들이 교실을 두리번거리다가 자신들의 아이와 눈을 마주치자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기서 명백한 희비가 교차하였다.
어떤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폈고, 또 다른 어린이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드르르륵
뒤늦게 교실 뒷문이 열리며 누군가 한 사람이 들어왔다.
순간 이재철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가 이내 다시 시무룩해졌다.
또각 또각
정숙한 교실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듯 울려 퍼지는 하이힐 굽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 주인공에게 쏠렸다.
향수를 얼마나 뿌려댄 것인지 독한 디퓨저처럼 훅 퍼져가는 장미향이 밀폐된 교실을 잠식해나갔다.
짙은 화장에 한껏 일명 사모님 헤어로 불리는 보브컷을 한 여인이 채송화를 쳐다봤다.
부를 과시하는듯한 번쩍거리는 장신구와 손에 든 핸드백 전면에 큼지막하게 박힌 명품 로고가 눈을 사로잡았다.
“좀 늦었네요. 민기 엄마에요.”
“아예. 어머니 괜찮습니다.”
“제가 학부모 회장이다 보니 교장 선생님부터 만나고 오느라 좀 늦었어요.”
본인을 민기 엄마라 칭한 여자가 굳이 묻지도 않는 얘기를 먼저 꺼내었다.
“자···. 그럼 이제 수업을 시작······.”
드르르륵
“아이고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젊은 남성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또다시 한곳으로 쏠렸다.
교실 안에 들어선 나 역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헐. 남자가 나뿐이야?’
교실 뒤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학부모 전부 어머니들뿐이었고 이 교실에서 XY염색체를 가진 성인은 나 혼자 뿐인 듯 보였다.
하지만 나를 보며 함박웃음 짓는 재철이와 눈을 마주치자 그런 당황은 눈 녹듯 사라졌다.
***
“후우. 하마터면 진짜로 늦을 뻔했네.”
어머님 무리와 멀찌감치 떨어진 나는 남몰래 가쁜 숨을 골라 쉬었다.
어느 정도 호흡이 정돈되자 그제야 교실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야. 이게 얼마 만에 교실이냐?’
라떼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일단 학생들 수가 적어도 너무 적은 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한 반에 기본 오십 명씩은 꽉꽉 채워 넣었는데, 지금은 기껏해야 스무 명도 안되어 보였다.
저출산, 저출산 거리더니 확 체감이 되는 부분이었다.
‘근데 원래 책상이 저렇게 작았나?’
책걸상이 무슨 장난감 같았다.
어릴 때는 저게 작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말이다.
거의 20년 만에 찾은 초등학교 교실을 보자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교실에서 말뚝박기하다가 선생님께 걸려서 크게 혼이 났던 일.
‘진짜 뒤지게 맞았지. 요즘 같았으면 난리 났을 거야.’
당시 교실 바닥은 나무 바닥이어서 한 달에 한 번씩 책걸상 뒤로 싹 밀고 아이들이 왁스 칠을 했는데 손가락 발가락에 가시가 박혀 그거 빼느라 고생했던 아픈 기억.
‘주걱에 왁스 한 뭉탱이 덜고, 똥 던지듯 철퍼덕 던진 다음, 기름걸레로 쓱 닦으면 개꿀잼이었지.’
요즘 애들은 모르는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고 12시에 친구들하고 PC방 가는 그 설레임.
‘그날은 이상하게 늘 날씨가 좋았단 말이지.’
학교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사 먹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던 300원짜리 종이컵 떡볶이까지.
‘가끔 튀김까지 얹어 먹으면…어우야.’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 한구석이 몽글몽글한 것이 고단한 시절이었지만 이제는 나름 아련한 추억이 되어있었다.
“자! 먼저 발표해 볼 어린이?”
선생님의 물음에 앉아 있던 모든 학생이 동시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자 뒤에서 지켜보던 학부모들이 나지막한 감탄을 내뱉었다.
“어쩜. 다들 엄청 적극적이네요.”
“그러니까요. 보통 애들이 발표 같은거 잘 안 하려고 할 텐데.”
하지만 의왕 셜록 홈스로 불리는 내 눈에는 다 보였다.
우후죽순처럼 들린 손에서 누군가는 주먹을 쥐고 있고 몇몇은 보자기를 펼치고 있다는 것을.
정황상 어느 정도 말을 맞춰 놓은듯했다.
‘후훗 귀엽고만.’
학부모 참관 수업이라는 것 자체가 보여주기식 성격이 강하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했다.
왜 우리 때도 장학사가 학교에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암행어사가 출두라도 하는 것처럼 선생님들이 온갖 호들갑을 다 떨어대지 않았던가.
“그럼 홍민기 학생이 한번 발표해볼까요?”
역시나 보자기를 펴고 있던 녀석이 발표자로 낙점되었다.
“네! 정답은······.”
목청 큰 로봇처럼 말하는 모양새를 보니 밤새 연습 열심히 했나 보다.
“어머. 애가 참 야무지네. 반장이라 그런가?”
“호호호. 우리 민기 잘하죠? 웅변학원 보내길 잘했네요.”
“어머! 민기 어머니 거기가 어디에요? 우리 애도 거기에 한번 보내볼까 봐요. 애가 영 숫기가 없어서···.”
자기들끼리는 속삭인다고 하지만 수업 분위기를 깨는 높은 데시벨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스마일~ 착칵]얼씨구. 이제는 대놓고 사진까지 찍어댄다. 그럴 거면 무음으로 설정해두던가.
선생님도 신경 쓰이는지 연신 뒤쪽을 힐끔거리는게 보였다.
결국, 참다못한 나는.
“저기 어머님들? 수업이 잘 안 들려요. 조용히 좀 말씀해주세요.”
라는 내용의 쪽지를 써서 쑥덕거리는 민폐 덩어리들에게 보여주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몇몇 학부모들이 도끼눈을 치켜떴다.
“아니. 학부모 참관 수업인데 이 정도 얘기도 못 나눠요? 혼자 유난이야 정말.”
“근데 딱 봐도 젊어 보이는데 벌써 애가 초등학생이에요? 그러면 도대체 몇 살에 애를 낳았다는 거야?”
“어머머. 안 그래도 어릴 때 사고 친 애들 요즘 방송에 막 나오고 하던데 그런 건가 봐요.”
“어쩜 세상에 남사스럽기도 해라. 우리 애가 저렇게 될까 봐 걱정이네요. 단속 잘해야겠어요.”
쪽지 하나 건넸다가 무차별적으로 내리꽂힌 혓바닥 폭격에 순간 정신이 아찔해 왔다.
“허. 이 아줌씨들이···?”
왠지 모르게 오늘 하루 굉장히 스펙타클할 것 같다는 촉이 강하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