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피리부는 사나이
“큼큼. 나 재철이 삼촌인데 혹시 여기서 요즘 대세 아이돌 ‘아이리스’ 좋아하는 사람? 아저씨가 영상통화 시켜줄 수 있는데.”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햄버거에서 입을 뗀 아이들의 뜨거운 시선이 단번에 나에게 쏠렸다.
보육원 동생인 유라가 속해 있고 내가 투자자로 들어가며 기사회생한 ‘아이리스’는 현재 북미와 유럽에서 K-POP의 저력을 보여주며 맹활약을 펼치는 중이었다.
더불어 전국 초등학생이 뽑은 요즘 대세 아이돌 그룹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며 막강한 초통령으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진짜요?”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는 아이들을 보며 별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진짜지. 재철이가 얘기 안 했니? 재철이 누나가 아이리스 유라인데.”
“헐! 미친! 개쩐다! 재철아 진짜야?”
“왜 얘기 안했어!? 나 유라 누나 엄청 좋아하는데.”
“나는 다영 언니! 너무 멋있어!”
웅성웅성
잼민이들에게 아이리스가 가지는 파급력은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이었다.
먹던 햄버거도 내 팽개치고 재철이에게 몰려들 정도였으니.
흡사 생자를 쫓아다니는 좀비 떼와 다를 바 없는 광경.
무섭게 모여드는 관심에 재철이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황한 것 같기는 했으나 친구들의 관심이 썩 나쁘진 않은 모양이다.
“저기요! 재철이 삼촌. 아무리 뭣 모르는 아이들이라도 어른이 거짓말하고 그러면 못써요!”
금쪽같은 아들이 받아야 할 주목을 뺏겨서였을까?
학부모 회장님께서 단단히 뿔이 난 얼굴로 나에게 따지고 들었다.
“거짓말이라뇨? 저는 거짓말한 적 없는데요?”
“허. 나원참 어이가 없어서. 그럼 그쪽이 정말 그 아이리스인가 뭔가 하는 가수랑 잘 안다고요?”
“의남매라고 봐도 무방하죠.”
이건 사실이었다. 미국에 있는 녀석들이 숙소에 있을 땐 시도 때도 없이 페이스톡을 걸어 대는데 하는 짓이 가관도 아니었다.
나름 아이돌이라는 애들이 귀신 분장을 하고선 나를 놀래키질 않나, 어떨 때는 자기들끼리 싸우는 몰래카메라를 짜고선 나를 농락하질 않나.
하는 짓만 보면 아이돌이 아니고 돌아이나 다를 바 없었다.
물론 나에게만 보이는 모습이긴 했지만.
“그래요? 그거참 기대가 되네요.”
어디까지 가는지 한번 두고 보겠다는 눈초리가 선명히 전해졌다.
추악한 질투에 사로잡힌 아줌마는 신경끄고 다시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재철이랑 친하게 지내겠다고 약속하는 애들한테만 영상통화 시켜준다!”
“재철아 사랑해.”
“재철아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내가 더 잘할게.”
“재철아 나랑 사귀자.”
너 남자야 인마.
성 정체성을 포기할 만큼 요즘 초딩들에게 아이리스란 가히 신앙에 가까웠다.
“오케이. 좋아. 아주 마음에 들어. 그러면 아저씨도 약속을 지켜야겠지.”
아이고 뒤통수 다 뚫리겠네.
뒤통수가 따끔따끔한 것이 안봐도 알 수 있었다.
우리 대단하신 학부모회 회장님께서 나를 얼마나 쏘아보고 있을지를.
‘후우. 전화 받겠지···? 애들아 제발 받아주라.’
막상 전화하려니 긴장되긴 했다.
지금쯤이면 숙소에 있을 시간이긴 했지만 사람 일이라는 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기에.
여기서 만약에 아이리스 애들이 내 전화를 안 받는 사태라도 벌어진다면···.
어후. 생각을 말자.
내가 얘네한테 이 정도 절박한 심정으로 무언가를 원한 적 있었나?
짧은 날숨을 내뱉고는 떨리는 손으로 유라에게 페이스톡을 걸었다.
[띠리딩딩~♬ 띠리딩딩딩딩~♬]특유의 페이스톡 신호음과 함께 교실 내에는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짧은 통화 연결음이 흐른 후.
내 휴대폰 화면에 뚱한 얼굴의 유라가 나타났다.
간헐적으로 덜컹거리는 화면과 카시트가 보이는 걸 보니 스케쥴을 마치고 숙소로 향하는 듯했다.
[오빠? 이 시간엔 어쩐일이야? 더구나 페이스톡을? 심지어 오빠가 먼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래?] [헐? 설마 대운이 오빠야? 말도 안 돼! 우리가 전화하면 맨날 씹으면서 먼저 걸었다고? 오빠 어디 큰 병 걸린 건 아니지? 으앙. 죽지마.]채린아. 날 멋대로 보내지 말아 주렴.
나는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아 남을 거니깐.
“큼큼···. 얘들아? 나 지금 학부모 참관 수업 왔거든? 체통을 좀 지켜주렴.”
하지만 통신이 불안정한 것인지 순간 유라의 모습이 정지된 화면으로 나왔다.
“뭐야? 이거 먹통인······.”
[헐! 학부모 참관 수업? 오빠! 설마 우리 몰래 사고 쳤어?] [말도 안 돼! 초등학생이면 사고를 쳐도 몇 년 전에 쳤어야 하는 건데 그게 말이 돼?] [오빠 너무해. 우릴 두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얘들이 단체로 맛이 갔나.
꼬맹이들 듣는 데에서 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그게 아니고 자식들아! 재철이 학부모 참관 수업 왔다고! 유라 니 동생 재철이!”
[응? 재철이?]잔뜩 얼어있는 재철이를 카메라로 비춰주자 유라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피었다.
[꺄악! 재철아! 누나야!]“헤헤···. 누나아.”
재철이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유라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워낙 보육원 아이들을 살뜰히 챙겼던 유라였기에 보육원 애들 대부분은 유라를 정말 친누나, 언니로 생각하며 따랐다.
[누나가 미안해. 누나도 우리 재철이 보러 학교에 한번 가야 하는데.]“아니야 누나! 누나 바쁜 거 다 알아. 대운 삼촌이 대신 와줬으니깐 됐어.”
[어쩜! 우리 재철이 의젓하기도 해라. 얘들아. 우리 재철이 짱 멋지지?] [어머나. 네가 재철이구나? 유라 언니가 재철이 멋있다고 맨날 칭찬하던데 실제로 보니깐 더 멋있다아.]“헤헤···.”
소녀들의 칭찬 폭격에 쑥스러워하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재철이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얘들아. 재철이 반 친구들한테도 인사 한 번 해줘! 너네들 완전 팬이란다.”
[정말?]오매불망 자신들 차례만 기다리고 있던 꼬맹이 무리를 향해 카메라를 비춰주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와아아. 진짜 아이리스 누나들이다아!”
“꺄아아. 채린 언니이! 다영 언니이!”
“나비 누나 너무 이뻐요오!”
[꺄악! 귀여워!! 여러분 안녕!]아이리스 멤버들의 인사에 아이들은 거의 자지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슬쩍 곁눈질을 쳐다보니 학부모 회장님께서 벙찐 얼굴로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거봐요. 내가 친하다고 했지?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녀석들이었건만 처음으로 이 사고뭉치 소녀들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물론 직접적인 감사를 전할 생각은 없었다.
그걸 빌미로 무슨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칠지 몰랐기에.
차라리 노회한 정치인 상대하는 게 낫지 얘네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아서 보통 골치가 아픈게 아니었다.
“재철아 자.”
권력의 핵심인 휴대폰을 재철이 손에 쥐여주자 그 뒤로 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흡사 피리 부는 사나이와 진배없는 모습.
그렇게 인수인계를 마치고 어리벙벙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학부모 회장님께 다가갔다.
“이제 좀 믿으시겠어요?”
“어, 어떻게···?”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뭘 그리 놀라세요?”
크으. 졸라 카리스마 있어.
아무렇지 않다는 투로 대답했지만, 가슴 속에는 청량한 희열이 차오른다.
아무래도 나는 이런 쪽이 취향에 맞나봐.
심보 고약한 놀부들 골려주는 뭐 그런?
“속고만 사신 게 아니면 제발 사람 말 좀 믿으세요. 무려 학부모회 회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중책을 맡으신 분께서 정작 학부모 말을 못 믿으면 어떻게 국정. 아니, 학정 운영을 하겠습니까? 안 그래요?”
내가 던진 몸쪽 꽉 찬 변화구에 학부모 회장님께서 벌건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드셨다.
아이 무서워라.
“별꼴이야 정말.”
그 말을 끝으로 민기 엄마는 또각또각 거친 말발굽 소리를 내며 교실 문을 거칠게 열어 재끼고는 홀연히 사라지셨다.
회장님의 금쪽같은 새끼 홍민기 군은 아이리스 즉석 팬 미팅에 정신 팔려 엄마가 사라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고.
씨익 입꼬리 한번 올려주고 고개를 돌리다가 우연히 재철이와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자 재철이의 동그란 눈매가 곱게 접히며 예쁘장한 호를 그렸다.
호오. 저 녀석. 눈웃음도 지을 줄 알았어?
보기 드문 재철이의 찐 웃음에 덩달아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아마 근래에 했던 일 중에 오늘이 가장 잘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백곡초등학교 학부모 상담실.
학부모 참관 수업이 끝난 후에는 차례대로 담임 선생님과의 개별 상담이 진행되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괜한 소란 일으켜서.”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대뜸 선생님께 사과를 전했다.
아무래도 아이리스와의 즉석 팬 미팅이 다른 학년에도 소문이 나면서 학교 전체가 떠들썩해졌기 때문이었다.
“아니에요.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건 처음 봐서···. 뭐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애들 입장에서는 평생 안고 갈 추억 하나 생긴 건데 담임으로서 오히려 감사하죠.”
재철이의 담임인 채송화 선생님은 무척이나 온화한 성격을 지닌듯했다.
이런 분의 얼굴을 찡그리게한 민기 엄마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진상인 걸까?
“선생님은 알고 계시죠? 재철이가 지금 보육원에서 지낸다는 거.”
“네. 알고 있어요.”
내 과거를 반추해봤을 때 보육원 출신이라고 하면 약간 껄끄러워하던 선생님도 계셨는데 전혀 동요 없는 담담한 기색이었다.
재철이가 담임 하나는 참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친삼촌은 아니시겠네요?”
“네. 재철이랑 같은 보육원 출신입니다. 제가 보호자는 맞구요.”
“다행이네요. 재철이에게 이런 든든한 보호자가 있어서.”
배시시 웃는 채송화 선생님의 얼굴을 보자 내 입가에도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재철이 학교생활은 좀 어떤가요? 뭐 문제 되는 부분은 없나요?”
“전혀요. 예의 바르면서 교우 관계도 좋은 편이고, 학업 성취도도 뛰어난 편이에요. 다만······.”
잠깐 머뭇거리던 채송화가 담임으로서 느낀 점을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너무 과해요.”
“과하다고요?”
“철이 너무 일찍 들어서 그런지 눈치도 많이 보고 나이답지 않게 너무 과한 예의를 차려요. 무엇보다 본인 의견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너무도 서툴러요. 수업 시간에 멍하니 창밖을 내다볼 때도 많고···. 데려다 앉혀놓고 무슨 생각하는지 물어봐도 통 얘기를 안 해요. 이런 얘기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세상 다 산 노인처럼 군다고나 할까···?”
“흐음···. 무슨 말씀인지 알겠네요.”
대개 보육원 출신들에게 자주 보이는 현상이기도 했다.
나 역시 겪었던 과정이었고.
“그 부분은 제가 더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다소 냉정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스스로 극복해내야 할 문제였고 다른 누군가 대신 해결해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물론 옆에서 세심한 케어는 필요하겠지만.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재철이는 똑똑하고 착한 아이에요. 엇나가지만 않게 잘 잡아주면 뭐든 잘 해낼 거에요.”
진심이 뚝뚝 묻어나오는 따듯한 격려에 괜히 내 가슴이 간질거렸다.
만약 내가 이런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내 초년 인생이 조금은 긍정적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의미 없는 생각도 해봤다.
“재철이가 특별히 관심 갖는 건 없나요?”
이게 제일 궁금했다.
애가 워낙 본인 얘기하는걸 피하다 보니 도대체 그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 길이 없었으니.
혹시 담임 선생님이면 내가 보지 못한 무언가를 봤을 수도 있지 않을까?
“글쎄요···. 붙잡고 물어봐도 명확하게 얘기하질 않아서요.”
역시나. 아직은 시기상조인가?
“그런데 그건 한번 본 적 있어요.”
“뭐를요?”
“방과 후에 혼자 운동장에 남아 뭔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어요. 근데 재철이의 그런 표정은 처음 봤어요.”
“어땠는데요?”
“조금 오묘했는데···. 좀 슬퍼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나 보이기도 하는···? 제가 잘못 본 거일 수도 있구요.”
도대체 뭘 보고 있었길래 그 어린놈이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짙은 의문만 남긴 채 상담은 끝이 났다.
그런데 상담실을 빠져나오자마자 별로 달갑지 않은 인물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봐요 재철이 삼촌?”
“왜요? 무슨 할 말이 또 남았어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지.
내 입에서도 그렇게 사근사근한 말이 나오진 않았다.
우리 대단하신 학부모 회장님께서 웃으며 내게 말했다.
“학부모 총회도 참석해야죠?“
뭔가 꿍꿍이가 느껴지는 께름칙한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