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세상 참 좁다더니 여기서 만나네
백곡 초등학교 시청각실.
학부모 총회에 참여하기 위해 들어온 학부모들로 시청각실이 북적였다.
굳이 학부모 총회까지 가야 할까 살짝 고민이 됐지만, 기왕 온 거 미리 한번 체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나도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이 생길 거니깐.
아마도···?
“와···. 이번 학총에는 사람이 엄청 많네요. 재철이 삼촌은 이런 거 처음이죠?”
옆자리에 앉아 있던 40대 초반의 여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재철이 짝꿍인 예주 엄마였는데 오전 반차를 쓰고 부랴부랴 달려왔다고 한다.
예주가 나에 대해 말해줬는지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신 분이기도 했다.
MBTI가 ‘E’라고 확신할 정도로 굉장히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이셨다.
덕분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조금은 덜 심심하게 되어 나도 내심 반가운 입장이었다.
“신기하네요. 우릴 때는 이렇게까진 안 했던 것 같은데···. 대체 뭐 하는 거예요?”
“뭐 별거 없어요. 그냥 교직원들하고 인사하고 애들 어떻게 교육할 건지, 어떤 행사가 계획되어 있는지 학교생활 전반에 대한 정보를 학부모에게 알려주는 자리에요.”
무슨 일하시는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명을 아주 맛깔나게 잘 해주셨다.
“이런 건 무조건 참여해야 하는 겁니까?”
“그건 아니에요. 강제성은 없는 행사고 굳이 참석하지 않는다고 아이에게 불이익이 가지도 않아요. 그래도 내 아이를 위해서 참석하는 편이 좋죠. 이게 불참을 하게 되면 은근히 왕따 같은 걸 당할 수도 있거든요. 듣기로는 며칠 전에 아는 언니 아들이 자기만 쏙 빼고 반 친구들이 축구팀을 만들었다면서 대성통곡을 했다는 거 아니겠어요?”
“엥? 왜요?”
“아니 글쎄 알고 보니깐 학총 때 만난 학부모끼리 만든 깨톡방에서 축구팀을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방에 없는 학부모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소외되는 거죠. 이러니 부모 입장에서 신경이 안 쓰이겠어요? 원래는 저도 여기에 못 오는 거였는데 팀장님한테 사정사정해서 겨우 반차라도 쓴 거에요. 애 아빠는 반차는 커녕 바쁜 시즌이라 주말도 헌납한 상황이고요. 에효···. 맞벌이 부부는 정말 애 키우기 쉽지 않은 세상이에요.”
“확실히 그렇겠네요···.”
만약 오늘 내가 학교에 오지 않았더라면 재철이가 겪었을 수도 있는 일이라 허투루 들을 수가 없었다.
물론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작은 것들이 쌓이고 쌓여 학교생활에 지장을 만들고 나중에는 어떤 부정적인 결과로 돌아올지 아무도 모르는 거였다.
곁눈질로 주변을 한번 쓱 훑어보다가 나지막한 감탄을 터트렸다.
“근데 이거 누가 보면 학부모 총회가 아니라 패션쇼장이라고 해도 믿겠어요. 다들 무슨 패션이···.”
“당연하죠. 여기 있는 엄마들. 안 보는 척하면서 서로 전신 스캔 싹 다 돌렸을걸요? 학부모 총회에 뭘 입고 가느냐는 이제 자존심 대결 같은 게 되어버렸거든요. 방금도 입구에서 어떤 엄마가 제 가방을 힐끔 쳐다보더라고요. 로고가 눈에 띄지는 않지만, 누군가 봤을 때 ‘어머!’ 하고 감탄할 정도의 가방은 메 줘야 꿀리지 않는다고 할까···?”
“아니. 그렇게 돋보이고 싶으면 눈에 띄게 입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오히려 싼 티가 나죠. 너무 튀지는 않지만 고급스럽고 세련된 느낌의 꾸안꾸 스타일 몰라요?”
“꾸아꾸요? 무슨 부족 이름인가요?”
“꾸민 듯 안 꾸민 듯! 재철 삼촌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여기 오셨구나···.”
이 무슨 의미 없는 짓거리란 말인가.
애들 학교생활만 잘하면 됐지 왜 본인들이 더 난리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여기에선 엄마의 첫인상이 아이의 첫인상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총회 한 달 전부터 피부과에 다니거나 다이어트하는 엄마들도 있대요.”
“헐···. 예주 어머니 그렇게까지 노력하셨어요?”
물론 농담이었다.
초면이었지만 예주 엄마는 뭔가 만만···. 이 아니라 다가가기 편한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고나 할까?
그런데 예주 엄마 반응이···.
“어머! 티, 티 나요?”
당황한 예주 엄마가 손부채질을 하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혔다.
그냥 던진 말이었는데 설마 진짜 본인 이야기였을 줄이야···.
“호호호. 아이 민망해라. 아무래도 제가 다른 엄마들보다 나이가 좀 있는 편이다 보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더라고요.”
“충분히 동안이십니다. 전혀 그렇게 안 보이세요.”
“어머. 재철 삼촌도 참. 말뿐이라도 고마워요. 호호.”
나는 없는 말은 안한다.
대충 둘러봐도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어머니들이 많았고 그들에 비해서 예주 어머니는 상당한 동안에 속했다.
그렇게 예주 엄마랑 정신없이 떠들다 보니 시간은 금방금방 흘러갔다.
교장의 인사 이후 교직원들의 소개가 이어졌고 전반적인 학교 운영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후에는 녹색어머니회, 마미캅, 사서 도우미, 급식모니터링, 방과후 모니터링, 학부모 교육 활동 등의 여러 가지 활동이 학부모회의 주도 아래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
“흐음···. 생각보다 체계적이구만.”
하는 일이 없는 줄 알았던 학부모회는 생각보다 이런저런 다양한 역할을 했다.
그렇게 생전 처음 겪어보는 학부모 총회의 감상을 곱씹던 중 마지막 순서인 학부모 건의사항 차례가 다가왔다.
바야흐로 전쟁의 서막이었다.
“자. 마지막으로 학부모님들의 건의사항을 받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건의사항을 받겠다는 학교 측 말에 여기저기서 번쩍 손이 올라왔다.
“4학년 5반 김장군 엄마입니다. 며칠 전에 선생님이 애들이 떠든다고 크게 고함을 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아이들이 말할 권리를 침해하는 엄연한 아동학대입니다. 윽박지르기보다는 부드럽게 타일러주길 바랍니다.”
헐? 저런 것도 아동학대야?
우릴 때는 앞으로 한 명씩 나와서 당구채로 시원하게 엉덩이 몇 대씩 맞고 들어가고 그랬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저 아줌마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도 눈에 보였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선생님만 비싼 오다수 물 마시지 말고 아이들에게도 좀 나눠주세요. 아이들은 왜 정수기 물만 마셔야 합니까?”
“선생님들 제발 애플폰 쓰지 말아 주세요. 아이들이 선생님하고 같은 폰 사달라고 하도 졸라서 너무 힘듭니다.”
아니, 이게 무슨 건의사항이야? 그냥 생떼 부리는 거지.
나이도 드실 만큼 드셨고, 배울 만큼 배운 양반들이 저런 얘기를 한다고?
더 어이없는 건 분위기는 한없이 진지하다는 것이었다.
“받아쓰기 시험 칠 때 혹여 오답이더라도 빗금을 치지 말아 주세요. 우리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합니다. 상처받을 아이는 생각하지 않는 겁니까?”
와. 정말 놀라웠다.
우리 아이 ‘기분 상해죄’를 언급하며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대는 학부모가 이렇게 많다니.
학교가 언제 이렇게 바뀌어 버린 걸까?
내가 학교 다닐 땐 스승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그랬고,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진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닌 시절이었는데.
한데. 지금은 분위기를 보아하니 수틀리면 선생이고 뭐고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두들겨 팰 기세였다.
“우리 집 아이가 집에서는 통 채소를 먹지 않는데 학교에선 먹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단 억지로 먹이면 안 됩니다.”
이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릴까?
알고 보네 여기는 학부모 총회가 아니라 창의력 개소리 경진대회가 아닐까?
광기가 휘몰아치는 현장 속에 갇혀 있다 보니 나까지 어질어질해질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익숙한 인물이 자리에서 일어나 발언권을 잡았다.
“3학년 2반 홍민기 엄마입니다. 3학년 학부모 회장이기도 하구요. 저도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애가 학교에 안 나오면 담임 선생으로서 전화 한 번 해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모닝콜 한번 해주는 게 그렇게 힘든 일입니까? 우리 애 아빠가 고위 공무원인데 지금 화가 많이 났어요. 지금 여기 온다는 걸 겨우 말렸구요.”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민기 엄마의 고강도 무개념 개소리,
본인이 낳은 앤데 본인이 케어해야지 왜 그걸 선생한테 책임 전가한단 말인가?
애 아빠가 화났다는 부연 설명은 왜 붙인 거고?
왜 화가 난 건지도 모르겠고, 진짜 화를 낸 건지도 모르겠다.
“이 일. 교육청에 정식으로 민원 넣겠어요.”
개소리의 홍수 속에 민머리 교장은 땀을 뻘뻘 흘리며 성난 학부모 민심을 달래기 바빴다.
“저기···. 민기 어머님. 일단 진정하시고 앞으로는 저희가···.”
“같은 집구석에 사는 자식도 못 깨울 거면 대체 애는 왜 낳은 겁니까?”
층고 높은 시청각실 내부를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뜨겁게 달아올랐던 공기가 한순간 싸늘하게 식었다.
동시에 모두의 고개가 한곳으로 향하며 따가운 시선들이 쏟아졌다.
“뭐, 뭐라고요?”
민기 엄마가 어이없다는 듯 눈을 부라리며 나를 노려봤다.
물론 별로 위협적이진 않았다.
원래 속이 빈 깡통이 소리가 더 요란한 법이었으니깐.
“자기 할 말은 그렇게 잘하면서 남 말은 별로 안 들으려고 하나 보네요. 그거 안 좋은 습관입니다. 애가 보고 배울까 봐 걱정이네요. 그런 소소한 일까지 선생들한테 맡기실 거면 애는 대체 왜 낳았냐고 묻는 겁니다. 학교가 무슨 탁아소입니까? 선생님들은 당신을 애 키워주는 보모에요?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서 원.”
도끼눈을 치켜뜬 민기 엄마가 양손을 허리에 얹고 나를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어이구 무서워라. 눈에서 불이라도 나오시겠네.
“이봐요. 재철이 삼촌! 부모가 아니어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여긴 학부모가 정당하게 학교에 건의사항을 말하는 자리에요!”
“건의사항이요? 누가 더 무개념 생떼 부리는지 자웅을 겨루는 자리 아니었습니까?”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내가 이렇게 전투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민기 엄마가 말을 더듬었다.
“아닌가요? 저는 너무 얼토당토않은 요구만 하길래 당연히 그런 줄 알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한번 쓱 둘러본 나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했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존중받지 못하는 법입니다. 보아하니 여기에는 존중받지 못할 분들이 몇몇 보이네요.”
서늘한 시선에 몇몇 학부모는 내 눈을 피했지만, 대부분은 네가 뭔데 이렇게 나대냐는 눈빛이었다.
“여러분들이 간과하시는 게 저 선생님들도 집에 돌아가면 누군가의 금쪽같은 자식들입니다. 당신 자식들만 귀합니까? 본인들 자식이 나중에 커서 이따위 취급 받으면 ‘얘아. 원래 사회생활이란게 이런 똘아이들 보고도 묵묵히 참아야 할 정도로 더럽고 치사한 거란다. 이렇게 말씀하시겠어요?”
점점 무거워지는 분위기와 상관없이 나는 내 할 말은 해야겠다.
“그리고 뭐만 하면 맞벌이 핑계만 되는데 그게 뭐 유세입니까? 맞벌이면 모든 책임을 학교에 전가해도 되는 거냐고요. 맞벌이하면서도 아이들 개념 있게 잘 키우는 부모도 많습니다? 능력이 부족하면 능력 키울 생각을 하세요. 본인이 아이한테 신경 못 쓴 죄책감을 왜 학교에다가 화풀이합니까? 그거 엄청 추한 거 모르시죠? 지금 본인 모습 영상으로 찍어서 보면 많이 역하실걸요?”
폐부를 찌르는 촌철살인에 결국 분노가 폭발한 민기 엄마가 시뻘게진 얼굴로 내게 삿대질을 해댔다.
“야! 너 우리 애 아빠 뭐 하는 사람인 줄 알아? 보자 보자 하니깐 정말!”
“제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그리고 그걸 알아야 합니까?”
“당신···! 여기 꼼짝말고 있어. 십분 뒤에 당장 후회하게 해줄 테니까.”
“어이구 무서워라. 뭐 하시려고요? 남편 부르시려고요?”
“조금 있다가도 그 잘난 혓바닥 놀릴 수 있는지 한번 볼 거야 내가.”
그러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건 민기 엄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당장 애 학교로 와! 왜긴 왜야! 생전 처음 보는 남자한테 모욕당했으니깐 십 분 내로 당장 튀어 와!”
얼씨구. 내가 무슨 모욕을 했다고?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를 짚어줬을 뿐인데.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에 학부모 총회는 잠깐 소강상태에 빠져들었고 교장이라는 사람은 민기 엄마에게 딱 붙어서 어떻게든 화를 풀어주려고 용을 썼다.
잠시 후.
쾅!
“누구야! 우리 집사람한테 욕했다는 놈이!”
부서질 듯 문이 벌컥 열리며 웬 남자가 씩씩거리며 시청각실로 들어섰다.
장내는 흉흉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남자가 계단을 타고 성큼성큼 내려왔다.
그런데 남자가 가까워질수록 어째 낯익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다 나와 눈을 마주친 남자가 움찔하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호오. 이게 누구셔요? 이야. 세상 참 좁다더니 여기서 다 뵙네요?“
이게 웬 반가운 인물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