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최연소 황금빛의 주인공
“뭐지? 왜 여기서 황금빛이···.”
당황스러웠다.
학부모 참관 수업 왔다가 느닷없이 황금빛이라니.
더구나 이제까지 봤던 황금빛 중에 최연소가 아닌가.
제자리에 멈춰선 나는 밤하늘 오로라처럼 은은한 황금빛을 흩뿌리고 있는 재철이의 뒤통수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제껏 보육원에서 수도 없이 봐온 녀석이건만 왜 하필 지금 저 빛이 발현된 걸까?
“뭐지?”
알고 보니 꼬마 사업가의 자질이라도 있었던 걸까?
아니면 다른 어떤 재능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뒤통수만 봐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나는 재철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살금살금 벤치 쪽으로 다가갔다.
“도대체 뭘 보고 있길래 저렇게 넋을 놓고 있는 거지?”
여느 학교가 그러하듯 운동장 한쪽에 마련된 코트에는 농구공 튀기는 아이도 있었고, 신나게 축구공을 차는 아이도 많았다.
외곽에 깔린 육상 트랙에는 술래잡기 같은 것을 하는 애들도 눈에 들어왔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광경.
“왁!”
내 나름의 소박한 서프라이즈였건만 스윽 고개를 돌린 재철이가 눈을 끔뻑이다가 내게 정중히 물었다.
“놀라야 하는 거죠?”
“아니. 굳이 안 그래도 돼.”
왠지 그게 날 더 창피하게 만들 것 같았다.
재철이 옆자리에 털썩 앉은 나는 녀석의 어깨를 팔로 감쌌다.
“상담은 다 끝났어요?”
“응. 선생님이 너 칭찬 엄청하더라.”
“선생님이야 워낙 좋으신 분이니깐···. 누구한테도 싫은 소리 안 할 거예요.”
코흘리개 주제에 이건 뭐 나 어릴 때보다 더하네.
나는 녀석의 정체성을 찾아주기 위해 팔로 목을 휘감았다.
“꼬맹이 주제에 어디서 애늙은이 행세야!?”
“아아아악. 항복 항복.”
그제야 제법 아이다운 표정이 된 재철이가 관심 없는 듯 무심히 물었다.
“다른 말은 안 했어요?”
궁금하긴 한가 보네 짜식.
“했지. 너 왜 수업 시간에 창문 보면서 멍때리고 있냐?”
“공부 재미없어요.”
“공부야 당연히 재미없지. 누군 재밌어서 하냐? 해야 하니깐 하는 거지.”
“공부하면 뭐해요. 어차피 대학도 못 갈 텐데.”
이게 어디 초등학교 3학년 입에서 튀어나올 말인가?
얘는 일찍 철이 들다 못해 살짝 녹슨 느낌까지 들었다.
이 노회한 어린 양을 어찌할꼬.
“대학을 왜 못가. 나도 대학생인거 모르냐?”
“삼촌도 정상적인 대학생은 아니잖아요.”
그말에 나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내가 생각해도 정상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기에.
“어른들이 그러던데 요즘은 대학 굳이 안 가도 된대요. 대학 안 가도 잘 먹고 잘사는 시대가 왔다고 했어요.”
“뭐. 틀린 말은 아니지.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허송세월 낭비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어. 대학 갈 필요가 없다는 건 굳이 대학에 안 가도 자기가 하고 싶은게 뚜렷히 있을 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해.”
“하고 싶은 거···.”
미약한 숨소리 같았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흐려지는 말끝에서 묻어나온 희미한 갈망을.
“넌 뭘 하고 싶은데?”
“하고 싶은 거 없어요.”
조건반사처럼 튀어나온 답변.
자고로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과도 같은 법.
분명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애써 숨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이 녀석아.
내가 사람 속 살살 긁어서 속엣말 내뱉게 하는걸로 돈 버는 사람이거든.
“너는 네가 다 컸다고 생각하지?”
고개를 돌린 재철이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는 운동장 쪽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계속 말을 이어갔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것 같고, 주변 친구들하고 내 처지하고 자꾸 비교하면서 세상을 비관···. 아. 이건 말이 너무 어렵나? 세상이 밉고 막 그러지?”
곁눈질로 힐끔 살펴보니 재철이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속내를 간파당해서 당황스럽겠지.
원장 어머니나 다른 보육원 선생님들 전부 우쭈쭈만 해줬을 테니.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건 하등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런 것보단 현실을 일깨워줄 수 있는 충격요법이 더욱 효과적인 법.
물론 초등학생한테 할 법한 건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어른 행세를 하고 싶다는데 거기에 맞춰줘야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가 싶지?”
대개 속내를 들킨 어린이들은 짜증을 내거나 울음을 터트리는 경우가 많은데 녀석은 그저 고개만 끄덕인다.
확실히 남다른 녀석이긴 했다.
“내가 그랬으니깐. 니가 느끼고 있는 모든 것들…나도 다 겪은 거거든.”
“아···.”
조막만한 입에서 낮은 탄식이 터져 나온다.
“근데 그거 그냥 중2병이 좀 일찍 온 거에 불과하다? 너 나중에 이불킥 안 하려면 생각 고쳐먹어. 너는 네 스스로가 무슨 비련의 주인공처럼 느껴지겠지만 그거 아니야. 넌 그냥 혼자 세상에 삐져있는 삐돌이일 뿐.”
“삐진 거 아니거든요?”
요건 좀 먹혔다.
원래 애들은 삐졌을 때 삐졌냐고 물어보면 발끈하는 법이거든.
“알아.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보육원에서 지내는 이상 그걸 하기 쉽지 않다는 거. 근데 그거 안 하면 삼촌처럼 나중에 나이 먹어서 진짜 후회한다? 그리고 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냥 얘기는 해볼 수 있잖아. 너 그거 모르지? 다른 사람한테 내가 하고 싶은 거 얘기만 해도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물론 궤변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뉘앙스에 확신을 묻히면 그럴듯한 정설로 들리기도 한다.
“진짜요···?”
“당연하지. 그리고 내가 네 얘기를 아무 데서나 떠들고 다니겠냐? 사나이 대 사나이로 얘기하는 건데?”
오케이. 이쯤에서 허를 한번 찔러주자.
“너 운동하고 싶지?”
“어?”
나를 멍하니 쳐다보던 재철이의 눈이 토끼처럼 동그래졌다.
공부에 관심없는 애가 매번 운동장만 뻔히 쳐다본다라.
사실 뻔한 추론 아니겠는가?
“놀라긴 인마. 삼촌은 다 안다니깐 그러네. 뭐 하고 싶은데? 축구? 야구? 농구?”
“골프요.”
“그래 축···. 응? 골프?”
아···. 이건 예상 못했다.
초등학생 입에서 난데없이 골프가 웬 말이란 말인가.
물론 요즘 골프가 대중적인 스포츠로 떠오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엄연히 어른들 사이에서 그런거지 아이들이 골프에 관심 두는 경우가 몇이나 될까?
‘근데 운동장이랑 골프랑 무슨···.’
그러다가 운동장 한구석에서 선생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골프채를 휘두르는 장면이 포착됐다.
공은 안보이는걸로 봐선 그냥 허공에 스윙연습 정도 하는 것 같았다.
“어···. 음. 좀 의외긴 하네. 당연히 축구나 야구가 나올 줄 알았더니.”
“그것도 해봤는데 골프보단 재미없어요.”
“골프를 해본 적이 있어?”
내 물음에 재철이가 발로 바닥을 쓱쓱 휘저으면서 수줍은 듯 말했다.
“그냥···. 따라만 해봤어요.”
추정컨데 너튜브같은 데에서 골프 하는 장면을 보고선 어설프게 따라 했던 모양이었다.
“그게 그렇게 재밌었어?”
“네. 골프공이 구멍에 쏙 들어가는 거 보면 너무너무 재밌어요.”
재철이를 알게 된 이후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무언가를 강렬히 좋아하고 염원할 때 보이는 아이 특유의 천진난만한 눈빛.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흥미가 있어 보이는 건 확실해 보였다.
“공이랑 골프채는 어떻게 구했어?”
“그건···.”
머뭇거리는 모습에 녀석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괜찮아 편하게 얘기해도 돼.”
“근처 스크린 골프장에서 버린 거 주워왔어요.”
이 녀석···. 진심이구나.
얼마나 해보고 싶었으면 거기서 주워올 생각을 다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한번 가서 운 좋게 구한 건 아닐 거다.
아마 원하는 물건이 버려질 때까지 출근 도장 찍듯 쓰레기 더미를 뒤졌겠지.
쥐콩만한 놈이 쓰레기장을 기웃기웃하는 모습이 상상되자 괜히 마음이 짠해졌다.
“근데 왜 얘기 안 했어?”
“골프는 돈이 많이 든대요.”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공 하나만 있으면 되는 축구와 달리 골프라는 스포츠는 돈 없이 하기엔 무리가 있었으니깐.
“제 용돈 가지고는 할 수가 없어요.”
보육원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보육원 아이들도 용돈을 받는다.
하지만 용돈은 말 그대로 용돈일 뿐이어서 기껏해야 군것질이나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지. 용돈 가지고는 절대 못 하지.”
내 말에 재철이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삼촌이 도와주면 가능하지.”
그 말에 번쩍 들리는 재철이의 머리.
목 나가겠다. 녀석아.
“정말요?”
“아직도 이 삼촌을 못 믿냐? 삼촌이 누구라고?”
“슈퍼맨!”
“그래 슈퍼맨. 일단 재철이한테 고맙다는 말부터 할게.”
뜬금없는 감사에 재철이의 머리가 갸우뚱했다.
“삼촌한테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다고. 그거 사실 큰 용기가 필요하거든.”
만약 재철이가 골프를 배워보고 싶다는 말을 힘들게 털어놓았는데 콧방귀를 뀌며 온갖 부정적인 말을 쏟아냈다면 재철이는 아마 다시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헤헤···.”
쑥스럽다는 듯 얼굴을 붉힌 채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을 보니 이제야 좀 제 나이처럼 보였다.
“오케이. 기분이다. 그럼 한번 가볼까?”
벤치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재철이를 내려다보며 스윽 손을 내밀었다.
“어딜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내가 내민 손을 맞잡은 재철이를 향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대로 한번 해보러 가보자고.”
***
로열 골프 스튜디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프라이빗 골프 연습장으로 분당 자산가들의 놀이터로 유명한 곳이었다.
내부로 들어서니 녹색과 골드 컬러가 적절히 조화된 인테리어가 무슨 호텔 라운지 뺨칠 정도로 호화스러웠다.
한쪽 벽 전체에는 온갖 상패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그것만 봐도 이곳을 운영하는 이가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손을 꽉 붙잡은 재철이가 신기하다는 듯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반갑습니다 송 대표님.”
“처음 인사드리겠습니다. 구 프로님. 송대운이라고 합니다.
곧이어 우리 쪽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넨 한 남자.
아마 골프 좀 친다고 하는 사람들이 봤으면 그 자리에서 환호성을 질렀을 것이다.
대한민국 골프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구원회.
그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QGA 컴팩 클래식에서 한국인 최초 우승을 거머쥔 골퍼였고, 그해 템파페이 클래식 우승으로 한 해에 2연승이라는 기념비적인 업적과 더불어 지금까지 QGA 9연승을 이룩하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알린 프로 골퍼이기도 했다.
이런 인물을 어떻게 아는 거냐고?
북산벤처스의 이종훈 대표님이 직접 소개를 해주셨다.
두 분이 절친한 친구처럼 지낸다나 어쨌다나.
어찌 됐건 지인 찬스만큼 편한 것도 없었다.
보통 두세 달은 예약이 꽉 차 있는 곳이라 원래 같았으면 안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테니.
“이 아이입니까?”
구원회 선수가 내 손을 꼬옥 잡은 재철이를 내려다봤다.
부리부리한 인상이라 보통 아이였으면 주눅들만도 한데 재철이 녀석, 피하지도 않고 씩씩하게 마주 본다.
정말 학부모라도 된 듯 그 모습이 괜스레 대견했다.
“골프를 제대로 배워 본 적은 없다고요?”
“네. 그래서 구 프로님이 한번 봐주셨으면 합니다.”
“일단 저를 따라 오시죠.”
빈 레슨장으로 우리를 안내한 구원회가 재철이를 보며 말했다.
“올라가서 제일 잘하는걸로 한번 쳐볼래? 할 수 있겠어?”
제대로 된 연습장은 한 번도 와본 적 없을 재철이지만 녀석의 얼굴에선 조금의 두려움도 엿보이지 않았다.
“네. 할 수 있어요.”
골프채를 손에 쥐고 스크린에 앞에 선 재철이가 전방을 주시하더니 몸을 풀듯 가볍게 헛스윙 몇번 휘둘렀다.
구원회 선수에게 딱 달라붙은 나는 귓속말로 물었다.
“어느 정도 싹이 좀 보이나요?”
“흐음···. 글쎄요. 자세를 보니 제대로 배운 적 없는 건 확실해 보이네요.“
짧은 심호흡을 내뱉은 재철이가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이내.
“송 대표님?”
쉬이이이익!!
퍼억!!!
무심한 눈으로 재철이를 응시하던 구원회가 뜬금없이 나를 부름과 동시에 손에 든 종이를 내팽개치며 두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