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7)
17화 황금빛이 왜 저기서 나와?
한영대학교 3학년 박성민은 공익근무요원을 마치고 이제 막 복학한 복학생이었다.
그는 소위 말하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아버지가 연 매출 300억대 건실한 중소 기업 대표로 어릴 적부터 부족함 없이 자라왔다.
그러나 너무 오냐오냐 자란 탓이었을까?
유년 시절부터 잦은 물의와 사고를 일으켰고 뒷수습은 늘 부모의 몫이었다.
기름때 묻혀가며 자수성가를 이룬 박성민의 아버지는 아들만큼은 꼭 명문대에 보내고픈 마음이 간절했고 사교육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었다.
다행히 공부에 영 소질이 없던 건 아니었는지 박성민은 운 좋게 턱걸이로 한영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너무나도 기뻤던 박성민의 아버지는 동네에 현수막을 걸고 잔치까지 벌였을 정도였으니.
어찌 됐건 꿈을 이뤄준 기특한 아들에게 신용카드와 새 차까지 뽑아주며 남다른 보상도 해주었다.
신입생에겐 흔치 않았던 자가용을 타고 다니며 부를 과시한 박성민은 아버지에게 받은 신용카드를 마구잡이로 긁어대며 나름 인기를 얻어왔다.
하지만 문제는 박성민의 여성 편력이었다.
양다리는 기본이고 세 다리. 심할 때는 네다리까지 걸치자 소문이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었고, 결국 SNS에 저격까지 당하며 그 행적이 낱낱이 밝혀진다.
“시팔. 먼저 꼬리친건 그년들인데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과에서 쓰레기로 소문이 퍼지자 박성민이 지나갈 때마다 뒤에서 욕설과 손가락질이 뒤따랐다. 결국 박성민은 휴학하고 도망치듯 공익근무요원 생활을 시작했다.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 했던가.
지루한 공익 생활을 이어간지도 어느덧 2년이 다 되었다.
소집 해제 기간이 다가오자 새로운 학교생활이 너무 기대됐다.
“어차피 날 기억하는 놈들도 거의 없을 거야.”
경영학과 특성상 한 학년에 보통 200명에 가까운 대(大)인원이었기에 같은 과라고 할지라도 누가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더구나 여자 동기들은 한참 취업 준비 시즌이라 수업에서 마주칠 일도 없었다.
“복학하면 새로 출발하는 거야. 이제는 절대 안 걸릴 자신 있어.”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복학한 박성민의 눈에 처음 들어온 여자가 김주희였다.
하얗고 깨끗한 피부.
아담하지만 비율 좋은 몸매에 귀여운 얼굴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이상형이었다.
그때부터 박성민은 김주희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기 시작했고, 마침내 가까워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포착했다.
***
“주희씨. 팀 아직 안정했죠?
살짝 찢어진 눈매에 요즘 유행한다는 가르마펌 스타일의 남자가 주희를 불렀다.
활짝 웃고 있던 주희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
“지금 정했어요. 여기 언니 오빠들이랑 같은 팀 하기로 했거든요.”
남자의 뱁새 눈이 빠르게 우리를 훑었다.
그러더니 털썩 빈자리에 앉는 남자.
“잘됐네. 반가워요. 경영학과 박성민이라고 합니다.”
“아. 네···.”
가행이가 떨떠름한 얼굴로 침묵하자 유진이가 어색하게 인사를 받았다.
“그럼 네 분이 팀인가요?”
“네. 뭐···. 그렇죠?”
“주희씨랑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호구 조사당하는듯한 기분에 인상이 찌푸려지려는 찰나.
괜히 분위기 어색해지는 게 싫었던지 유진이가 애써 웃으며 답했다.
“저희 전부 편입 동기에요.”
“아. 주희 씨가 편입생이었구나. 그건 몰랐네요.”
“근데 그쪽은 누구신데요?”
가행이가 심드렁하게 묻자 박성민이 주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부담스러운 시선에 주희는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봤다.
“주희씨한테 호감 있는 사람이요.”
너무도 당당한 남자의 말에 가행이도 순간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잘됐네요. 어차피 팀원은 5명까지라니까 저도 끼워줘요. 편입생끼리만 모여있으면 재학생들한테 불리할 거 아니에요.”
선을 넘는 무례함에 참다못한 주희가 새 하얀 이마를 찌푸렸다.
“저기요. 지금 무슨···.”
“저랑 같은 팀 하면 과제 만점은 무조건 보장할게요. 저희 아빠가 제법 건실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계시거든요. 인터뷰고 뭐고 뭐든 가능하니깐 저만 믿고 따라오시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박성민의 태도에 난감한 미소를 지은 유진이가 최대한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죄송한데 애초에 저희 넷이서만 하기로 해서요. 이미 어느 정도 계획도 잡아놓은 상태구요.”
약간의 거짓말까지 섞어 거절 의사를 밝히자 박성민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 계획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랑 팀 하면 무조건 버스 타는 거라니까 주희씨? 저번에 번호 물어봤을 때도 거절하더니 이번에도 거절할 거에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박성민의 태도에 주희는 어찌할 줄 몰라 했고, 가행이와 유진이의 얼굴도 점점 굳어갔다.
“그러지 말고 같이 팀 해요. 네? 이번에 뽑은 새 차로 운전기사도 해드릴게요.”
온갖 잡스러운 자랑을 해대던 박성민이 주희의 손목을 덥석 붙잡으려던 순간.
탁
나도 모르게 조건 반사처럼 놈의 손을 탁 쳐냈다.
순식간에 싸늘하게 가라앉은 공기.
나는 차가운 눈빛으로 박성민을 응시했다.
“이봐. 우리가 싫다잖아. 근데 왜 자꾸 들러붙고 지랄이세요.”
“뭐? 지랄? 허! 지금 말 다 했냐?”
급발진한 박성민이 벌떡 일어나 나를 노려봤다.
주희는 발을 동동 구르며 전전긍긍했고 유진과 가행이는 걱정스럽게 나를 쳐다봤다.
괜찮다는 의미로 세 사람에게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놈과 마주 섰다.
키는 내가 더 컸기에 놈을 내려다보는 형세가 됐다.
“다시 한번 말해봐. 뭐라 했냐?”
내가 아무 말도 없자 겁 먹었다고 생각했는지 더욱 기세등등해진 박성민.
짧은 한숨을 내뱉은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웬만하면 옛날 성질은 감추고 살려고 했는데 어딜가나 이런 똘아이들은 존재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야.”
움찔
눈꺼풀 속에 감춰져 있던 날것 그대로의 흉흉한 눈빛과 마주친 박성민이 움찔했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우린 너랑 할 생각 없으니깐···. 당장 꺼져.”
서슬이 퍼런 눈빛에 압도당한 박성민이 결국 고개를 돌리며 다급히 가방을 집어 들었다.
“참나. 거저 먹여준다고 해도 싫다 그러네. 어디 얼마나 대단한 과제 내놓는지 한번 두고 봅시다.”
그 말을 끝으로 박성민이 도망치듯 후다닥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유진이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뭐 저런 상 미친놈이 다 있어? 주희야. 쟤가 걔야? 계속 너한테 찝쩍거린다는 놈이?”
“네. 맞아요. 아무리 거절해도 계속 저러는데 미치겠어요. 아무튼, 언니오빠들 저 때문에 죄송해요. 괜히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서···.”
주희의 사과에 유진이가 정색했다.
“야 김주희. 이게 왜 네가 죄송할 일이야? 그냥 병신 하나 때문에 재수 없게 똥 밟은 거지.”
가행이도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진짜 재수 밥 말아 먹은 스타일이더라. 생긴 것도 그렇고, 허세는 아오! 대운이형이 안 나섰으면 내가 뒤지게 팼다 진짜.”
“오올. 그나저나 쏭대운씨. 나 다시 봤잖아. 그 박력! 크! 나 좀 반할 뻔.”
“그러니깐. 다들 봤지? ‘야. 꺼져.’ 캬! 무슨 느와르 영화 대사인 줄.”
두 만담 듀오가 나를 보며 엄지를 치켜세우자 민망함이 물밀듯 몰려왔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말했다.
“저런 놈이야 뻔하지 뭐. 강하게 나가면 찍소리도 못하거든.”
그 험하다는 뱃생활을 4년이나 버틴 나다.
실제로 배 안에서는 구타는 물론, 간혹 감정이 격해지면 연장까지 드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기에 저런 풋내기 하나 상대하는 건 우스운 일이었다.
주희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요 오빠. 혹시 저 사람이 또 귀찮게 하면 오빠가 내 남친이라고 좀 할게요.”
주희의 말에 나는 기겁했다.
“야야. 남자친구는 무슨. 그냥 승질 더러운 사촌 오빠라고 그래.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일단 여기서 나갑시다. 수업도 끝났겠다 간단하게 맥주 한잔 마시면서 팀플에 관해 얘기 나누는 거 어때?”
“콜!”
유진이의 제안에 가행이가 숨도 쉬지 않고 콜을 외쳤다.
“나도 콜.”
“저도 좋아요오!”
“오케이 갑시다. 할맥으로 고고.”
그렇게 우리 네 사람은 강의실을 나와 단골 술집으로 향했다.
웅성웅성
한영대생 원픽 술집답게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실내가 제법 북적였다.
“자 건배!”
새하얀 살얼음이 가득서린 맥주잔을 맞부딪힌 우리는 거품이 지붕처럼 덮인 생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으···. 이거지! 역시 수업 끝나고 먹는 맥주 만한 게 없어. 암 그렇고말고.”
“하아···. 좋다. 내가 진짜 이것 때문에 학교 나온다니깐.”
가행이와 유진이가 몸을 부르르 떨며 격한 감동을 표했다.
“그나저나 과제는 어쩌죠? 좋은 아이디어 있으신 분?”
주희의 물음에 언제 떠들었냐는 듯 다들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다른 팀 보니깐 의욕이 장난 아니던데···.”
“의욕이라면 우리도 지지 않지!”
유진이가 당돌하게 외쳤지만 금세 시무룩해졌다.
“근데 어설프게 하면 바로 최저점 맞을 것 같아···. 민동원 교수님 점수 짜게 주는 거로 악명이 자자하시잖아. 오죽하면 별명이 민승사자겠어.”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자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뭘 쫄고그러냐. 걱정마. 다 잘 될 거야. 이럴 때일수록 으쌰으쌰해야지.”
“오오. 역시 태평양 망망대해를 항해하던 마도로스의 패기!”
“오빠 무슨 좋은 아이디어 있어요?”
세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당당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은 없지.”
“에이 뭐야. 난 또 뭐라도 있는 줄 알았네. 일단 한잔해.”
기본 안주로 나온 강냉이를 오물오물 씹던 유진이가 물었다.
“혹시 주변에 잘나가는 사장님 아시는 분?”
“………”
“아니면 기업 인사팀장을 지인으로 두신 분?”
“………….”
절로 목이 타는 답답한 상황에 우리는 연거푸 맥주를 들이켰다.
곰곰이 생각하던 내가 나름의 방안을 제시했다.
“인맥으로는 안될 것 같으니까 다른 방법을 써보자. 우선 복지로 유명한 회사들 리스트업부터 해보는 거야.”
“오오. 그래서요?”
“메일을 보내든 전화를 돌리든 해봐야지. 운 좋으면 하나 정도는 걸리지 않겠어?”
“흐음···. 그 방법이 제일 현실적이긴 하네요. 좋아요. 일단 그렇게 시작해보죠 뭐. 그 박성민인가 뭔가 하는 밥맛없는 놈한테 본때를 보여주자고요.”
“옳소!”
다시 분위기가 살아나자 술자리는 유쾌하게 흘러갔다.
“푸하하. 이번에 코빅 봤냐? 진짜 개웃기던데.”
“풉. 그거 새 코너? 톤으로 웃기는 거? 나 자취방에서 밥 먹다 뿜었잖아.”
흔하디흔한 대화 주제들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좋아서일까?
별것 아닌 말에도 웃음이 터졌고, 술은 달콤한 음료처럼 꿀떡꿀떡 잘도 넘어갔다.
그래. 이게 젊음이지.
과거 회사 회식 때와는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에너지 넘치고 즐거운 술자리였다.
“아 맞다. 대운 오빠도 자취한다고 안 했어요?”
“헐? 형 자취해요? 왜 나한테는 말 안 했어요!”
“네가 기억 못하는 거지 인마. 저번에 말했거든?”
“어디에서 자취하는데요?”
“나? 성동구쪽.”
“성동구면 우리 학교랑 은근히 거리가 있는데 왜 거기로 잡았어요?”
“그냥 거기 집이 마음에 들어서?”
“원룸이에요? 우리도 초대 좀 해줘요!”
“맞아! 집들이해요. 집들이!”
이사 온 지가 몇 개월이 지났건만.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어 놀러 오려는 동생들의 지극 정성에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과제 잘 끝나면 기념으로 우리 집에서 한잔하든가.”
“예쓰! 청소랑 정리는 깔끔하게 하고 갈 거니깐 너무 걱정 마세요.”
대체 얼마나 난리를 치려고 저런 예고를 하는 것인지 살짝 두려워졌다.
시간이 흘러 다들 취기가 올라오자 양 볼은 발그레해졌고 두 눈에 힘은 풀려갔다.
“자 막잔! 우리 조···. 1등을 위하여!”
“위하여!”
마지막 한 모금 남은 맥주를 입에 털어 넣은 그 순간.
내 눈이 자연스럽게 벽에 달린 TV 쪽으로 향했다.
화면 속에서는 때마침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재계 서열 5위인 북산 그룹에서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이승환 회장과의 저녁식사’를 경매에 부칠 예정이라고 밝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푸웁
순간 나는 입에 머금은 맥주를 뿜어냈다.
“꺄악. 오빠 취했어요?”
“콜록콜록. 미, 미안. 사레가 들려서.”
애들에게 사과하면서도 내 눈은 TV에 고정되어 떨어질 줄 몰랐다.
화면 속 이승환 회장에게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황금빛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