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
“재, 재철이가 왜요? 무슨 일인데요? 애가 아파요?”
무기력해 보이던 흐리멍덩한 눈동자에 불꽃이 치솟으며 김미영이 내 어깨를 격렬히 흔들었다.
“몸이 아프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마음이 아플 뿐이죠.”
내 말에 김미영이 허물어지듯 계단에 주저앉았다.
“하아···. 근데 누구시죠? 누구신데 우리 재철이 얘기를···.”
“현재 재철이 보호자입니다. 같은 보육원 출신이기도 하고요.”
“아···.”
보육원 얘기가 나오자 감정이 복잡해진 듯 김미영이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우리 재철이가···. 지금 어떻길래 이렇게 찾아오신 건가요?”
“그전에 제가 먼저 묻고 싶군요. 왜 재철이를 찾지 않는 겁니까? 버리기라도 한겁니까?”
내 말에 김미영이 발작하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요! 내 새끼를 버리는 그런 부모가 어딨나요?”
“보육원에는 한가득 있습니다만.”
잠깐 할 말을 잃은 김미영이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절대···. 그런건 아니에요. 다만···. 지금 제 처지가 좀 그래서···.”
“처지가 어떻길래요? 그게 재철이보다 중요합니까?”
“아뇨···. 우리 재철이는 시궁창같은 제 인생에 찾아온 가장 소중한 보물이에요. 다만···. 흐흑.”
감정이 북받쳐 오른 김미영이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 금세 감정을 추스른 김미영이 넋두리처럼 이야기를 풀어냈다.
“사실 저도 부모님 없이 자란 거나 마찬가지에요.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아버지 밑에서 자랐거든요. 그런데 아버지가 암에 걸려서 갑자기 돌아가시게 됐어요. 생계가 막막해진 저는 엄마를 찾아갔지만···. 이미 다른 가정을 이룬 엄마는 제게 본인을 찾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셨죠. 그때부터였어요. 아무 생각없이 살기 시작한 게···. 그러다가 18살에 임신을 하게 됐고 19살에 재철이를 낳게 됐어요.”
“임신시킨 남자는요?”
“도망갔어요.”
“양육비도 안 주고요?”
내 물음에 자조 섞인 미소를 지은 김미영.
“그럴 능력도 없는 사람이고 차라리 없는 게 나아요. 폭력적인 성향이 강했던 남자라···.”
“이런 말 하긴 그렇습니다만 보통 그런 상황이면…낙태를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도 안 했다면 거짓말이죠. 제 한 몸도 책임지지 못하는 주제에 누굴 책임지겠어요. 근데···. 내 잘못으로 생긴 아이를 지우면 내가 그토록 미워하던 부모와 다를 게 뭔가 하는…그런 멍청한 생각을 했던 거죠. 그냥 제가 미친년이었어요. 고집을 부려도 그런 고집을 부려서···.”
“그래서 후회합니까?”
“아뇨. 재철이는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아이에요. 저 같은 부모만 안 만났으면 정말 사랑받고 자랄 아이인데···. 흐흑.”
“그래도 7살 때까지는 쭉 같이 살이 살았다고 들었습니다. 갑자기 왜 놓은 겁니까?”
“일가 친척도 없고 어디 도움받을 때도 없었어요. 그래도 악착같이 버티며 어떻게든 키워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감당이 안 됐어요.”
“뭐가 그렇게 감당이 안 되던가요?”
“쌀이 떨어졌고···. 나중에는 월세랑 전기세도 낼 수 없을 정도였어요. 돈이 없어 막막했고, 기댈 구석 하나 없는 처지에 점점 무섭고 답답해져 갔어요.”
김미영이 쓰러지듯 계단 기둥에 몸을 기댔다.
“점점 빚은 늘어만 갔고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굶어 죽더라도 같이 살자는 심정으로 버티고 버텼는데···. 애가 점점 야위어 가는 모습에 결국 무너지더라고요. 열 달 품어 낳은 제 새끼를 버리고 싶어 버리는 엄마가 세상천지에 몇이나 될까요? 미혼모라고 해도 엄마고···. 더구나 버려진다는 아픔을 아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흐흑.”
더러운 시멘트 기둥을 붙잡고 처연하게 흐느끼는 김미영을 말없이 바라봤다.
솔직히 조금은 화가 난 상태로 이 여자를 찾아 왔다.
물론 본인만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멀쩡히 살아있으면서 굳이 애를 보육원에 맡겼어야 했냐고 따지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사정을 들어보니 차마 모진 말은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 역시 돈이 없어 밑바닥까지 추락해봤고, 돈 없는 설움과 비참함이 사람을 얼마나 피폐하게 하는지 직접 겪어보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철이에 대한 사랑은 진심인 듯했으니.
“재철이는 지금 인생의 큰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젖은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김미영.
“얼마 전에 삼촌 자격으로 재철이가 다니는 학교에 학부모 참관 수업을 다녀왔습니다.”
“아···.”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지 김미영이 어떤 말도 내뱉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죠. 재철이는 운동 쪽으로 재능이 있습니다. 본인도 그것을 열렬히 갈망하고 있고요.”
“운동···. 이요? 어떤 운동을?”
“골프입니다.”
“골프···.”
김미영의 얼굴에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지금 처지에서 골프를 시킨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했겠지.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재철이의 후원자입니다. 그리고 재철이의 재능은 프로선수가 인정했을 정도로 대단하죠. 그래서 저는 재철이가 골프 선수가 될 수 있도록 경제적 후원을 할 의향이 있습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제가 여기까지 찾아오지도 않았겠죠.”
“어떤 문제가···. 있죠?”
“경제적인 문제는 제가 해결해줄 수 있다 치더라도 재철이의 정서적인 문제까지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오직 재철이 생모인 김미영씨 밖에 없죠.”
“아···.”
“보육원 아이들이 대개 그렇지만 재철이는 또래에 비해 너무 빨리 철이 들었습니다.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이건 뭐 애늙은이나 다를 바 없죠. 절대 정상적인 건 아닙니다. 일종의 방어기제와 같은 거거든요.”
나도 그랬거든.
빨리 철이 들어야 어른들이 인정해줬고, 평소에 부정적인 사고(思考)를 해야 내가 받을 정신적 피해가 적었으니깐.
“그렇다고 해도 재철이는 아직 10살짜리 꼬맹이에 불과합니다. 재철이 레슨을 봐주던 프로 골퍼가 그러더군요. 골프라는 스포츠는 멘탈이 중요해서 돌봐줄 부모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말이죠.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그 차이가 향후에는 어마어마한 결과로 돌아올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찾아오셨군요.”
“그렇습니다. 재철이는 누구보다 빛나는 재능을 가졌으니까요.”
물론 재철이한테 황금빛을 보지 못했다면 나도 이렇게까진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보육원 동생이라는 것을 논외로 두더라도 ‘투자’ 가치가 있는 인간이라는 귀한 지표가 떴으니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김미영씨 상황이 좋지 않다는건 충분히 인지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김미영씨에게까지 어떤 경제적 지원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니까요.”
“저도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요. 제가 그런 자존심도 없었다면… 진작 더 안 좋은 길로 빠졌을 거에요.”
나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나이의 미혼모가 더구나 수려한 외모까지 가졌다면 쉽게 돈 벌 수 있는 길도 적지 않았으니깐.
유혹이 적진 않았을 텐데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버텨왔다는 사실만으로 내심 칭찬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김미영씨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제안···. 이요?”
“일자리를 드리겠습니다.”
내 제안에 김미영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정말인가요? 무슨 일을···.”
“제가 소유한 건물의 청소일입니다. 물론 일은 무척 고될 겁니다. 보수는 먹고 사는데 지장 없을 정도로 맞춰드리겠습니다. 복지 차원에서 재철이와 함께 살 수 있는 집과 경차도 제공해드리죠. 그 대신 일이 끝나면 모든 시간을 재철이와 함께 보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어떻습니까?
김미영이 뭐에 홀린 듯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무조건 하겠습니다.”
“청소일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정말 괜찮습니까?”
“청소든 뭐든 재철이와 함께 살 수만 있으면 뭐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김미영을 보자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다.
사실 건물 청소 일을 제안한 것은 일종의 시험이었다.
만약 자존심 때문에 내 제안을 거부라도 했다면 나는 깔끔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것이다.
말했다시피 나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니깐.
무엇보다 김미영이라는 사람을 오늘 처음 봤고 그녀가 어떠한 사람인지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일단 천천히 지켜보며 진정성을 가지고 성실히 업무에 임한다면 단계별로 그녀의 업무를 바꿔나갈 생각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갈 준비하시죠.”
나이스한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자 그녀가 멍하니 내 얼굴을 쳐다봤다.
“어디를요?”
“어디긴요. 오매불망 엄마만 기다리고 있는 어린양한테죠.”
“새벽 두 시에요···?”
“아···.”
새 나라의 이재철 어린이는 한창 꿈나라를 헤매고 있을 시간이란 걸 잠깐 간과했다.
***
다음 날, 파랑새 보육원.
“재철아!”
“엄마···?”
운동장 한구석에서 다 낡은 골프채를 들고 스윙연습을 하고 있던 재철이가 눈물을 흘리며 달려오는 김미영을 멍하니 바라봤다.
한걸음에 달려와 재철이를 끌어안은 김미영.
“흐흑. 미안해 재철아. 그동안 못 찾아와서 엄마가 정말 미안해.”
그 자세 그대로 얼어있던 재철이의 손이 이내 고장 난 로봇처럼 올라가 엄마 김미영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괜찮아 엄마. 엄마도 힘들었잖아.”
“…미안해. 엄마 많이 밉지?”
“아니. 엄마 하나도 안 미워. 언제든 찾아올 거라고 믿고 있었거든.”
재철이의 마지막 말에 결국 고개를 떨군 김미영이 재철이의 어깨를 붙잡고 환하게 웃었다.
“이제 우리 재철이랑 엄마랑 함께 살 수 있게 됐어. 오늘 재철이 데리고 보육원에서 나갈 거야.”
“정말? 진짜로?”
김미영의 말에 재철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응. 우리 재철이가 좋아하는 골프. 제대로 배울 수 있게 엄마가 계속 옆에서 도와줄 거야.”
“어···?”
김미영의 말에 멀뚱히 서 있던 재철이의 입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거 꿈이야?”
“꿈 아니야.”
“엄마···.”
“응?”
“꿈이 아닌 건 아는데···. 이게 진짜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나 지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엄마도 행복해. 사랑해 내 새끼.”
끝끝내 재철이의 눈에도 닭똥 같은 눈물이 쏟아졌고, 그런 재철이를 끌어안은 김미영이 따듯하게 품어주었다.
“이제야 좀 애답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소매로 눈가를 쓱 훔쳤다.
내 어깨를 따듯한 손길로 두드려주는 강 마리아 어머니.
“우는 거 아니에요.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그래요.”
“암. 우리 씩씩한 대운이가 울 턱이 있나.”
“왠지 톤이 놀리시는 거 같은데···.”
“착각이란다.”
“어머니.”
“응?”
“재철이가 행복해하니깐 왜 제가 더 행복하죠? 큰돈을 벌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좋은데 이거 정상인가요?”
“그럼 정상이지.”
강 마리아 어머니가 감격의 모자 상봉 현장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행복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기 때문이란다.”
나는 말 없이 강 마리아 어머니를 바라봤다.
“살아보니 행복이란 건 어떤 조건을 충족한다고 느끼는 게 아니더구나. 현재 내 상황에서 주변에 널려있는 행복의 요소를 발견해 나가는 게 진정한 기쁨이고 행복인 게지. 그래서 물질적인 풍요가 행복의 길에 다다를 수 있는 이동수단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행복에 이르게 하는 요소는 될 수 없는 거고.”
“그럼 저는 지금 행복을 발견한거네요?”
“발견한거지.”
어쩐지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정답지를 살짝 엿본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두 모자의 애틋한 상봉 장면을 꽤 오랫동안 눈에 담았다.
***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 드디어 졸업식이 한 달 앞까지 다가왔다.
간만에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틀어박혀 검냥이들과 꽁냥꽁냥 시간을 보내던 평화로운 주말.
[의리에 죽고사는 바다의 사나이다~ 그 이름 마도로스 송~♬]“응? 이 시간에 웬일이지?”
의아한 생각에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를 받았다.
“어쩐일이세요? 요즘 한창 바쁘실 텐데?”
[잘 지내셨어요 대운 씨? 다름이 아니라···. 혹시 내일 시간 되세요?]“뭐···. 바쁠 건 없긴 한데 무슨 일이에요?”
“긴히 상의드릴 일이 있는데 잠깐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뜬금없이 걸려온 대한민국 톱스타이자 이웃사촌인 홍슬기의 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