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늦었네! 늦었어.”
골프 꿈나무 이재철 어린이의 후원과 관련된 잡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파티 시작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뭐 어때. 분위기만 느끼러 가는 건데.”
홍슬기가 그토록 가기 싫어했던 모 명품 브랜드 VVIP 파티.
공교롭게도 그 파티 초대장이 나에게도 날아왔다.
사교 파티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 없는 집돌이였지만 무슨 변덕인지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동안 너무 영감님들하고만 놀긴 했지.”
물론 그 영감님들 정체가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하는 재벌 회장님들이긴 했지만 세대 차이가 아예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동안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를 돌이켜봤을 때 내 또래 젊은이들과의 교류가 너무 없지 않았나 하는 자기반성을 하게 됐다.
“그래도 사교모임인데 오랜만에 힘 좀 줘볼까?”
한 번 마음을 먹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생판 모르는 남 앞에 얼굴을 비추는 자린데 평소처럼 후줄근하게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생애 처음으로 아주 ‘제대로’ 힘을 주고 가볼 생각이었다.
이승환 회장님께 선물 받고 옷장에 고이 간직해놓은 고가의 맞춤정장을 꺼내 들었고 술라이만 형님에게 선물 받은, 무서워서 가격도 묻지도 않았던 명품 시계도 봉인해제 했다.
구두는 빈사르 왕세자가 선물해준 무슨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든 수제 구두라는데 안 받으면 감금이라도 할 기세여서 감사하게 받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죄다 선물 받은 물건들 뿐이네.”
풀 세트로 장착하고 보니 정말 무슨 왕족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연예인들이 자주 간다는 청담 샵까지 찾아 스타일링에 메이크업까지 받았다.
그야말로 완전 무장.
“이게 진짜 나라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동네 백수는 어디 가고 내 입으로 말하긴 뭐 했지만 정말 배우 못지않은 포스를 뽐내는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꾸며 놓으니 나름 괜찮구만.”
처음에는 너무 오바하나 싶기도 했지만, 막상 꾸며 놓으니 기대 이상이었다.
“이래서 연예인들이 샵에 출근하듯 가는 거구나···.”
참 희한한 게 외관이 업그레이드되니깐 자신감도 덩달아 급상승하게 되더라.
나는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직원에서 초대장을 보여주고는 파티장에 입성했다.
“이야. 완전 다른 세상이네···.”
물론 두바이에서도 격이 다른 VIP 모임을 겪어본 바 있었지만, 그때와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두바이 때는 사회적 지위가 남다른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많다 보니 대체로 차분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흘렀다면 이곳 파티는 굉장히 트랜디하면서 자유분방한, 말 그대로 인싸들이 놀만한 그런 분위기가 흘렀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은데?”
파티장에 흐르는 리드미컬한 재즈 음악에 박자를 타며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호오. 연예인인가?”
인물도 좋은데 한껏 꾸며서 그런지 선남선녀가 아닌 이들이 없었다.
물론 오늘만큼은 나도 꿀리지 않았지만.
“저 양반은 딱 봐도 구 회장님 집안 식구겠구만.”
낯익은 인물들도 제법 보였다.
안면이 있다기보다는 그 위에 재벌 회장님들과 이목구비가 워낙 닮아 한눈에 봐도 그쪽 집안 식구인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내 또래 기업가보다는 한참 연배가 높은 회장님들과 친분이 두텁다 보니 생긴 부작용 아닌 부작용이었다.
“다들 유전자가 강하시네.”
그렇게 남몰래 사람 구경을 하면서 파티 분위기에 적응하던 중 반가운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이웃 사촌씨네?”
멀리서 봐도 압도적인 아우라를 뽐내는 붉은 드레스의 여인.
밤하늘에 홀로 빛나는 별처럼 반짝이는 존재감을 뽐내는 홍슬기였다.
“흐음···. 저 여자가 그 임아린가 아가린가 하는 여잔가보네.”
선입견이 생겨서 그런가?
한눈에 봐도 성질이 보통이 아닌 듯 보였다.
더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눈을 속일 순 없다.
정겹게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는 저 두 여자가 사실은 살벌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음을.
“그래도 우리 이웃사촌씨도 밀리지 않고 제법 잘 싸우고 있나 본데?”
심판에 빙의하여 표정만으로 점수를 매겨봤을 때 유효타 점수는 홍슬기 3, 임아리 1.
홍슬기 판정승!
그렇게 멀리서 남몰래 응원을 보내고 있는데 웬 시커먼 사내놈이 두 여자에게 다가왔다.
보아하니 임아리와 친분이 있는 듯했다.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요상하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시종일관 유지되던 홍슬기의 포커페이스에 균열이 일어난 게 보였으니.
무슨 일인가 싶어 세 사람이 있는 근처까지 다가갔다.
자세히 들리진 않았지만, 남자의 표정과 드문드문 들리는 단어들을 조합해봤을 때 어느 정도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이웃 사촌씨한테 집적대고 있는 거였구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그 어떤 여자와 비교해도 홍슬기의 미모는 가히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으니깐.
남자라면 누구든 한 번쯤 들이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톱스타라는 배경과 특유의 차가운 아우라 때문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거겠지.
“후훗. 쉽지 않을 거다.”
그 누구에게도 곁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듯 발톱을 들이밀며 날을 세우던 홍슬기.
물론 나도 그녀에게 딱히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소 닭 보듯 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옥상에서 만나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에 투자하게 됐고, 우리 집 검냥이들 덕분에 지금은 절친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친해지게 되었다.
그런 거 보면 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희한했다.
어차피 이어질 인연이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다고나 할까?
“뭐라구요!?”
어이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홍슬기의 모습이 눈에 담겼다.
한눈에 봐도 별로 유쾌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대차게 까였는데 포기 못 하고 들러붙고 있나 보네.”
그러다가 남자가 돌아서려는 홍슬기의 손목을 붙잡았고 나도 모르게 움찔해서 튀어 나갈 뻔했다.
‘네가 매니저라도 되냐? 남의 일이니깐 신경끄자.’
하지만 나불대는 입과 달리 내 신경은 온통 두 사람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이내 남자가 홍슬기에 뭐라고 속닥거렸는데 그녀의 반응이 이상했다.
흡사 벼락 맞은 토끼와 같은 모양새였으니.
어째 분위기가 점점 심각해지자 덩달아 내 얼굴도 심각해져 갔다.
남자에게 무슨 말을 들은 홍슬기의 몸이 잘게 떨렸고 남자의 시커먼 손이 스멀스멀 홍슬기의 어깨를 향해가고 있는 게 포착됐다.
여기서부터는 이성의 영역이라기보다는 그냥 몸이 알아서 반응했다.
벼락처럼 튀어 나간 나는 그대로 남자의 손을 파리 쫓듯 ‘탁’ 쳐냈다.
“이런 씨발. 넌 또 뭐야!?”
흥분한 남자가 내 정체를 물었고 태연하게 홍슬기 옆에 선 나는 샴페인 잔을 들며 말했다.
“나? 이 여자 이웃사촌.”
“뭐?”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훼방을 놓은 것도 모자라서 이런 개소리나 나불대다니.
화가 머리끝까지 난 황승리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대운…씨?”
잘게 떨리는 동공으로 멍하니 나를 보는 홍슬기의 시선이 느껴졌다.
“당장 안 꺼져?”
“그건 안 되겠는데? 우리 이웃사촌께서 오늘 컨디션이 영 별로라 일일 매니저 역할을 좀 해줘야 하거든. 내가 신세를 진 게 많아서.”
“허. 시발. 이젠 별 거지 같은 것들이 다 나대네. 너 나 누군지 알아?”
“몰라. 넌 내가 누군지 알아?”
“뭐?”
이런 신박한 질문은 처음 받아 봤는지 황승리가 멍청한 얼굴로 자기도 모르게 반문을 했다.
“나 천화그룹 황승리야.”
“어 그래. 반갑다 승리야. 나는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송대운. 우리 초면이지?”
“송대운···?”
안경을 고쳐 쓴 황승리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어디 그룹 사람이냐?”
“나? 새싹 보육원.”
“…..?”
짤막한 내 답변에 황승리의 얼굴이 점차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당황한 홍슬기가 내 소매를 붙잡았고 동시에 달짝지근한 복숭아 향 같은 게 코로 훅 치밀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
“아는 분이 초대해주셔서 저도 초대받고 왔어요. 하하하.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네요. 슬기씨야 말로 여기서 뭐 해요? 딱 봐도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얼른 가시죠? 애들이랑 같이 산책이나 하게.”
애들과 산책이라는 말에 홍슬기의 눈이 반짝였다가 이내 난감한 얼굴로 황승리쪽을 힐끔 쳐다봤다.
“저···. 그게 지금 상황이···.”
“야이 새끼야! 너 지금 나 무시해?”
투명인간 취급을 해버리자 소외감을 느꼈는지 이성을 잃은 황승리가 별안간 고함을 내질렀다.
덕분에 주변 모든 시선이 단번에 우리 쪽으로 쏠리게 되었다.
“아? 너 아직 안갔냐? 미안하다. 이웃 사촌씨랑 제대로 인사를 못 해서.”
“너 이새끼···. 보아하니 같잖은 돈놀이나 하는 거지새끼인 것 같은데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천화 그룹의 힘이면 너 하나 조지는 건 개미 새끼 한 마리 밟아 죽이는 것보다 쉽다고! 알아들어?”
“아? 그래? 천화그룹이 그렇게 대단해?”
“큭큭큭. 이제야 좀 겁이 나나 보지? 야이 존만아. 인생은 실전이야. 여자 앞이라고 가오잡다가 내 앞에서 무릎 꿇고 개처럼 기어 다니던 새끼들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지?”
“어. 그건 모르겠고. 천화그룹이면 재계 서열이 어떻게 되냐? 처음 들어봐서.”
“허. 이 새끼가 재계 서열 19위인 천화 그룹을 개좆으로 봐? 어이가 없네.”
“모르면 좀 물어볼 수도 있지 새끼 성질은. 그러니깐 여자들이 다 도망가지. 쯧쯧.”
“이 개새끼가!”
혀를 쯧쯧 차는 내 행태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던 황승리가 결국 참지 못하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꺄악.”
위협적인 기세로 달려드는 황승리를 보며 홍슬기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악! 이 씨발! 당장 이거 안놔? 아아아!!!”
가볍게 손목을 낚아챈 나는 팔을 꺾어 단숨에 그를 제압했다.
엉성하고 느려터진 몸놀림을 보아하니 운동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듯했다.
“아무리 선빵필승이 국룰이라지만 치사하게 기습을 하냐?”
“아아아. 아파! 아프다고! 너 진짜 후회한다? 반드시 후회한다?”
“놓으면 시끄럽게 안 하고 조용히 사라질 거야?”
“악! 알았다니깐 이 새끼야!”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목소리가 듣기 싫어 꺾은 팔을 놓아주고는 가볍게 밀쳐냈다.
비틀거리다가 가까스로 자세를 잡은 황승리가 나를 죽일 듯 노려봤다.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지가 먼저 달려들었으면서 웃긴 새끼네 이거.”
힘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지 황승리가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시큐리티! 시큐리티 어딨어!”
머리가 산발이 된 황승리가 온갖 진상을 피워대자 곧이어 행사 관계자로 보이는 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당장 이 새끼 끌어내! 이 새끼가 나를 폭행했다고!”
눈알이 돌아가 온갖 상욕을 내뱉으며 악을 쓰는 황승리의 모습은 광기 그 자체였다.
팔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옆을 힐끔 쳐다보니 홍슬기가 두려움이 깃든 눈동자로 내 팔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뭐 하고 있어! 당장 저 새끼 끌어내라니까?”
고래고래 악다구니를 쓰는 황승리를 보며 행사 관계자들도 난색을 표하던 그때.
직원들 사이를 헤치며 등장한 인물이 있었다.
“제 소중한 친구에게 폭언을 퍼붓고 있는 당신부터 당장 끌어내야 할 듯싶군요.”
이 파티의 주최자이자 오피츠의 부사장 마르쉘이 서늘한 눈으로 황승리를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