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신분과 격이 보증된 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친구에게 모욕을 퍼붓고 있는 당신부터 당장 끌어내고 싶군요.”
파티의 주최자이자 오피츠의 부사장 마르쉘이 서늘한 시선으로 황승리를 응시했다.
뜬금없이 나타난 마르쉘로 인해 급 분노조절이 된 황승리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유서 깊은 프랑스 명문가인 오피츠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마르쉘에겐 아무리 황승리가 막장이라도 함부로 할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 아니. 지금 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아니고 저놈이 제게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쪽이야말로 뭐하자는 겁니까? 지금 저를 농락하는 겁니까?”
190㎝가 넘는 장신인 마르쉘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 위압감에 황승리가 뒤로 주춤했다.
“처음부터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먼저 고성을 내지른 사람은 당신이었고, 먼저 달려든 것도 당신이었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한 부분이고요. 정 인정을 못 하겠다면 지금 당장 CCTV 돌려서 시시 비비를 한번 가려볼까요?”
황승리가 억울하다는 얼굴로 나를 손가락질했다.
“그건 전부 이 남자가 갑자기 시비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요. 아무튼, 제 파티에 당신 같은 사람은 필요 없으니 지금 당장 퇴장해주시길 바랍니다. 괜히 물 흐리지 마시고.”
“이익! 이런 식으로 나를 쫓아낸다면 크게 후회할 겁니다! 내가 그쪽 브랜드에 쓴 돈이 얼만지 아십니까? VIP 고객인 나를 이런 식으로 대우할 순 없습니다!”
황승리의 위협 아닌 위협에도 마르쉘은 심드렁한 기색이었다.
“별로 후회할 것 같진 않군요. 당신이 아니더라도 우리 오피츠를 사랑해주실 고객은 많으니까요. 무엇보다 우리 브랜드가 품고 있는 격과 당신의 품격은 전혀 맞지 않는 듯하군요.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에 해가 될 듯하니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앞으로 저희 브랜드는 절대 이용 말아 주시길.”
마르쉘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던지 황승리가 한껏 억울함을 담아 소리쳤다.
“아니! 대체 왜 이렇게 일방적으로 저만 몰아붙이는 겁니까! 저자에게는 왜 책임을 묻지 않느냐 이 말입니다.”
“저분은 굳이 그런 절차를 따지지 않아도 이미 그 신분과 격이 보증된 분이기 때문입니다. 생전 처음 보는 당신과는 다르게요.”
충격적인 마르쉘의 말에 두 눈을 부릅뜬 황승리.
“도대체 저자가 누구길래 한국의 재벌가인 나를 이런 식으로 대우하는 겁니까? 우리 천화그룹을 우습게 보는 겁니까?”
“아뇨. 당신을 우습게 보고 있습니다. 자고로 명문가의 일원으로 태어났으면 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과 품위를 중요시하고 인간적인 가치와 존중을 보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겐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질 않는군요. 아무튼, 더는 입씨름 하는 것도 지치는군요.”
그 말을 끝으로 마르쉘이 손을 휘젓자 곧 검은 정장 차림의 건장한 사내들이 황승리의 양팔을 잡고 짐짝 끌어내듯 끌고 갔다.
그러자 온갖 발버둥을 치며 격렬히 저항하는 황승리.
“이런 씨발! 이거 안놔! 놔! 이 개새끼들아! 두고 봐! 내가 가만히 있나! 으아아아악!!”
허허허. 그놈 참 갈 때도 환상적으로 가는구만.
그 모습을 담담하게 지켜보고 있던 나에게 마르쉘이 다가왔다.
워낙 장신이다 보니 내가 그를 올려다보는 형세가 되었다.
우리는 말 없이 서로를 응시했고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장내를 사로잡았다.
덩달아 긴장한 홍슬기가 마른 침을 삼키며 내 팔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오랜만입니다 딜런. 제 초대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천만에요 마르쉘. 괜히 저 때문에 파티 분위기만 흐린것 같아 사과의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원래 꿀이 많은 꽃밭에 잡벌레가 꼬이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제가 너무 늦지 않게 나타나서 천만다행이로군요.”
금방이라도 펑 하고 터질 것 같은 긴장감 속에서 돌연 우리 두 사람이 정겹게 포옹을 하자 여기저기에서 헛바람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게 양해를 구한 마르쉘이 게스트들을 바라보며 크게 소리쳤다.
“아주 사소한 소동이 있었고 상황은 잘 수습했습니다. 이 또한 하나의 작은 이벤트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사죄의 의미로 특별히 아껴놨던 로마네 콩티(Domaine de la Romanee-Conti) 한 잔씩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즐거운 시간 되시길.”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와인을 무료로 풀어버리는 클라스에 여기저기서 환호가 터져 나왔고 다시 음악이 흘러나오며 파티는 재개되었다.
“괜찮으시다면 가볍게 한잔하시겠습니까?”
“하하하 그럼요. 두바이에서 뵙고 간만에 보는 건데 당연히 그래야죠.”
마르쉘과의 인연을 반추하자면 술라이만 덕에 얼떨결에 참석하게 된 두바이 ‘버즈 알 아랍 주메이라’ 호텔에서 열린 비공개 포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술라이만 형님은 자신의 인맥을 모조리 끌고 와 나에게 소개해줬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오피츠 가문의 후계자인 마르쉘이었다.
새삼 그곳에서 맺은 인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되었다.
고마워요 술라이만 형님. 조만간 안부 인사드릴게요.
특유의 시원한 미소를 입가에 내건 마르쉘이 잔을 내밀었다.
“한국에 간다니깐 술라이만이 신신당부하더군요. 꼭 딜런에게 안부 전해주고 잘 챙겨주라고 말이죠.”
“술라이만 형님께는 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하하하. 그 친구야 워낙 인품 좋기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술라이만이야말로 왕족의 품격과 소양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람 자체가 명품인 그런 친구죠.”
어지간히 형님을 좋아하는지 술라이만의 얘기만 나오면 마르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그나저나 아까 끌려나간 그 사람은 정말 신경 안 써도 되겠습니까? 한국에선 나름 재벌 가문에 속한 인물인데.”
나 때문에 괜히 우량 고객 하나 잃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됐다.
하지만 그런 우려가 무색하게 단호히 고개를 내젓는 마르쉘.
“전혀 문제없습니다. 그런 사람 백 명보다 제겐 딜런 한사람이 더 중요합니다. 그게 제 경영철학이기도 하고요.”
유유상종이라더니…
누가 술라이만 절친 아니랄까봐 멘트 하나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달큰하게도 만든다.
시선을 돌린 마르쉘이 내 옆에 꼭 붙어있는 홍슬기의 존재를 인식하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런. 실례를 저질렀군요 마담(Madame). 사과드리겠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라 반가운 마음에 미처 신경 써 드리지 못했군요.”
혼이 쏙 빠진 인형처럼 멍하니 우리 두 사람을 쳐다보던 홍슬기가 화들짝 놀라며 답했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흐음···. 두 분은 연인관계이신 겁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물음에 당황한 나와 홍슬기가 동시에 격한 손사래를 쳤다.
“그,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같은 집에 사는…아니지. 그게 아니고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입니다. 친한 사이지만 연인 같은 건 절대 아닙니다.”
“그래요? 무척 잘 어울리시는 것 같은데. 그것참 아쉽군요.”
마르쉘이 우리 두 사람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누가 술라이만 형님 친구 아니랄까봐 장난기 심한 것도 비슷하네.
그렇게 나와 마르쉘, 홍슬기 세 사람은 이런저런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홍슬기도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렸는지 새하얀 손으로 연신 입을 가리며 웃음을 내보였다.
배시시 웃는 홍슬기의 모습을 보자 나도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
그렇게 우여곡절 많았던 파티가 끝이 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차가 적신호에 걸리자 곁눈질로 옆을 힐끔 살피고선 넌지시 물었다.
“괜찮아요?”
보조석에는 내 재킷을 걸쳐 입은 홍슬기가 앉아 있었는데 술을 마셔서 운전을 못 한다고 내 차를 얻어타고 가게 되었다.
어차피 같은 오피스텔에 살고 있기에 태우긴 했는데 십 분째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내다보고 있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고마워요.”
“이웃 간에 돕고 사는 게 당연하죠. 더구나 신세 진 것도 많은데.”
“단지 이웃 간의 정 때문인가요?”
“네?”
의미 모를 물음에 나도 모르게 액셀 대신 브레이크를 밟을 뻔했다.
“농담이에요. 잘나가는 이웃 있으니깐 세상 든든하네요. 새삼 거기로 이사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의 페이스를 되찾은 듯 홍슬기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마르쉘 부사장하고는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그 사람···. 실실 웃고 다니긴 해도 여간 까다로운 인물이 아닌데.”
“아! 예전에 아는 형님한테 소개받았었어요. 사실 저도 많이 친한 건 아닙니다. 그래도 고맙게 상황을 깔끔히 정리해줬네요.”
또다시 찾아온 짧은 침묵.
슬쩍 눈치를 살피던 나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아까 그 뱀처럼 생긴 놈이 뭐라고 했길래 그렇게 얼어버린 거에요?”
내 물음에 잠깐 움찔하던 홍슬기가 차창 밖을 잠깐 바라보다가 덤덤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초면인데 다짜고짜 자기랑 만나자고 하더라고요. 단호히 거절했는데···. 약점도 아닌 제 약점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것 때문에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굳어버린 거구요.”
“약점이요?”
“하아···.”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쉰 홍슬기가 섬섬옥수 같은 손가락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가느다란 손가락을 타고 흑단 같은 머리가 비단결처럼 스르르 흘러내렸다.
“말하기 곤란하면 안 해도 돼요.”
“아니요. 답답해서라도 말하고 싶네요. 작년에 우연히 생일 파티에 가게 됐어요. 최민아라고 모델 출신 배우인데 CZ가(家)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저랑 직접적인 인연은 없는데···. 하아. 아무튼, 자리에 앉아있다 보니 분위기가 제가 생각하던 분위기가 아니어서 기념사진만 찍고 곧장 나왔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나중에 거기서 마약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근데 그게 사건이 됐나요?”
“당연히 안됐죠. 괜히 재벌가가 아닌 게 그냥 무마시켜버리더라고요. 근데 그때 찍었던 사진을 아까 그 사람이 가지고 있었어요.”
“이웃 사촌씨는 일찍 갔다면서요?”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지.”
공허함이 느껴지는 텅 빈 동공으로 차창 밖 검은 강물 바라보는 홍슬기.
“물어뜯기 딱 좋잖아요. 잘나가는 여배우가 마약 파티 현장에 함께 있었다고 하면···. 대중들은 진실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요. 그럴 줄 알았다면서 제 모든 살점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물고 뜯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겠죠.”
잔혹한 얘기를 덤덤한 톤으로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홍슬기의 모습은 꽤나 고독해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겁이 나요. 아까 그 사람이 혹시나 그 사진을 언론에 뿌려버리기라도 하면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막막하다고나 할까···.”
“회사에서도 모르는 일입니까?”
“알죠. 이런 건 회사에 제일 먼저 알려야지 바보처럼 꽁꽁 감추고 있다가 뒤늦게 일 터지면 대응도 안 돼요. 물론 회사도 나름의 대비는 해두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그 자식이 아무리 똘아이라고 하더라도 아마 쉽게 터트리진 못할 겁니다.”
“네?”
확신이 담긴 내 말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 홍슬기.
빨간 드레스를 입어서 그런가? 순간 붉은 털을 가진 여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CZ쪽 여자랑 엮여 있다면서요. 그걸 터트렸다간 CZ 쪽에서 가만히 있겠어요? 제가 그런 놈들 많이 봐와서 잘 아는데 강한 놈한테는 꼼짝도 못 합니다. 그거 잘못 터트렸다간 지 인생도 터질 텐데 그거 절대 못 터트릴겁니다.”
“그, 그럴까요?”
그제야 홍슬기의 눈에 조금씩 안도감이 번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그걸로 홍슬기씨한테 압박은 계속 가할 겁니다. 안봐도 뻔하죠.”
“아···.”
홍슬기의 얼굴이 또다시 시무룩해졌다.
그딴 쓰레기 때문에 내 소중한 이웃사촌이 기운 없이 축 쳐져 있자 나 역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깐.”
“방법이요···?”
의아한 듯 쳐다보는 홍슬기의 시선에 나는 전방을 주시하며 한쪽 입꼬리를 쓱 끌어올렸다.
“원래 미친놈한테는 더한 미친놈이 특효약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