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생각지도 못한 부탁
“일이요···?”
오랜만에 전화 와서 느닷없이 일을 같이하자니.
내가 개통령이라 부르는 이 양반하고 같이할 만한 일이랄게 있나?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아! 미안하다. 너무 두서없이 말했지? 너 내가 너튜브 하는 건 알고 있지?]“네. 알고 있죠. 엄청 잘나가잖아요.”
빈말이 아니었다.
자그마치 무려 400만 구독자를 지닌 초대형 너튜버가 아니신가.
한국뿐 아니라 다국적 애견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지금도 무섭게 성장 중인 채널이었다.
얼핏 듣기론 한 달 수익이 웬만한 중소기업 매출과 버금갈 정도로 대단하다고 들었다.
[잘나가긴 인마. 그냥저냥 하고 있는 거지]“이 형 큰일 날 사람이네. 형 5년 전만 해도 저랑 같이 남태평양에서 참치 잡던 사람이었어요. 어디 가서 그런 얘기하지 마세요. 몰매 맞아요.”
[큼큼···. 너 앞이니깐 이렇게 얘기하는 거지 짜샤. 어디 가서 나 잘나간다고 자랑질하는 거엔 취미 없다.]저 정도로 성공했으면 조금은 잘난 척 할 법도 한데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가?
참 한결같이 겸손한 형님이다.
그러니깐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고.
“근데 저는 형이랑 일할 생각은 없어요.”
[아···. 그러냐?]주석이 형의 목소리에서 옅은 실망감이 묻어나왔다.
“대신 도와드릴 용의는 있으니 편하게 말해봐요.”
[이놈 이거. 하늘 같은 형님을 들었다 놨다 하네.]“어허. 벌써 까먹은 거 아니죠? 배에서는 제가 한창 선임이었습니다만? 형 어리바리 타다가 베트남 선원한테 맞을뻔한 거 제가 커버 쳐줬잖아요. 벌써 까먹은 거 아니죠?”
[끄응···. 그걸 아직 기억하냐? 징글징글한 놈.]도와준다는 말에 목소리가 한층 밝아진 주석이 형이 본론을 얘기했다.
[이번에 ‘나만 고양이가 없다’라는 새로운 콘텐츠를 하나 기획했거든? 거기에 첫 게스트로 네가 나왔으면 해서.]“커흡. 저보고 카메라 앞에 서라고요?”
나도 모르게 당황해서 입에 머금고 있던 커피를 내뿜었다.
무슨 일이든 도와줄 용의가 있었지만, 설마하니 영상을 찍자고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게 뭐 하는 건데요?”
[별거 아냐. 그냥 강아지 훈련사의 시점으로 고양이는 어떻게 보이는가? 뭐 그런 거에 관해 수다 떠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근데 형 개통령 아니에요? 갑자기 웬 고양이?”
[인마. 강아지 가지고 찍을 수 있는 건 거의 다 찍었어. 이제는 짜내도 더 나올만한 게 없다. 그에 반해 고양이 쪽은 아직 블루오션이고.]“흠···. 아무리 그래도 좀 부담스러운데···. 형 주위에 고양이 키우시는 분 없어요?”
[무진장 많지.]“차라리 그분들 섭외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제가 방송 감이 영 없어서···.”
[이 영상 콘텐츠라는게 보기에는 그냥 막 찍어대는 것 처럼 보여도 그 안에 나름의 개연성하고 서사가 있어야 하거든? 물론 무지성으로 찍어댈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사람들이 지속해서 몰입하기 쉽지 않아.]“저는 연예인도 뭣도 아닌데 저한테 서사가 어딨어요.”
[있지 이놈아! 네가 고양이 입양하게 된 스토리 자체가 이미 훌륭한 서사 그 자체라고. 그때 거기서 나랑도 재회한 거잖아. 벌써 까먹었냐?]“그럴 리가요. 아무 생각없이 봉사갔다가 형이랑 마주치고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데···.”
[너 혹시 그때 나갔던 방송 안 봤냐?]“보기 좀 그래서 안 봤는데요.”
[허. 그걸 안 봤어? 그때 난리도 아니었어 인마. 보호소에 들락날락하던 불쌍한 검은 고양이가 너만 졸졸 쫓아다니는 게 방송에 나가서 사람들 전부 간택이니 뭐니 하면서 이후 근황에 대해 엄청 궁금해 했다고.]“그, 그랬어요···?”
그건 진짜로 몰랐다.
아예 신경을 끄고 살았으니.
이후에 많은 일이 몰아쳐서 정신이 없기도 했고.
[그 방송에서 내가 과거에 딸내미 병원비 때문에 원양어선 탔다는 것도 밝혀졌고 거기서 동료 선원이었던 너를 만났던 것도 엄청 이슈가 됐었어. 이놈 이거 아예 세상과 단절된 채 사나 보네.]“경제 뉴스나 다큐는 꼬박꼬박 보는데…그런 쪽은 좀 약해요.”
애초에 예능 같은 건 아예 보지 않는 편이었기에 그쪽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전혀 문외한이었다.
“흐음···. 그건 진짜 몰랐네요.”
그 정도였어?
뭐···. 우리 연탄이 미모가 좀 독보적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그 정도로 관심 보일 줄은 몰랐다.
[아무튼, 부탁 좀 하자. 너는 굳이 얼굴 노출 안 해도 돼. 고양이들만 데리고 나와. 어차피 고양이가 주인공이니.]“흐음···. 그래요?”
이쯤 되니 살짝 혹하기도 했다.
우리 집 검냥이들 사랑스러운 거 세상 사람들도 알았으면 하는 아비로서의 욕망이 꿈틀거리게 됐다고나 할까?
얘기를 들어보니 크게 부담 없을 것 같기도 했고.
“제가 정확히 뭘 하면 돼요?”
[진짜 별거 없어. 그냥 고양이들 데리고 나와서 내가 묻는 질문에 편히 답변만 하면 돼. 예를 들면 길고양이였던 고양이를 어떻게 데리고 오게 됐는지. 키우면서 좋았던 점. 힘들었던 점. 이런 거 말해주면 좋고. 혹시 애들 개인기 같은 것도 보여주면 금상첨화고.]“흐음···. 개인기라···.”
물론 보여줄 건 많았다.
내가 딱히 뭘 가르친 건 없었지만 녀석들 각자가 나름의 재주를 가지고 있었으니.
대체 어디서 그런 것들을 배워온 건지 신통방통한 녀석들이다.
“좋아요. 형 부탁인데 그 정도 못 들어드리겠어요? 대신 얼굴까진 가릴 필요 없고 포커스를 검냥이 녀석들에게 맞춰주세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오케이! 고맙다 대운아. 크흐흐. 사람들 난리 나겠네. 그렇게 갈망하던 블랙엔젤이 출연한다니 말이야.]“블랙엔젤이요?”
[그래. 네 고양이. 그러니깐 연탄이가 인터넷에서 불리는 별명이야. 나도 그때 보긴 했다만 애가 워낙 이쁘게 생겼잖냐. 천사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야.]“거참. 사람들 보는 눈 있네.”
제 자식 칭찬하는데 안 좋아할 부모가 있을까?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헤벌쭉 벌어졌다.
“그럼 촬영 날짜 정해지면 알려줘요. 오랜만에 온 가족이 나들이 한번 나가야겠네.”
[오케이! 바로 일정 잡아서 문자로 보내주마. 그때 보자.]뚝
통화가 끊어지고 거실로 나온 나는 소파에 앉아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검냥이 형제들이 기다렸다는 듯 내 다리 한 짝씩 붙잡고 머리를 치대며 온갖 애교를 부려댔다.
이 사랑스러운 녀석들을 어찌할꼬.
냐아아앙
어미인 연탄이는 어김없이 가장 나중에 나타나서 도도한 울음 한번 내뱉어주고는 내 옆자리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는 새빨간 혓바닥으로 앞발을 핥아댔다.
요사스러운 매력은 단연 연탄이가 으뜸이라 할 수 있겠다.
“뭐···. 가끔 이런 것도 나쁘지 않지.”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 있는 네 마리의 동거 묘들은 가족과 다름없는 소중한 존재들.
이 녀석들과 그런 영상을 찍어보는 것도 훗날을 돌이켜보면 좋은 추억이 되어있지 않을까?
냐아아앙
어느새 내 허벅지에 올라선 흑탄이가 앞발로 내 손을 툭툭 건드렸다.
어서 빨리 자기를 쓰다듬으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검은 광택이 도는 등허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자 그제야 만족한다는 듯 흑탄이가 고롱고롱하는 울음소리를 냈다.
“촬영이라···.”
막상 찍는다고 하니 기대가 되는 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
일주일 후.
“어서 와라 대운아!”
버선발로 뛰어나온 주석이 형이 양팔 벌려 나를 환영했다.
촬영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토크쇼에서 볼법한 스튜디오 같은 공간이었다.
“형은 얼굴이 더 똥그래졌네요. 훈련사가 아니라 요리사라고 해도 믿겠네.”
“너도 나이 먹어봐 인마. 나잇살만 늘지. 아무튼, 그것보다 오늘의 주인공들은?”
“여기요.”
나는 끌고 나온 외출용 유모차의 캐노피를 젖혔고 이내 옹기종기 모여있는 4마리의 검냥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터져 나온 간드러진 비명소리.
“꺄악. 어떡해! 너무 귀여워.”
“헐. 영상에서 봤던 모습하고 완전 다른데?”
“그러게. 관리를 엄청 잘 받았나봐. 귀족 고양이가 됐네.”
“대체 털 관리를 어떻게 한 거지? 무슨 기름칠 한 거 같네.”
“생긴 게 인형 같아. 아···. 심장에 무리 간다.”
낯선 환경에 다소 경계심을 보이는 4마리의 검냥이들이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어벙한 모습이 더욱 치명적인 귀여움을 발산했다.
“와···. 그때 봤던 그 고양이가 얘네들 낳은 거야? 진짜 대박이네···.”
주석이 형이 놀란 기색으로 검냥이들을 살폈다.
“아주 좋아! 자. 바로 촬영 시작하자고.”
느낌이 좋았던지 주석이 형이 호쾌한 목소리로 스탠바이를 지시했다.
스튜디오 한가운데 놓인 소파에 자리를 잡은 우리 두 사람.
내 오른쪽에는 검냥이들이 담겨있는 유모차가 다시 캐노피가 쓰인 채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자!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저희 ‘개통령 이주석’ 채널의 새로운 콘텐츠. ‘나만 고양이가 없어!’ 첫 촬영이 시작됐습니다. 1화답게 아주아주 특별한 게스트를 모셨는데요. 1년 전쯤이었죠? TV애니멀광장 유기견 보호소 편에 제가 출연했었는데 그때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검은 고양이를 기억하실 겁니다. 블랙엔젤이라고 별명 붙은 바로 그 친구가 오늘의 주인공인데요. 일단 우리 집사님부터 만나보시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연탄이 보호자 송대운 입니다. 저희집 고양이가 이 정도로 관심받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요. 우리 연탄이 잊지 않고 기억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호오. 고양이 이름이 연탄인가 보네요. 아주 찰떡같은 이름인데 본격적으로 소개 한번 해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잠시만요.”
냐아아아앙
미야아아옹
나는 옆에 놓인 유모차 캐노피를 젖혔고 역시나 옹기종기 모여앉아 서로의 털을 그루밍해주는 검냥이 가족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아이고. 귀여워라. 아니. 근데 방송에 나왔던 건 한 마리였는데 분신술이라도 쓴 건가요? 지금은 4마리가 됐네요?”
“아! 방송에 나갔을 때 뱃속에 새끼를 품고 있었어요. 그 뱃속에서 3마리의 아기고양이가 태어났고 지금은 이렇게 대가족이 되었네요. 방송에 나왔던 어미는 연탄이, 그리고 첫째는 석탄이. 둘째는 공탄이. 셋째는 흑탄이에요.”
“오. 세상에나. 그때 저도 봤는데 애가 마르긴 했어도 배가 볼록해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였군요. 아주 기쁜 소식이네요. 그런데 관리를 정말 잘해줬나 봅니다. 애들이 털에서 아주 그냥 빛이 나네요.”
“관리했다기보단 워낙 깔끔 떠는 애들이라 알아서 청결 관리를 하는 편이에요.”
“응? 알아서 청결 관리를 한다고요? 그게 가능한 겁니까? 허···. 강아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요.”
우리 애들이 좀 유별나야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스스로 욕실에 들어가서 목욕하는 고양이는 우리 애들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데 애들이 정말 얌전하네요. 보통 고양이였으면 뛰쳐나올 법도 한데 얌전히 앉아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낯선 환경이라 아직 경계심이 있나 봐요.”
“우리 구독자분들 입장에선 너무 아쉽겠는데요? 자세히 보고 싶어도 유모차에 가려서 잘 보질 못할 테니. 아이들을 밖에다가 풀어놓을 순 없겠죠?”
“아. 가능하죠. 잠시만요.”
주석이 형의 주문에 나는 별 생각 없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연탄, 석탄, 공탄, 흑탄! 다들 일렬횡대로 오와 열.”
“뭐 하세요···?”
벙찐 주석이 형이 황당해하며 뭐라고 한마디 하려던 순간.
이어 벌어진 기상천외한 광경에 주석이 형은 물론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의 입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