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9)
19화 밥 한끼 먹겠다고 그 돈을 태워?
북산 그룹.
재계 서열 5위의 초거대 기업으로서 명실상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으로 단연 손꼽히는 곳이었다.
창업주 이기백이 ‘기백 상점’이라는 이름으로 화장품을 만들어 판매하였고, 이후 ‘북산 맥주’를 설립하면서 기존의 ‘기백 상점’을 ‘북산 상회’로 변경한 것이 현 북산 그룹 시초가 되었다.
그러나 승승장구할 것 같던 북산에 큰 위기가 찾아오게 되는데.
무서운 속도로 기업을 키워나가던 이기백이 지병으로 유언도 없이 돌연 임종을 맞이한 것이었다.
당시 이십 대 청년에 불과했던 장남 이승환은 그렇게 북산의 대표 자리에 앉게 된다.
한 기업의 수장을 맡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지만, 이승환 회장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뚝심으로 빠르게 회사를 안정시켜나갔다.
특히나 지금의 북산을 만든 것은 사실상 도박에 가까웠던 이승환 회장의 연이은 인수합병(M&A) 성공이었다.
많은 전문가가 성공 확률 20%도 되지 않는다고 만류했던 굵직한 M&A를 잇달아 성공시키며, 오일쇼크로 대한민국이 휘청이던 상황에서도 수출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후 모두가 외면했던 만년 적자 기업 ‘화천 생명’을 인수하여, 북산 생명으로 탈바꿈시켰고, 자산 129조원의 우량 보험사로 보란 듯이 키워냈다.
이밖에 보유한 계열사들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원석 같은 기업들을 속속들이 인수했고, 30년이 흐른 지금은 총자산 220조 원, 매출액 80조 5천억 원의 거대 공룡으로 성장했다.
방만 경영으로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다른 재벌 2세들과는 달리 이승환 회장은 이립(而立)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기업 총수 자리에 앉아 북산을 대한민국 10대 그룹까지 성장시켰다는 점에서 그의 경영 능력은 입증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그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독불장군처럼 밀어붙이는 뚝심과 추진력이 있었고, 그 어떤 임원들도 꼼짝 못 할 불같은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의리를 중요시하는 면이 있었기에 임직원들의 처우와 복지에 관해서는 섭섭지 않게 대우해준다는 점에서 퇴사율이 적은 기업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
북산그룹 회장 집무실.
재벌그룹 회장의 집무실이라 함은 대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게 일반적이었다.
때문에 비서실이나 고위 임원 이외에는 그 구조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승환 회장의 집무실은 상대적으로 무척 소박한 편이었는데 집무실 내에는 고풍스러운 원목 책상과 책장, 가죽 소파가 고작이었다.
책상에 놓인 명패만 아니었다면 굴지의 대기업 회장의 집무실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똑똑똑
“회장님. 이봉구 실장입니다.”
“들어와.”
키는 작달막했지만 다부진 체격의 중년 남자가 서류를 살펴보던 이승환 회장에게 허리를 숙였다.
“그래. 이 실장. 무슨 일이야?”
“일전에 말씀드린 창사 70주년 기념으로 추진한 회장님과의 식사 경매에 관한 보고를 드리러 왔습니다.”
콧등에 얹어진 조그만 안경을 고쳐 쓴 이 회장이 턱을 긁적이다가 이내 실소를 터트렸다.
“허. 까먹고 있었구만. 그래. 그런 게 있었지. 아이고 귀찮아. 일단 앉지 그래?”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이승환 회장이 중앙에 놓인 가죽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맞은 편에 앉은 이봉구 비서실장이 결제 서류 하나를 이승환 회장에게 쓱 내밀었다.
“나도 이제 연식이 다 됐나보구만. 조금만 움직여도 뼉다구가 쑤시니 원. 물러날 때가 된게야.”
“무슨 말씀입니까 회장님. 아직 청년 못지않게 정정하십니다.”
“끌끌끌. 사람 참. 빈말 잘하는 건 세월이 흘러도 바뀌질 않아. 우리가 같이 한지가 얼마나 됐지?”
“정확히 42년입니다. 회장님.”
“징글징글하구먼. 끌끌끌. 하긴. 마누라보다 오래 본 게 이 실장이니. 자네도 지겹지 않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저는 평생 회장님만 보필하기로 맹세한 사람입니다.”
농 섞인 말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이봉구 실장을 보며 이승환 회장이 혀를 끌끌 찼다.
“에잉···. 재미없는 사람같으니. 그래서? 나랑 밥 한 끼 먹겠다고 경매까지 한 나사 빠진 놈들이 얼마나 있던가?”
“말도 마십시오. 한때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 전산팀에서 진땀을 뺐다고 합니다.”
“껄껄껄. 하릴없는 한량들이 썩어 넘치나 보구만.”
“그만큼 회장님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존경이 뜨겁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예끼 이 사람아. 관심과 존경은 무슨. 어디 주워 먹을 떡고물 없나 기웃거리는 파리들이겠지. 안봐도 뻔해. 분명히 식사 자리를 빌려 썩은 내 풀풀 나는 얘기를 하던가, 아니면 주가에 영향을 끼칠만한 정보를 캐내려 하겠지. 흐음···. 돈 놀이하는 놈들이나 어정쩡한 회사 사장 놈들이 잔뜩 몰렸겠구만.”
이승환 회장의 말에 이봉구 실장이 나지막한 감탄을 터트렸다.
“통찰력은 여전하십니다. 참가자 신상을 보니 대부분 금융업이나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자들이더군요.”
“끌끌끌. 천하의 이승환이를 물로 봤나보구만. 그래서 낙찰액은 얼마라던가?”
“1억입니다.”
“고작 식사 한 끼에 1억을 태워?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일세 그려. 내가 식사 자리에서 말 한마디 안 하고 앉아 있으면 1억을 홀라당 날려버리는 게 아닌가.”
“그렇게 되겠군요.”
“그래. 어디에서 뭐 하는 놈인가? 그 얼빠진 놈은?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 아니면 요즘 북산에서 관심 가지는 AI 쪽 업체인가?”
“음···. 그게···.”
순간 이봉구의 무표정이 살짝 깨지며 난감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냥···. 학생입니다.”
“응? 학생?”
이 회장의 길고 새하얀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한영대 재학생이라고 합니다.”
“허···. 확실한게야?”
“확실합니다. 입학처 통해 확인도 했습니다.”
“쯧쯧쯧. 금수저 물고 태어난 놈인가보구만.”
“그것…도 아닙니다. 혹시나 해서 정보팀 통해 쭉 훑어봤는데 보육원 출신이라고 합니다.”
“보육원? 부모가 없단 게야?”
“네. 그렇습니다.”
“그럼 더 말이 안 되잖아? 고아에 평범한 대학생 놈이 무슨 돈이 있어서 1억이라는 돈을 태워?”
“그것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특이사항이 하나 있었습니다.”
“특이사항?”
“성인이 되자마자 빚을 졌더군요. 이후에 원양어선을 탄 기록이 있습니다.”
이봉구의 말이 이어질수록 소파에 기대어 있던 이승환 회장의 몸이 점점 앞으로 기울었다.
“계속해보게.”
“그렇게 4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이후 행적이 무척이나 수상쩍습니다. 그래서···. 이걸 잘라야 할지 어떡할지 판단이 서질 않아 회장님께 보고드리는 겁니다.”
이승환 회장의 부리부리한 눈이 호기심으로 번득였다.
“뭐가 그리 수상쩍던가?”
“원양어선에 탔던 건 확실합니다. 기록이 남아있으니까요. 문제는 배에서 내려 한국에 돌아온 뒤 20억 상당의 고급 오피스텔을 사들였다는 점입니다. 이후 뜬금없이 한영대학교에 편입했고, 이번에 회장님과의 식사 경매를 낙찰받은 겁니다. 행보에 개연성이 전혀 없습니다.”
“크헐헐헐헐. 그놈 그거 걸작이로구먼. 배 타고 나가서 보물선이라도 발견한 겐가?”
“그것까진 알 수 없었습니다만 확실한 건 배 타면서 받는 급여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겁니다.”
“그놈에게 뭔가가 있긴 하단 말이구만.”
탁탁탁
턱을 괸 이승환 회장이 반대편 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깊은 생각에 빠졌을 때 나오는 그만의 버릇이었다.
“그냥 자르고 2순위로 진행할까요?”
“어허. 무슨 소리하는겐가? 경매는 공정해야지. 엄연히 최고가로 낙찰받은 이가 버젓이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혹여나 좋지 않은 목적으로 회장님께 접근하려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됩니다.”
“클클클. 불순한 목적이라···. 글쎄. 그럴 것 같진 않구만. 그것보단 아주 흥미로워. 북산을 여기까지 키우면서 별의별 일은 다 겪었다고 자부했는데 이건 또 새로운 의미에서 신선한 충격이야. 나랑 밥 한 끼 먹겠다고 평범한 대학생이 1억을 태웠다라···. 흐음.”
잠깐 고민하던 이승환 회장이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놈으로 결정하게. 어떤 놈인지 직접 보면 알겠지. 끌끌끌. 설령 검은 속내를 감춘 놈이라고 해도 나 이승환이한테 통할 것 같은가 이 실장?”
“그럴리가요. 불가능합니다.”
이승환 회장 말대로 30년의 세월을 돌이켜보면 파란곡절(波瀾曲折) 그 자체였다.
절세를 언급하며 탈세를 들이 내미는 놈들부터 날강도나 다름없는 정치인들, 주가 조작을 하자고 꼬드기던 사기꾼들까지.
조금만 방심해도 끔뻑 속아 넘어갈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해온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모두가 이승환 회장의 날카로운 통찰력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을 옆에서 똑똑히 지켜보지 않았던가.
“아무튼, 식사는 그놈으로 진행시키게.”
“네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봉구 실장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집무실 떠나갔다.
홀로 남은 이승환 회장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껄껄껄. 말년에 제법 재미난 일이 생겼구만.”
그렇게 이승환 회장은 집무실 소파에서 대운에 관한 보고서를 한참 동안 읽어 내려갔다.
***
백제호텔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호텔이라고 해도 이견이 없을 정도로 그 명성과 네임밸류는 가히 압도적 곳이었다.
그런 백제호텔의 유명세에는 한식당 ‘미르’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뉴욕과 홍콩, 일본 등 각 지역을 대표하는 레스토랑을 집중도 있게 벤치마킹하였고, 결국 미슐랭 3스타 한식 파인다이닝에 빛나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급 한식당으로 자리매김했다.
전망 좋은 백제호텔 25층에 자리한 미르는 탁 트인 남산 경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예약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 귀빈실이 오전부터 직원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했다.
“오늘 절대 잔 실수도 있으면 안 돼! 재료 다시 한번 체크하고, 서버(server)들도 동선 다시 한번 체크해.”
“넵!”
책임 주방장 양성일의 외침에 직원들이 우렁차게 답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오늘은 북산 그룹 이승환 회장의 예약이 잡힌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호텔 요식업계에서 이승환 회장의 일화는 무척이나 유명했다.
아무리 유명세가 있는 고급 식당이어도 맛과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면 그 자리에서 신랄한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 또 반대로 그날의 서비스와 음식 맛이 마음에 들면 전 직원들에게 입이 떡 벌어질 만한 팁을 뿌리기도 했다.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직설적인 성격으로 이승환 회장이 행차하는 날에는 전 직원이 바짝 긴장했고, 총 책임자도 평소보다 예민해졌다.
시간이 흘러 약속한 시간 되자 수행들을 대동한 이승환 회장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간만에 뵙습니다.”
“오! 이게 누구신가. 양 쉐프 아니신가? 껄껄껄. 에너지 넘치는 모습은 여전하구만.”
“제 천직이 음식쟁인데 목숨 걸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역시 양 쉐프야. 암 그럼. 평생의 업으로 삼았으면 그 정도 각오로 하는 게 맞지. 요즘 애들은 양 쉐프 같은 패기가 없어 에잉 쯧쯧.”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귀빈실로 들어서자 풍경화 같은 남산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자리에 앉은 이승환이 이봉구 실장을 보며 물었다.
“언제 온다는가?”
“거의 다 왔다고 합니다.”
“껄껄걸. 패기 넘치는구먼. 천하의 이승환이를 기다리게 하고 말이야.”
드르륵
말 끝나기 무섭게 고급스러운 한옥 풍 미닫이문이 열리며 청바지에 체크 남방 차림의 남자가 책가방을 둘러메고 안으로 들어왔다.
“헥헥.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오. 교수님이 난데없이 쪽지 시험을 쳐버리는 바람에···.”
이승환 회장을 비롯한 수행원 전원이 벙찐 얼굴로 사내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