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그거 내 건물이야
강남 역삼역에 위치한 베슬로 신사옥.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물끄러미 건물 하나를 올려다봤다.
“때깔이 싹 달라졌네.”
내겐 너무나도 익숙한 건물이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내 소유 건물이었으니.
그렇다. 회사 이전을 준비하던 베슬로가 내 건물을 매입하여 사옥으로 리모델링 한 것이었다.
당시를 떠올리면 운도 좋았다.
건물을 임대하여 사무실로 쓰던 베슬로는 무서운 성장세를 보여왔고 강남에 건물 몇 채 산다고 해도 끄떡도 없을 만큼의 유보금을 쌓게 되었다.
더 이상 비싼 임대료 낼 필요가 없어진 베슬로는 사옥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고 신축이냐 기존 건물을 매입하냐를 두고 고민을 하던 차였다.
“신축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기존 건물을 매입하는 쪽이 낫겠어요.”
베슬로의 대표 이장원이 나를 불러놓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잘 생각했어. 신축이 보기엔 쉬워 보여도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야.”
“하아···. 그래서 건물 몇 개 보긴 했는데 뭔가 딱 꽂히는 건 없네요.”
“요즘 부동산 경기가 별로라 매물 많이 나오지 않나?”
“그러면 뭐해요. 전부 다 쭉정이 같은 것들뿐인데.”
“네가 원하는 게 뭔데?”
“그냥 별거 없어요. 쓸데없이 화려할 필요도 없고 그냥 시설 깨끗하고 위치 좋은 게 최고죠. 아무래도 직원들 편의가 최우선이니깐.”
“하긴, 그런 매물은 잘 안 나오긴 하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역삼역 앞에 딱 마음에 드는 건물이 있는데 알아보니 건물주가 팔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쉽다 진짜···.”
“역삼역? 몇 번 출군데?”
“3번이요.”
“혹시···. 15층짜리 건물이냐? 커다란 간판 달린?”
“응? 어떻게 알았어요?”
“그거 내 건물이야.”
“네?”
얼빠진 얼굴로 입을 벌리던 이장원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질 않았다.
그렇게 나는 당시 300억 주고 샀던 건물을 500억 조금 넘는 돈을 받고 팔았다.
너무 바가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천만의 말씀.
그 건물을 매입하고 대대적인 시설 공사와 리모델링을 통해서 건물의 상태가 좋아진 것도 있고 무엇보다 땅값 자체도 엄청나게 올랐다.
그리고 특이사항이 하나 있다면 건물은 넘겼지만, 옥외광고판에 대한 소유권은 내가 그대로 가졌다는 사실이었다.
굳이 왜 그랬냐고?
이 광고판에서 나오는 수익이 건물 전체에서 나오는 임대료보다 컸으니깐.
놀랍게도 옥외광고판에서 나오는 한 달 수익만 2억이 넘는 수준이었다.
광고 효과가 좋다고 광고주들 사이에 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광고를 넣고 싶어도 밀린 게 많아 몇 개월은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었다.
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까지 팔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옥외광고판은 그대로 내가 갖기로 베슬로 측과 협의했다.
“아주 그냥 효자야. 우리 옥판이가.”
광고판에 애칭까지 붙여줬을 정도로 아주 쏠쏠한 수익을 안겨다 주는 내 든든한 파이프라인 중 하나였다.
흐뭇한 미소로 광고판을 지켜보던중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었고 횡단보도를 건너 베슬로 사옥으로 들어섰다.
건물 내부는 3년 전과 완전 딴판으로 바뀌어 있었는데 안내 데스크가 존재했고 출입증을 찍어야만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안내 데스크에 앉아있던 예쁘장한 여직원이 나를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안녕하세요. 송 고문님.”
“아 네. 고생 많아요.”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곳이다 보니 대부분의 직원이 내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출입증 찍는 곳으로 향하자 곧 시큐리티가 다가와 내게 인사를 하고선 문을 열어줬다.
“고마워요.”
처음에는 좀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프로세스이기도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인 15층을 찍었다.
“장원이 놈도 간만에 보는 거네.”
이장원과는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봐왔지만 근래에는 잦은 미국 출장으로 얼굴 보기가 연예인보다 더 힘들었다.
그나마 어제 입국했다는 연락을 받고 귀한 얼굴 보러 가는 것이었다.
띵
곧이어 엘리베이터가 15층에 멈춰 섰고 문이 열리며 웬 젊은 여성 하나가 밝은 미소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고문님. 대표님 기다리고 계십니다.”
“잘 지냈어요 백 비서님?”
어느새 개인 비서까지 두게 된 이장원이었다.
너무 오바하는거 아냐?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회사 규모가 거대해졌고 비서 없이는 제대로 업무가 힘들 정도로 이장원 역시 바빠졌다.
백 비서의 안내를 따라 대표실로 들어서자 셔츠를 풀어헤친 채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는 이장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이구. 우리 이 대표님. 미국에서 돌아오시자마자 서류에 파묻혀 계시네요.”
내 목소리에 이장원의 고개가 번쩍 들리며 함박웃음이 입에 걸렸다.
“대운이 형! 이게 얼마 만이에요?”
“어허. 대운이 형이라니. 세계 미디어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공룡 기업의 대표님치고는 말투가 너무 가볍습니다만.”
“에이. 형인데 뭘 어때요. 근엄한 척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형 앞에서만큼은 좀 편하게 있자구요.”
“가면 쓰고 다니느라 힘든가 보네. 그러던가 그럼.”
근래 이장원의 행보를 떠올리면 충분히 납득이 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가장 보여준 예가 바로 이장원 아니던가.
해커톤에서 처음 봤던 이장원은 개발자스러운 너드미를 뽐내며 실실 웃고 다녔지만 지난 몇 년간 온갖 풍파를 정면으로 맞으며 그 모습은 조금씩 바뀌어갔다.
헤픈 웃음은 사라져갔고 근엄함과 위엄이 조금씩 자리 잡았다.
개발자의 면모보다는 경영자로서의 재능이 꽃피며 해외 지사까지 포함하면 직원만 3천여 명이 넘는 거대 기업으로 키워냈다.
아무리 황금빛의 주인공이지만 나 역시 놀람을 금치 못할 정도의 기적 같은 성장이었다.
“많이 바쁘냐?”
“아뇨. 급한 건 다 처리했어요.”
“그래? 그럼 나가자.”
“오자마자 어딜요?”
“낮술이나 때리러 가자고.”
“에엑? 무슨 근무시간에 낮술을 때려요. 직원들 볼까 무섭네.”
“반차 써 인마.”
“반차···?
내 말에 혹했던지 이장원이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직원만 반차쓰냐? 대표도 반차 쓸 수 있지. 너 그동안 하루도 못 쉬었잖아. 일만 하다 죽을 거냐? 그러지 말고 오랜만에 이 형님이랑 낮술이나 때리자. 어때?”
“우리 둘이서만이요?”
“당연하지. 편하게 마시자고.”
“어디로 갈 건데요?”
“있어 인마. 네가 가면 환장할만한 곳.”
그렇게 내 꼬임에 넘어간 이장원은 회사 설립 이래 최초로 인사팀에 반차계를 써서 냈다.
***
“에게? 기껏 기대하고 나왔더니 족발집이 웬 말?”
투덜거리는 이장원 주둥이에 족발 하나를 쑤셔 넣었다.
“이 자식 이거 많이 컸네. 옛날엔 족발이라면 사족을 못 쓰더니.”
우물우물
“으음. 사실 지금도 족발 엄청 좋아해요. 형이 하도 기대감을 주길래 엄청 비싼 데라도 가는 줄 알았죠.”
“이 시간엔 문도 안 열어 그런 데는. 그것보다 너 여기 어딘지 기억 안 나냐?”
“여기요?”
고개를 갸웃한 이장원이 한 손에 족발을 들고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내 터져 나온 감탄사.
“어? 설마 여긴···?”
“그래 짜샤. 우리 해커톤에서 금상 받고 뒤풀이하던 곳이잖냐. 이거이거 초심 다 잃었네. 정신 교육 한번 빡세게 시켜줘야 하나.”
“너무 오랜만에 와서 깜빡했어요. 제가 설마 그걸 잊을 리가 있겠어요? 여기가 저한텐 얼마나 소중한 곳인데.”
과거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던지 이장원의 동공에 아련함이 깃들었다.
“여기서 저랑 형이랑 지원 누나랑 족발 진짜 맛있게 먹었는데. 그때 먹었던 맥주가 제 인생에서 제일 맛있게 먹은 맥주였어요.”
역시나 미화된 추억만 한 술안주도 없는 법.
나 역시 옛이야기에 흥이 오르기 시작했다.
“인정. 해커톤 이후로 한 내가 한동안 피자랑 치킨은 쳐다도 안 봤잖아.”
“푸하핫. 형도 그랬어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근래 보기 힘들었던 환한 미소를 지은 이장원이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쨍
“크으. 그래 이 맛이지. 아 너무 행복하다.”
한입에 맥주를 털어 넣은 이장원이 연신 감탄을 내뱉으며 거품만 남은 잔을 들여다봤다.
“그나저나 지원 누나는 잘 지내요?”
“잘 지내지. 무려 회사 이사님이시랜다.”
“헐. 벌써요? 엄청 빠르네.”
“그만큼 능력이 있으니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장원.
“그건 인정하죠. 워낙 대단한 누나니깐.”
그러더니 이장원이 감상에 젖은 눈빛으로 잔에 맥주를 채웠다.
“제가 여길 왜 못 잊는지 아세요?”
“족발이 맛있어서?”
“하하하. 그런 것도 있는데···. 여기가 제 인생이 바뀐 터닝 포인트거든요.”
나는 말 없이 장원이를 쳐다봤다.
“딱 이 자리에서 형이 그랬잖아요. 저만의 팀을 꾸려서 세상에 전하고 싶은 가치를 전하라고.”
“그랬나?”
물론 선명한 기억이었지만 괜한 쑥스러움에 시치미를 뗐다.
“많은 실패로 위축되어있던 저는 자신 없이 고개를 내저었는데 형이 그랬죠?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으니 제가 남들보다 앞서 있다고. ‘따봉’은 무조건 되니깐 형만 믿고 일단 해보라고.”
홀로 맥주를 들이켠 이장원이 입가에 묻은 거품을 닦아냈다.
“그리곤 저한테 대뜸 투자하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너 기억력 좋구나?”
“매번 하는 얘기지만 전 그때 형이 사기꾼이거나 미친 사람이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확신했어요.”
“음···. 차라리 미친놈이 낫겠다.”
남 등쳐먹는 사기꾼보단 순박한 똘아이가 낫지 않겠는가?
“제가 뭘 보고 따봉에 그리 많은 돈을 투자하냐고 물었을 때 형이 그랬죠? 따봉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저한테 투자하는 거라고.”
“그건 백 퍼센트 진심이야. 따봉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였더라도 나는 너한테 투자했을 거다.”
“알아요. 진심이 느껴졌거든요.”
그럴 수밖에 없었단다.
너한테 그 어느 때보다 찬란히 빛나던 황금 아우라를 봤으니깐.
“처음이었어요. 누군가 저라는 사람을 그렇게 맹목적으로 믿어준 게. 지금 생각해봐도 놀라워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저도 몰랐던 제 안에 재능을 깨닫게 됐죠.”
“재능?”
“나를 믿어주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는 욕심. 일종의 책임감 같은 거죠. 저를 믿고 투자해준 형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 이 악물고 한 것도 있고요.”
“난 네가 설사 망했다고 하더라도 또 투자했을 거다.”
“알아요. 그래도 꼭···. 어떻게든 성공해서 형이 보여준 믿음에 보답하고 싶었어요.”
“충분히 하고도 남았지. 나는 솔직히 베슬로가 이 정도로 잘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진심이야.”
이건 진짜였다.
성공 여부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었지만, 그것도 한계 총량이 있지 설마하니 이 정도로 거대한 기업이 될 것이라고는 정말 예상치 못했다.
“다 형 덕분이에요. 형 없었으면 도중에 회사가 어떻게 됐을지도 몰랐고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에요. 그건 다른 팀원들도 주저 없이 동의하는 부분이에요.”
“짜식들이···. 은근 사람 감동시키네.”
제 앞가림도 못 했던 어린 자식이 성공하여 훨훨 날아다니는 모습을 본 부모의 마음이 이러할까?
대한민국 개인 자산 순위를 뒤바꿨을 정도의 큰돈을 벌었으면 변할 법도 한데 한결같은 녀석들의 마음이 참으로 기꺼웠다.
“뭐···. 술 들어갔으니깐 하는 얘기에요. 아오. 오글거려서 더는 못하겠네.”
진저리를 치며 잔을 내미는 이장원의 모습에 나도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손발이 닳아 없어지는 줄 알았다 인마. 그나저나 미국에서의 일은 잘 끝난 거야?”
별 의미 없는 물음에 돌연 손뼉을 내려친 이장원.
“맞다! 형이 들으면 좋아할 만한 선물을 들고 왔어요.”
“선물?”
의아해하는 내 얼굴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인 이장원.
“드디어 SEC에서 등록 유효를 선언이 나왔어요. 우리 베슬로···. 곧 나스닥에 상장 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