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그럼 아까 그 빛은 대체?
“멍청하니 거기 앞에 서서 뭐해? 왔으면 앉지 않고?”
이 회장님의 채근에 멍하니 서 있다가 부랴부랴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 이 회장님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홀쭉해진 얼굴 살에 움푹 파인 눈두덩이, 푸석푸석한 피부까지.
확실히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았다.
3년 만에 다시 보게 되는 빛이 하필이면 검은색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더구나 그 대상이 이승환 회장님이라니···.
복잡해진 마음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조금씩 굳어지기 시작했다.
“뭐해?”
“네?”
“정신 보따리 냉장고에 넣어놓고 온 놈마냥 얼이 빠져선 뭐하냐고 묻는 게야. 무슨 걱정이라도 있느냐?”
“아? 아하하 그냥 오랜만에 뵈니 반가워서요.”
“쯧쯧. 싱거운 놈. 그게 반가워하는 표정이더냐? 무슨 귀신이라도 본듯한 얼굴이구나.”
비록 얼굴 상태는 안 좋아도 통찰력만큼은 여전하시구나.
“그럴리가요. 거의 두 달 만에 뵙는 거잖아요. 죄송해요.”
“응? 뭐가 죄송해?”
“자주 인사드리러 못 와서요. 제가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오늘 아침에 뭘 잘못 처먹고 온 게야?”
나를 보는 이 회장님의 표정이 괴이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인지하고는 번득 정신 차렸다.
“하하하. 그냥 날도 좋고 하다 보니깐 괜히 사람이 감성적으로 변하네요.”
“무슨 변고가 있긴 있나보구나. 안 하던 짓거리를 하는 걸 보니.”
“왜요? 제가 회장님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끌끌끌. 그런 놈이 두 달 만에 겨우 코빼기를 비추더냐? 아주 말은 그냥 청산유수로구나.”
“이제 그럴 일 절대 없을겁니다. 그리고 장기 두고 싶으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바로 장기판부터 세팅할 테니까요. 자! 약속!”
내가 내민 새끼손가락을 보고 벙찐 이 회장님이 얼떨떨한 얼굴로 주름진 새끼손가락을 내 손가락에 걸었다.
“뭘 잘못 주워 먹어도 한참 잘못된걸 주워 먹었나 보구나. 아무튼, 분명히 네놈 입으로 말했도다?”
“그렇다니까요. 사나이 송대운. 한 입으로 두말하는 놈 아닌 거 잘 아시잖습니까.”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건강이 좋아지실 수 있다면 뭔들 못할까.
“끌끌끌. 뭐···. 나야 좋지. 그나저나 요즘 일은 어떠냐? 별문제는 없고?”
“뭐 특별한 건 없습니다. 아! 그건 들으셨죠? 베슬로가 나스닥에 상장된다는 건.”
“그래. 북산벤처스 강 대표한테 들었다. 대단하더구나. 그 짧은 시간에 국내 증시도 아닌 나스닥에 상장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 이장원 대표가 큰일을 해냈어.”
“안 그래도 어제 이 대표랑 술 한잔하면서 많은 얘기 나눴습니다. 많이 지쳐 보이긴 하더라고요. 그래서 억지로 좀 쉬게 했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 참 대단한 인물이야. 한편으로는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도 들어. 늙은 나는 제조업 기반의 사업만 주로 다루다 보니 미디어 쪽은 보면 볼수록 신기하단 말이지. 딱히 원재료가 들지도 않은 사업에 그런 어마어마한 매출이 발생할 수 있다니 말이야. 그만큼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거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늙은이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말이지 끌끌.”
“무슨 말씀이세요. 결국, 수익을 창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본질은 같습니다. 그리고 그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은 회장님이 최고 아니십니까. 관심이 없으실 뿐이지 도태하고 있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열변을 토하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이 회장님이 픽 웃음을 터트리셨다.
“뭐. 그리 말해주니 고맙긴 하구나. 하지만 요즘 부쩍 많이 느끼고 있어. 내 시대는 여기까지라는걸. 남은 북산의 미래는 내가 아닌 그 밑에 세대들이 이끌어야 해.”
“회장님···.”
넋두리하듯 담담하게 본인의 생각을 털어놓는 이 회장님을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세월을 거스를 순 없듯 이 회장님은 노쇠하셨고 젊은 시절만큼 정력 넘치게 회사를 이끌기엔 확실히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너무 그렇게 오늘내일하는 노인네처럼은 보진 말거라.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났을 뿐이지 여전히 큼지막한 건들은 내 손을 거쳐야 하니깐. 끌끌끌. 아직 모든 걸 맡기엔 자식놈들이 영 미덥지 않아.”
장난기 어린 이 회장님의 미소를 보자 그나마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나저나 진짜 축하는 대운이 네놈이 받아야 하는 거 아니더냐?”
“저요?”
“끌끌끌. 베슬로의 초기 투자자는 네가 아니더냐? 이 대표를 제외하곤 네가 보유 지분이 가장 많을거고. 미전기실 말로는 나스닥에 상장만 되면 너한테 떨어지는 게 못해도 1조는 그냥 넘어갈 거라던데 아니더냐?”
“에이. 뭐 팔아야 제 돈이죠. 솔직히 별로 실감도 안 나고요. 몇천억 단위에 적응한 것도 얼마 안 됐는데 이제는 몇조라고 하니…”
내 말에 이 회장님이 나를 신기한 생물 보듯 요리조리 살폈다.
“거참 신통방통하단 말이지. 그래도 5년 가까이 봐온 놈인데 도무지 파악이 안 돼. 되려 알면 알수록 미궁 속으로 빠지는 기분이야.”
“또 뭐가요?”
“베슬로라는 회사의 탄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지원이를 통해 다 들었다. 아마 그 회사는 너라는 존재가 없으면 탄생하지 못했을 게야.”
“그거야 모르는 거죠.”
대충 얼버무리는 내 답변에 이 회장님이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절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게다. 북산이라는 기업체를 수십 년간 이끌어 온 나는 알 수 있다. 물론 나 역시 이장원 그 친구를 봤고 능력도 인정해. 암. 모든 건 성과가 증명해주는거니깐. 그런데 말이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기업가들이 존재해. 독불장군처럼 홀로 버텨오며 그 어떤 고난이 닥쳐도 바퀴벌레 같은 생존력으로 헤쳐나가는 놈이 있는가 하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다가 한번 탄력받기 시작하면 훨훨 날아오르는 놈도 있다. 그리고 내가 봤을 땐 이장원 그 친구는 후자 쪽에 가까웠지.”
역시 매서운 통찰력.
따지고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장원이는 해커톤 이후로 창업을 접으려고 했었으니.
“솔직하게 말하마. 아마 내가 네놈 입장이었다면 절대 이 대표에게 투자하지 않았을 게다. 기업 놀음 하는 놈이 하기엔 웃긴 말이긴 하지만 나는 싹수가 보이지 않으면 십 원 한 푼 쓰는 것도 아까운 사람이거든. 네놈이 내게 찾아와 북산벤처스를 통해 그 회사에 투자하라고 제안했을 때도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기에 수용했던 게지, 그게 아니었으면 아무리 너와 친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 투자하지 않았을 게야.”
“그러셨겠죠.”
수긍하듯 고개를 주억였다.
실제로 이 회장님은 그 엄청난 부를 축적하셨음에도 쓸데없는 소비를 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셨다.
물론 한번 돈을 쓸 때는 그 스케일이 어마어마하긴 했지만.
“그게 너와 나의 차이인게야. 내 한계는 딱 거기까지인 거고, 너는 내가 볼 수 없는 무언가를 통찰하고선 훗날 못난 오리가 될지, 창공을 노니는 백조가 될지 알 수 없는 햇병아리에게 가감 없이 투자를 해왔어. 그리고 그 결과는···.”
이 회장님의 묵중한 눈빛이 나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놀라움을 넘어 이제는 기함할 정도야. 네놈이 만약 우리 북산에 있었다면 진즉에 재계 정점에 올라섰겠지. 끌끌끌”
“하하하···. 에이. 우리 회장님이 저를 너무 치켜세워주신다.”
“끌끌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지만 과례는 비례로 보이는 법. 고작 베슬로 하나 언급했지만 네가 투자했던 그 작은 기업들이 지금 얼마나 거대한 공룡이 되어가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더구나. 아주 가깝게는 네놈이 내게 요구했던 북산솔라가 있지.”
3년 전, 당시로선 수주 가능성이 없던 북산건설을 샤힌 프로젝트라는 거대한 공사의 수의 계약을 따낼 수 있게 도와준 대가로 받은 북산솔라의 지분.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북산솔라는 아예 새로운 회사로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환골탈태한 모습이었다.
이상일 대표를 주축으로 새로게 판을 짠 북산솔라는 오로지 R&D에만 역량을 집중했고 인고의 시간 끝에 결국 산소 및 수분을 획기적으로 막아주는 봉지재 개발에 성공했다.
이를 기반으로 투명 필름 수준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상용화에까지 성공하여 단번에 업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되었다.
아직은 초기 단계이지만 그 상품성을 인정받고 무섭게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었다.
“끌끌끌. 네가 북산솔라 지분을 요구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컸어. 그동안 네가 보여준 기적 같은 성과들을 생각하면 혹시나 하면서도, 북산솔라의 암울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입장으로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수밖에 없었지. 그래. 사실상 내가 입양한 자식을 내손으로 버린 셈이었던 게지.”
“뭘 그렇게까지 생각하세요.”
씁쓸함이 묻어나오는 이 회장님의 어조에 괜히 마음이 쓰였다.
“낯간지럽지만 이 말 한마디는 꼭 해야겠다. 아버지의 유언이자 염원이었던 북산솔라를 구원해줘서 고맙구나. 네 덕분에 저세상에 가서 아버지를 뵐 면목이 생겼어.”
“거참, 자꾸 저세상이니 이런 말 좀 하지 마세요. 그리고 제가 한 게 뭐 있다고 그러세요. 고생은 이 대표님이 다하셨는데.”
“나도 보는 눈이 있고, 듣는 귀가 있다 이놈아. 이상일이한테 얘기 다 들었어. 네놈이 그랬다면서?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믿고 따르라고. 네놈이 북산솔라 대주주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북산솔라가 소생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거라고 말이지. 네놈 말고 과연 어느 누가 그런 오만한 말을 할 수 있을까? 크헐헐. 정말이지 재밌구만 재밌어.”
“끄응···. 어떻게든 회사는 살려야 하니깐 허세 좀 부려본 거죠. 이거 괜히 민망하네.”
나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머리를 긁적였다.
분명 내가 내뱉은 말이긴 했으나 타인의 입에서 들으니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끌끌끌. 알았다 이놈아. 이제 그만할 테니 심호흡 좀 하거라. 얼굴이 빨갛다 못해 뻥 하고 터질 것 같구나.”
“크흠···. 그런 얘기는 그만하시고 회장님 얘기나 좀 해주세요.”
“내 얘기?”
“왜 건강 검진받고 아무 말씀을 안 하세요? 주치의 입단속까지 시켜셨다면서요? 요즘 집무실 밖으로는 거의 나가시지도 않으시고···. 혹시 무슨 일 있으신거 아니죠?”
내 걱정어린 눈빛에도 어쩐 일인지 이 회장님은 말없이 나를 빤히 쳐다만 보셨다.
“혼자 끙끙 앓는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잖아요. 회장님 잘못되면 그게 어디 회장님 혼자만의 문제입니까? 그 밑에 딸린 식구가 몇만입니다. 북산은 아직 회장님을 필요로 한다구요. 무엇보다···. 저는 회장님을 오래오래 뵙고 싶습니다. 그러니 제발···. 조금만 용기를 내주세요. 저를 봐서라도.”
말하면서도 감정이 북받쳐 올라 목소리는 잘게 떨려왔고 알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 같은 것이 치솟아 목구멍을 콱 틀어막는 것 같았다.
그런 나를 덤덤하게 지켜보던 이 회장님이 나지막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주 그냥 혼자 생쇼를 하는구나.”
“네?”
“지금 네놈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나를 일찌감치 저세상으로 보내버릴 심산인가 본데 어림도 없다 이놈아.”
“아, 아니. 제 말뜻은 그게 아니고···.”
“끌끌끌. 갑자기 태세가 왜 바뀌었나 했더니 이제야 퍼즐이 좀 맞춰지는구나. 어디서 이상한 얘기를 듣고 제 혼자 몹쓸 상상을 했나 보고만 쯧쯧.”
나는 당황이 깃든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건강 검진 결과가···. 안 좋게 나온게 아니에요?”
“거기 탁자 위에 올라가 있지 않느냐? 네놈 눈으로 직접 보거라.”
회장님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인 서류가 눈에 들어왔다.
내용물을 살펴보자 이번에 이 회장님이 받은 건강 검진 진단 결과서였는데 그 내용이···.
“이상무, 정상범위, 이상무, 정상범위···. 매우 건강···. 하시네요?”
“그래 이놈아. 네놈이 졸업식에서 나한테 건강 검진을 받으라고 닦달하지 않았더냐? 그때 간암을 초기에 발견한 이후로 내가 건강관리를 얼마나 빡빡하게 해온 줄 아느냐? 끌끌끌.”
“근데 얼굴은 왜 그렇게 초췌하세요···?”
“요즘 내가 깊이 고민하는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 때문에 통 잠을 이루지 못하다 보니 얼굴이 좀 푸석해진게지. 별걸로 다 호들갑이구나.”
“어···? 그럼 아까 그 빛은 대체···?”
“빛? 무슨 빛?”
그럼 들어오자마자 이 회장님한테 보았던 그 검은빛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