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송 대표님만의 무언가가 있긴 하다는 거네요
“아니? 세상에? 이런 우연이!? 지원이 너 여기서 뭐해?”
고개를 돌려 나를 발견한 이지원이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대운 오빠···? 여긴 어떻게?”
“어떻게는. 나도 이런데 종종 와서 밥 먹고 한다고.”
“혼자서요?”
“응. 혼자서.”
“거짓말하지 마요. 맨날 순댓국집만 가면서 무슨.”
역시 나에 대해 너무 잘 아는 녀석이었다.
“누구···?”
홍재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보며 물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송대운이라고 합니다.”
얼떨떨한 얼굴로 내가 내민 손을 맞잡은 홍재희.
“네. 반갑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네가 뭔데 갑자기 나타나서 분위기를 깨냐는 뉘앙스였다.
“아. 오늘 지원이 선 자리가 있다고 얘기는 들었는데…세상에! 마침 지나가다가 지원이가 딱 보이는 거 아니겠어요? 반가운 마음에 인사는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아는 척 좀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지만 원래 우연이란 건 만들기 나름 아니겠는가.
나는 넉살 좋게 웃으며 빈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대충 보아하니 자리가 끝나가는 분위기던데 잠깐 앉아도 될까요?”
홍재희가 이지원을 쳐다보자 그녀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미국에서 오래 지냈다고 하더니 생각보다 쿨하구만.
두 사람 사이 중간 좌석에 앉은 나는 이지원을 보며 물었다.
“와인 한잔 어때? 한 두잔 정도는 혈액순환에 좋다더라.”
“그래요 그럼.”
“남성분은 괜찮으세요?”
“저야 환영이죠.”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을 보고선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자.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거국적으로 한잔하실까요?”
쨍그랑
세 개의 유리잔이 맞부딪히며 맑고 고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느새 평정을 되찾은 홍재희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이쯤 되면 그쪽 정체가 뭔지 물어봐도 되는 겁니까?”
“으음···. 그냥 말하면 재미없으니깐 한번 맞춰보실래요?”
반응을 떠보기 위한 도발에 가까운 멘트였지만 홍재희는 도리어 흥미로운 기색이었다.
“호오. 그것도 재밌겠네요. 음···. 일단 두 사람이 엄청 친해보이는데 성이 다른 걸 보니깐 직계 가족은 아닌듯하고···. 사촌 오빠 아니면 교회 오빠 느낌인데···. 아하하. 이거 참 어렵네요.”
“오! 거의 근접해서 맞췄네요. 교회 오빠는 아니고 학교 오빠입니다.”
“학교 오빠요?”
“뭐 단순한 오빠 동생 사이는 아닌데 자세히 설명하긴 복잡하네요. 어쨌거나 보통 사이는 아닙니다.”
졸업식에서 들었던 멘트를 그대로 돌려주자 잘게 떨리는 지원이의 동공.
어때 이것아. 직접 당해보니 너도 당황스럽지?
“이거 더 흥미진진해지는데요? 설마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숨겨진 정혼자···. 뭐 그런 건가요?”
“숨겨진 건 아니고 대놓고 당당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정식으로 인사드리리죠.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의 송대운이라고 합니다.”
나는 지갑에서 명한 한 장을 꺼내어 홍재희에게 건넸다.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손에 쥔 명함을 유심히 살피던 홍재희가 무언가가 떠오른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동양에서 왔다는 그 슈퍼엔젤···?”
“헐. 그 별명이 아직도 돌고 있습니까?”
나로서는 상당히 쪽팔리는 별명이었기에 조용히 묻히길 바랐는데 이 양반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이야. 소문의 주인공을 여기서 다 만나 뵙네요. 이거 영광입니다. 저도 인사드려야겠군요.”
똑같이 홍재희가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어 내게 건넸다.
“대성홀딩스 부사장 홍재희입니다.”
“어이구 이런. 어마어마한 분이셨네요.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물론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우연히’ 만난 것이었기에 모른 척했다.
“제가 실리콘밸리에서 지낼 때 소문 많이 들었습니다. 동양에서 온 슈퍼엔젤이 한국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자리에서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요. 오늘 여러모로 재미난 상황이 많이 벌어지고 있어서 신이 납니다.”
그냥 하는 말은 아니던지 해맑게 눈웃음까지 짓는 홍재희를 보자 그가 상당히 낙천적인 성격임을 알 수 있었다.
어느새 이지원은 뒷전으로 두고 나에게만 집중하여 질문을 퍼붓기 시작한 홍재희.
“소문으로는 투자 성공률이 거의 100%에 수렴한다고 들었습니다. 면전에 대놓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솔직히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죠.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확실히 일반적인 범주의 일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모든 건 결과가 증명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이런. 제가 실수를 했군요. 한잔하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쨍그랑
잔을 맞부딪힌 우리 두 사람이 와인잔에 입을 가져다 댔다.
와인을 마시면서도 홍재희의 두 눈은 오롯이 나에게만 고정되어있었다.
“한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송 대표님의 투자 원칙이 무엇입니까?”
“제 투자 원칙이요?”
“저는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라는 생태계 교란종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투자 포트폴리오를 면밀히 분석 해본 적도 있었죠. 하하하.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중구난방이더군요. 듣기론 그 회사는 오로지 송 대표님 개인의 의사결정에 의해 모든 투자가 이루어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역시나군요. 그런데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전문성의 총량은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제 상식선에선 그런 포트폴리오를 꾸민다는 게 말이 안 되거든요. 투자의 신이 이거 찍으라고 정해 주지 않는 이상 말이죠.”
제법 촉이 좋은데?
홍정호 회장이 그렇게 자랑하고 다니는 아들이라고 하더니 확실히 남달라 보이긴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기준에서 말이다.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물론 분석도 중요하지만 저는 제 인사이트(insight)를 더 믿고 따르는 편이거든요.”
“몇천짜리 주식 투자도 아니고 수백억 돈이 오가는 비즈니스를 감에 따른단 말입니까?”
“하하하. 그렇다고 무작위로 룰렛을 돌려서 투자하거나 그러진 않습니다. 제 나름의 기준은 있거든요. 여기서부턴 영업비밀이라 자세히 말씀드리긴 좀 그렇네요. 다만 벤처 투자라는 게 단순히 높은 지능과 분석력만으로 성과가 나온다면 모든 경제학 석학들은 떼돈을 벌었겠죠?”
“그건 그렇죠. 후훗. 아무튼, 송 대표님만의 무언가가 있긴 하다는 거네요.”
암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죠.
향후에 억만장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황금 떡잎을.
하지만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무작정 돈만 던져 준다고 그 떡잎들이 성공하진 않는다.
말 그대로 나와의 인연을 통해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일 뿐.
아름다운 꽃을 가졌지만 특정한 온도와 습도, 빛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키울 수 없다는 ‘천인홍’처럼 세심하게 관리해주지 않으면 황금 떡잎도 금방 시들어 버릴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한 가지 제안을 해도 되겠습니까?”
“제안이요?”
입가에 묘한 미소를 내건 홍재희.
“투자하신 곳 중에 ‘맵스’라는 스타트업이 있죠? 아, 이제는 스타트업이라 부르기도 좀 그렇겠네요.”
‘maps’라면 실리콘밸리 연수를 갔을 때 내가 투자한 스타트업으로 독자적인 3D네비게이션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8개월 전, 기술력을 인정받고 약 5,000만 달러(한화 670억원)의 추가 투자 유치에 성공하여 그야말로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다.
“제가 투자했었죠.”
“혹시 그곳의 지분을 파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제 지분을요?”
“예. 그 지분, 저희 대성이 사고 싶습니다.”
“맵스의 지분이라···.”
내가 고민한다고 생각했는지 홍재희가 쭉 얘기를 이어갔다.
“사실은 몇 개월 전 맵스 측에 투자 의사를 밝혔는데 단호히 거절당했습니다. 지금은 투자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이죠. 더구나 투자를 받더라도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딜런 대표의 의향을 먼저 물어봐야 한다고 못을 박더군요.”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는 평생 못 있는 법이라고 하던가.
내게 투자받은 스타트업들은 말 그대로 밑바닥에서 가장 힘들 때 나에게 구원받은 회사들이었고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지금도 나에 대한 고마움을 부담이 될 정도로 아낌없이 표현했다.
“흐음···. 그렇군요.”
내심 흐뭇한 마음이 들었지만, 티는 내지 않고 턱만 만지작거렸다.
“현재 밸류 기준으로 송 대표님이 소유한 맵스 지분 가치는 약 1,300억은 될 겁니다.”
그렇다.
200억 원이라는 투자금은 어느새 6배 이상으로 불어있었다.
물론 현금화하기 전까지는 내 돈이 아니었지만 눈부신 성장인 것만은 분명했다.
“2,000억 원으로 맞춰드리겠습니다. 그 지분, 우리 대성에게 파시죠.”
어마어마한 금액 제시에 이지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내 안색에 큰 변화는 없었다.
“충분히 매력적인 금액이지만···. 거절하겠습니다.”
“후후. 예상은 했지만···. 어째서입니까?”
“맵스의 기업가치는 향후 그 몇 배는 더 뛰게 될 테니까요.”
“지금도 충분히 말이 안 될 정도로 올랐을 텐데요. 욕심이 너무 과하신 건 아닐까요?”
“아뇨. 지극히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입니다.”
“과연···. 어마어마한 자신감이로군요.”
의외로 홍재희는 순순히 뒤로 물러섰다.
더 강권해봤자 내가 팔 생각이 없다는 걸 인지 한 듯했다.
“하하하. 솔직히 한번 찔러본 의도도 있었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천만에요. 말 그대로 제안만 하신 건데요 뭘. 제시하신 금액은 충분히 납득할만했습니다.”
2,000억이라는 금액을 제시한 홍재희나, 그걸 축구공 차듯 뻥 차버린 나나,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기함했을 만한 대화 내용이었다.
“저도 한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최근 도코바뱅크 측과 만나셨죠?”
“하하하. 역시 빠르네요. 나름 대외비였는데. 하긴 북산과 먼저 만났으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하겠군요.”
허를 찌르는 질문에 당황할법했지만 홍재희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이런 자들은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
좀처럼 속내를 파악하기가 어려웠으니깐.
“진짜 인수하실 생각입니까?”
“물론입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굳이 귀한 시간 내서 그들을 만날 이유도 없었겠죠. 북산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들이 가진 희토류 개발권 지분···. 탐이 나지 않을 수 없을 텐데요.”
“리스크가 큰 투자라는 것도 인지하고 계시죠?”
“하하하. 물론이죠. 비즈니스라는 게 원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좀 아이러니하군요.”
“뭐가 말입니까?”
“그것보다 몇 배는 더 위험한 리스크 장사를 하시는 분이 왜 그런 표정으로 저를 보시는 겁니까?”
“제 표정이 어떻길래 그러십니까?”
“마치 도코바뱅크를 인수하면 큰일이라도 날 듯한 얼굴이지 않습니까? 하하하.”
“큰일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죠. 아마 그룹사 전체가 휘청일 겁니다. 아니, 최악에는 갈가리 찢어질 수도 있겠네요.”
“뭐라고요?”
처음으로 홍재희의 웃는 낯짝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