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승부욕
“지금 대체 무슨 말씀을···.”
얼굴을 굳힌 홍재희의 목소리가 한껏 낮아졌고 주변 분위기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다소 과격하게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냥 제 사견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내 사과에 살짝 얼굴을 푼 홍재희가 설핏 미소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처음 봤을 때와는 다르게 약간의 경계심이 묻어있는 얼굴.
“기적의 투자자라 불리는 분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신 다라···. 이거 흥미롭네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근거가 뭡니까?”
“희토류의 안정적인 공급망이 간절하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것보다 더한 리스크에 투자하시는 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 건은 벤처 투자와는 엄연히 다릅니다. 벤처 투자는 사람과 시장, 사업성을 보고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지만 그런 것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글쎄요. 별 다를 건 없어 보이는데요? 어찌 됐건 해저에 묻힌 희토류가 발견된 건 공인된 사실이고 그걸 채굴할 수 있느냐 마냐가 관건인데···. 그 부분도 우리 대성그룹의 브레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검토해본 결과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티끌 같은 벤처 투자 성공률보단 더 높을 것 같네요.”
이미 모든 결정을 내린 후였던지 홍재희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묻어있었다.
그러더니 묘한 미소를 입가에 내건 홍재희.
“근데 이상하네요. 설사 그 말이 맞다고 해도 송 대표님 같은 경우에는 북산쪽 사람일 텐데 왜 굳이 제게 이런 말을 하는 거죠? 잘 아시겠지만, 지금 북산과 대성은 그리 사이가 좋지 못합니다만.”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떠보려는 의도도 있었고 대성이 어떤 의중을 가지고 있는지도 궁금했으니깐.
“보아하니 북산도 사정이 급하긴 급한가 봅니다. 이런 유치한 심리전까지 걸 줄은 몰랐는데···.”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북산과는 전혀 관련 없는 제 사적인 궁금증입니다. 제가 뭐라고 북산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겠습니까?”
“혹시···.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도 이번 인수전에 참전할 생각입니까?”
“뭐···. 살짝 고민은 했었습니다만 말씀드렸다시피 별로 매력적인 투자 건은 아니라고 판단해서요.”
“하하하. 그렇습니까? 이거 오랜만에 승부욕이 제대로 붙는데요?”
갑자기 웬 승부욕 타령?
“제가 겉보기엔 실실 웃고만 다니는 것 같아도 승부욕이 어마어마하게 강한 편이거든요. 오죽하면 전 세계 공부벌레들이 모두 모인다는 예일대에서 과 수석까지 했을까요? 하하하.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정말 코피 터질 뻔했습니다.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저도 제 성격을 이해할 수 없네요.”
그 말을 끝으로 홍재희가 예기를 품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송 대표님한테 비빌 정도는 아니지만, 저도 나름 M&A 쪽에서는 유의미한 성과를 보여왔습니다. 학부 때 CPA(공인회계사)와 AICPA(미국 회계사) 자격증을 딴 것도 그런 이유였죠. 사실 이번 도코바뱅크 인수 건은 제 의지와 결단으로 추진하고 있는 겁니다.”
홍재희라는 사람은 그간 내가 봐왔던 소위 재벌가 사람들과는 결이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똑똑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노력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갈고 닦을 줄 알았다.
그 때문에 자신감과 자존감 역시 충만해 보였고.
“아버지는 아니라고 부정하시지만 제 눈엔 보입니다. 대성그룹은 고일 만큼 고여있고 이대로 가다간 반드시 도태되리라는 것을요. 한때는 대성이라는 울타리를 답답하게도 느껴진 적도 있었지만, 철이 들고 나서야 알겠더군요. 결국, 어릴 적부터 내가 받아왔던 수많은 혜택은 대성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것이었고, 결국 내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했고,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핵심 역량을 길러야 했죠. 하하하. 뭐 지금까지는 결과가 나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재계 3위로 껑충 뛰어오른 북산에 가려지긴 했지만, 대성 역시 지난 몇 년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두각을 보이는 그룹이었다.
아마 그 배경엔 눈앞에 있는 홍재희가 있지 않았나 싶었다.
“멋지네요. 제가 봤던 오너가 자제분 중에 가장 인상적입니다.”
“하하하. 이거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요?”
“재밌네요.”
“재밌다고요?”
“홍 부사장님이 승부욕을 언급하셨는데 저도 승부욕으로는 그 누구한테 져본 적이 없거든요. 오죽했으면 끝판 대장 한번 깨보겠다고 일주일 동안 잠도 안 자고 게임만 했을까요. 아! 물론 결국엔 깼습니다. 끝판 대장. 하하하.”
예일대 수석에 비교하기엔 다소 민망했지만, 당시 그 보스몹을 깬 사람은 의왕에서 나밖에 없었기에 나름 자부심이 있었다.
“하하하. 이거 흥미진진하네요. 보아하니 직접 인수 생각은 없어도 북산에 도움을 줄 생각인 것 같은데 이것도 대결이면 대결일 수 있겠군요. 기대가 됩니다.”
“글쎄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그래도 살짝 긴장은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번 인수전에 북산과 대성만 참가하진 않을 거든요. 소식에 의하면 천화와 EW 그룹도 도코바뱅크에 관심을 보인다고 합니다. 뭐…결국엔 우리 대성이 가져가겠지만요.”
“피 튀기는 경쟁이 되겠네요.”
“그 정도는 돼야 재미가 있겠죠. 너무 쉬워도 매력이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 부분은 저도 동의합니다.”
이후에 간단한 사담을 더 나눈 뒤, 홍재희가 자리에서 쓱 일어났다.
“이거 간만에 아주 유익한 대화를 나눴네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군요.”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내민 손을 덥썩 맞잡았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살펴 들어가세요.”
그렇게 홍재희가 먼저 떠나갔고 자리에는 나와 이지원만 남게 되었다.
“좋은 시간 내가 방해한 건 아니지?”
“방해한 건 알고 있나 보네요?”
픽 웃음을 터트린 이지원이 와인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너 저런 스타일 좋아했냐? 의외네.”
“왜요? 저는 저런 스타일 좋아하면 안 돼요?”
“그건 아닌데···. 원래 남자는 같은 남자가 제일 잘 아는 법이야. 저 양반 겉은 번지르르한데 보아하니 일 중독이겠고만. 집에도 잘 안 들어갈걸?”
“바쁜 건 오빠도 마찬가지잖아요.”
“어허. 난 다르지. 무슨 일이 생기든 나는 내 가족이 최우선이야. 일은 내려놓으면 그만이고. 내가 돈 욕심이 엄청 많은 사람도 아니고.”
“돈 욕심 없으신 분이 몇년새 수천억 자산가가 되셨어요?”
아 맞다. 내 자산 현황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이지원이지?
“큼큼···. 그건 돈 욕심을 부렸다기보다는 돈이 돈을 벌어다 준 거고.”
이지원이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보다가 넌지시 물었다.
“우연을 가장해서 여긴 왜 온 거예요?”
흠칫
“티났냐?”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누가 혼자 이런 데를 와요.”
“와. 얘 봐라? 1인 가구가 얼마나 늘고 있는데 혼자 올 수도 있지···. 짝꿍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보는 이지원.
“사실 너한테 알려주고 싶은 소식이 있어서 후다닥 달려온거야.”
“알려주고 싶은 소식이요? 그게 뭔데요?”
“이승환 회장님. 그러니깐 너희 할아버지 매우 건강하시단다.”
“정말요? 직접 들은 거에요?”
내가 전한 길보(吉報)에 이지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내가 직접 건강검진결과서 확인했어. 혈압이 조금 높긴 하신데 그것 빼고는 건강하시더라. 요즘 얼굴이 안 좋으신 건 방금 홍재희씨랑 얘기 나눈 도코바뱅크 인수 건 때문에 그러신 거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은 이지원.
“하아···. 다행이네요. 할아버지도 참. 진작 말씀해주시지···.”
“회장님 성격 잘 알잖아. 하나에 꽂히시면 거기에만 빠지시는 거. 아마 쓸데없는 걱정 한다고 생각하셨겠지.”
“그래도 고마워요. 가장 먼저 알려줘서.”
“당연하지 인마. 너 걱정 많이 했잖아.”
“근데 정말 그거 하나 때문에 여기 온 거에요?”
“응? 아! 하나 더 있다.”
“그게 뭐예요?”
“이 회장님 근심 걱정 좀 덜어드리려고 나온 것도 있지.”
“아까 얘기했던 그 도코바뱅크 인수건 그거요?”
“너도 내용은 대충 알고 있지?”
“그것 때문에 아버지까지 식음을 전폐하셨는데 모를 리가 있나요.”
“이 대표님도? 하긴···. 책임자시니깐 고민 많으시겠다.”
“근데 아까 했던 말···. 진심이에요?”
“무슨 말?”
“대성에서 도코바뱅크를 인수하게 되면 큰 위기가 될 거라는 말이요.”
“도코바뱅크···. 그거 독이 든 성배야. 보기엔 아주 탐스러운데 잘못 먹으면 많이 아플 거다. 목숨에 위협이 될 정도로.”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요?”
그야 불길하게 넘실대던 검은 빛을 봤으니깐.
“그냥···. 감이야. 나도 미팅 때 같이 들어가봤는데 영 느낌이 안 좋더라고. 뭐랄까···. 포장지는 그럴듯한데 알맹이는 썩어있는 뭐 그런 느낌?”
“그럼 우리 북산은 인수전에서 빠질 수도 있겠네요.”
“아니. 그건 아닐 거야.”
“방금 감이 안 좋다면서요.”
“얘는 내가 무슨 신내림 받은 무당인 줄 아나. 그냥 내 개인적인 생각이 그렇다는 거지. 어차피 결정은 회장님이 내리실 거고 아마 회장님은···.”
나도 모르게 입술을 짓이기며 말했다.
“인수 전에 열을 올리실 거야. 무조건.”
***
모든 건 예상대로 흘러갔다.
본격적인 인수전이 시작되자 여러 그룹에서 참가 의사를 밝혀왔고 북산 역시 적극적인 인수 의사를 밝혀왔다.
북산과 대성이 라이벌로 불리게 된 것은 단순히 같은 업권에서 경쟁해왔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간 두 기업은 M&A 시장에서 여러 번 맞부딪히며 세기의 대결을 펼쳤던 경험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치열한 정보전과 눈치싸움이 벌어졌다.
수많은 인수전을 겪으며 예상치 못한 카드로 반전에 반전이 이어지는 드라마가 쓰여졌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사실상 두 그룹 간의 자존심 대결에 가까웠다.
가장 유명한 사건이 10년 전 벌어졌던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양극재 제조 업체 ‘룩셈신소재’와 ‘제논케미칼’이 비슷한 시기에 매물로 나왔을 때였다.
북산과 대성 두 그룹 모두 인수전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혔고 북산은 룩셈신소재를, 대성은 제논케미칼을 택한다.
하지만 여기서 변수가 발생하게 된다.
예기치 못하게 북산이 사모펀드였던 SHP파트너스에 밀려 탈락을 하게 된 것이었다.
사실상 북산을 견제하기 위해 양극재 업체를 인수하려고 했던 대성으로서는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어졌고 대성은 제논케미칼의 인수를 포기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여기서 또 반전이 일어난다.
갑자기 SHP가 자금 문제를 이유로 룩셈신소재 인수를 포기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이후 다시 입찰에 응한 북산은 룩셈신소재를 손에 넣게 되었고, 대성은 닭 쫓던 개 마냥 허망하게 그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결과적으로 북산의 룩셈케미칼 인수는 신의 한 수가 되어 라이벌인 대성과의 격차를 확연히 벌릴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언론에선 이번 도코바뱅크 인수전도 이러한 드라마가 있기를 기대했으나 드러난 결과는 생각보다 허무했다.
입찰가 격차가 상당히 크게 났고 도코바뱅크 측은 우선협상대상자로 대성홀딩스를 선정했다고 공식 발표를 했다.
“북산도 이제 대성한테는 안되는 모양이네.”
“이승환 회장 나이를 생각해봐. 이제 은퇴할 때가 된 거지.”
하지만 이때까지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진짜 드라마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