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
2화 내 계좌가 이상하다
20년 가까이 살았던 서울이었건만 지금은 모든 게 낯설었다.
애써 어색함을 감추고 오랜만에 타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신림역에 내려섰다.
“여긴 변한 게 없네.”
신림역 5번 출구로 나와 짧은 소감을 내뱉고는 미리 봐둔 모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혼자여?”
“네. 혼잡니다.”
“506호로 가슈.”
사장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카드 키와 세면용품 파우치를 건넸다.
모텔은 생전 처음이었지만 태연히 파우치를 받아들고 좁디좁은 엘리베이터에 올라 5층 버튼을 눌렀다.
띵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506호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손에 들린 카드키를 보며 의문에 빠져들었다.
“문을 어떻게 열라는 거지?”
밑에 내려가서 사장님한테 물어봐야 할지 고민하던 중.
또다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웬 중년 남녀가 등장했다.
“여봉. 근데 대낮부터 이런 데 오면 걸리는 거 아냐?”
“대낮이니깐 더 안전하지. 걱정 말고 들어와.”
남자가 카드키를 문에 갖다 대자 띠리링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두 남녀는 다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아하. 저렇게 하는 거구만.”
학습한 대로 506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불은 또 어떻게 켜는 거야?”
하지만 눈칫밥 하나로 그 험하다는 원양어선에서 무려 4년이나 버텨온 나다.
입구 왼쪽에 달린 정체불명의 무언가에 카드키를 꽂자 환하게 불이 켜졌다.
“누가 보면 감방 갔다 출소한 줄 알겠네.”
주변을 둘러보니 넓은 침대 하나에 깔끔히 정리된 순백의 침구류가 눈에 들어왔다.
갈증이 났던 나는 TV 밑에 놓인 미니 냉장고를 열고는 멈칫했다.
냉장고 안에는 500mL 생수병 외에 자그마한 두 개의 캔도 함께 놓여있었다.
“옥수수 수염차랑 매실차도 있네. 막 먹어도 되나?”
잠깐 고민하다 쿨하게 옥수수 수염차 캔을 따서 한입에 들이켰다.
“돈 달라고 하면 주면 되지.”
다 마신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넣고 그대로 침대에 뛰어들어 대자로 누웠다.
“으아···. 여기가 천국이로구나.”
담배 쩐내와 정체 모를 소독약 냄새가 코로 스며들었지만, 닭장과 다름없던 어선 침실에 비교하면 천상의 구름이 따로 없었다.
빵빵
“돌아오긴 했구나···.”
검은색 시트지로 덮인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자동차 경적이 새삼 서울로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그러다 특이한 것이 눈에 띄었다.
“저기에 거울은 왜 달린 거지?”
천장에 달린 거울 속에 대자로 누워있는 내 모습이 비쳤다.
건강미 넘치는 구릿빛 피부에 탄탄히 자리 잡은 근육. 사내다움이 물씬 풍기는 외모까지.
4년 전 깡마른 체구에 퀭한 눈의 철모르던 애송이는 온데간데없었다.
“나도 많이 변했구나.“
낯설었다. 매일이 전쟁 같은 원양어선에서 거울 볼일이 몇 번이나 있겠는가.
어찌 됐건 4년 만에 3억 원의 빚을 모조리 청산하고 당당하게 서울로 돌아왔다.
새삼 지독했던 지난 4년간의 배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부산에서 출발한 원양어선은 일본을 지나 남태평양으로 향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출항 첫날부터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어렸을 적 타봤던 오리배나 유람선을 떠올리며 나는 뱃멀미를 안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나를 두들겨 패주고 싶을 만큼 오만한 생각이었다.
지독한 뱃멀미로 인해 세상이 지옥처럼 느껴졌고, 그냥 바다로 뛰어들고 싶다는 충동도 간혹 들었다.
다행히도 뱃멀미는 생각보다 금세 극복해냈다.
뱃일은 일을 가르쳐준다는 개념 자체가 거의 없었다.
기본적인 것만 알려주고 나머지는 눈치껏 해야 했다.
행동이 굼뜨거나 해야 할 것을 안 하고 있으면 여지없이 쌍욕이 날아왔다.
프레스 공장에서 철야를 이어가면서도 한 번도 퍼진 적 없던 나였지만 처음으로 지독한 몸살에 걸렸다.
온몸이 칼에 찔린 듯 쑤셔왔고 으스스한 오한과 고열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배 안에서는 얄짤없었다.
“지독한 양반들···.”
아프다고 고참 선원들이 봐준다거나 배려하는 일 따윈 없었다.
그물을 끌어 올리다가 머리가 핑 돌아 비틀거렸을 때도 엄살 부리지 말라며 욕을 얻어먹었다.
뱃멀미로 구토해도 그물에서 절대 손을 놓아선 안 됐다.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건지 회의감이 들었고, 서러움이 몰려왔다.
그러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것 같은 나 자신에게 화가 치솟았고 이를 악물며 갑판에 머리를 찍어댔다.
그렇게 난 미쳐갔다.
“제정신으론 버틸 수 없지. 암.”
눈을 감은 나는 안락한 침대 위에서 오로지 나만을 위한 여유를 만끽했다.
배에선 쉬는 시간 따윈 없다.
원양어선에 오른 이후 막간의 휴식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조금의 휴식도 없이 일만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안 해본 사람은 말을 말자.
정말 이대로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건져 올린 그물을 터는 고된 노동에 넋을 놓고 있다가 생선 파편에 맞아봤는가?
기분도 더러웠지만 아프기도 더럽게 아팠다.
배 안에 침실도 역시나 기대 이상이었다.
가로세로 3미터는 될까?
이 좁은 곳에서 6명의 선원이 잠을 청한다.
심지어 재수 없음이 하늘에 닿은 나는 남는 침대가 없어 오랫동안 맨바닥에서 침낭 하나로 새우잠을 청해야 했다.
“좀 씻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카운터에서 받은 세면도구세트를 챙겨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욕실 불 켜는 방법을 찾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근데 여긴 왜 문이랑 벽이 유리로 된 거지?”
침실에서 욕실 안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이해할 수 없는 욕실 구조에 고개를 갸웃했다.
나름 관리한 듯 먼지 한 톨 없는 깔끔한 욕조와 세면대, 비데가 눈에 들어왔다.
감격에 차올라 세면용품 파우치를 옆구리에 차고 한참을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래. 씻는 곳이 이 정도는 되야지.”
배 타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또 한 가지는 씻는 문제였다.
배 안에서 담수의 양이 많지 않았기에 샤워를 하면 짬이 높은 선원들이 지랄을 해댔다.
아쉬운 대로 바닷물로 씻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샴푸든 비누든 희한하게 바닷물만 만나면 거품이 나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다지 씻은 느낌도 안 났고, 온몸에선 우둘투둘한 피부 트러블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방이 바다인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선 도망칠 곳도 없었다.
강력한 수압을 뽐내는 샤워기의 물줄기를 맞으며 문명인답게 목욕을 즐긴 나는 수건으로 하반신만 가린 채 욕실 밖으로 나왔다.
순간 옷걸이에 걸린 목욕 가운을 발견하곤 멈칫했다.
“이것도 돈 받는 거 아냐?”
이젠 빚쟁이도 아닌데 아무렴 어떠냐는 생각으로 쿨하게 가운을 둘러 입고는 온몸으로 전해지는 개운함을 만끽하며 다시 푹신한 침대에 털썩 몸을 던졌다.
“하아···. 이게 천국이로구나.”
산뜻하면서 나른한 기분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하지만 좋았던 기분도 잠시.
몸이 늘어지자 여러 잡념이 나를 무겁게 내리덮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원양어선에서 흘러간 4년의 세월은 사회로부터 내 인생을 완벽히 초기화시켰다.
몇 없던 보육원 형 동생들이나 전 직장 동료들도 소식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집도, 차도 없었고,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더는 돈만 좇고 싶진 않아.”
수평선 너머로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숱하게 다짐했다.
바다는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알게 했고, 인생 전체를 멀리서 바라보게 했다.
그리고 한없이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돈에 눈이 멀어 감당 못 할 빚을 얻었고, 내 행동에 책임지기 위해 원양어선에 올랐다.
물론 배에 오른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으니깐.
그래도 가장 찬란해야 할 20대 절반 이상을 배 위에서만 보냈다.
이제부터는 돈이 아닌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내가 당장 하고 싶은 건 뭐지?
천장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
물론 아직도 염원하고 갈망하는 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단순히 돈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고된 배 생활과 바다를 통해 깨달았다.
삶의 의미는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 부여하는 것임을.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대운아. 인생을 결정하는 일인데.”
거시적인 꿈보다는 당장 내일 해야 할 일부터 떠올려야 했다.
“일단 집부터 구하고, 차는···. 뭐 당장은 필요 없으니 패스. 직장은···. 좀 천천히 구하지 뭐.”
마지막에 탔던 원양어선에서의 어획량이 예상을 훨씬 웃돌만큼 대박이 났기에 보합료도 그만큼 많이 받은 상태였다.
덕분에 빚을 다 갚고도 한동안 생활은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 자금도 확보하게 되었다.
“그래도 넉넉한 수준은 아니니깐 푼돈이라도 최대한 끌어모아야 해.”
전과 달리 돈 한 푼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 나였기의 바닥에 떨어진 동전 하나라도 귀하게 여겨야 했다.
그러다 문득 내 머릿속을 스쳐 간 무언가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코인계좌!”
초기엔 코인에 ‘코’ 자만 들려도 치가 떨릴 정도였고, 다신 코인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사실상 방치해두었던 내 코인계좌엔 미처 처분하지 못한 잔 코인들이 남아있음을 기억해냈다.
“그 당시 나는 얼마나 미친 새끼였던 걸까?”
선물 거래를 한답시고 몇천만 원을 움직이던 그때의 나는 돈 몇백에는 관심도 두지 않을 때였다.
“지금은 다르지. 돈 몇십이면 한 달 월세나 마찬가진데.”
지난날의 과오를 다시 한번 반성하고는 휴대폰을 꺼내 들어 잊고 있던 어플을 설치했다.
코인 거래소 ‘코이낸스’
전 세계 코인 거래소 중에 가장 큰 규모의 거래소였다.
내가 선물거래를 하던 거래소이기도 했다.
4년 만에 다시 보는 어플은 모든 게 낯설었고, 이미 기억 속에 잊혀진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되찾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온갖 인증 절차를 마친 후 떨리는 마음으로 계좌를 열었다.
0.02 BTC = ₩453,212
“….. 처참하구만.”
동전 수집가처럼 이것저것 사들였던 잡코인은 4년 만에 10분에 1토막이 나 있었다.
“45만 원이 어디냐 그래도.”
애초에 기대가 없었기에 트론(TRON) 코인을 구매하여 원화 출금이 가능한 한국 거래소로 전송해서 원화로 환전했다.
“이걸로 맛있는 거나 사 먹어야지.”
어쩐지 공돈이 생긴 기분에 콧노래를 부르던 중 잊고 있던 또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코인 리스트에도 뭐가 있었던 것 같은데···?”
4년 전. 모 너튜버의 꼬임에 넘어가 기억도 안 나는 잡코인을 샀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것도 내 피 같은 돈인데 어떻게든 꺼내와야지.”
솔직히 무지하게 귀찮았지만 남는 게 시간이었다.
코인리스트 어플을 설치했고 똑같이 온갖 잡다한 인증 절차를 걸쳐 드디어 로그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제발 55만 원만 남아있어라. 딱 100만 원만 채우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대조차도 되지 않았다.
무슨 코인을 샀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면 잡코인 중에서도 잡코인이라는 말과 진배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 감흥 없는 눈으로 ‘Wallet’ 창을 눌렀다.
“이, 이게 뭐야······.”
잘못 본 게 아닐까? 연신 눈을 껌뻑였다.
입이 떡 벌어진 것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