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0)
20화 자넨…진짜 식사를 하러 온겐가?
부우우우웅
성난 황소 같은 배기음을 내뿜은 검정 지바겐 한대가 도로 위를 가로질렀다.
“아오! 늦었다 늦었어. 이게 얼마짜리 식산데! 하필 그 타이밍에 쪽지 시험이 웬 말이냐고!”
인정한다. 솔직히 만만하게 봤다.
아무리 대기업 회장이라도 식사 한 끼 하는데 1억이라는 거금이 들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아무리 내가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겼더라도 명백히 미친 짓이었다.
그놈의 황금빛만 눈앞에 보이지 않았어도 이런 미친 짓을 했을 리 없었다.
“기부 영수증은 끊어주려나?”
거의 날아가듯 백제호텔에 도착한 나는 허겁지겁 엘리베이터에 올라 안내받은 식당으로 향했다.
“설마 겨우 3분 늦었다고 그냥 가버리진 않았겠지?”
피 같은 돈 1억이 허무하게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초조함은 극에 달했다.
띵
오늘따라 유독 느리게 느껴지던 엘리베이터가 드디어 멈춰 섰고, 문이 열리자마자 쏜살같이 튀어나와 식당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한눈에 봐도 정장 입은 정정들이 우글우글 모여있는 저곳인듯싶었다.
“시간만 있으면 격식 있는 옷으로 갈아입는건데···.”
캐주얼해도 너무 캐주얼한 복장을 한번 곱씹은 나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헥헥.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오. 교수님이 난데없이 쪽지 시험을 쳐버리는 바람에···.”
일부러 가쁜 숨소리까지 연기하며 ‘나 정말 열심히 달려왔어요’라는 어필을 했다.
이승환 회장을 비롯한 수행원들이 벙찐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절박했던 내 심정을 그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쪽지 시험도 건너뛰면 진짜 재수강할 수도 있어서···.”
어째 분위기가 더 괴상망측해지는 듯 하자 결국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유야 어찌 됐건 늦어서 죄송합니다.”
비록 3분이지만 늦은 건 늦은 거다.
더구나 한참 어르신 아닌가.
깔끔한 양복에 멀끔하게 생긴 아저씨가 나를 보며 물었다.
“혹시 낙찰자이신 송..대운 군입니까?”
“넵. 제가 송대운입니다.”
순간 천둥 호랑이가 터트리는듯한 광소에 내 몸이 움찔했다.
“크하하하하! 이거 참 재밌는 친구로구만. 1억짜리 식사를 두고 뭐? 쪽지 시험 때문에 늦어?”
“그 부분은 무척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재수강의 위험성이 너무도 크다 보니···.”
이승환 회장이 이제껏 본 적 없는 신기한 동물 보듯 나를 쳐다봤다.
“껄껄껄. 이렇게 웃어본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군. 반갑네. 뛰어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일단 자리에 앉지?”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너무 뛰어서 그런가, 회장님 앞이라 그런가? 다리가 덜덜 떨리네요.”
정말로 다리가 후들거렸기에 나는 스스럼없이 이승환 회장 맞은편 자리에 착석했다.
“저는 회장님을 뉴스에서 종종 봬서 친숙한데 회장님은 제가 낯서시죠? 반갑습니다. 송대운이라고 합니다.”
이승환 회장이 말없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나도 웃으며 그 눈을 마주했다.
귀빈실 내에 숨 막히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내 악동 같은 미소지은 이승환 회장이 나에게 물었다.
“자네 정말 대학생 맞나?”
“넵! 올해 한영대학교 경영학과에 편입한 따끈따끈한 대학생 맞습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나만의 희열이 차올랐다.
이 순간을 위해서 코피 터지게 공부하여 대학에 들어온 것이 아니던가.
누가 물어도 당당하게 학교 이름을 밝힐 수 있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
“근데 대학생이 왜 나랑 식사를 하려는 겐가? 그것도 1억이라는 적지 않은 돈까지 써가면서?”
“이렇게라도 뵙고 싶어서죠. 회장님이 대학생들한테 얼마나 인기가 좋은데요? 화통하지, 의리 있지, 직원들 처우도 잘 챙겨주고. 완전 인기 짱입니다. 모르셨어요?”
기자들에게 종종 듣는 멘트였지만 현역 대학생의 입을 통해서 들으니 이승환 회장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크흠···. 사내가 불알 두 쪽 달고 태어났으면 의리는 당연한 거지.”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어디 가서 쪽팔릴 짓은 하면 안 되죠.”
“끌끌끌. 그거 참 옳은 소리구먼. 허기질 테니 일단 식사부터 들지.”
이봉구 비서실장이 눈짓하자 곧이어 서버들이 음식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넓디넓은 테이블이 금세 정갈한 음식들로 가득 채워졌다.
나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추잡하지 않은 선에서 음식들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을 이승환 회장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회장님은 안 드세요? 이 금태구이 진짜 맛있는데.”
“자넨···. 진짜 식사를 하러 온겐가?”
“식사 경매 아니었나요? 당연히 밥부터 먹어야죠.”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냐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접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게 얼마짜리 밥상인데! 배가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쑤셔 넣어야지.’
그래도 너무 먹기만 하면 추잡해 보일 것 같아 이승환 회장과 간간이 대화를 이어갔다.
물론 현란한 젓가락질은 멈추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배가 불러오자 젓가락질 속도도 점점 둔해졌다.
“이제야 배가 좀 찼나 보고만.”
아침에 학식을 좀 부실하게 먹었나 봐요. 실례가 됐다면 죄송합니다.”
“껄껄껄. 아니야. 아주 복스럽게 잘 먹는 것이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네 그려.”
“제가 옛날부터 복스럽게 먹는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습니다. 하하하.”
능청스럽게 머리를 긁적이는 나를 보며 이 회장이 넌지시 물었다.
“근데 자넨 내가 무섭거나 어렵거나 그렇지 않나?”
“회장님이요? 어휴. 그럴 리가요. 이렇게 인상 좋으시고 인자하신데.”
범죄자들도 한 수 접어줄 험악한 인상의 선원들과 몇 년을 동고동락했던 나다.
그런 내 눈엔 이승환 회장은 그저 동네 인심 좋은 할아버지처럼 보일 뿐이었다.
물론 황금빛 덕분에 생겨난 내적 친밀감도 한몫했지만.
“거참 특이하구만. 대부분 사람은 나를 무척이나 어려워하거든.”
“에이. 켕기는 게 있는 사람들이나 그렇겠죠. 그게 아니면 어려울 게 뭐 있나요?”
순간 이승환 회장의 표정이 잠깐 멍해지더니 또 다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크헐헐헐. 그렇지. 켕기는 게 많은 놈이나 그러는 거지. 스스로 부끄럼 없는 사람들은 어디서든 당당한 법이지 암. 자네한테 한 수 배웠구만 그래. 그래서 말인데 술 한잔 어떤가? 고마움의 의미로 술 한잔 사지.”
“회, 회장님.”
곁에 있던 이봉구 비서실장이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승환 회장이 술을 끊은 지가 벌써 3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오늘따라 유독 웃음을 많이 보이는 것도 놀랄 노자였건만, 끊었던 술까지 마신다고 하니 더는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술이라···. 대리비는 주실 거죠?”
“대리비? 암. 주고말고. 뒷방 늙은이 술친구 해준다는데 그깟 대리비 하나 못 주겠나.”
“좋습니다! 그럼 한잔하시죠.”
곧이어 종업원이 고려청자 같은 생김새의 술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다 놓았다.
“유명한 전통주 명인이 정성으로 빚은 술일세. 제법 맛이 날게야.”
이 회장이 따라주는 술을 주도에 맞게 받은 나는, 술병을 건네받아 이 회장의 술잔에도 잔을 채웠다.
“크으···. 확실히 다르네요.”
도수가 제법 높았지만 목 넘김은 부드러웠고 한약재 특유의 향과 향긋한 꽃향기가 입안을 감돌았다.
술자리가 주는 마력이었을까?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처음보다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오해 말고 들어주게. 업보가 많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레 적들도 많아지게 됐어.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지. 솔직히 자네 신상에 대해 알아봤다네. 허락도 없이 그런 거···. 내 이렇게 사과함세.”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 정도 위치면 그러실 수 있죠. 다음에는 그냥 저한테 직접 물어보셔도 됩니다.”
“사내답구먼. 그래서 묻는 건데···. 최근까지 원양어선을 탔다고 들었는데 맞나?”
나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지난날의 과오를 책임지기 위해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과오를 책임지기 위해서였다라···. 끌끌. 요즘 보기 드문 청년이로구만.”
“당연한 거죠 뭐. 제가 싼 똥. 제가 치우지 누가 치우겠습니까. 그나저나 너무 제 얘기만 한 것 같네요. 회장님은 요즘 뭐 걱정거리 없으세요?”
“뭐? 걱정거리? 푸하하. 자네는 참 재밌어. 항상 내 예상을 뛰어넘거든.”
어느 누가 대한민국 재벌 총수 면전 앞에서 걱정거리가 있는지 물어본단 말인가.
“있지. 암. 걱정거리 있고말고.”
“뭔가요 그게?”
“사실 우리 북산은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먹거리 사업을 암암리에 준비하고 있다네.”
“회, 회장님.”
이봉구 회장의 당혹성에 이승환 회장이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나는 이 신사업이 향후 미래를 선도하는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을 거라고 확신해. 근데 일을 맡은 놈들은 나만큼의 열정이 보이지 않는다고나 할까···. 물론 시키는 일은 군말 없이 잘 해내고 있지만, 그 이상이 없어서 조금 답답한 마음이 있네.”
이승환 회장이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자 이봉구 실장의 눈썹이 꿈틀했다.
잠깐 고민하던 나는 원양어선을 타면서 겪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풀어 놓았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제 이야기를 해드리자면 예전에 참치를 잡다가 배가 고장이나 인근 육지로 배 수리를 맡기러 간 적이 있었어요.”
뜬금없는 배 얘기에 이승환 회장의 부리부리한 눈이 나를 향했다.
“어쩌다 보니 배 수리 업체 사장님과 노가리···. 아니, 담소를 나누게 됐는데 그때 그분이 그러시더군요. 근사한 배를 만들고자 한다면 단순히 직원들한테 나무를 모아오라거나, 막연히 일을 나눠주거나 명령하는 행동은 절대 하면 안 된다고.”
“호오···. 그래서?”
이 회장의 주름진 얼굴에 흥미로운 기색이 떠올랐다.
“대신 그들에게 광활한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심어주라고 하더군요. 그거면 충분하다고 말이죠.”
“바다에 대한 동경심이라···.”
순간 이승환 회장의 노안(老顔)이 멍해지며 한동안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그러다 이내.
“크하하하. 내가 멍청했네 그려.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고만.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니.”
돈오(頓悟)한 고승처럼 이승환 회장의 눈에 정광이 깃들며 얼굴에 묻어있던 수심이 싹 걷혀갔다.
“어쭙잖은 이야기였습니다. 혹시 주제넘게 들으셨다면···.”
“아닐세 아니야. 폐부를 관통하는 정말 적절한 조언이었어. 고맙네. 덕분에 개안(開眼)이라도 한 기분이야.”
“도움이 되셨다면 다행이네요.”
“이거. 제대로 주객이 전도되었구만. 오히려 내가 돈을 내고 자네와 식사를 했어야 수지타산이 맞았겠어. 이러면 영 체면이 안 서는데 말이야. 흐음···.”
“저도 충분히 즐거운 식사 자리였습니다.”
“그러지 말고 말해보게. 들어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네 부탁 하나 정도는 내 들어주지.”
“회, 회장님!”
기함한 이봉구 비서실장이 부릅뜬 눈으로 이승환 회장을 쳐다봤다.
이승환 회장 정도의 거인(巨人)이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의 범위란 일반 사람이 생각하는 수준을 아득히 초월하는 것이었다.
저 말의 무게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봉구였기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혹여나 악용이라도 하게 된다면 큰 여파가 불어 닥칠 수도 있었다.
“잘됐네요! 마침 부탁할 게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게 뭔가? 말해보게.”
마치 시험이라도 하듯 날카로운 눈으로 응시하는 이승환 회장을 보며 나는 당당히 요구했다.
“그럼 실례지만···. 인터뷰 영상 하나만 찍어 줄 수 있으세요?”
“뭣이?”
이승환 회장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진짜 진짜 중요한 과제 때문에 그런데 인터뷰 한 번만 해주세요. 진짜 짧게 끝낼게요. 네?”
당황한 이승환 회장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미리 준비해온 삼각대에 휴대폰을 거치하고는 동영상 촬영 버튼을 살포시 눌렀다.
“안녕하세요 이승환 회장님. 북산 그룹 복지 중에 노총각, 노처녀 직원들에게 소개팅 어플 유료 회원권을 지급하는 복지가 있던데 이건 어떤 의도로 나오게 된 건가요?”
이승환 회장을 비롯한 수행원들의 얼굴이 괴이쩍게 일그러졌고, 장내엔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