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보아뱀의 저주
북산타워 회장 집무실.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는 집무실 소파에는 나와, 이승환 회장, 북산파이낸스 이종훈 대표가 자리하고 있었다.
도코바뱅크 인수전 패배로 인한 이승환 회장님의 시름은 내 생각보다 짙어 보였다.
“배포가 제법이야. 보아뱀의 저주는 생각지도 않는 모양이구만.”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보아뱀은 자신보다 훨씬 큰 코끼리를 집어삼키는 모습 때문에 M&A 시장에서 자주 거론되는 동물 중 하나이다.
이를 빗대어 능력 밖에 인수합병을 진행할 때 보아뱀 전략이라 칭했다.
“솔직히···. 그 정도의 액수를 써서 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무거운 얼굴로 첫 마디를 내뱉은 이종훈 대표.
“끌끌끌···. 도대체 그 많은 자금을 어디서 조달해온 것일꼬…? 지금 대성의 자금 동원력이 썩 좋진 않을텐데 말이야.”
“듣기론 인수금융을 일으킨 것은 물론, 양재동 물류단지 개발 부지를 유동화까지 했다고 합니다.”
“글로벌 금리 인상 여파로 이자 부담이 만만치 않을 텐데 간도 크구만. 홍 회장 스타일은 아니야. 그 밑에 아들놈이 이번 인수를 추진했다지?”
“네 맞습니다. 홍재희라고 이번에 지원이하고 선을 봤던 친구이기도 합니다.”
“흐음···. 그래. 소감이 어떻던가?”
“네?”
갑작스럽게 내게 쏠린 시선에 순간 당황했다.
“직접 선 자리까지 찾아가 깽판 쳐놓은 놈의 소감은 어떻냐고.”
“아니, 깽판이라뇨. 엄연히 선 자리 다 끝나고 난입···. 아니, 접선했습니다만.”
“끌끌끌. 그게 그거지. 아무튼, 과년한 처자 혼삿길 막아놨으니 책임을 져야겠지?”
“아 글쎄. 방해하진 않았다니까요! 그리고 제가 봤는데 둘이 썩 어울리지도 않더만요.”
“아주 질투에 눈이 멀어버렸나 보고만. 크헐헐.”
어쩐지 이 회장님께 말리듯 하여 다급히 주제를 돌려야 했다.
“만나보니깐 확실히 난 사람이긴 했습니다.”
“호오···. 그래? 사람 평가할 때 인색하기 짝이 없는 네놈 입에서 그 정도의 후한 평이 나왔다라···?”
“회장님도 참. 제가 언제 사람을 평가했다고 그래요. 제가 얼마나 인류애가 넘치는 사람인데···.”
“웃긴 놈이로구나. 적어도 비즈니스로 만날 때는 나보다 더 냉정하게 사람을 보는 게 대운이 네놈 아니더냐. 성에 차지 않으면 아예 쳐다도 보지 않더구만 뭘.”
“제가 언제···.”
라고 항변하기엔 찔리는 게 적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동안 개차반 같은 놈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고, 황금빛 주인공들에게 열과 성을 다하다 보니 그 외 인물들은 다소 등한시 한 것도 사실이었으니.
그런 부분에서 홍재희는 제법 열린 사고에 열정 있는 기업가의 면모를 보여줬다.
“큼큼···. 아무튼, 그는 트랜드에 무척 민감한듯했고, 공격적인 인수합병과 신사업 확장을 통해 대성을 한 단계 도약시키고자 하는 야욕이 강했습니다.”
“너는 그 자가 제법 신경 쓰이는가 보구나.”
“제가요?”
“지금 네놈 눈빛이 그래. 마치 투기장에 올라간 맹수 같은 눈을 하고 있지 않느냐?”
나도 모르게 얼굴을 매만졌다.
내가 정말 그런가?
“좋은 자세야. 그간 너를 지켜봐오면서 느낀게 젊은놈답지 않게 너무 세상을 달관한 느낌이 있었거든. 자고로 젊었을 땐 제대로 된 상대와 피 터지게 싸워도 보고 그래야 삶의 활력이 생기는 게야.”
“에이. 그런 거 아니에요. 솔직히 제가 대성 그룹 후계자랑 맞부딪힐 일이 어딨습니까. 저는 어디까지나 일개 투자자일 뿐인데.”
“쓸데없는 데에서 솔직하지 못하구나. 그런 놈이 선 자리까지 쫓아갔을까? 끌끌끌.”
“그건···.”
회장님에게 검은빛을 봤기 때문입니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가 가까스로 내리눌렀다.
그러면서 한번 곱씹어보니 영 근거 없는 얘기도 아니었다.
시작은 회장님의 검은빛이었지만 홍재희가 교묘하게 나를 툭툭 건드리면서 잠자고 있던 승부욕이 자극된 것도 없지 않아 있었으니.
물론 그와 나는 갈 길이 너무도 달랐기에 당장 뭘 맞붙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번 인수전은 우리의 완패로구나. 준비가 안일했어. 정보전은 물론 자금력에서도 밀렸으니. 예전 같았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을 일인데···. 끌끌끌. 이제 퇴물 소리 들어도 할 말이 없겠구나,”
“그런 말 마십시오 아버지···. 다 제가 부족해서 그런 겁니다.”
이종훈 대표가 자책감이 묻어나오는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그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회장님이 이종훈 대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줬다.
“아니다. 이건 엄연히 내 판단 실수야. 너는 네가 할 일을 잘 해내주었어. 곧 일본에서 시 채굴에 들어간다지? 그건 좀 알아봤느냐?”
“네. 현지 정보통에 의하면 생각보다 일이 빨리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큰일이구나···. 만약 정말로 채굴이 이루어진다면 대성과의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을 터인데.”
“안 그래도 다른 괜찮은 루트가 있는지 우승현 실장이 알아보고 있습니다.”
“끌끌끌. 그런게 있을 리가 있더냐. 내가 탐내는 보물은 넘들도 다 탐을 내는 법인데. 설사 있다 하더라도 가격이 절대 만만치 않을 게야. 과한 돈을 내면서까지 가져오기엔 리스크가 너무 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이종훈 대표도 침중한 기색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마디 툭 내뱉었다.
“두고 볼 일이죠. 도코바뱅크 인수가 신의 한 수가 될지, 최악의 악수가 될지는.”
쓰디쓴 공기를 한 방에 깨버리는 발언에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대운이 네가 보기엔 악수가 될 거란 말이더냐?”
“네. 악수가 될 겁니다.”
여러 정황상 이제는 확신했다.
검은빛의 발원지가 저 도코바뱅크라는 것이.
이를 알고 살짝 약을 친 부분도 없지 않았다.
일부로 홍재희 부사장을 만나 그를 자극하여 더욱 인수전에 매달리게 만들었으니.
“하긴, 돌이켜 생각해보면 대운이 너는 은연중 도코바뱅크 인수를 썩 내키지 않아 하는 뉘앙스를 풍겼지. 이유가 있더냐?”
“이 회장님이 워낙 열정을 가지고 달려드신 일이라 별다른 말은 안 했습니다만 도코바뱅크 측과 미팅을 하고 나서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무언가 다른 속내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요.”
“다른 속내라···?”
정확히 말하자면 검은빛이었지만 이걸 명확히 설명할 길은 없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들이 가진 희토류 개발권 지분이 큰 것도 아니고, 제가 봐도 딱히 문제 될 건 없어 보였거든요.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일이 순탄하게 흐르진 않을 겁니다. 옛말에 ‘독버섯은 눈으로 먹는다’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그 안에 포함된 위험한 독소를 판단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고로 도코바뱅크는 독버섯이다?”
이승환 회장님과 이종훈 대표의 얼굴에 조금씩 흥미가 깃들었다.
“독버섯이죠. 그것도 먹으면 바로 골로 갈 정도의. 그리고 아까 보아뱀을 말씀하셨는데 성공하면 축복이지만 실패하면 승자의 저주가 되는 법입니다. 뱃속에 있는 거대한 먹이가 소화되지 못하고 부패하면 보아뱀은 죽음에 이르지 않겠습니까.”
“흐음···. 엄한 놈이 근거도 없이 그런 얘기를 한다면 냅다 경이라도 치겠지만 네놈이 말하니깐 이상하게 수긍이 간단 말이지···. 거참. 껄껄껄. 빈말이라도 그렇게 얘기해주니 내 곯은 속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구나.”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닙니다. 저는 애초에 도코바뱅크 인수를 비판적으로 바라봤었고 지금 와서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분명 조만간 뭐가 터져도 터질 겁니다.”
“최악의 악수가 된다라···.”
이 회장님이 허옇게 센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상념에 잠겼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이종훈 대표가 한마디 거들었다.
“물론 송 대표님이 남다른 혜안을 가졌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설령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진다고 해도 대성 입장에서 큰 손해는 없을겁니다.”
“어째서요?”
“우선 몇 가지 상황을 가정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이죠. 최근 중국은 희토류 기업 3개를 하나로 뭉쳐 하나의 거대한 관영회사로 만들었습니다. 사실상 정부차원에서 희토류 공급을 관리하겠다는 뜻이죠. 뿐만 아니라 희토류 추출 공정기술, 생산기술 등의 수출 금지를 걸어버림으로서 사실상 무기화를 향한 길을 확실히 닦아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카드를 쉬이 쓰지는 못할 겁니다. 센카쿠열도 분쟁 이후에 일본은 그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왔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미국 눈치를 안볼 수가 없는 상황이고요. 중국 입장에서는 자칫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나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는 일본이 채굴에 실패할 가능성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가능성은 낮습니다. 이미 고농도의 희토류가 묻혀 있다는 사실은 이미 학계에서 검증된 사실이고 이미 수심 4140m에 있는 퇴적물을 빨아들이는 실험에도 성공했습니다. 시간 문제는 있을 수 있을지언정 큰 이변은 없을 겁니다.”
묵묵히 이종훈 대표의 말을 듣고 있던 이승환 회장이 침중한 기색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대운이 네 말대로 자잘한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분명한 건 대성이 도코바뱅크를 품에 안음으로써 가져가는 이점들은 절대 무시할 수 없어. 어찌 됐건 우리 북산을 누르고 인수전에서 이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재계에서의 평가가 달라질 테니···. 지금 주가가 휘청거리는 것만 봐도 알지 않느냐?”
그 말을 끝으로 홀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이승환 회장이 낮은 목소리로 이종훈 대표를 불렀다.
“종훈아.”
“네 회장님.”
“애석한 일이지만 이미 상황은 벌어졌다. 이대로 넋 놓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더냐.”
“물론입니다. 어느 정도 대책도 마련해놨습니다.”
“말해 보아라.”
“우선 일본이 본격적인 채굴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당장 그것이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겁니다. 즉,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는 말이죠. 우선 호주가 새로운 희토류 수입처로 떠오르면서 지속적인 커넥션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중국만이 답은 아니니까요. 추가로 북산 머터리얼즈에서는 생활가전에서 나오는 네오디뮴을 수거하여 재사용하는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흐음···. 그 정도가 최선이라···.”
분명 가장 현실적인 대응 방안이었지만 어째 이 회장의 얼굴은 풀릴 기미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터진 상처에 연고를 바르는 격에 불과해. 조만간 계열사 사장들을 한번 불러 모아서 만전을 기하라고 일러둬야겠어.”
그리고 이 회장님의 시선이 다시 한번 내게로 향했다.
“이번에는 대운이 네 감이 틀린듯싶구나. 아쉬워. 참으로 아쉬워. 도코바뱅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북산이 가져왔어야 했는데···.”
미련이 뚝뚝 묻어나오는 어조로 고개를 내젓는 이 회장님을 보며 나는 그저 의미심장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정확히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조금씩 전운(戰雲)이 뒤바뀌기 시작했고 결국엔 일본과 한국의 경제를 뒤흔드는 거대한 폭탄이 터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