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경외감이 들 정도입니다
북산타워 회장 집무실.
북산파이낸스 이종훈 대표가 무거운 안색으로 첫마디를 내뱉었다.
“이거···. 상황이 요상하게 흘러갑니다.”
“그러게나 말이다. 설마하니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이야.”
이승환 회장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얼굴을 굳혔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요? 듣기로는 급하게 사장단 회의까지 열었다면서요?”
내 물음에도 말없이 탁상만 두드리던 이 회장님이 어렵사리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예상은 했다만···. 생각보다 빨라.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강경해. 마치 작정이라도 한 듯 말이지.”
“누가요?”
“중국 말이다. 역시나 일본이 희토류 채굴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어.”
“그 정도는 각오한 일 아니었습니까? 대비책도 있다면서요.”
자기 밥그릇을 건드리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에 대한 철저한 대비도 해놓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있었지. 그런데 도로아미타불이 되게 생겼어. 여러 족쇄들이 복잡하게 얽혀 발목을 잡아버렸거든.”
“복잡한 족쇄요?”
잠자코 앉아있던 이종훈 대표가 말을 받아 이어갔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중국이 희토류 생산량을 가지고 장난질을 칠 줄 알았는데 관세를 건드렸습니다. 철폐된 수출 관세를 되살린 것도 모자라 말도 안 되는 관세율을 적용해버리니 이건 도무지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 되어버렸습니다.”
“진짜 문제는 그걸 한국과 일본에만 국한시켜 시행했다는 게지.”
“한국까지요?”
“어찌 됐건 대성에서 도코바뱅크를 인수함으로써 숟가락을 얹게 되었고 그 불똥이 한국에게까지 튄게야.”
“아니, 지들이 제일 싫어하는 미국은 가만히 놔두고요? 미국도 지금 희토류 탈중국화를 위해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끌끌끌.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절대 무역 전쟁을 할 수가 없어. 미국의 중국산 수입액이 대략 5,000억 달러라고 치면 중국의 미국산 수입액은 고작 1,500달러에 불과하거든. 한마디로 게임이 안 된다 이거야. 결국 더 크게 손해 보는 것도 중국이고 말이야. 만만한 놈들만 조지겠다는 의도겠지.”
“일본 반응은요? 그걸 지켜만 보고 있습니까?”
“일본도 발 빠르게 움직여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절차에 중국을 제소했지만···. 글쎄요. 별 실효성은 없을 겁니다. WTO에서 판정이 내려진다 한들, 그것을 집행할 구속력은 없거든요.”
“수출 관세를 가지고 한국과 일본에 압박을 가했다는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조금 전 회장님이 족쇄들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건 다른 문제도 있다는 말이겠죠?”
“그렇습니다. 관세라는 무기도 솔직히 자체 생산만 가능해진다면 무용지물이 될 테니 일본에서는 희토류 채굴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문제는···.”
“설마···. 채굴에 실패했습니까?”
역시나 검은빛이 나타난 이유는 채굴의 실패 때문인 걸까?
“아뇨. 채굴은 성공했습니다. 해저 6,000M에서 희토류가 다량 함유된 진흙을 성공적으로 퍼 올렸다고 하더군요.”
“어? 그럼 된 거 아닙니까?”
“하지만 그건 반쪽짜리 성공입니다.”
“반쪽짜리요? 어째서요?”
“예상했던 것보다 채굴량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아마도 기술적인 한계겠죠. 이것 때문에 대성쪽에서 어마어마한 돈이 줄줄이 새어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기술보완을 명목으로 말이죠.”
“끌끌. 인수 자금 끌어모은다고 이미 충분히 무리했을 터인데 대성이 지금 그걸 감당할 여력이 있더냐?”
“당장은 가용 가능한 자금이 없는 실정이다보니 여기저기에서 무리하게 차입을 당기려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보유 중인 몇몇 부동산을 담보로 융자도 일으켰다고 하더군요.”
이종훈 대표의 보고를 묵묵히 듣고 있던 이 회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국 제살을 깎아서 밑 빠진 독을 막겠다는 심산인데···. 과연 그게 얼마나 갈 수 있을꼬···.”
“이번 한 번이 끝이면 그나마 다행이겠죠.”
결국 언제 메워질지 모르는 금이 간 독에 계속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본래 험한 산을 오를지라도 목적지를 제대로 알고 오르는 것과 얼마나 더 가야 정상에 다다를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어마어마한 심적 차이가 있는 법이었다.
“뭐···. 고되긴 하겠지만 어찌 됐건 일본도 가만히 손 놓고 있지만은 않을 테니 그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문제는 일본에서도 사활을 걸고 어떻게든 성공해내야 하는 범국가적 프로젝트.
일본의 석학들과 기업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어떤 식으로든 답을 찾아내려 전력을 다할 것이 자명했다.
“물론 문제가 그거 하나라면 무슨 수를 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진짜 골치 아픈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여기서 또요?”
“일본의 야당에서 이 문제를 정치화시켜버렸습니다. 치명적인 환경오염을 유발한다는 명목하에요. 사실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소스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일본 내에 환경 단체들이 들고 일어섰고 대규모 시위로 번질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여론 분위기도 좋지 않고요.”
“아무리 그래도 국익을 위한 일인데 그 정도까지 반발이 있을까요?”
“충분히 그럴 만합니다. 희토류 채굴은 주변 환경을 거의 파멸시킬 정도로 치명적이니까요. 조금 깊게 들어가면 희토류는 스칸듐, 이트륨, 그리고 14개의 란타넘족 원소들로 구성되는데 이 16개 원소 특성이 무척이나 유사해서 각각 분리해내기가 무척이나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제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유독가스와 오폐수들이 배출될 수밖에 없는 거죠. 또한, 희토류 광맥에는 필수적으로 토륨과 우라늄이 같이 섞여 있는데 때문에 강력한 방사능 오염이 필연적으로 수반됩니다. 안 그래도 방사능에 예민한 일본인데 이걸 순순히 지켜보고 있을 리가 없겠죠.”
“끌끌끌. 호주가 괜히 4,000km나 떨어진 말레이시아에서 정제공장을 세운 게 아닌게지. 모든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야.”
이 회장까지 거들고 나서는걸보니 상황이 가볍지는 않아 보였다.
“생각보다 일본 국민들의 반감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배수의 진을 친 일본 정부로서는 어떻게든 밀어붙이려 하지 않겠습니까?”
“끌끌.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을 게다. 정치적 문제로 엮여버리면 민심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가 없거든. 어찌 됐건 일본도 곧 중의원 의원 총선거라는 빅이슈를 앞두고 있으니.”
“허어. 이렇게 되면 일본으로서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겠네요.”
“지금 흘러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이지만···. 일단 상황을 지켜봐야지.”
모르긴 몰라도 일본 희토류 이슈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대성그룹은 지금 비상체제에 들어가 있지 않을까?
생명의 불인 줄 알았던 횃불이 발등에 떨어진 격이었으니.
“대성도 대성이지만 그 여파가 한국 전체로 번졌다는 게 문젭니다. 당장 중국이 희토류에 관한 수출 관세를 부과한다면 우리는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종훈 대표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웠다.
“사장단 회의에서는 좋은 대책이 나온 게 없나요?”
“그놈들이라고 무슨 수가 있을꼬. 정치권을 움직여 최대한 중국의 비위를 맞춰서 화를 달래자는 말만 뻐꾸기처럼 해대는데. 에잉. 비싼 봉급 타가면서 제대로 밥값 하는 놈들이 하나도 없어.”
못마땅한 듯 이 회장님이 혀를 쯧쯧 차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거 아닙니까? 결국엔 생산에 차질이 생길 텐데요.”
“그나마 대운이 네놈 말을 듣고 최대한 비축 물량을 쌓아놓은 게 천만다행이었어. 당분간 버틸 재간은 될 게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이 회장님에게 피어오르는 검은빛을 봤고 그 원인이 희토류와 관련되어있다고 추정했다.
그와 동시에 희토류 수입량을 늘려 최대한 재고를 확보해놓고 더불어 다른 나라의 공급망도 최대한 넓혀 놓으라고 이 회장님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이 회장님이 내 말을 흘려듣진 않은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계열사 대표라는 놈들이 죄다 대운이 너 한 사람보다 못하구나. 내가 재고를 늘려야겠다고 했을 때 득달같이 달려들어 뜯어 말리던 놈들밖에 없었으니 말이야.”
“굳이 말릴 이유가 있었나요? 희토류 때문에 그 고생하면서 말입니다.”
“근래 희토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도 있고, 솔직히 말하자면 요즘 북산의 현금흐름이 썩 좋지는 않아. 그러다 보니 재고 부담을 최대한 덜자는 생각인게지. 물론 일리는 있는 말이지만 큰 흐름을 볼 줄 알아야지. 그저 눈앞에 장애물만 보고 벌벌 떠는 꼬락서니하고는 쯧쯧. 어째 경영을 한다는 놈들이 배포가 없어 배포가.”
그렇게 한동안 계열사 사장들을 향해 툴툴대던 이 회장님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회한 눈동자에는 진한 감사가 깃들어 있었다.
“아무튼, 너한테는 참으로 고맙구나.”
나는 말 없이 이 회장님을 바라봤다.
“네 덕분에 큰 화는 면할 수 있었어. 돌이켜보면 등골이 서늘해. 만약 우리가 도코바뱅크를 가져왔더라면···. 지금 대성이 당하고 있는 고초는 우리 몫이 되었겠지.”
“불행 중 다행이네요. 그래도.”
“송 대표님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을요?”
이종훈 대표가 알 수 없는 묘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설마 이 모든 걸 예상했던 겁니까?”
뜨끔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미소로 답했다.
“그럴리가요. 이 정도는 국제정세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누구든 예상할 수 있는 부분 아닙니까.”
“물론 그렇습니다만 이렇게 모든 상황이 톱니바퀴 맞물리듯 연쇄적으로 일어날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 못했을 겁니다. 무엇보다 일본에서 희토류 채굴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보여왔기도 했고요. 하지만 송 대표님은 처음부터 도코바뱅크 인수를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마치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들여다본 사람처럼 꽤나 확신을 가지고 말이죠.”
상황을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언짢아지는 불길한 검은빛을 봤으니깐.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참···. 매번 느끼는 거지만 큰 그림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정말 남다릅니다. 경외감이 들 정도에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겁니까?”
경외가 담긴 이종훈 대표의 눈빛에 머쓱함이 몰려왔다.
“그냥 운이 좋아 우연히 때려 맞춘 거죠. 통찰이랄게 있나요.”
이런 곤란한 질문이 들어올 땐 대충 얼버무리는 게 최선이었다.
“당연히 쉽게 답하기 힘든 문제겠죠. 아무튼, 북산가의 일원으로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러지 마세요. 저는 그냥 어쭙잖은 첨언만 했을 뿐입니다.”
정수리까지 보이며 고개 숙이는 이종훈 대표 모습에 기겁하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전 직장 상사, 그것도 대표씩이나 되는 분이 이러면 얼마나 부담스러울지 상상이 가는가?
“인사받을 자격 충분하니 너무 그렇게 뭐 마려운 똥개마냥 안절부절 말거라. 어쨌거나 빠른 시일 내에 우리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해. 재고만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게야.”
“방법이 있겠습니까?”
“생각해봐야지. 정 안되면···. 썩 내키진 않지만, 로비라도 해야지 별수 있겠나.”
하지만 그 역시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었기에 이 회장의 낯빛도 점차 어두워졌다.
나 역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경제를 짊어지고 있는 기업들이 고작 원자재 하나로 이렇게 휘청이는 모습을 보니.
지이이이잉
그 순간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진동
“이 시간에 누구지?”
휴대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내 황금 수첩에서 유일한 별표 열 개짜리 스타트업인 ‘이지스 머터리얼즈’ 앨런 대표의 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