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슈퍼 을(乙)의 위엄
시끌벅적하던 한경련회관 컨퍼런스 홀에는 지독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자네···. 송대운이라고 했나? 지금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 게야!”
벌떡 일어난 장현석 회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지만 내 안색에 큰 변화는 없었다.
곁눈질로 이승환 회장님을 힐끔 살펴보니 그저 이 상황이 흥미롭다는 기색만 가득했기에 쭉 말을 이어갔다.
“제가 설마 이런 자리에서 존경하는 회장님들을 기만하는 발언을 하겠습니까? 일단 제 얘기 끝까지 들어주시고 판단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승환 회장님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중재에 나섰다.
“끌끌끌. 재밌구만. 대한민국 기업 총수도 못 하는 일을 일개 청년 투자자가 해결하겠다라···. 일단 들어보고 판단해보심이 어떠십니까?”
“끄응···. 이거야 원. 도무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 회장까지 나서자 마지못해 다시 자리에 앉은 장현석이 못마땅한 듯 나를 노려봤다.
어디까지 하나 지켜보겠다는 심산인듯했다.
내 입장에선 과연 저 얼굴이 몇 분 후에 어떻게 바뀔지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이 자리가 꽤나 즐겁게 느껴졌다.
“그래. 자네 말은 희토류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방법이 있다는 말이지?”
“아니요.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단번에 튀어나온 내 답변에 장현석의 얼굴이 다시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방금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말을 제대로 들으셔야죠. 희토류를 공급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공급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입니다.”
묘하게 다른 뉘앙스 차이를 이해한 회장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뭘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건가?”
“잘 생각하고 말하는 게 좋을 걸세. 여기는 자네의 영양가 없는 호기나 보여주는 그런 자리가 아니야.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를 고민하는 엄숙한 자리란 말일세.”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 고민을 함께 나누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이고 더불어 여러 회장님의 고충을 해결해줄 수 있는 유익한 제안까지 들고 왔으니까요.”
“계속···. 해보게.”
터벅터벅
자리에서 벗어난 나는 천천히 단상 앞으로 걸어갔다.
재계 거물들이 쏘아 보내는 매서운 시선은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의 압박감을 줬지만 내 얼굴은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왜냐고?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깐.
“아아. 잘 들리시죠?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투자한 회사 중에 ‘이지스 머터리얼즈’라는 신소재 개발 업체가 있습니다. 그래핀을 이용하여 그래플렌이라는 신소재를 개발하는 업체죠. 몇 개월 전, 그곳의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우연한 사고로 전혀 뜻밖에 물질을 만들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동문서답 같은 소리에 회장단의 얼굴이 더욱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그래핀? 그게 희토류랑 무슨 상관인가.”
“그러니깐 말입니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지…”
나는 여유를 잃지 않고 들고 온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이게 바로 그 물질입니다. 이름은 테트라테나이트. 보시다시피 길가에 흔히 볼 수 있는 돌덩이처럼 생겼습니다. 하지만······.”
딱!
손에 든 돌덩이를 책상 한구석에 놓여있던 철자에 갖다 대자 순식간에 한 몸처럼 붙어버린 철자.
“보시다시피 이 돌덩이는 자성을 띠고 있습니다. 즉 자석인거죠.”
그제야 무언가 있다고 판단한 회장단의 눈에 조금씩 호기심이 깃들기 시작했다.
이러고 보니 내가 무슨 지하철 외판원이라도 된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라면 제가 굳이 이런 쇼를 하지도 않았겠죠? 이 자석은 평범한 자석이 아닙니다. 이걸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나는 가방에서 새빨간 사과 하나와 똑같이 생긴 돌덩이 하나를 더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두 돌덩이를 널찍한 간격으로 배치하고 그 중간에 사과를 놓아두었다.
그리고 나무 막대기로 한쪽 돌덩이를 살살 앞으로 밀자.
딱!
퍼석
일정 거리에 다다르자 인간의 인지 감각을 넘어선 속도로 두 돌덩이가 붙어버렸고, 그 사이에 있던 사과가 형편없이 우그러지며 공중에 떠올랐다가 바닥을 데구루루 굴렀다.
마술과 같은 퍼포먼스에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한 회장단의 입.
“보시다시피 이 돌덩이, 즉 테트라테나이트는 아주 강력한 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제야 무언가 눈치챈 듯 회장단들의 눈이 달라졌다.
“자네 말은 그 물질이 희토류 자석을 대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맞습니다. 이 테트라테나이트는 희토류로 만든 네오디뮴 자석을 ‘완벽히’ 대체할 수 있습니다.”
“오오오!”
총수들의 입에서 동시에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희토류 자석, 즉 네오디뮴을 대체하려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강한 자성을 갖고, 다른 자기장 속에서도 자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고온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하죠. 그리고 이 테트라테나이트는 그 세 가지 모두를 충족할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내열성은 네오디뮴보다 더 뛰어납니다. 물론 실험으로 입증된 사실이구요.”
“그, 그게 사실인가?”
“당장 상용화가 가능한 단계입니까?”
“물론 아직은 양산 초기 단계이기에 많은 양의 생산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내가 한마디에 극명한 감정 변화를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퍽 재밌게 느껴졌다.
“그렇다고해도 국내 일부 발주량 정도는 충분히 맞출 수 있는 양이죠.”
“저, 정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제가 이지스 머터리얼즈의 주인은 아니지만 고맙게도 그들은 저에게 일정량의 발주 권한을 줬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이 자리에 계신 회장님들께 ‘특별한’ 기회를 드리고자 합니다.”
웅성웅성
내 말 한마디에 장내가 웅성거렸다.
“그런데 그 광석은 예전에 없던 완전 새로운 물질인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원래는 우주를 떠돌던 운석에서만 발견되는 물질이고, 애초부터 희토류 영구자석의 대체재로 알려져 있죠. 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드는 방법은 찾지 못하다가 이번에 개발된 것입니다.”
이후부터는 회장들의 폭발적인 질문세례가 이어졌다.
“가격은 기존 희토류 자석과 비교하면 어떤가?”
“지금은 비슷한 수준입니다만 시간이 지나면 더 낮아질 겁니다.”
“오오! 그게 어딘가. 중국의 자원 갑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들썩이는데 크헐헐.”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정말 예상치 못하게 큰 선물을 받아가는 기분입니다.”
뜻하지 않게 돌파구가 마련되자 장내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흘렀다.
하지만 이어진 내 말 한마디에 분위기는 묘하게 뒤바뀌었다.
“안타깝지만 여기 있는 모든 기업에게 물량을 공급하긴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뭣이? 아니, 이제 와서 그게 무슨 말인가!”
“조금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일부 정도만 충당 가능할 거라고.”
“그, 그럼 우리 현국과 거래하세. 가능한 물량 전부를 구입하겠네.”
“어허. 장 회장! 갑자기 끼어들어서 무슨 소린가? 그러지 말고 우리 BH가 전량 구매하겠네. 가격은 최대한 후하게 쳐주지.”
“정 회장이야말로 갑자기 끼어들어서 뭐하는 겁니까? 얘기는 제가 먼저 꺼냈습니다만?”
“무슨 선착순 게임하는 것도 아니고 비즈니스에 순번이 어딨습니까?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들끼리 하는 거지. 그리고 장 회장은 조금 전까지 송대운 대표를 굉장히 부정적 시선으로 보지 않았습니까? 갑자기 이런 태세전환이라뇨?”
“아니! 갑자기 왜 이간질을 하고 그러십니까?”
날 선 혀를 서로에게 겨누는 모습에 내가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불필요한 감정싸움 하실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절차대로 진행할 생각이니까요. 우선 검증이 필요하실 테니 샘플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체 검토해보시고 납품받길 원하시는 기업은 정식으로 입찰서를 보내주십시오.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기업에게 우선 공급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공문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한마디로 경매에 부친다는 말이었다.
그게 내 입장에선 가장 깔끔하면서 논란이 없기도 했고.
“알겠네. 최대한 빨리 좀 부탁하겠네. 지금 재고 여유가 충분치 않은 상황이니 말일세.”
“우리 쪽도 마찬가지일세. 서둘러 보내주시게.”
그렇게 한순간 내 입지는 지하철 외판원에서 ‘슈퍼 을’의 위치로 단번에 급부상했고 자리에 있던 모든 기업 총수들이 나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온갖 달콤한 말을 쏟아냈다.
물론 이 모든 전개는 내가 치밀하게 설계하여 의도한 결과였다.
***
북산타워 회장 집무실.
“끌끌끌. 결국 영업하려고 거길 따라온 게야?”
이 회장님의 핀잔 아닌 핀잔에 나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턱을 긁적였다.
“뭐···. 비슷하다고 볼 수 있죠.”
“잘했다. 아주 적절한 순간에 잘 치고 나왔어. 그나저나 다시 한번 생각 안 해볼 테냐?”
“뭘요?”
“북산 그룹 영업 본부장 자리 말이다. 크헐헐헐. 네놈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욕심이 안 날 수가 없구나.”
어차피 내가 거절할 것을 알기에 하는 농담이셨다.
“근데 굳이 그런 방법을 택한 이유가 무엇이더냐? 어차피 그런 물건이라면 서로 달라고 아우성칠 텐데.”
“그렇지만도 않아요. 아무래도 아직은 생소한 신소재이기도 하고 네오디뮴을 잘 쓰고 있는 기업으로서는 분명 리스크라 생각할 가능성도 있거든요.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안정적인 거래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을 겁니다. 그래서 일종의 극약처방을 쓴 거죠.”
“흐음···. 그런가?”
“이지스 머터리얼즈가 설립된 지도 어느새 6년입니다. 그동안 매출다운 매출을 한 번도 낸 적이 없죠. 아무리 연구소에 가까운 기업이라지만 매출이 없는 회사는 직원들 사기에 별로 좋지 않아요. 그리고 때마침 중국이 희토류 가지고 장난질을 치는 바람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잠재 고객들이 한국에 잔뜩 생겨버렸죠. 상황이 상황인지라 간 보는 짓도 못 할 겁니다. 샘플 검증이 끝나면 아마 벌떼같이 몰려들겠죠.”
“끌끌끌. 사고 싶어 하는 놈들은 한가득한데 양은 한정되어있다라···. 이거 장사꾼 입장에선 가장 흥이 나는 상황 아니더냐? 알아서 돈 보따리 싸 들고 물건 달라고 굽신거릴 테니.”
“아마 그렇게 되겠죠.”
슬그머니 내 눈치를 살피던 이 회장님이 넌지시 말했다.
“우리 북산에게 가장 먼저 우선권을 줄 테지?”
“에? 설마 맨입으로요?”
“이놈아! 제품 나오면 무조건 우리 북산이 먼저 산다고 얘기하지 않았느냐?! 구두 계약은 계약도 아닌게야?”
“하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당연히 북산 먼저 챙겨드려야죠. 그래도 의리가 있는데.”
“허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일이라더니···. 내가 너한테 아쉬운 소리 하는 날이 오긴 오는구나.”
“제가 그랬잖습니까.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요.”
“이제는 이해하는 것도 포기했다. 그냥 불가해(不可解)한 존재야 네놈은. 끌끌끌. 그나저나 특허 확보는 당연히 해놨겠지?”
“물론이죠.”
기술 사업화의 필수라 할 수 있는 특허 확보는 보통 개발과 동시에 이루어진다.
신소재를 특허화하기 위해서는 단순 아이디어로는 특허성 입증이 부족하므로 실험을 기반으로 기초물성 테스트, 가공성 및 장기 내구성 실험 등, 다수의 실시 예와 비교 예를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지스 머터리얼즈의 테트라테나이트는 이 모든 것을 무난하게 통과했다.
뿐만 아니라 등록 특허를 교묘하게 회피하여 사용하려는 도둑놈들의 위협에도 단단히 대비해두었다.
고로 베끼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기대되는구나.”
“뭐가요?”
이 회장님이 의미심장한 미소로 나를 바라봤다.
“조만간 세상이 뒤집힐 테니깐 말이야. 끌끌끌. 과연 중국놈들이 어떻게 나올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