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막둥이 이놈 또 어디갔어?
“DS하이텍, 우리가 가져옵시다.”
“네에!?”
경악한 세 사람이 입을 벌리고 나를 쳐다봤다.
“Are you crazy?”
“농···. 담이시죠 대표님?”
안 그래도 큰 눈이 왕방울만 해진 스테파니가 찰진 발음으로 미친놈 판별을 시도했고, 김선기는 내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오직 매튜만이 차분한 기색으로 내게 물었다.
“농담은 아닌 것 같고···. 무슨 이유가 있는 겁니까?”
“투자자가 투자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이유야 뻔하지 않겠습니까. 원하는 가격까지 내려왔으니 이제 주워 담아 할 때인 거죠.”
“저건 가격이 내려온 수준이 아니라 망한 회사이지 않습니까?”
“아직 안 망했습니다. 망하기 직전인 거지.”
“그게 그거 아닙니까?”
어느새 평정을 되찾은 스테파니도 내게 질문을 던졌다.
“매번 파격적인 투자를 해온 건 잘 알고 있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DS하이텍은 저도 이해가 안되네요. 이제 막 태동하는 스타트업도 아니고, 버티고 버텨온 회사가 시장의 섭리에 따라 소멸을 앞두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저 회사의 사업 아이템이 소름 끼치게 매력적인 것도 아니고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아니, 누구든 그렇게 생각하겠죠. 재정 상황은 최악이다 못해 이미 터져버린 폭탄이고, 그나마 있던 거래처들도 모두 떠나버렸으니.”
“그런데도 투자하겠다고요?”
“네. 투자합니다.”
“하···. 이번 건도 대표님 사재로 이루어지겠지만···. 솔직히 뜯어말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건 파격적인게 아니라 파괴적인 투자입니다. 큰 손실을 보게 될 겁니다.”
스테파니는 침까지 튀겨가며 격렬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당연히 예상했던 반응이기도 했고.
담담한 기색의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매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는 털어놓으시지요. 진짜 이유가 뭔지.”
“진짜 이유라···.”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노조 위원장에게 황금빛을 봤다고 하는 순간, 스테파니는 정말 정신병원에 입원 예약을 할지도 몰랐다.
“DS하이텍은 이대로 사라지기엔 아까운 회사라 판단했습니다. 아직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했어요.”
“어떤 부분에서요?”
“사람.”
“네?”
“저는 저곳의 근로자들에게서 희망을 봤습니다.”
뭔 개소리냐는 듯한 따가운 눈초리가 쏟아졌다.
“사실 한동안 DS하이텍 노조 시위 현장에 가 있었습니다.”
내 수줍은 고백에 다른 세 사람의 얼굴이 단번에 벙쪄버렸다.
“억? 거길 갔다고요? 대표님이?”
“어쩐지···. 며칠 회사에 못 나온다고 하더니···.”
“WHAT? 그런 위험한 짓을 왜해요!? 리얼 크레이지?”
“스테파니 말이 맞습니다. 분위기가 엄청 흉흉했을 텐데 어떻게 거길···.”
“마냥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사람들은 다 좋더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거기서 무언갈 보신 겁니까?”
“봤죠. 아직 꺼지지 않은 불똥을.”
뜬구름 잡는 소리나 마찬가지였지만 크게 보면 어느 정도 황금빛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었다.
“대성 그룹은 DS하이텍을 완전히 놓았습니다. 그러니 파산선고도 떨어진 거겠죠. 하지만 그곳의 근로자는 다릅니다. 아직 회사를 놓지 않았아요. 노조위원장을 중심으로 재건 의지가 충만합니다. 즉 아직 불꽃이 죽지 않았다는 말이죠. 이런 곳은 산소만 제대로 공급하면 다시 한번 활활 불타오를 수 있습니다.”
매튜의 얼굴에 깊은 우려가 서렸다.
“아무리 그래도 겨우 그런 이유로···. 투입되어야 하는 자금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물론 당연히 그렇겠죠. 저라고 무작정 돈만 던져줄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은 제가 낸 몇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할 테니까요.”
“시험이요? 어떤···?”
“지켜보시면 압니다. 만약 그들이 그 시험을 통과한다면···. 저는 확신합니다.”
싱긋 미소지으며 멍하니 나를 보는 세 사람을 바라봤다.
“이 회사는 살아날 수 있다고.”
***
서울 양재동 대성타워 앞 공터.
[정리해고 철회하라!] [사업종료는 살인이다!]대로변에는 노란 현수막에 붉은 글씨가 선명히 적힌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었고, 외곽에는 형광색 조끼를 입은 경찰 인력과 커다란 카메라를 손에든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백여 명에 가까운 DS하이텍 노조원들이 뙤약볕 아래에서 연일 강도 높은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한계라는게 존재했고 노조원들의 나이가 적지 않은 만큼 심신의 피로는 극에 달한 상태였다.
“좀 쉬었다 합시다!”
노조위원장 최춘길의 고함에 노조원들이 일제히 바닥에 주저앉아 미지근한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이고 못해먹겄다야.”
얼굴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소매로 닦아낸 박종백이 옆을 힐끔 쳐다보며 생수 한 병을 건넸다.
“자네도 참 징허구먼. 여태 여기에 붙어있는겨?”
욕쟁이 아저씨가 건넨 생수를 한입 들이킨 나는 웃으며 답했다.
“결사 항쟁해야죠! 이대로 회사 없어지게 둘 순 없잖아요.”
“그러지 말고 자네도 다른 젊은 아그들처럼 빨리 다른 회사로 옮기라니깐 그러네. 자고로 자네 나이 때는 시간이 돈인 법이여.”
“그럴 수야 있나요. 여러 선배님도 이렇게 고생들 하시는데.”
“우리야 뭐···. 대안이 없으니껜 이 짓거리라도 하는 거지.”
욕쟁이 아저씨가 길바닥에 축 늘어져 있는 노조원들을 보며 넋두리하듯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들 절박한 사람들이여. 저기 있는 저 머리 벗겨진 양반은 원래 아들이랑 이 회사를 같이 다녔는데 아들놈이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거든? 그런데 이 사달이 난거여. 그러니 눈깔 뒤집어져버리제. 그리고 저 삐쩍 곯아서 키만 멀대같이 큰 저 양반 있지? 저 양반 별명이 뭔지 알어? 과속스캔들이여 과속스캔들.”
“왜 과속스캔들이에요?”
“큭큭큭. 본인도 애를 엄청 빨리 낳은 편이었는데 그 딸내미까지 사고를 치는 바람에 얼마 전에 손주를 봤다는 거 아니여. 처음에는 길길이 날뛰더니 손주가 이쁘긴 이쁜가봐. 나중에는 아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겠다면서 맨날 회사 사람들한테 손주 자랑 하더라니깐. 막상 눈에 넣으면 뒈질 거면서 말이여.”
이 아저씨는 확신의 T가 분명해보였다.
“아무튼, 손자 학비는 자기가 꼭 대주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양반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잘리게 생겼으니 저 양반도 눈깔 돌만하지. 아무튼, 다들 나름의 사연들은 있어.”
“선배님은요?”
“응? 나?”
“네. 선배님은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데요?”
“나야 뭐···.”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욕쟁이 아저씨.
“거참. 자네는 쓸데없는게 다 궁금하구먼. 하긴 그러니 이런 오지랖도 부리는 거제.”
그러면서 아저씨의 눈이 조금씩 상념으로 젖어갔다.
“내 인생 절반 이상을 이 회사와 함께 했어. 여수 촌놈이 성공 한번 해보겠다고 무작정 보따리 하나 싸 들고 서울로 온 거지. 그때는 뭐든 할 자신이 있었어. 아주 패기가 넘쳤제. 크흐흐.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더라고. 대학도 못 나오고 제대로 된 기술도 없는 나를 받아준 유일한 회사가 바로 여기여. 그땐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는데···.”
과거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던지 아저씨의 주름진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마누라도 회사에서 만난거여. 아무것도 없는 시골 촌놈. 성실한 건 마음에 든다고 대뜸 시집을 오더라고. 여편네···. 웬만한 사내놈들보다 배포가 좋아. 크흐흐. 아무튼, 그렇게 자식새끼들도 낳고, 한 푼 두 푼 아껴서 집도 장만하고 그런거여. 다른 놈들은 몰라도 나는 알아. 이 회사는 이대로 없어지기엔 아까운 회사라는걸···.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니껜 저렇게 악을 쓰고 이 개고생을 하는 거지.”
“흐음···. 그래요?”
“회사가 어렵다는 건 알겄어. 매년 적자이니 당연하겠지. 그래도 이렇게 허무하게 사람들을 다 잘라버리고 회사 문을 닫아버리는 건 너무 무책임한거야. 우리도 이런 식으로 시위하는 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직원들 봉급을 삭감하더라도 해볼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 하는 거 아니여?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전부 그런 각오는 되어있는 양반들이여.”
“흐음···. 그렇단 말이죠?”
“아무튼, 여기서 오래 일한 우리나 그런 거지 자네는 아직 젊어.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아들놈 같아서 하는 얘기니껜 새겨들으라고. 한 일이 년 늦어도 좋으니깐 여기보다 좋은 회사 들어가. 적어도 하루아침에 망하는 이런 데 말고 더 좋은데 많잖여.”
“글쎄요. 저는 이 회사가 더 좋아지는데요?”
“크흐흐. 자네도 보통 꼴통은 아니구만. 마음에 들어. 자네가 내 직속 후임으로 들어왔으면 겁나게 잘해줬을 텐디.”
“왠지 가루가 되도록 갈구셨을 것 같은데···.”
“보기보단 눈치가 빨러?”
“제가 그런 눈치는 있습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잡담을 이어가던 중, 대성홀딩스 본사 회전문 사이로 웬 양복 차림 사내들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노조 위원장 최춘길이 벌떡 일어나 한 사내를 손가락질했다.
“백수훈 대표다!”
“단체교섭 요청했을 땐 계속 거부만 하더니 이제야 얼굴 한번 비추는구만.”
반백발의 남자가 그런 노조들을 난감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최춘길 쪽으로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이런 식으로는 해결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올라가서 대화합시다.”
“우리가 지금껏 대화하자고 몇 번을 요청했습니까!”
“아 그러니깐 제가 이렇게 직접 내려오지 않았습니까? 일단 올라가서 제대로 얘기해봅시다.”
그러자 최춘길과 몇몇 간부진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그럼.”
그렇게 노조위원장인 최춘길과 간부들이 성큼성큼 계단을 타고 사측 인사들의 뒤를 따랐다.
“이제야 무슨 대화라도 되겠···. 응? 막둥이 이놈 또 어디 갔어?”
분명 조금 전까지 옆에 있던 젊은 직원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박종백이 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대성홀딩스 대회의실.
쾅
“왜 무조건 안 된다는 말 밖에 안 하는 겁니까? 지금 협상을 하자는 겁니까? 일방적인 통보만 하겠다는 겁니까?”
분개한 최춘길이 책상을 내려치자 백수훈 대표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훔치며 말을 이어갔다.
“그게 아니라···. 지금 상황이 그렇다는걸 전달하는 겁니다. 이미 법원에서 파산 신고가 나온 걸 우리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회사 상황이 어느 정도로 나쁜지는 충분히 설명해 드렸지 않습니까?”
“압니다. 그래서 다시 살려보자는 거 아닙니까? 솔직히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게 우리 노동자 탓입니까? 지나가는 사람 누구든 붙잡고 물어보십시오. 본사의 방만 경영은 물론, 무리하게 인수까지 했다가 지금 일이 이렇게 된 거 아닙니까?”
“그렇게 화만 내지 마시고 상황을 이성적으로 봐주십시오. DS하이텍은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충분히 이성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작년에도 적자이긴 했지만, 그 폭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다시 생각해주세요.”
“아 글쎄 지금 그 적자를 대성 그룹에서 메워줄 수 있는 상황 아니라니까 그러네요.”
“그럼 다른 곳에 매각이라도 해주십시오. 우린 이대로 못 끝냅니다.”
“그것도 이미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 어떤 곳도 인수 의사를 밝힌 곳이 없어요!”
“그럼 우린 이대로 그냥 실직자 신세가 되라는 겁니까?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우리한테 회사가 이럴 수 있는 겁니까!”
“아! 안되는걸 어떡합니까? 나원참 답답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무슨 철부지 어린애도 아니고 무조건 우긴다고 될 문젭니까 이게?”
“뭐라고?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
흥분한 노조 간부 하나가 백수훈 대표에게 달려들려 하자 시큐리티들이 그를 제지했다.
“아무튼, 이건 협상의 여지가 없습니다. 회사 차원에서 여러분 위로금은 최대한 준비해볼 테니 이쯤들 하십시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참다못한 최춘길 노조 위원장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던 순간.
“그럼 인수를 희망하는 회사만 있으면 문제없겠네요?”
“몇 번을 말합니까? 인수하려는 곳이 없다니깐 그러네요!”
“그럼 제가 인수하겠습니다.”
“자꾸 이러면 경찰을······. 네? 지금 뭐라고···?”
난장판이 되기 직전이던 회의실에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고 노조 측 구석 자리에 않아있던 한 사내에게 모든 시선이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