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예상밖에 제안
“나 주한중국대사 싱 하오밍이오.”
“주한중국대사요?”
최 기자인 줄 알고 한소리 하려고 했다가 뜬금없이 중국대사라고 하니 순간 얼이 빠졌다.
신종 장난 전화인가? 라고 하기엔 중국인 특유의 억양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렇소이다. 잠깐 통화되시오?”
“네 뭐. 괜찮습니다만. 근데 주한중국대사님이 저한테 무슨 볼일로···?”
“송 사장 명성은 익히 들었소이다. 젊은 나이임에도 투자 실력이 하늘에 닿았다지요?”
이 양반이 무슨 말을 하려고 초장부터 얼굴에 금칠을 해대는 것일까?
머리가 차갑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송 사장을 간곡히 보고 싶어 하는 분이 계셔서 이렇게 전화하게 됐소.”
나를 보고 싶어 한다고?
“외람되지만 어떤 분이요? 전 중국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인데···.”
“공업정보화부 샤오 부장이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아 그래요? 흐음···. 제가 시간이 날지 모르겠네요. 요즘 일이 바빠서···.”
DS하이텍 인수절차는 잘 마무리됐지만 정리해야 할 잡일들이 많아 바쁘긴 했다.
물론 내가 아니라 밑에서 일 처리해주시는 분들이.
“그러지 말고 중국 한번 방문해주시지요. 이건 송 사장에게도 매우 좋은 기회가 될 거요.”
“좋은 기회요?”
“들어봤겠지만 중국에서 뭘 할 때는 꽌시가 무척이나 중요하외다. 세계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송 사장 입장에서는 많은 중국의 많은 고위 관료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천금 같은 자리가 될게요.”
“언제쯤 방문 하면 되나요?”
“송 사장 괜찮은 날을 말씀해주시면 내가 중간에서 조율하겠소.”
“그럼 일단 일정 한번 보고 내일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렇게 하시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송 사장 인생에서 다시 없을 기회가 될 거요. 그럼 이만 끊겠소.”
뚝
짧은 통화는 끝이 났고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휴대폰을 쳐다봤다.
“어디에서 온 전화길래 표정이 그래요?”
김선기의 물음에 모두의 얼굴에 궁금증이 깃들었다.
“주한 중국대사요”
“중국대사요? 거기서 왜 대표님께 전화를···?”
“중국으로 초청하고 싶다는데요? 저를 만나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고···.”
“딜런을요? 누가요?”
“글쎄요. 뭐라 했더라···? 공업정보고? 뭐시기 부장? 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턱을 긁적이며 외우기도 어려웠던 이름을 내뱉자 김선기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헉! 공업정보화부 부장이요?”
“왜요? 아는 사람이에요?”
“알다마다요. 웬만한 기업가는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고위직입니다.”
김선기가 저렇게까지 흥분해서 얘기하는 걸 보니 위세가 대단한 기구인 건 확실해 보였다.
“정확히 뭐 하는 곳이에요?”
“속칭 공신부라고 불리는데 하는 일은 다양합니다. 명칭 그대로 국가 산업 및 공업 개발과 관리·감독을 하는 곳인데 우리나라로 따지면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과기부를 짬뽕한 기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끗발 장난 아닌 곳이라는 거죠.”
“오호라. 근데 김 전무는 중국에 대해서 아는 게 많네요?”
“학교 다닐 때 짧게나마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적 있거든요.
“아. 그랬구나. 그건 또 몰랐네요.”
우리의 능력자 김선기 전무는 없는 환경 속에 참 열심히도 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저를 왜 보자고 했을까요?”
“글쎄요···. 중국대사가 뭐라던가요?”
“뭐 저한테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하더군요. 고위 관료들이랑 안면 트게 해준다고.”
“흐음···. 확실히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꽌시만큼 중요한 게 없기도 하죠. 그런데 우린 중국하고 딱히 뭘 할 게 없지 않나요?”
“마냥 그렇게 생각할 수만은 없습니다. 괜히 미국 다음으로 손꼽히는 국가가 아닌 게 중국 투자시장 역시 무척이나 거대하거든요. 한국과 마찬가지로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떠오르고 있긴 하지만 중국의 대표 네트워크 플랫폼인 택톡을 비롯해 아이두, 알리마마, 텐젠트 등등, 중국은 유니콘 기업만 160개에 달합니다. 미국에 이어 전 세계 2위인 거죠. 더구나 15억 인구의 풍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스타트업만 추정치로 450만 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매튜의 상세한 설명에 입이 살짝 벌어졌다.
“헐. 그 정도로 많다고요?”
“하하하. 괜히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국가겠습니까? 물론 공산국가 특성상 통계를 완전히 신뢰하긴 어렵습니다만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죠. 특히 창업 시장 같은 경우에는 2015년에 당시 중국 총리가 직접 대중창업을 장려하는 ‘대중창업, 만익혁신’을 언급하면서 무섭게 확장했습니다. 스타트업 육성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를 이루겠다는 생각이었죠.”
“중국이요? 의외네요.”
“예전에 저도 연수차 중국 선전(Shenzhen)에 가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놀랐습니다. 중국형 액셀러레이터인 ‘중창공간’의 프로세스가 생각보다 훌륭하더군요. 무엇보다 중국이라는 국가 특성상 정부의 입김이 강하다 보니 중국 거대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스타트업 육성사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듣기로는 전국에 이노베이션 센터를 건립한 건 물론 자금 조찰 창구 역할도 자처해서 맡았다죠.”
“강제로 시장이 활성화될 수 밖에 없었겠네요.”
“하하하. 맞습니다. 작년 기준으로 벤처캐피탈 투자금액이 무려 408억 달러(48조 5000억 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는 미국의 80% 수준에 달하는 수치죠. 덕분에 미국의 ‘스타트업 지놈’이 발표한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평가에서 중국이 4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요즘 말로 정말 멱살 잡고 끌어올린 거네요.”
안봐도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중국의 고위 관료가 기업 총수들 불러놓고 ‘창업 활성화 할 거니깐 알아서들 잘해라. 뒤지기 싫으면.’ 뭐 이런 식으로 압박을 넣었을 것이고 잘못 찍혔다가 골로 갈까 싶어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야 했겠지.
“벤처캐피탈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확실히 메리트가 있는 게 보통 엑싯(exit) 기간이 미국이 평균 7년이라면, 중국은 4년 정도로 엄청 짧은 수준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선 무척 매력적인 시장이란 소리죠.”
“흐음···. 확실히 한 번 정도는 겪어 볼 만하다는 말이네요.”
턱을 만지작거리면서 고민하던 중 김선기가 약간의 우려를 표했다.
“아무리 그래도 좀 찝찝합니다.”
“뭐가요?”
“공신부 부장 정도 되는 사람이 왜 굳이 대표님을 보자고 했을까요? 엄밀히 말하면 우린 중국과 아무런 유대가 없습니다. 오히려 껄끄럽다면 껄끄러운 사이죠.”
“흐음···. 그건 김 전무님 말이 맞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지스 머터리얼즈로 인해서 중국이 자원 무기로 삼았던 희토류의 가치가 하락했고 그만큼 패권 전쟁에서도 크게 밀리는 형세가 되었습니다.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에이. 설마 그렇기야 하겠어요? 제가 이지스 머터리얼즈 대표도 아니고 기껏해야 일개 투자자일 뿐인데 절 불러서 뭘 어쩌겠어요. 중국 입장에서 저는 그냥 단순히 돈 좀 있는 투자자일 뿐일 텐데.”
“그 말도 틀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도 썩 예감이 좋지는 않군요.”
“북한을 가는 것도 아니고 비행기로 한두 시간이면 가는 중국인데 뭘 그리 걱정들을 하세요. 매튜 말대로 저도 중국 창업 시장도 한번 둘러보고 거기는 뭐가 다른지 공부도 해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긴 해요. 아무리 미국이 가장 큰 시장이라지만 너무 시야를 한곳에 오래 두고 있는 것도 좋지는 않을 테니까요.”
“딜런 생각이 그렇다면야···.”
“혹시 또 모르죠. 거기서 마음에 드는 스타트업을 만날지도.”
“제발 DS하이텍과 같은 심장 떨리는 건은 가져오지 마세요. 이러다가 제 명에 못 살겠습니다.”
김선기의 엄살에 나는 픽 웃음을 터트렸다.
“왜요. DS하이텍, 아차차. 이제는 SI하이텍이죠? 요즘 분위기 얼마나 좋은데요. 새로 취임한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요즘 사기가 장난이 아니라던데요?”
이제는 대성이라는 둥지에서 떠나게 된 DS하이텍은 SI하이텍으로 상호를 변경하게 되었다.
물론 SI는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의 약자를 딴 것이었다.
노조위원장이었던 최춘길이 대표이사에 취임했고 떠나갔던 옛 직원들이 다시 회사로 돌아오면서 내부 결속력이 한층 더 단단해졌다.
다소 의외인 건 나는 그가 서번트(servant) 리더십을 보일 줄 알았는데 정반대의 변혁적 리더십 타입이었다는 점이었다.
회사를 완전히 뒤바꾸겠다고 작정한 것인지 대대적인 인사개혁과 구조개편을 단행했는데 특히나 연구개발 부서의 대대적인 물갈이를 하며 소위 말하는 ‘월급 루팡’들을 모조리 쳐내고 젊은 해외 유학파 인력들을 대거 등용함은 물론 팹리스 사업부도 과감히 정리해버렸다.
물론 내 승인하에 진행된 일이었다.
“흐음···. 확실히 그 부분은 저도 놀랐습니다. 보통 회사가 그 정도 풍파를 겪었으면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앉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벌써 생산에 들어가기 시작했다죠?”
“예. 안정화 되기까지는 아직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상당히 빠른 속도입니다.”
“근데 기존에 거래하던 거래처들이 많이 떠났을 텐데 이렇게 바로 생산에 들어가도 되는 건가요?”
김선기의 물음에 매튜가 대신 답을 했다.
“원래라면 불가능한 일이죠. 자칫 악성 재고가 될 수도 있으니. 하지만 발주가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발주가요···? 어떻게?”
매튜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쪽으로 향했다.
“그냥 지인들한테 도움 좀 청했습니다. 그렇다고 공장을 세워둘 순 없잖아요. 물량이 많지는 않습니다. 이제 차근차근 올라가야죠.”
“허어···. 대체 어떤 지인이길래 반도체 발주를···.”
“있어요. 돈은 많은데 순박한 친구들이.”
그게 누구냐고?
인맥 부자인 술라이만 형님을 통해서 소개받은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기업가들이었는데 내가 반도체 파운더리 기업을 인수했다고 하니 소박하게나마 발주를 내준 고마운 친구들이었다.
물론 이런 인맥 비즈니스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고 결국엔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저도 기대가 됩니다. 제 판단으론 DS하이텍은 도저히 소생 불가능한 회사였습니다. 과연 이번에도 딜런의 통찰력이 적중할지 유심히 지켜봐야겠군요.”
“적중 할 겁니다. 늘 그래왔듯이.”
자신은 있었다.
황금빛이 괜히 터져 나왔을 리 없을 테니까.
“그러면 서둘러 대표님 중국 출장 준비를 해야겠네요. 베이징행 퍼스트 클래스 표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해요 김 전무님.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혼자 가실 생각입니까?”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김 전무님 같이 가실래요? 중국 유학도 다녀오셨잖습니까.”
“저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IS하이텍 인수 관련해서 아직 남은 업무가 있습니다.”
“아 맞다. 이달 안까지는 무조건 처리해야지요? 그러면 어쩔 수 없겠네요.”
“혹시 같이 가실만한 분 없습니까? 아무리 대표님 중국어 실력이 좋아도 혼자 가는 건 영 불안하네요.”
“같이 갈만한 사람이라···.”
마치 슬롯머신처럼 내 머릿속에서 여러 얼굴들이 스쳐 지나가다가 순간 누군가의 얼굴에서 딱 멈춰 섰다.
“호오. 마침 딱 생각나는 사람이 있네요.”
남들이 봤다면 사악해 보일 법한 미소가 내 입가에 내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