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경매장에서 생긴 일
세계 최대 예술품 경매 전시장이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가 아닌 중국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중국 경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당나라 시대 초기 사원에서는 ‘창의(唱衣)’라는 의식이 유행처럼 번졌고 이는 작금의 경매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었다.
이토록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의 예술품 경매는 그 규모 또한 남달랐는데 작년 기준 50억 달러의 규모를 달성하며 전 세계에 거센 황색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
어둠이 완연하게 내려앉은 베이징의 한 호텔 지하 공간.
“정말 괜찮겠습니까? 너무 액수가 큽니다.”
“하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100만 위안(약 2억원) 정도가 뭐가 대수라고 그러십니까?”
아 맞다. 이 사람 어마어마한 부자였지?
괜히 뻘쭘해져 주변을 둘러봤다.
이 경매장은 일반적인 경매장이 아니었다.
작당 모의하기 좋아 보이는 호텔 지하 비밀공간에 아주 삼엄한 보안절차를 통과하고 나서야 간신히 출입할 수 있었으니.
물론 왕민 회장 얼굴 자체가 프리패스권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우리는 막힘없이 입장할 수 있었다.
“와···.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네요?”
오늘 별의별 구경을 다 하게 생긴 박성민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진짜 형 덕분에 별 경험을 다 해보네요.”
인정한다.
어느 누가 중국 여행 와서 알리마마 회장을 독대하고 이런 비밀 경매장까지 체험할 수 있을까?
“나도 네 덕분에 별 이상한 경험 다 해봤잖니.”
물론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경험이었지만 그냥 퉁 치기로 했다.
커다란 지하 강당처럼 되어있는 내부에는 약 400석의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고 전면에는 대형 스크린이 있었다.
단상에는 경매사로 보이는 남자가 나비넥타이를 매만지며 경매 준비에 한창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스크린이 잘 보이는 앞자리 상석에 앉은 우리 세 사람.
나는 왕민 회장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중국의 가장 큰 경매 시장은 베이징 바오리(北京保利) 경매장 아니었습니까?”
평소 골동품에 관심이 많은 이승환 회장님이 했던 말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표면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사실 거기서는 제대로 된 물건을 구하기 힘듭니다. 법적으로 뒤탈이 없는 물품들만 나올 수 있거든요. 가품이 나올 확률도 있고.”
“아···.”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예술품이든 골동품이든 도굴이나 도난 같은 어둠의 경로로 입수된 경우가 많다고 들었기에.
“하지만 이곳 경매장의 물품들은 다릅니다. 세계 각국의 감정사들의 철저한 검증을 거친 물품만 나올 수 있을뿐더러 혹시나 나중에 가품인게 밝혀지면 보상까지 약속되어있죠. 확실한 먹이가 있는 곳에 물고기도 많은 법 아니겠습니까?”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잠시 후,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경매사가 단상에 마이크를 잡았다.
“곧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아직 입장 안 하신 분들은 서둘러 주십시오.”
경매사의 멘트에 자리는 빠르게 메워졌고 경매장 직원이 거대한 문을 닫자 본격적인 경매가 시작되었다.
거대한 스크린에는 경매품의 사진과 시작 가격이 보여졌고 곧 숨 가쁜 경쟁이 시작되었다.
“첫 물품은 15세기 중국 명나라 황실의 의뢰로 제작된 도자기입니다. 보시다시피 연꽃과 모란, 국화, 석류꽃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끄러운 몸체와 부드러운 유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자기의 실물을 확인한 경매 참가자들의 입에서 미약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흐음···. 확실히 범상치 않은 물품이로군요.”
왕민 회장 역시 턱을 만지작거리며 눈앞에 도자기를 유심히 살폈다.
“형. 저거 밥그릇 아니에요? 우리 집에도 있는 건데.”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박성민의 말에 나도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진 않았다.
내가 봐도 저건 밥그릇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에.
하지만 저게 우리 집 밥그릇과는 신분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100만, 150만, 200만 위안 나왔습니다!”
래퍼에 빙의한 것마냥 속사포처럼 수억 원의 단위를 내뱉는 경매사.
호가는 무섭게 치솟기 시작했고 불꽃 튀는 경쟁이 펼쳐졌다.
그리고 결과는······.
“300만 위안! 더 없으십니까? 이 도자기는 300만 위안에 낙찰되었습니다!”
“헐…저게 300만 위안이라고?”
“왜요 형? 저 밥그릇 얼마에 낙찰된 거에요?”
“5억 4천이랜다. 저게.”
“컥. 미친! 우리 집에 저런 거 열 개는 있는데!”
경악을 내뱉은 박성민이 어이가 없다는 듯 밥그릇···. 아니 도자기를 쳐다봤다.
어찌 됐건 경매는 속도감 있게 이어졌고 줄줄이 소시지처럼 많은 경매품이 쏟아졌다.
여기서 다소 의외인 것은 경매에 나온 모든 물품을 쓸어버릴 것 같은 기세와 달리 왕민 회장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회장님은 경매에 참여 안 하십니까?”
“저런 물품들은 제게 큰 가치가 없습니다. 이미 집에 굴러다닐 정도로 많거든요.”
“아···. 그러시구나.”
5억짜리 도자기가 굴러다닐 정도면 얼마나 많은 골동품을 모았다는 걸까?
하긴, 개인 자산 규모가 50조 원이 훌쩍 뛰어넘는 중국 최고 갑부 중 하나인데 어련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중국이 이 정도로 골동품 수집에 관심이 많은 줄 몰랐습니다. 다들 취미가 고상하시네요.”
“하하하. 단순히 골동품 모으는 취미 때문에 이 사람들이 여기에 모인 것 같습니까?”
“아닌가요?”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투자 목적으로 왔을 겁니다.”
“투자요?”
“예술품 투자 수익률은 웬만한 금융 상품보다 훨씬 뛰어나거든요. 취미의 영역을 넘은 투자의 개념인 거지요.”
“아···. 그렇구나. 또 하나 배워가네요.”
이런 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보니 그 정도로 괜찮은 투자 수단인 줄 미처 몰랐다.
“딜런도 관심이 있는 물품이 있으시면 한번 참가해보시죠.”
“글쎄요···. 제가 이런 쪽으로는 문외한이라.”
내가 아무리 돈이 많다지만 저런 밥그릇을 5억이나 주고 사라고?
마음먹으면 못할 것도 없었지만 내가 중국산 골동품을 사서 어디에다가 쓰겠는가.
그냥 보고 즐기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길 때쯤.
“다음 물품은 한국(韓國)의 독립운동가 이영회가 생전에 쓰던 노트입니다.”
“응? 독립운동가?”
한국의 물품, 그것도 독립운동가의 유품이라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노트 안에는 의미를 모를 낙서만 적혀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존경받는 독립운동가의 유품이기에 그 역사적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자! 30만 위안(약 5,500만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경매사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나는 왕민 회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번에는 참여해야겠네요.”
“흐음···. 확실히 한국인에겐 의미가 있는 물건이겠군요.”
“60만위안!, 65만 위안 나왔습니다.”
확실히 타국의, 그것도 별 내용이 적혀있지도 않은 노트이다 보니 다른 물품들에 비해 인기가 시들했다.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번호표를 번쩍 들어 올렸다.
“120만 위안! 더 없으십니까? 이번 물품은 80만 위안(1억 5천만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쾅쾅!
그렇게 우연히 참석한 중국의 경매장에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의 낙서장을 낙찰받게 되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이 누구시던가.
심산 김창숙, 단재 신채호를 더불어 베이징 일대에서 무장독립운동을 이끈 중심축이었다.
베이징 삼걸(三傑)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며 독립운동사를 바꾼 인물이기도 했다.
그분의 물품이 어째서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전혀 돈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딱히 애국심이 투철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독립운동가의 유품이 만리타국 경매장에서 떠도는 모습이 썩 유쾌하진 않았으니.
뭐 이 정도 지출은 지금 나에겐 조금 호화로운 외식 한번 한 것과 다를 바 없기도 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덕분에 의미 있는 물건을 얻게 되었네요.”
“별말씀을.”
왕민 회장이 아니었다면 만나 볼 수도 없는 물건이었기에 기꺼이 감사를 전했다.
다음 경매가 준비되는 과정에서 경매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고 얼핏 긴장한 기색도 엿보였다.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번 경매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물품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자세를 고쳐 앉은 왕민 회장이 번득이는 눈으로 전면을 응시했다.
“드디어 나왔군요. 저도 이번엔 참가할 겁니다.”
대체 뭐가 나오길래 저 점잖던 양반이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고 엉덩이까지 들썩이는 걸까?
강한 호기심이 들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번 물품은 청나라 건륭 황제의 옥새입니다. 수산석으로 만들어졌고 보시다시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습니다. 그리고 여기 보시면 6자로 ‘건륭황제의 옥새’라고 정확히 새겨져 있습니다. 조예가 있으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비홍이 눈을 밟는 것처럼 수많은 댄싱에 황실 도장이 남긴 주황색 자국은 그림과 서예로 전 세계를 누볐습니다.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지요.”
“오오오.”
물품을 마주한 참석자들에게 진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도 유심이 그 물건을 살폈는데 대리석 같은 재질에 거북이 같은 등딱지를 가진 신수(神獸)가 조각된 거대한 도장이었다.
확실히 범상치 않은 물건처럼 보였다.
“4000만 위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시작가부터 무려 한화로 72억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고 경매가가 가파르게 치솟기 시작했다.
“4500만 위안!, 4800만 위안!, 5000만 위안!”
경매사가 구슬땀까지 흘려가며 목이 찢어져라 호가를 외쳤고.
“오, 오천 오백만 위안!”
어느새 호가가 100억 원이 훌쩍 넘어가자 호가 오르는 속도가 현저히 더뎌졌다.
그때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던 왕민 회장이 조용히 번호표를 들어 올렸다.
“8,000만 위안!”
145억원이 넘는 금액에 경매장에는 깊은 적막이 내려앉았다.
“8,000만 위안 마지막 콜입니다. 건륭황제의 옥새는 8,000만 위안에 낙찰됐습니다!
쾅쾅쾅!
경매사가 낙찰을 선언하자 여기저기에서 아쉬움이 깃든 탄식이 터져 나왔다.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저 옥새는 필히 갖고 싶었는데 정말 다행이로군요.”
단순 취미 생활을 위해 150억에 가까운 돈을 플렉스 하다니.
역시 대륙의 거부는 클라스가 남달랐다.
하이라이트가 끝나서였을까?
뜨거웠던 경매장의 열기는 조금씩 시들해졌고 어느새 마지막 물품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오늘 경매의 마지막 물품은 1910년에 바셰론 콘스탄틴 사에서 특별 제작된 회중시계입니다. 제작 기간만 무려 3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시계 뒷면에는 S.B 라는 스펠링이 새겨져 있고, 현대 시계 제작 기술 관점에서도 다시 복제 할 수 없을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명품이라고 합니다.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별로 가치는 없어보이는군요.”
전혀 흥미가 없던지 왕민 회장이 시계를 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만 일어날까요? 기분도 좋은데 제가 오늘 거하게 한잔 사겠습니다.”
“그래도 번쩍번쩍한 것이 엄청 고급스러워보이지 않나요?”
유리관 안에 전시된 시계를 홀린듯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한국어로 중얼거렸고 내 말을 들은 박성민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 몰래 낮술했어요? 누가 봐도 다 낡아빠진 시계구만.”
“뭔 소리야? 저기 지금 빛나는거 안보…..”
시계를 가리키며 설명하려다 내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듯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
당황스러웠다.
사람이 아닌 사물에서 황금빛을 보게 된 경우는 또 처음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