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지금 저랑 장난하시는겁니까?
“이런···.”
망연자실한 얼굴이 된 백인 남자가 경매 관계자를 옷깃을 힘없이 놓았다.
“그 물건 때문에 10시간을 날아서 왔습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늦은 건 본인 과실입니다.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비행기가 연착돼버린 걸 제가 뭘 어쩌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연신 고개만 내젓는 경매 관계자를 보며 백인 남자가 입술을 짓이겼다.
“그럼···.혹시 그 물건을 낙찰받은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겠습니까?”
“낙찰자에 대한 개인 정보는 절대로 공개할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절대 예외는 없다는 단호한 답변에 백인 남자가 결국 고개를 떨궜다.
그때 자연스럽게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든 남자가 있었다.
“말씀 나누는 중에 죄송한데 바셰론 콘스탄틴 회중시계 낙찰자인데 어디 가서 대금 지불 하면 되죠?”
“아! 저기 사무국으로 가시면 직원이 절차에 대해 안내해줄 겁니다.”
내 말을 들은 백인 남자의 고개가 번쩍하고 들렸다.
“지, 지금 바셰론 콘스탄틴 회중시계라고 하셨습니까?”
놀라서 되묻는 백인 남자를 심드렁하게 쳐다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 저 그게.”
대뜸 시계를 넘기라고 얘기하긴 뭐 했는지 우물쭈물하는 백인 남자.
나는 손목을 들어 시계를 쳐다봤다.
“죄송하지만 제가 시간이 없어서···. 그럼 이만.”
“자, 잠시만!”
남자의 다급한 부름에도 나는 묵묵히 사무국으로 향했다.
물론 이 모든 건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
왕민 회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를 먼저 보낸 후, 뒤늦게 경매 사무국으로 들어가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낙찰받은 두 물품에 대한 대금을 치렀다.
잠시 후, 하얀 장갑을 낀 직원 하나가 낙찰받은 물품이 진품이라는 보증서와 함께 잘 포장된 경매품들을 내게 건넸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여 물건이 가품으로 밝혀지면 100% 환불받을 수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손에 든 물건들을 쳐다봤다.
닳고 닳은 가죽 커버 노트 한 권과 빛바랜 고물 회중시계.
이 두 골동품을 사는데 33억이 들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겠지?
하지만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유품은 금전적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물건이었고, 낡은 회중시계 역시 황금빛을 뿜은 물건이었기에 반드시 손에 넣었어야만 했다.
“형 그거 얼마에 산 거에요?”
떠들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말없이 그림자처럼 붙어있던 박성민이 넌지시 물었다.
“이거? 32억.”
“푸훕.”
피식 웃음을 터트린 박성민.
“이 형 뻘하게 사람 웃기는 재주가 있네. 그런 거 동대문 풍물 시장가면 제가 3만원에 사 올 수 있거든요? 저 눈치 소름 끼치게 빠른 거 알죠? 딱 보니깐 320만원 정도에 낙찰받은 모양인데… 이 형 씀씀이가 은근 헤프시네.”
진짜 소름 끼치긴 한다.
대놓고 말해줘도 알아먹질 못하다니.
하긴, 박성민이 아니라 누구든 비슷한 반응일 것이다.
“헛소리 말고. 얼른 나가자. 눈치 보인다.”
수령받은 물품들을 가방에 넣고선 경매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 순간 훅하고 나타난 인기척.
“으헉. 깜짝이야.”
놀란 박성민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치다가 엉덩방아를 찍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중년 백인 남자가 미안한 기색으로 박성민을 일으켜 세웠다.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놀래켜드렸군요.”
“누, 누구세요?”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박성민이 경계심 서린 얼굴로 백인 남자를 쳐다봤다.
백인 남자가 정확히 나를 응시하며 자기소개를 했다.
“초면에 이런 식으로 인사드려서 죄송합니다. 저는 세인트 케빈이라고 합니다.”
“근데 무슨 일이기에 문 앞까지 저희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까? 저로서는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만.”
자신을 케빈이라 소개한 남자가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생각하시는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낙찰받으신 물건중에 바셰론 콘스탄틴 회중시계 있지 않습니까? 그거 저한테 파실 생각 없으십니까? 값은 두 배, 아니 세배로 쳐 드리겠습니다.”
“세 배라···.”
무려 30억이라는 금액에 낙찰받은 시계였다.
그 세배인 90억을 거리낌 없이 지급하겠다는 남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강한 호기심이 들끓었다.
“안타깝지만 장사를 하려고 낙찰받은 물건은 아닙니다. 다분히 제 취향에 부합하는 골동품이기에 입찰한 것 뿐이죠.”
“아···.”
남자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오며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런 남자를 보며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저녁 드셨습니까?”
“네?”
“아직 드시기 전이면 같이 저녁이나 한 끼 하시겠습니까?”
뜬금없는 내 제안에 남자는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 세 사람은 호텔을 빠져나와 인근 식당으로 향했다.
***
베이징 ‘차오장난’ 레스토랑
베이징은 세계적으로도 이름난 미식의 도시이며, 그중에서도 수많은 미식가가 뽑는 베이징 최고의 식당 중 하나가 바로 이 ‘차오장난’ 식당이었다.
중국의 전통미를 잃지 않는 건물 외관에,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프라이빗한 공간 구조는 많은 부유층이 애용하는 이유가 되었다.
내 뜬금포 제안에 만들어진 식사 자리에는 지독히도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눈앞에 놓인 재스민차를 호로록 들이킨 케빈이 조용히 찻잔을 내려다 놓고 묘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갑자기 식사 제안을 해서 많이 당황하셨나 보네요.”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제가 무례하게 다가간 건 사실이니까요.”
“저로서는 얼마나 절박하면 저럴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래서 천천히 식사라도 하면서 사정을 듣고 싶었습니다.”
번뜩이는 눈으로 눈앞에 백인 남자를 쳐다봤다.
“그 시계를 그렇게 애타게 찾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물음에 케빈은 한동안 말없이 차만 홀짝홀짝 들이켰고, 나는 그에게 충분한 시간을 줬다.
‘시계에서 흘러나왔던 황금빛은 분명 이 사람과 연관이 있을 거야.’
단순 감을 넘어선 어떤 운명적인 이끌림이었다.
“제가 너무 두서없이 물건만 요구했나 보군요. 계속 실례만 하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그럴만한 연유가 있으셨겠죠.”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물건은 저희 가문을 세우신 선조의 유품입니다.”
“선조의 유품이요?”
“시계의 뒷면을 보시면 S.B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을 겁니다. 그건 우리 세인트 가문을 세우신 세인트 베링턴 님의 약자를 새겨넣은 것입니다.”
분명 경매사도 언급했던 부분이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알파벳이 새겨져 있다고.
“초대 가주인 세인트 베링턴님은 세계 곳곳을 다니시며 무역업을 하셨고 가문의 기반을 확립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시계는 그분의 부적 같은 것이었죠.”
가문의 부적이라···.
왜 이 사람이 그 시계를 그토록 애타게 찾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근데 그런 소중한 시계가 왜 중국의 경매장에···?”
근본적인 궁금증이었다.
어째서 만리타국 중국 땅에 저 바다 건너의 물건이 있는 것일까?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초대 가주님의 회고록을 보면 비즈니스 차 중국에 갔을 때 도난당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상실감이 무척 컸다고 하더군요.”
“아···. 도난.”
어디서 소매치기라도 당한 모양이다.
당시에 회중시계라면 사치품에 속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고.
“오죽 아쉬웠으면 돌아가실 때도 후손들에게 그 시계를 꼭 찾아달라고 유언을 남기셨을까요? 당연하게도 그 시계를 찾는 건 마치 가문의 숙원처럼 대대로 이어졌고 마침내 초대 가주님의 것으로 추정되는 시계가 경매장에 출품된다는 정보를 듣고 부랴부랴 중국으로 날아온 것이었습니다. 하아. 제가 한발 늦었지만요.”
“이해했습니다.”
드르르륵
때마침 종업원이 들어오며 테이블에 온갖 음식들을 올려놓기 시작하며 대화는 잠깐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우와! 대애박!”
우리 대화에는 전혀 관심도 없던 박성민이 음식이 나오자마자 물개처럼 박수를 쳤다.
“그런데 저분은···?”
많은 의미가 담긴 물음에 나는 웃으며 답했다.
“수행비서 비슷한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특이하군요.”
찢어진 청바지에 온갖 화려한 페이팅으로 도배된 티셔츠 차림의 수행비서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냥 이렇게 설명하는 게 편했다.
“보기엔 저래도 꽤나 유쾌한 친굽니다.”
“그렇게 보입니다.”
“일단 음식 드실까요?”
“그러시죠.”
달그락달그락
실내에 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시계에 대한 더 이상의 언급은 없었고 오로지 식사에만 집중하는 시간.
물론 표면적으로만 그런 것이고 그의 머리는 여러 생각들로 복잡할 것이다.
“오메. 이게 생선이 맞는거여? 내가 알던 생선이 아닌데?”
정신없이 음식을 흡입하고 있는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케빈?”
“네?”
수저를 들다 멈칫한 케빈이 다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제 통성명을 안 했군요. 저는 딜런이라고 합니다.”
“이런. 제가 먼저 물어봤어야 했는데 하하···. 정신이 없었군요.”
“케빈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네덜란드 사람입니다.”
“멀리서 오셨군요. 그만큼 이 시계가 소중하다는 말이겠죠.”
나는 빈 의자에 올려두었던 가방을 열어 낙찰받은 시계를 꺼내 들었다.
고풍스러운 케이스에 정갈하게 담긴 시계를 보자 그의 동공이 거칠게 떨려왔다.
“오오! 이, 이게···. 바로? 저도 실물로 보는 건 처음입니다.”
탁
케이스를 열어 시계를 꺼낸 나는 그에게 뒷면을 보여줬다.
선명하게 새겨진 ‘S.B’라는 스펠링을 보며 케빈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오오···. 이것이.”
천천히 다가오는 케빈의 손을 보다가 시계를 다시 케이스에 넣었다.
미련이 뚝뚝이 묻어나오는 애타는 눈빛으로 시계를 바라보는 케빈.
“이 시계가 맞습니까?”
“맞습니다. 실제로 보니깐 더욱 확신이 드는군요.”
“케빈이 저에게 모든걸 솔직히 털어놓았으니 저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시계를 1630만 위안에 낙찰받았습니다. 달러로는 223만 불 정도 되겠군요.”
일반 사람이 들었다면 크게 놀랐을 금액이었지만 눈앞에 케빈은 담담한 기색이었다.
“이 시계를 손에 넣기 위해 중국의 재벌 하나와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했습니다. 쉽게 손에 넣은 물건이 아니라는 말이죠. 하지만 케빈의 사연을 들어보니 이 물건의 주인은 따로 있는듯하군요. 그래서 묻겠습니다. 케빈이 생각하는 이 물건의 가치가 어떻게 됩니까?”
가볍지 않은 물음에 장내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우물우물
“이야. 이 오리 껍질 바삭거리는 것 좀 보소.”
물론 한 사람만 빼고···.
“흐음···. 시계의 가치라···.”
탁.탁.
케빈은 손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얼마나 침묵이 이어졌을까?
장고 끝에 꾹 닫혀있던 그의 입이 열렸다.
“223만 달러에 낙찰받았다고 하셨습니까? 그럼 저는 2300만 달러 드리겠습니다.”
“커헙. 쿨럭쿨럭.”
정신없이 식사에 매진하다가 박성민이 거친 기침을 토해냈다.
“이, 이천삼백만 달러?”
300억이 넘는 금액을 제시한 케빈을 보며 나는 아무 동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걸로도 부족하다면 조금 더 낼 용의는···.”
“아니요. 충분합니다.”
묵중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케빈을 향해 나는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선조들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그 간절한 마음. 충분히 알았습니다.”
“그러면···. 2300만 달러에 넘겨주시겠습니까?”
케빈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게 내게 물었고.
“아뇨.”
단호한 내 답변에 케빈의 얼굴이 냉막하게 굳어졌다.
“지금 저랑 장난하시는 겁니까?”
“설마요. 저 그런 고약한 취미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그냥 드리겠습니다.”
“…네?”
순간 케빈의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냥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전혀 뜻밖에 장소에서 또 다른 투자를 집행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