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친구 먹읍니다
“그냥 드리겠습니다.”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파격적인 제안에 케빈의 얼굴이 단번에 벙쪄버렸다.
하긴, 놀랄 만도 하지.
한껏 바가지 씌울 것처럼 분위기 다 잡아놓고선 난데없이 그냥 줘버린다고 하니,
물론 이건 다분히 의도했던 바였다.
아무리 시계에서 황금빛을 봤고 그 연관성이 눈앞에 백인 남자로 추정된다고 해도,
30억이나 주고 낙찰받은 시계를 대뜸 줘버리면 누구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절대 시계를 팔 생각이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면서 시계와 관련된 그의 사연을 넌지시 물은 것이었다.
그가 더 안달 나서 매달릴 수 있게.
“어째서···?”
혼란스러운 듯 케빈이 떨리는 동공으로 나를 바라봤다.
“2300만 달러(약 313억원)를 지불하겠다는데도 말입니까?”
“그렇다니까요.”
“이유가···. 무엇입니까?”
돌처럼 굳은 얼굴로 케빈이 물었고.
“이유가 필요합니까?”
물처럼 여유로운 얼굴로 내가 답했다.
“누군가에겐···. 아니,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큰돈입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쉽게 거부할 수 없는 돈일 텐데요? 더구나 구매자 희망자가 먼저 제안한 정당한 거래잖습니까.”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10배나 더 주고 사겠다는 사람은 왜 안 사냐고 열변을 토하고 있고, 정작 제안 받은 나는 시종일관 담담한 기색이었으니.
“물론 큰돈이죠. 하지만 지금 이룬 부 만으로 저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사람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돈을 무시한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내키지 않을 뿐입니다. 저는 마음이 가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습니다. 제 신념이 그렇습니다.”
“도대체 뭐가 내키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10배가 아니라 20배를 불렀어도 시계를 팔 생각이 없었습니다. 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돈이 아니거든요. 원래라면 이렇게 식사를 하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케빈의 절실한 얼굴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길래 이 시계를 그리도 애타게 찾는 것일까 하고.”
“겨우 그런 이유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생물 보듯 나를 보는 케빈.
물론 익숙한 시선이었기에 별 대수롭지 않게 미소로 흘렸다.
“제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굳이 이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케빈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지만 아마 신분이 평범하진 않을 겁니다. 그런 큰돈을 아무렇지 않게 내겠다는 사람이 평범할 리가 없죠. 그리고 케빈은 진정성 있게 시계의 배경에 대해서 상세히 알려줬고 저는 충분히 납득을 했습니다.”
물론 그가 단순히 돈이 많아 보여 범상치 않다 느낀 건 아니었다.
내 동공이 왼쪽 모서리 테이블과 오른쪽 테이블에 앉은 손님을 빠르게 훝었다,
어딘지 묘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모습.
‘내 눈썰미는 못 피하지.’
아마도 사복 차림의 경호원이 분명했다.
대놓고 경호원임을 티 내지 않는 것은 아마도 눈앞에 케빈의 어떤 오더가 있었을 터.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보던 케빈이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그 시계를···. 아무 조건 없이 넘겨주겠다는 말입니까?”
“네. 그냥 넘겨드리겠습니다.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저는 인연과 운명에 대해 남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아무것도 없던 제가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도 그 모든 것들을 허투루 흘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하하하. 서두가 길었는데 제겐 돈보다 중요한 건 ‘사람’입니다.”
“돈보다 중요한 건 사람···.”
내 말을 곱씹듯 되뇌는 케빈.
“저는 비즈니스맨입니다. 아무 조건 없는 선행을 베푸는 건 제 신념에 어긋나죠. 하지만 케빈의 절박함 역시 납득했습니다. 그러니 저와 친구가 되는게 어떻습니까? 새로 사귄 친구를 위해 기꺼이 이 시계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돈거래보다는 이게 더 깔끔하지 않겠습니까?”
“친구···. 허, 딜런은 저에 대해 아는 게 없지 않습니까?”
“굳이 알아야 합니까?”
“….?”
“저는 케빈의 배경이나 신분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저도 그에 못지않다고 자부하거든요. 그냥 제가 친구 하고 싶어서 묻는 겁니다. 물론 거절하셔도 시계는 양도하겠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한번 내뱉은 말은 지키는 성격이거든요.”
“당신은 정말···.”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케빈이 말끝을 흐렸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전혀 문제없습니다.”
어깨를 으쓱하는 나를 케빈이 강렬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살짝 나사 빠져 보이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전신을 꿰뚫는듯한 날카로운 눈빛으로.
찰나의 침묵이 이어졌고 이내.
“푸하하하.”
난데없이 배를 움켜잡고 박장대소를 터트리는 케빈.
“아하하···. 하아. 죄송합니다. 큭큭. 실례인건 알지만···. 후우···.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라 하하하. 놀랍네요.”
“놀라울 게 있나요. 그냥 친구 하자는 건데.”
“아니요. 많이 놀랍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나를 보며 단호하게 답하는 케빈.
접신이라도 한 것처럼 그의 분위기는 종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나름 사람을 잘 본다고 자부해왔는데 처음으로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아예 짐작조차 되지 않는군요. 딜런이란 사람은. 하하하. 그래서 재밌습니다. 흥미로워요. 이거 초대 가주님의 시계를 찾은 것보다 당신이라는 사람을 만난 게 더 기쁠 지경이로군요.”
사실 따지고 보면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말투도 그대로였고, 표정도 그대로였으니.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저 눈빛···.’
어쩐지 많이 보던 눈빛이 아니던가.
북산의 이승환 회장님이나, 오성에 임관훈 회장, 사우디 왕세자 빈사르 같은 사람들에게서 보이던,
세상을 내려다보는 자에게만 보이는 그 특유의 위압과 여유가 케빈에게 느껴졌다.
“딜런이 제게 보여준 조건 없는 호의는···. 감사히 받도록 하죠. 친구···. 합시다. 하하하. 재밌네요. 중국에 날아온 보람이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술 한잔 어떠십니까?”
“술이요? 좋죠.”
이때는 몰랐다.
이 남자가 술 한잔하자는 의미가 무엇인지.
종업원을 부른 케빈이 유창한 중국어로 무언가를 주문하자 곧 테이블에 고급진 술병과 술잔이 올려졌다.
“귀주 마오타이라는 술입니다. 종종 중국에 올 때면 꼭 한 잔씩 하는 마셔보는 술이지요. 제법 입맛에 맞으실 겁니다.”
쨍그랑
맑은 액체가 가득 담긴 술잔을 맞부딪히자 맑고 영롱한 소리가 울렸다.
“아···. 확실히 좋네요.”
이승환 회장님과 마시던 전통주에 비해선 살짝 모자란 감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술맛 자체는 무척이나 훌륭했다.
“50년이나 숙성한 술입니다. 중국 백주 특유의 은은한 단맛과 부드럽고 깔끔한 끝 맛이 매력적이죠.”
“확실히 남다른 술이긴 하네요.”
케빈의 명료한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웩. 무슨 술이 이래요? 밍밍한 것 같으면서 달달한 것이 맹물 탄 거 아니에요? 여기 소주는 없나?”
동시에 아무리 비싼 술도 사람에 따라 돼지 목에 진주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술이란 녀석은 가까이 지내선 안 되는 enemy(적)처럼 여겨야 되는데 좀처럼 끊을 수가 없단 말이죠.”
케빈이 술잔을 이리저리 돌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술이 인간 최대의 적일지도 모르나, 성경에서는 적도 사랑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런 날에는 마셔도 됩니다.”
머리를 거치지 않고 나오는 무근본 드립에 케빈이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딜런은 말솜씨가 좋으시군요.”
이 양반도 웃음이 참 헤프구나.
오히려 좋았다. 리액션이 좋은 사람과 갖는 자리는 나 역시 즐거웠으니깐.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딜런은 어떤 인생을 사셨습니까?”
“아까는 극도로 예의를 차리시더니 이제는 그런 거 없나 보네요?”
“하하하. 친구 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서로 예의 차리는 친구도 있습니까?”
이 양반. 그렇게 안 봤는데 은근히 능글맞은 구석이 있구만.
“그건 맞죠. 제 인생이라···.”
하도 스펙타클해서 정리하기도 쉽지 않다.
“저는 부모의 얼굴을 모릅니다. 갓난아기였던 저를 보육원 앞에 버렸다고 하더군요. 울타리가 없던 저는 당연히 힘든 유년기를 보내야 했고 홀로 살아남기 위해 이를 악 물어야 했습니다. 스스로를 가두고 세상의 불합리함을 원망하며···. 그렇게 살았죠.”
힐끔 케빈을 쳐다보니 아무 표정 변화 없이 내 얘기에 경청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살아선 바뀌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선원이 되었고 바다를 가슴에 품으며 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는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이더군요. 철저히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제 주변엔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로 인해서 제 어둠은 조금씩 씻겨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제게 찾아온 인연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기 시작한 게. 그러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행운을 맞이하기도 했죠. 뭐···. 두서는 좀 없지만, 아무튼 저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함축하고 또 함축하다 보니 다소 철학적인 설명이 된 것 같다.
다행히 어느 정도 이해는 했는지 케빈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히 치열하고 또 거룩한 삶을 살아왔군요. 대단합니다.”
“케빈은요?”
먼저 오픈했으면 응당 상대도 오픈해야 도리에 맞지 않겠는가.
내 물음에 잠깐 침묵하던 케빈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딜런과는 전혀 다른 인생이었습니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그런 삶이었죠. 명망 있는 가문의 장자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습니다. 가지고 싶은 건 모두 가질 수 있었죠. 하하하. 철없을 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내 능력이라고 심한 착각에 빠졌었죠. 그만큼 풍요로운 삶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무언가 빠진 것 같은 공허함이 맴돌았습니다. 당시에는 주변에 사람도 많았습니다. 모두들 제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달콤한 말들을 쏟아냈죠.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정작 가문을 뺀 나라는 존재 자체는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라는 것을.”
그래도 이 양반은 자아 성찰을 꽤나 빨리 한듯싶었다.
보통은 가문의 후광에 취해 개망종으로 각성하는 케이스도 많았기에.
예를 들면 지금은 충실한 내 기부 셔틀이 된 대현 그룹의 문상호 같은 작자들이 그러했다.
“그때부터는 모습을 감추고 역량을 키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정말···.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왔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가문의 이름보다 저 세인트 케빈이라는 사람을 먼저 알아주는 순간이 오더군요.”
“케빈도 훌륭한 인생을 사셨네요. 멋집니다.”
케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니요. 저는 실패한 인생입니다. 딜런은 인연을 소중히 여겼지만 저는 철저히 저 자신만 바라보고 살아왔습니다. 아차 싶어 주변을 돌아보니 신뢰할만한 진짜 ‘내 사람’은 몇 없더군요. 어그러진 걸 바로 잡기엔 세월은 이미 너무 흘러버렸고요.”
담담한 기색으로 말하는 듯 했으나 그의 눈빛은 무척이나 고독해 보였다.
나는 그의 빈 잔에 술을 채워주며 말했다.
“그럼 실패했다가 다시 성공한 인생이 되었군요.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하고 친구가 됐으니 말입니다.”
내 말 한마디에 멍한 얼굴이 되었다가 픽 웃음을 터트린 케빈.
“하하하. 정말 그렇군요. 제가 원래 웃음이 없는 사람인데 올해 웃을걸 여기서 다 웃고 가는 것 같습니다.”
웃음이 없다고?
이 정도로 헤프게 웃는 사람은 이승환 회장님 다음으로 처음인데···.
“아무튼, 뜻밖에 곳에서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되어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혹시 내일 일정이 있습니까?”
“내일은 약속된 일정이 있고 다음 날은 괜찮습니다.”
“그러면 그때 제가 정식으로 딜런을 초대해도 되겠습니까? 시계도 그때 받아가는 걸로 하겠습니다.”
“뭐···. 상관없습니다.”
“하하하. 좋습니다. 그때는 제 본모습 그대로 투명하게 딜런을 맞이하겠습니다. 우리는 이제 친우이니까요.”
“좋네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이틀 후에 재회하기로 약속하고 서로의 전화번호만 교환한 채 자리를 정리했다.
이틀 후에 그가 어떠한 모습을 내게 보여줄지 무척 기대가 되었다.
***
다음 날 오전,
나는 박성민을 데리고 베이징의 몇몇 액셀러레이터를 견학했다가 오후에 공업정보화부(工业和信息化) 본부로 향했다.
나를 그토록 보고 싶어 한다는 샤오 부장을 만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