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35)
235화 겨우 그 말 한마디 했다고 일이 이렇게 된다고요?
서울 마포구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사옥.
대표실 문을 열고 들어온 매튜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중국 정부가 테라노스에 순차적으로 50억 달러(약 6조 7천억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에 내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잘됐네요. 허! 50억 달러라니. 아주 그냥 미끼를 제대로 물어버렸군요. 이렇게 순조롭게 흘러갈 줄은 몰랐는데.”
“운이 좋았습니다. 시기가 매우 적절했거든요.”
“일단 앉아서 차 한잔하며 말씀 나누시죠.”
매튜를 자리에 앉힌 세인트 케빈에게 선물 받은 고급 보이차를 진하게 한잔 내렸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보이차를 한입 들이킨 매튜가 설명을 이어갔다.
“현재 중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조금씩 투자 경색기를 맞고 있습니다. 실제로 벤처캐피탈들의 투자 금액이 감소하는 추세죠.”
“나한테는 자기네들 스타트업 생태계가 그렇게 잘나간다고 자랑을 하더니 웃기네요. 무슨 이유가 있나요?”
“다오추싱 사건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다오추싱? 그건 또 뭐예요?”
“중국에서 가장 잘나가던 모빌리티 플랫폼 회사였던 곳입니다. 몇 년 전에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까지 했던 유니콘 기업이죠. 하지만 상장 직후에 중국 규제 당국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습니다.”
매튜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번에는 또 뭐 때문인데요?”
“사실 중국 정부는 다오추싱이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걸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자국 증시에 상장하길 바랐는데 그걸 무시하고 미국 증시에 상장을 강행해버리니 괘씸죄에 걸려버린 거죠. 이후, 중국 정부는 다오추싱에게 불법 개인정보 수집을 트집 잡아 앱 마켓에서 앱을 삭제시켜버렸고, 카풀, 대리운전, 배송, 버스, 금융 등의 서비스에 모조리 제재를 가했습니다. 추가 성장 동력을 틀어 막아버린 거죠.”
“무슨 하는 짓이 깡패와 다를 바가 없네. 그 꼬락서니를 본 투자자들은 중국 스타트업에 등을 돌렸겠네요.”
“그럴 수밖에 없죠. 그렇게 잘나가던 유니콘 기업도 밉보였다는 이유로 한 방에 날려버렸는데 벤처캐피탈 입장에서는 무서워서 투자하겠습니까? 솔직히 투자자 입장에서는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게 수익적인 부분에서 훨씬 월등한데 그걸 못하게 막아버리니 매력도가 떨어지는건 당연한 일이죠.”
“가지가지 하는 정부네요 정말.”
“하지만 이러한 흐름이 대표님이 생각하신 계획에는 오히려 도움이 됐습니다.”
나는 설명을 요하듯 매튜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봤다.
“벤처캐피탈의 투자가 경직되면서 그 빈자리를 중국 정부가 대신 메꾸고 있는 실정이거든요. ‘테라노스’에 투자를 하는 기관도 베이징시 정부 산하 벤처캐피탈인 베이징 케피탈에서 진행한다고 합니다.”
“흐음···. 이해했습니다. 아무튼, 매튜가 고생 많았어요. 생각보다 너무 잘 처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겸양을 보이는 매튜였지만 매튜의 중국쪽 인적 네트워크는 내 예상을 아득히 넘는 방대한 것이었다.
쩐거펀드, 촹신공창, IGD캐피탈, 리엔시앙즈싱홀딩스와 같은 중국을 대표하는 벤처캐피탈 곳곳에 매튜의 인맥들이 산재해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중국 정부 반응이 이토록 빨랐던 거에요? 아주 그냥 화들짝 놀라서 절차도 무시하고 투자 진행을 한 것 같은데.”
이번 중국 정부의 ‘테라노스’ 투자 집행은 확실히 비상식적이었다.
거액의 투자금이 오가는 만큼 선행되어야 할 복잡한 절차들이 많았지만, 일단 침부터 발라놓자는 생각이었던지 웬만한 것들은 모조리 무시해버렸다.
“하하하. 정말 별것 안 했습니다. 그냥 중국 쪽 VC들에게 우리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가 ‘테라노스’라는 회사에 대한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게 전부입니다.”
“겨우 그 말 한마디 했다고 일이 이렇게 된다고요?”
“딜런은 본인의 영향력에 대해 전혀 인지를 못 하고 있군요.”
“제 영향력이요?
“모르시겠습니까? 전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이 우리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에 집중되어있다는 것을. 아니 정확히 말하면 딜런을 주시하고 있죠.”
매튜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왜 그런···?”
“딜런이 이룩해온 기적 같은 성과들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겁니다.”
매튜가 묵중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는다.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죠? 실제로 투자 업계에도 그런 사례가 많습니다. 별 생각 없이 투자했는데 그게 대박이 난 거죠. 그게 자신의 실력이라고 믿고, 계속 무리한 투자를 했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케이스는 이 업계에서 드물지 않습니다. 때문에 어쩌다 투자 한두 번 성공한다고 그걸 대단하다고 여기는 VC는 거의 없죠.”
후루룩
매튜가 반쯤 식어 미지근한 찻잔에 입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그 성공이 네 번이 되고, 다섯 번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주변의 시선도 달라지죠. 저 투자자가 남다른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여기까지가 되면 시장에서 능력 있는 VC라고 인정받습니다. 업계에서도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죠. 하지만 딜런은···.”
어쩐지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으로 나를 보는 매튜.
“명백히 이레귤러(irregular)입니다. 실리콘 밸리의 전설로 불리는 팀 드레이크, 피에로 로번, 글렌 모리츠도 이 정도의 투자 커리어를 쌓아 올리진 못했습니다. 그들 역시 살아있는 전설로 불렸지만 그만큼 실패도 겪어 왔습니다. 딜런도 잘 알겠지만 투자는 명백히 가능성의 싸움. 다른 VC들에 비해 그 확률을 비약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전설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딜런은 그들과 다릅니다. 실패가 없어요.”
“운이 좋았을 뿐. 앞으로 어떻게 될진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언제든 실패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철저히 ‘빛’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투자해왔고, 앞으로도 큰 틀은 바뀌지 않을 테니.
“물론 수익실현을 하기 전까지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게 투자판이라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모든 포트폴리오가 순항 중입니다. 솔직히 그것 자체만으로도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아마 세계 저명한 통계학자들이 딜런의 투자를 수학적으로 연구한다면 모두가 기함을 토해낼 겁니다.”
“오늘따라 매튜가 제 얼굴에 금칠을 많이 해주시네요. 하하···.”
한도치가 넘는 극찬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매튜의 얼굴은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딜런도 잘 아시겠지만 저는 없는 말은 못 하고, 부풀리는 것도 못 합니다. 있는 사실 그대로 가지고만 얘기할 뿐이죠.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건 그만큼 이 업계에서 딜런의 영향력과 명성이 달라졌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겁니다. 아마 딜런이 특정 회사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문만 퍼져도 당장에 주가가 요동칠 겁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아니오. 무조건 그렇게 됩니다. 이번에 중국 정부가 발 빠른 투자에 나선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죠. 원래라면 그런 투자 진행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딜런이 점찍었다는 소문 하나만으로 헐레벌떡 행동에 나선 겁니다. 먼저 밥그릇 채가기 전에 말이죠. 저도 이번 일을 통해 확신했습니다.”
“흐음···.”
이쯤 되니 매튜가 이런 얘기를 하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이제는 딜런의 행보 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시장의 영향을 주고,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가볍게 내뱉은 말 한마디에 철천지원수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죠. 이제는 많은 이들이 딜런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매튜는 나에게 생긴 영향력만큼 책임감을 가지라는 말과 더불어 너무 안일하게 중국행을 택한 것에 대해 꾸짖음을 하는 것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늘 감사해요 매튜.”
매튜가 아니면 누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인턴과 사수 관계로 만나, 지금은 정말 인생의 선배 혹은 스승으로서 늘 나에게 아낌없는 조언과 충고를 해주는 매튜의 존재가 참으로 기꺼웠다.
주변에 이런 분들이 있어서 내가 정도(正道)를 잘 잡고 걸어갈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제야 주름진 미간을 편 매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딜런은 언제나처럼 잘 해내 갈 겁니다. 괜한 노파심에 한마디 하게 됐군요.”
“그런 노파심이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애가 좀 맛이 갔다고 싶으면 언제든 따끔하게 한 마디 해주십시오.”
“하하하. 후회하실 텐데요? 귀에 딱지 앉으실 수도 있습니다.”
“딱지가 앉아야 새 살도 돋아나는 거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다소 풀린 분위기에 이런저런 사담을 주고받던 중, 매튜가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어찌됐건 이로써 테라노스의 투자는 확정됐습니다. 그래서 묻는 건데 딜런은 테라노스라는 회사의 결말이 좋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여 제게 그런 부탁한 게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이유도 없이 뺨을 맞았는데, 못해도 머리채 정도는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역시 그렇군요. 정말 딜런스러운 복수입니다. 어떤 VC가 한 국가를 상대로 투자라는 수단을 통해 앙갚음하려 할까요. 하하하.”
유쾌한 웃음을 터트린 매튜가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딜런이 보기엔 테라노스가 그 정도로 투자 가치가 없는 회사입니까?”
“매튜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습니까?”
“저도 호기심을 가지고 그곳에 대해 좀 알아봤습니다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솔직히 성공할 확률이 높아 보이는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창업자들의 이력도 훌륭했고, 회사도 데스밸리를 무난하게 잘 넘겼으니까요. 더구나 의료 진단 키트라는 아이템의 시장성이 워낙 좋아서···. 사실 VC 입장에서는 확실히 눈길이 가는 곳임은 확실했습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볼 때 매튜의 말은 틀린게 없었다.
표면적으로는 훌륭한 스타트업의 정석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탄탄대로의 길을 밟아온 회사였으니.
기억을 거슬러 공신부에 방문하기 전, 이른 아침에 중관춘 생명과학단지의 한 액셀러레이터에서 ‘테라노스’의 대표 ‘첸’과의 만남을 떠올랐다.
탄탄한 몸과 지적인 외모, 인텔리의 전형이라 불려도 손색없을 정도의 깔끔한 이미지였다.
방문 당시, 운이 좋게 그의 IR(Investor Ralations) 발표를 듣게 됐는데, 유려한 말솜씨를 뽐내는 달변가였고, 사업에 대한 이해도도 무척 높아 보였다.
‘근데 그런 끔찍한 빛을···.’
하지만 블랙홀에 가까울 정도의 짙은 검은 빛을 내뿜던 모습이 떠오르자 소름이 우수수 올라왔다.
저 정도면 가히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건 아닌지 우려스러울 정도의 불길한 빛이었다.
“지켜보면 알 겁니다. 50억 달러나 되는 돈이 수혈됐으니, 테라노스도 뭔가 보여주기 위해서 빠르게 사업을 확장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터질 겁니다.”
단언하는 내 모습에 매튜가 신기하다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다.
“가끔 보면 딜런은 정말 미래라도 들여다보듯이 말하는군요. 아무튼, 관심 갖고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저는 선약이 있어서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매튜가 대표실에서 나갔고, 나 역시 남은 업무의 마무리를 위해 책상에 앉았다.
[바다의 사나이~ 마도로스 송~]“아놔. 일을 하게 놔두질 않네. 이번엔 또 누구야?”
하지만 발신자를 확인하고선 내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오! 이게 누구십니까? 공사가 다망한 우리 스승님 아니십니까?”
인생의 첫 목표였던 대학 편입 시험.
그 극악한 시험을 통과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해주신 과외 선생 강대웅 형이었다.
대웅이 형하고는 대학에 들어가고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고, 지금은 절친한 형동생 사이가 되어있었다.
방송국 PD가 된 후로 실로 간만에 연락이라 반가움부터 들었다.
[대운아. 잘 지내지? 오랜만에 연락해서 이런 말 하긴 그런데 제발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응? 갑자기? 무슨 부탁?”
[너 내가 연출하는 프로그램에 한 번만 나와주면 안 되겠냐?]“나를?”
[부탁 한 번만 하자!]갑작스러운 부탁에 나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근데 형 교육 방송 PD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