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36)
236화 외국인도 상관없지?
경기도 일산신도시 주엽역 부근 카페.
“대운아 여기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저 멀리서 해맑게 손을 흔드는 대웅이형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에 살짝 남은 곰보 자국에, 검은 뿔테, 이제는 시그니처가 된 더벅머리까지.
내 과외를 봐줬을 때에서 거의 변한 게 없었다.
가끔 문자로 안부 주고받는 걸 제외하곤 이렇게 실제로 만나는 건 근 3년 만이었다.
이전에는 둘이서 종종 술도 마시곤 했지만, 나도 이래저래 일이 많아 바빴고, 대웅이형도 언론고시를 준비한다고 무척이나 바빴다.
그렇게 서로 잊고 지나다가 2년 전, 대웅이형은 교육방송국 TBS에 입사했다고 연락을 전해왔다.
이후에 얼굴 한번 보려해도 신입 PD 라는 게 업무 강도가 어찌나 극악한지 자투리 시간 내기도 쉽지 않아 결국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대웅이형이 나를 안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이야. 송대운이 이게 얼마 만이냐. 가까이 있으면서도 얼굴 한번 보기가 이렇게 힘들다.”
“형이 좀 바빴어야지. 무슨 연락 한번 보내면 다음 날에나 연락 오는 게 말이 돼?”
“자식아. 너도 조연출 한번 해봐. 이건 뭐 PD가 아니고 노예가 따로 없다니깐. 여기 가서 뺨 맞고, 저기 가서 치이고, 맨날 야근에···. 으으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네. 일단 커피 한잔하자. 이 형님이 입사 기념으로 시원하게 한잔 쏘마.”
“얼씨구? 입사한 지 2년이나 지났거든요?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큼큼···. 그러니깐 지금이라도 쏘는 거 아니냐.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금방 대령하마.”
잠시 후, 대웅이형이 커피 두 잔을 트레이에 받쳐서 테이블로 들고 왔다.
“잘 마시겄습니다.”
“네. 잘 마시세요. 현직 TBS PD가 사주는 귀한 커피입니다.”
“아이구 영광입니다. 오늘 제 주둥이가 호강하는군요.”
오랜만에 만났지만, 전혀 어색함 없이 주접을 떠는 우리 두 사람이었다.
“시간 참 빠르지 않냐? 벌써 너랑 나랑 만난 지가 5년이 넘었네. 처음 봤을 때 생각하면···. 송대운이 용됐다 진짜.”
“뭔 소리야? 난 처음부터 용이었는데.”
“용 같은 소리 하고 앉아있네. 난 아직까지 너 처음 봤을 때 절대 못 잊거든?”
“내 처음이 어땠는데?”
“너 기억 안 나냐? 나한테 편입 카페 통해서 처음 연락했었잖아. 자기가 꼭 대학에 합격해야 하는데 한 번만 도와달라고 말이야.”
“내 진정성 있는 사연이 형의 마음을 녹인 거야?”
“그럴 리가. 네가 페이를 높게 불렀잖아. 그것 때문이지.”
역시나 여전히 지독한 현실주의자.
“솔직히 처음에는 페이 때문에 맡은 게 맞아. 그리고 너희 집에 방문해서 너를 딱 처음 보고 진짜 놀랬지.”
“왜? 너무 열정 넘쳐 보여서?”
“아니, 정말 공부 드럽게 안 하게 생긴 관상 있잖아. 어렸을 때부터 오지게 놀기만 했을 것 같은 애들. 니 얼굴이 딱 그랬거든.”
억울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관상으로만 따지면 나는 양아치 상 혹은 독종 상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왜 영화 같은데 보면 보스의 오른팔 역할로 말수도 없고, 주어진 명령만 수행하는 뭐 그런 캐릭터 있지 않은가.
별명이 쌍칼이나, 독사 이런 것들로 불리는.
“어찌 됐건 돈을 받았으니 시작은 했는데… 지금 와서 말하는 거지만 너 영어 실력 테스트했을 때 내가 얼마나 절망했는지 아냐? 어휘랑, 문법이 이건 뭐···. 간신히 중학생 수준은 면하겠더라.”
하긴···. 원양 어선에서 야매로 배운 영어가 전부였고, 제대로 영어를 배워 본 적은 없었으니.
“큼큼···. 나는 실전파라 회화 전문이거든?”
“그러면 뭐하냐. 대한민국 모든 편입시험은 문법, 어휘, 논리, 독해에서 끝나는데.”
“그래서 뒤늦게 열심히 했잖아.”
당시의 나는 내 수준이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 잘 인지하고 있었다.
더구나 시험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았기에 절실한 마음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성실하게 공부했다.
정말 피똥 쌌을 정도로 말이다.
“그건 인정해. 나도 공부할 때 독하다는 소리 좀 들어본 놈인데 대운이 너 공부하는 거 보고 내가 완전히 학을 뗐잖냐. 으···. 지금 와서 말하는 거지만 솔직히 무서울 정도였어.”
“오바하기는. 무섭긴 뭐가 무서워. 얌전히 앉아서 공부만 하는 놈한테.”
“네 눈빛을 네가 못 봐서 그래. 얼마나 살벌했는지 아냐? 이건 뭐 편입시험을 준비하는 건지, 북파공작원 교육을 받는건지 헷갈릴 정도였다니깐. 눈에 독기가 줄줄 흐르는데… 너 그때 거의 18시간 넘게 공부 했잖아. 8개월간 하루도 쉬지 않고 말이야. 그거 웬만한 독종 아니면 엄두도 못 내는 거다.”
진짜 나를 미친놈 그 언저리로 보는 눈빛에 울컥 억울함이 치밀었다.
“형이 그렇게 해야 합격할 수 있다며!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구만.”
“시킨다고 그걸 곧이곧대로 그렇게 하는 놈이 어딨냐 미친놈아. 시간이 워낙 없었어서 솔직히 자포자기하다시피 낸 미션이었어 인마. 근데 그걸 진짜로 해낼 줄은 몰랐지만.”
“헐? 그런거였어? 나는 어떻게든 그 미션 완수하겠다고 코피도 터지고, 피똥까지 싸면서 외우라는 거 다 외운건데 허···.”
“큼큼···. 결론은 대운이 너 정말 대단하고, 성공할만한 자격이 있는 놈이라고. 너 같은 놈이 성공하지 누가 성공하겠냐?”
“갑자기 웬 입에 발린 말? 그나저나 요즘은 좀 살만한가 봐? 바쁘신 양반이 먼저 연락을 다 주시고? 대체 무슨 부탁인데 그래?”
“내가 오죽 급했으면 이렇게 연락해서 너한테 비싼 커피까지 사 먹이겠냐 부탁 좀 하자.”
“그러니깐 무슨 부탁인데? 자세히 설명을 해줘야 뭘 어떻게 도와줄지 판단을 하지.”
“아! 내가 너무 두서가 없었지? 요즘 정신 보따리 반쯤 놓고 다녀서 내가 정신이 없다. 우선 하나 말하자면 내가 이번에 정식 입봉을 하게 됐다.”
“입봉?”
입봉이라 함은 영화감독이나 방송국PD가 고된 조연출 생활을 끝내고 자신이 주체가 되어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들어서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던가.
“오! 형 이제 진짜 PD 되는 거야?”
“그래 짜샤! 이 형님도 이제 입봉작 한번 만들어보라는 오더를 받았다 이말이야.”
“이야! 진짜 축해해! 축하는 하는데···. 근데 그게 부탁이랑 무슨 상관이야? 형은 교육방송 PD고, 나는 교육이랑은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인데.”
무슨 예능이나 하다못해 드라마 엑스트라를 부탁한다면 모르겠지만, 교육방송에서 내가 도움 줄 수 있는 부분이 뭐가 있을까?
내 의문에 대웅이형이 절박한 얼굴로 내 소매를 붙잡았다.
“야 대운아. 너 영어 가르칠 때 내가 정말 혼을 다 한 거 알지?”
“알지.”
“그리고 너 합격했을 때 누구보다 기뻐했던 것도 알지? 나 그때 눈물도 글썽였다?”
“아 글쎄 안다고. 뭔데 그렇게 밑밥을 까는 거야. 그냥 시원하게 말합시다.”
“내가 이번에 연출하는 프로그램명이 [투자가 밉다, 경제야 같이 좀 살자] 거든?”
“투자가 밉다, 경제야 같이 좀 살자?”
“그래. 너도 잘 알다시피 주식하고 코인이 완전 광풍이었잖아. 젊은 애들 중에는 안 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렇긴 하지.”
자신도 그중 하나였기에 부인할 수 없는 팩트였다.
특히나 코인은 광풍을 넘어 거의 광기에 가까운 분위기로 흘러갔으니.
“그 덕에 투자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아졌단 말이지. 당장 점심시간에 카페만 가봐라, 직장인들 하는 얘기가 죄다 코인이니, 주식이니, 서학 개미니 뭐 이런 얘기들뿐이야. 안 그러냐?”
“그것도 맞지.”
나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사옥 1층에 있는 스텔라 커피만 가봐도 그런 주제로 얘기하는 사람이 한 트럭은 됐다,
“내가 세상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과연 본인들이 투자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단순히 투기나 도박성으로 다가간 건 아닌지 자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은 거야.”
“아하. 그러니깐 아무 생각 없이 주식하고 코인 했던 애들 뚝배기 깨버리고 싶다 그 말이네?”
“뭐···. 비슷하긴한데…아무튼, 그 첫 번째 게스트로 너를 초대하고 싶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난색을 표했다.
“영광스럽긴 한데···. 형도 알다시피 나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리스트야. 코인이나 주식하고는 거리가 좀 멀다고.”
“어차피 다 같은 물줄기 아니냐. 리스크에 배팅해서 수익을 얻는 본질은 같잖아. 그리고 너 예전에 나한테 말했지? 너도 코인에 잘못 손댔다가 원양 어선까지 탔었다고. 사실 그 스토리가 계속 생각 나서 무조건 너를 첫 게스트로 써야겠다 싶었던거야.”
무서운 양반 같으니.
흘러가듯 말했던 얘기를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생각해봐. 너도 어떻게 보면 코인 때문에 인생 말아먹을 뻔했다가 뒤늦게 정신 차려서 빚 다 갚고, 대학도 가고, 사업으로도 성공한 거 아니냐. 안 그래?”
“뭐···. 크게 보면 비슷하지?”
“그런 네가 나가서 이런저런 얘기 해주면 주식이나 코인으로 큰돈을 잃은 사람한테 얼마나 큰 힘이 되겠니? 너는 그 사람들의 희망이고 별이야. 방송 한번 나가는 것만으로 한강에 뛰어들 사람들 서너 명은 구할 수 있다고.”
“그···. 런가?”
비약에 비약을 거듭하는 대웅이형의 언변에 어쩐지 조금씩 말려가는 느낌이었다.
“너 기부도 많이 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한다며? 이것도 일종의 사회공헌이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정확히 내가 뭘 해야 하는지만 설명해봐.”
“별거 없어. 어차피 진행은 전문 MC가 할거고, 너는 질문에 답변만 해주면 돼. 질문은 너튜브 LIVE 방송으로 구독자들한테 즉흥적으로 받을거고.”
“주로 무슨 질문을 하려나?”
“뻔하지 뭐.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몰릴 테니, 주로 투자에 관한 얘기나, 세계 경제 흐름 뭐 이런 것들에 대해 물어보지 않겠어?”
“흠. 그런 쪽으로는 별로 자신 없는데···.”
참고로 경제학이나, 어떤 이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젬병이었다.
내가 우려를 내비치자 혹시나 거절할까 두려웠는지 대웅이형이 다급히 말했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은···. 아! 그래. 주변에 혹시 그쪽 관련 전문가 있으면 그 사람들 도움받아도 돼”
“그래? 그럼 얘기가 좀 다르지.”
내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자 대웅이형이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부담가질 필요 없어. 그럼 하는 거다? 응?”
“아 알았다고. 형 입봉작인데 내가 도울 게 있으면 당연히 도와야지.”
“고맙다! 대운아 고마워! 이제야 한 시름 놨네. 후우···. 됐어! 너가 나온다고 하면 국장님도 편성이랑 예산 빵빵하게 넣어주실 거다. 으하하하.”
“내가 나가는 거랑 그거랑 뭔 상관인데?”
심드렁한 내 말에 대웅이형이 황당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이놈 이거 겸손이 극에 달한 거냐? 아니면 생각이 없는 거야?”
“뭐가?”
“너 요즘 네 주가가 어떤지 모르냐? 여기저기서 연락 많이 왔을 텐데?”
“예전에 기자한테 당한 게 있어서 그런 쪽 전화는 아예 받질 않는 중.”
“그래? 아무튼, 언론에서 너 인터뷰 한번 따려고 눈에 혈안이 되어있다더라. 흐흐 물론 내가 제일 먼저 따게 됐지만.”
“알았으면 나중에 술이나 거하게 한잔 사.”
“돈도 많은 놈이 벼룩의 간을 내먹으려고 하네. PD가 얼마나 박봉인지 알고 하는 소리냐?”
“삼겹살 살 돈은 되잖아.”
“멕시코 산 괜춘?”
“콜”
“오케이 그건 내가 거하게 산다. 방송만 잘 끝나면.”
“알겠어. 잘 준비해볼게.”
“그나저나 너 알고 지내는 경제 전문가는 있냐?”
대웅이형의 물음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암. 있고말고. 외국인도 상관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