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 치트키
경기도 일산 TBS 방송국 스튜디오.
이른 아침부터 스튜디오가 분주했다.
조연출은 허둥지둥하며 이곳저곳 오가기 바빴고, 작가들도 연신 큐시트를 점검하기 바빴다.
그중에서도 가장 바쁜 이는 단연 프로그램의 연출을 맡은 강대웅 PD였다.
“녹화 얼마 안 남았습니다! 다들 조금만 고생합시다!”
종횡무진 현장을 돌아다니며 스텝들을 독려한 강대웅이 뿌듯한 얼굴로 주변을 쓱 둘러봤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내 손으로 만든 프로그램을 세상에 내보내는 순간이 올 줄이야···.”
이 얼마나 꿈꿔왔던 광경이던가.
잘 다니고 있던 인서울 하위권 대학을 자퇴하고, 대학 편입을 했던 이유 역시 방송국 PD가 되기 위함이었다.
방송국 PD 자체가 학벌이 무척 중요했으니.
그렇게 죽을 노력을 다해 서울 상위권 대학에 들어갔고, 이후로는 오직 언론고시만을 준비해왔다.
고된 여정이었지만 꿈이 연료가 되고, 목표가 나침판이 되니 힘들 것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관록이 붙으니 어떤 방송국이든 합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뛰는 놈 위엔, 나는 놈이 있듯이 세상엔 정말 잘난 사람들이 많았고, 운명의 장난처럼 늘 최종 면접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렇게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횟수만 자그마치 다섯 번.
자신과 같이 공부하던 이들이 하나둘씩 언론인이 되거나, 아예 다른 길로 트는 것을 보고 강대웅 역시 선택의 갈림길에 설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하늘에서 PD 하지 말라고 억까하는 수준 아닌가?’
남들보다 몇 배 이상 노력해왔고, 그 누구보다 절박하게 매달려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잔인한 현실은 늘 그런 자신을 외면해왔다.
‘절대 포기 못 해. 아니, 안 해! 안되면 될 때까지 계속한다. 생활비야 알바라도 하면 되지.’
그렇게 강대웅은 1년을 더 취준생 신분으로 살아야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그 절실함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강대웅은 마지막 하나 남은 TBS 공채 신입 PD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연이은 탈락의 고배로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강대웅은 영혼 없이 지하철에 앉아있다가 날아든 합격 문자에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질렀다.
“으아악! 합격이다! 으하하하! 합격이야! 여러분! 제가 합격했어요! 저 이제 PD라고요! 하하하.”
민폐임은 잘 알았지만, 너무도 절실히 바라왔던 합격이었기에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들어온 방송국이었건만 강대웅 앞에는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조연출 생활의 악명에 대해서는 언론고시를 준비할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왔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이건 웬만한 멘탈가지고는 버티기도 힘들 정도였다.
매일같이 편집실에 처박혀있는 일상이다 보니 워라밸 따위는 개나 줘버려야 했고, 신경 써야 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보니 꿈을 꿔도 일과 관련된 꿈만 꿀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시련들은 결코 강대웅의 열망을 꺾지 못했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된 조연출 생활을 버텨냈고, 그런 강대웅의 모습은 윗선에서도 좋게 보여 남들보다 조금 빠른 입봉을 하게 된 것이었다.
‘무조건 성공시킨다.’
이 순간을 위해 이십 대 청춘을 헌납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바삐 달려온 강대웅이었기에 입봉작에 대한 기대와 열정은 남다른 것이었다.
결의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입술을 한번 짓이긴 강대웅이 스튜디오 의자에 앉아있는 MC 박인수에게 다가갔다.
“뭐 불편한 부분 있으십니까?”
강대웅의 목소리에 박인수가 고개를 들어 웃음을 내보였다.
“아하하. 아닙니다 피디님. 열심히 대본 숙지하고 있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보는 내용이라 생소한 것들이 좀 있네요.”
개그맨 출신 박인수는 명문대 경제학과 출신이라는 학력 덕분에 학식이 있는 인물이었다.
이 때문에 애초부터 MC 자리는 박인수로 낙점해놓은 상태였다.
“오늘 첫 방송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해야죠! 그런데 오늘 첫 게스트가···?”
“안 그래도 거의 다 와 간다고 합니다.”
“아하하. 기대되네요. 굉장히 대단하신 분이라고 얘기는 들었는데···.”
“그 친구가 방송 쪽으로는 문외한이라 좀 버벅대더라도 잘 이끌어주시길 바랍니다.”
“걱정 마세요. 제 전문이 그쪽 아니겠습니까? 하하.”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이는 박인수의 모습에 강대웅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잠시 후,
“오! 왔냐 대운아!”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왔다고 이리 반가워할까?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대운의 모습에 강대웅이 버선발로 뛰쳐나갔다.
***
“확실히 교육방송답게 여긴 그래도 분위기가 좀 차분하네.”
스튜디오를 둘러본 소감이었다.
방송국을 많이 다녀본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다른 지상파 방송국과 비교해볼 때 거친 고성이 오가거나 그러진 않았다.
물론 날 선 긴장감이 흐르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오! 왔냐 대운아!”
저 멀리서 한걸음에 내달려오는 대웅이 형.
짙은 다크서클에 홀쭉하게 들어간 양 볼이 그간의 마음고생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야. 정장 입으니깐 몰라보겠다 야. 얼굴 때깔이 달라 보이네.”
“형은 얼굴이 완전 갔는데? 잠은 잔 거야?”
“너 같으면 잠이 오겠냐? 반평생 이것만 보고 달려온 사람인데?”
“이 방송만 하고 은퇴할 것도 아닌데 좀 쉬엄쉬엄해. 그러다가 몸 상할라.”
“몸 좀 상하더라도 입봉작만큼은 정말 후회 없이 해야겠다 나는.”
광기마저 느껴지는 대웅이형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나저나 준비는 잘 했냐?”
“그렇게 닦달을 해대는데 안 했겠어?”
“흐흐흐. 역시 내 소울 메이트! 1번 동생 송대운 답구만! 예상 질문 받아본 건 어땠어? 우리 작가들이 나름 선별해서 뽑은 건데.”
“뭐···. 재밌는 질문도 있고, 어려운 질문도 있고.”
“어려운 건 괜찮겠냐?”
“흐음···. 내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해서 답변 가능한 것들은 몰라도, 좀 전문적인 영역의 질문은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기로 했어. 그건 너무 걱정하지마.”
“누가 걱정했다고 그러냐? 내가 너를 얼마나 믿는데. 걱정 하나도 안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어제부터 계속 문자로 사람을 들들 볶아?”
내 핀잔에 대웅이형이 멋쩍은 듯 얼굴을 긁적였다.
“그건 인마. 혹시 도움 필요한 부분 있으면 즉각 처리해주려고 그런거지. 다 관심이야 관심.”
“관심 몇 번만 더 받으면 아주 그냥 정신병 걸리시겠어. 연애는 제발 그런 식으로 하지마. 여자들 다 도망갈라.”
“여자 만날 시간이 어딨냐? 프로그램 만들 시간도 없는데. 너야말로 여자 좀 만나라. 계속 그렇게 스님처럼 살래? 내가 예쁜 신입 피디나 아나운서 소개해준다니깐 그러네. 솔직히 너 정도면 줄 설거아냐?”
“아 됐어요. 나 알아서 잘 해요.”
“알아서 못하니깐 나까지 나서는 거지. 너 생각 잘해라?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야.”
“방송하러 온 사람한테 쓸데없는 소리만 하고 앉아있네. 나 이제 뭐 하면 돼요?”
“아차차. 간단히 메이크업만 받고 바로 촬영 들어갈 거다. 진행자가 알아서 편하게 잘 해줄 테니까 넌 따라가기만 하면 돼.”
이후, 대웅이형이 이끄는 대로 가서 메이크업을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웅이형이 스탠바이 사인을 했다.
“자!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큐 사인과 함께 카메라에 빨간불이 들어오며 진행자인 박인수가 오프닝 멘트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투자가 밉다, 경제야 같이 좀 살자]의 진행을 맡은 개그맨 박인수입니다. TBS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프로그램인 만큼 첫 게스트 역시 범상치가 않은데요. 현재 한국은 물론 실리콘밸리에서도 맹활약을 떨치고 있는 벤처캐피탈리스트 송대운 대표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송 대표님.”
진행자의 제스쳐에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를 만들고, 경영하고 있는 벤처캐피탈리스트 송대운이라고 합니다.”
“하하하. 저도 어디선가 송대표님 기사를 본 기억이 있는데요. 이번에 대한민국 개인 자산 순위에 이름도 올리셨다고···? 축하드립니다. 외람되지만 제가 형이라도 불러도 될까요?”
“어휴. 아닙니다. 왜 그런 기사가 올라갔는지 모르겠네요.”
“하하하. 농담입니다.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 벤처캐피탈리스트라는 용어가 다소 낯설게 느껴지시는 분도 계실 것 같은데 주로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간단히 소개 좀 해주시겠습니까?”
“음···. VC는 유망한 스타트업이나 잠재성이 있는 비상장 회사를 발굴해서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미래성, 시장성 등의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자본 투자를 합니다. 이후에 성장과 상장까지 시키는 그러한 역할을 합니다.”
“저도 대학 다닐 때 창업 동아리 활동을 한 적 있어서 마냥 낯설지만은 않은 이름인데요. 물론 그분들에게 철저히 무시당하긴 했지만요. 하하하. 요즘 가장 잘나간다는 VC가 보기에 요즘 벤처캐피탈 시장 어떻게 보십니까?”
“최근 벤처캐피탈 업계는 양적, 질적 모두 많이 성장했습니다. 몇 가지 측면에서 보면 벤처캐피탈로 유입되는 자금 규모가 굉장히 커졌고, 덩달아 창업자들의 숫자도 늘어나는 추세죠.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라면 과거와 비교했을 때 과거에는 장비 부품업체나 소재 업체가 많았다면, 지금은 인터넷, 모바일, 콘텐츠 분야의 창업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볼 수 있겠네요.”
“대표님이 보시기엔 벤처캐피탈리스트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요?”
“많은 매력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하나 꼽자면 제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꿈과 비전을 얘기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분들과 함께 성장해나가는 점이 가장 보람되고 매력적으로 다가오죠.”
“호오. 꿈이라···. 말은 굉장히 낭만적으로 하셨지만, 대표님의 투자 성과를 들여다보면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제가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을 정도인데요. 최근 실적만 살펴봐도 SNS인 ‘베슬로’의 나스닥 상장으로 대박을 터트리셨고, 유럽과 중동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게임회사 스튜디오SH의 엑싯을 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에 큰 이슈가 되었던 미국의 ‘이지스 머터리얼즈’ 투자 건은 그야말로 초대박 중 초대박이라고 평가받고 있는데요. 대표님이 스타트업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그건 VC마다 견해가 다를 겁니다. 하지만 철저히 제 입장만 말씀드린다면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입니다. 아무리 좋은 무기와 지형을 선점하고 있더라도, 그걸 휘두르는 사람에 문제가 있다면 모든 게 무용지물이 될 테니까요.”
“사람에 투자한다라···. 다소 모호한 개념일 수 있는데요. 혹시 벤처 투자에 관한 공부는 따로 하시는 편인지?”
“따로 공부랄 건 없지만 창업자들을 만나고 그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것 자체가 일인 직업이라 시장에 대한 공부는 어느정도 하는 편입니다.”
내 답변에 어느 정도 만족했는지 진행자가 물 흐르듯 다음 코너로 넘어갔다.
“자! 지금까지는 사실상 애피타이저였고,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 시청자분들의 궁금증을 해결해보는 시간입니다. 지금 라이브 시청자가 꽤 많은데요. 질문 한번 받아봐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그러려고 나왔는걸요. 뭐든 좋습니다.”
“역시 젊은 나이답게 패기가 넘치십니다. 좋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허···. 이건 질문이 좀 난이도 있는데요?”
살짝 난색을 표한 진행자가 마지못해 질문을 던졌다.
“정말 열심히, 개처럼 일만 해서 돈을 모아도 투자만 하면 매번 돈을 잃습니다. 도대체 제 문제가 무엇인지 경제학적인 접근으로 답변해주실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인데···. 답변 가능할까요?”
그냥 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경제학과 엮어서 알려달라는 까다로운 주문이었다.
“물론 가능합니다.”
“오! 대단하십니다.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전화찬스 쓰겠습니다.”
“네?”
나는 강대웅 PD를 보며 물었다.
“PD님? 전문가한테 도움 받아도 된다고 하셨죠?”
대웅이 형이 벙찐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곧장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 휴대폰 액정에 모습을 드러낸 백발의 노인.
“HELLO?”
“교수님. 저 딜런입니다.”
“오~ 딜런! 아하하. 정말 이렇게 연락을 주셨군요.”
살짝 당황한 진행자가 내게 물었다.
“저···. 이 분은 누구시죠?”
“현직 하버드 경제학과 교수님이시자 전년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신 라파엘입니다.”
그 어떤 질문이라도 답변해줄 수 있는 치트키가 있는데 굳이 내 입이 수고할 필요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