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44)
244화 특별한 휴가
흔히들 사우디아라비아는 부자들만 있으며, 가난한 이들은 없다는 오해를 하곤 한다.
세계 최대의 산유국으로서 석유가 가져다주는 풍요 덕분에 돈이 넘쳐나는 곳이지만, 역설적으로 부가 늘어나는 만큼 이면에는 가난의 그늘도 옅지 않다.
당장에 수도인 리야드 외각만 가더라도 쓰레기로 뒤덮인 콘크리트 집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우디의 명과 암이었다.
***
“아이들이 그렇게 보고 싶었던가? 아주 눈을 떼지 못하는군.”
“그게 아니라···.”
빈사르의 목소리에 번뜩 상념에서 깨어났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보게된 황금빛에 순간 당황한 것이었다.
정신이 없었지만,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매불망 내 눈치만 살피고 있는 새싹 보육원 아이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얘들아. 여기서는 눈치 안 봐도 되니깐 정신 놓고 놀아. 아! 그리고 저기서 놀고 있는 애들 보이지? 쟤들도 내 동생들이거든? 그러니깐 친하게 지내야 해. 알겠지?”
“응응!”
“알게써여!”
누구 동생들인지 대답 하나는 똑 부러지게 잘한다.
내 허락이 떨어지자 구명조끼를 착용한 아이들이 우르르 해변으로 몰려갔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다가 빈사르 옆에 있는 선베드에 걸터앉았다.
“아이들이 참 좋아하는군.”
“좋아할 만하죠. 이런 곳은 난생처음일 텐데. 이게 전부 왕세자님의 하해와 같은 배려 덕분입니다. 아이들을 대신하여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그런 말은 하지 말게. 그런 말 듣자고 추진한 일은 아니었으니. 그대와 나 사이에 이 정도가지고 공치사를 논할 필요는 없어.”
“빈말이라도 감사하다고는 해야죠. 예의상.”
“끌끌끌. 이럴 때는 또 빈말을 하기도 하는군.”
너털웃음을 터트린 빈사르가 직원을 불러 무알콜 모히또를 주문했다.
“갈증 날 텐데 한잔하지.”
“감사합니다.”
머리가 쨍할 정도로 시원한 음료를 들이키자 뜨거웠던 머리가 다소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래, 천천히 알아가면 되지. 급할 것 없잖아?’
급하게 서두르면 잘 풀릴 일도 엉클어지는 법이다.
어차피 이곳은 허가받지 못한 자는 들어올 수 없는 금지(禁地).
고로 놓치거나 엄한놈이 체갈 일도 없었다.
“올 때는 힘들었는데 막상 와보니 너무 좋네요.”
“마음에 드는가?”
“어후, 마음에 들다 마다요. 저는 사유지라고 하길래 별장 정도를 생각했는데···.”
고개를 돌려 주변 전경을 한번 쓱 훑었다.
이건 별장 수준이 아니라, 웬만한 리조트 못지않은 규모와 퀄리티를 자랑하지 않는가?
역시나 내 예상 범주를 뛰어넘는 클라스였다.
“괜히 웃돈 주고 부지를 매입한 게 아니지. 나 역시 국정 업무에 시달리다가 쉬고 싶으면 항상 여기부터 생각나더군.”
“설마 이런 곳이 몇 군데 더 있습니까?”
“당연하지 않은가? 너무 한 곳에만 매여있으면 물리는 게 인간이란 동물일세.”
“그건 맞는데···.”
그래서 보통 인간들은 그래서 여행지를 바꾸지, 아저씨처럼 마음에 든다고 땅자체를 막 사재끼진 않는다고요.
하지만 일반적인 상식에서 그를 이해해선 안 된다는 걸 잘 알았기에 애써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왕세자님은 물에 안 들어가십니까?”
“음···. 나는 물이 살에 닿는 걸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네. 그대는?”
“잘 아시겠지만, 과거에 몇 년 동안 망망대해에서 물고기만 잡았더니 그냥 보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우린 이런 쪽도 잘 맞는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준비는 해왔겠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가방을 열어 게임 전용 휴대폰과 대용량 보조배터리를 꺼내 보였다.
그제야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빈사르.
“완벽하군. 그럼 ‘자쿰’ 레이드···. 시작해볼까?”
“잠깐! 왕세자님도 준비 끝나셨습니까? 저한테 기대해도 좋다면서요.”
내 물음에 빈사르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그려졌다.
“후후, 걱정 말게. 이번에 ‘부라끄(Buraq)의 검’ 13성 인챈트에 성공했으니.”
“세상에···? 시, 십삼 성이요?”
미친 사람이 따로 없었다.
하람샤힌에서 현존 최강 검으로 꼽히는 ‘브라끄의 검’은 보스몹 중 하나인 ‘브라끄’를 잡으면 아주 극악한 확률로 드랍되는 아이템이었는데, 그래픽으로 된 검 한 자루가 웬만한 명품 가방 뺨칠 정도의 시세를 자랑했다.
7성 이상 인챈트 시, 아이템이 깨질 수 있는 특성상 13성 인챈트에 성공했다는 것은 그만큼 대량으로 구매해서 마구잡이로 강화 주문서를 발랐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한마디로 미친 돈 지랄을 했다는 말이었다.
“그 정도면···. 진짜 전 서버 최초로 ‘자쿰’ 레이드에 성공할 수도 있겠네요. 한번 가보시죠!”
“기대해도 좋을 걸세. 성능은 그대가 생각하는 그 이상일테니.”
그렇게 우리는 해변가에 아이들을 던져두고, 바다 대신 게임 속 세상으로 몸을 풍덩 담갔다.
아이들 안전은 걱정되지 않냐고?
전혀 걱정할 일은 없었다.
해군 특수부대 출신 라이프 가드들이 눈에 불을 켜고 아이들의 안전을 관리하고 있었으니.
그렇게 두 시간이 흘러갔다.
***
“꺄하하! 재미따아!”
“aidfae al’unbub alkhasa bi!(내 튜브 좀 밀어줘!)”
언어와 피부색은 다르더라도, 표정과 뉘앙스만으로도 금세 친해진 양국의 아이들이 꺄르르 웃으며 연신 물놀이 하기 바빴다.
그리고 모래사장 선베드에는 그와 사뭇 다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는데···.
“딜이 부족해요! 딜 더더더!”
“후우···. 도대체 이 망할 놈의 식물은 언제 죽는단 말인가?”
“이게 거의 다 끝났어요! 아마 지금이 마지막 페이즈일거에요. 조금만 더 버텨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연신 휴대폰 액정을 두다다 두드리는 두 성인 남자.
얼굴만 보면 금방이라도 휴대폰 속으로 빨려들어 갈듯했다.
“오오! 드디어 ‘자쿰’의 몸통이 붉어졌습니다! 이제 진짜 다 끝났어요!”
“아까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진짜 거의 다 왔다니까요! 조금만 힘내봐요! 어? 거기 있으면 나뭇잎 칼날 맞습니다. 조금 더 뒤로 물러서세요!”
긴박한 전투가 계속 이어졌고, 우리 두 사람의 이마에서 구슬땀이 또르르 떨어져 내렸다.
뜨끈하게 달아오른 휴대폰에 손이 익어갈 때쯤.
[Boss Zaqqum Clear!!!] [전 서버 최초 ‘자쿰’ 레이드에 성공하였습니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깨, 깼다!”
조금씩 바스러지며 산화해가는 ‘자쿰’의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빈사르를 쳐다봤다.
그 역시 믿기지 않는지 멍하니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내, 두 눈을 마주친 우리는.
“만세!”
서로를 얼싸안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와. 진짜 징글징글하네. 왜 이렇게 안 죽냐 진짜. 미치는 줄 알았네.”
자쿰의 공격에만 대비한게 명백한 실수였다.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내구력을 보유하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펑거스의 눈물’로 자쿰의 가시 줄기 재생은 차단할 수 있었으나, 치가 떨릴 정도의 무지막지한 체력통은 미처 간과했던 것이었다.
“손가락이 마비될 지경이군. 시간이 얼마나 걸린 거지?”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후. 1시간이나 흘렀네요. 보스 하나 때려잡는데 무슨···.”
“어쨌거나 잡았으면 된거 아닌가? 이걸 우리 둘이서 잡을 줄이야. 정말 믿기지 않는군. 이 모든 게 그대가 전략을 잘 세웠기 때문일세.”
“무슨 말씀입니까? 아무리 좋은 전략이라도 화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공략은 절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13성 부라끄의 검···. 그거 진짜 물건이네요. 혼자서 랭커 삼사 인분 딜은 다 한거 같은데요?”
은근슬쩍 빈사르의 공을 치하하자 그의 입언저리가 꿈틀거린다.
“돈 쓴 보람이 있군.”
“오늘 보니깐 컨트롤도 많이 좋아지셨던데요? 연습 많이 하셨나봐요?”
“내가 연습할 시간이 어디있나. 그냥 하다 보니 숙달된게지.”
분명 짬짬이 시간 내서 연습한 게 분명했다.
지난번과 숙련도 차이가 말이 되질 않았으니.
“어찌 됐건, 이걸로 우리는 전 서버 최초 ‘자쿰’ 레이드 공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습니다. 하하하. 그것도 단 두명이서 말이죠.”
짝!
내가 내민 손을 쿨하게 맞부딪힌 빈사르.
최대한 티 안 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내 눈엔 다 보인다.
아주 좋아 죽으려고 한다는 것을.
그때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앙칼진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낯익은 여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복장이.
“야 인마! 너, 너 복장이 왜 그래?”
“뭐가? 물놀이 할건데 수영복 입은 게 뭐가 어때서?”
세상 당당하게 외치는 유라의 말에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지원이 넌 또 왜···.”
“그럼 바닷가에 정장 입고 올까요?”
“슬기씨는···.”
“네? 뭐가요?”
“아닙니다.”
생각해보니 내가 좀 이상하게 생각한 듯했다.
해변에서 수영복 입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
“그래도 비키니는 좀···.”
어쩔 수 없는 유교 보이인지라 좀 껄끄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내 옆에 있는 빈사르의 존재를 인식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왕세자님. 저 복장 괜찮으십니까? 혹시 불편하시면···.”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로 손꼽히는 곳이 사우디 아니었던가.
혹시나 그의 심기가 불편하진 않을까 싶었지만.
“뭐가 문젠가? 이곳은 내 사유지라 전혀 문제없네. 그리고 우리 사우디도 예전의 사우디가 아니야. 지금은 여인의 수영복과 음주가 허용되는 관광특구까지 조성했으니 말일세.”
“아···. 그래요?”
사우디 젊은 층으로부터 지지도가 엄청나다더니 확실히 상대적으로 열린 사고를 지닌 빈사르였다.
“근데 오빠는 저분이랑 여기서 휴대폰 붙잡고 뭐 하는 거야?”
유라의 물음에 순간 당황하여 머리를 거치지 않고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응? 아···. 업무. 업무 보고 있어.”
“헐. 여기까지 와서 일을 한다고? 완전 일 중독이네 일 중독.”
“하하···.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라···. 여러분끼리 놀고 계세요.”
“응. 알겠어! 언니들 얼른 물에 들어가요! 와! 여기 완전 좋다! 이런 데가 있네? 사람들 눈치 안 봐도 되고! 대애박!”
이지원과 홍슬기 가운데에 선 유라가 그녀들의 팔짱을 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나저나 언제 저렇게 친해진 거지?
“그럼 저희 먼저 가서 놀고 있을게요.”
“네네. 그렇게 하세요.”
“오빠도 빨리 끝내고 같이 놀아요.”
“그래그래.”
그렇게 그녀들을 먼저 보냈고,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빈사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가 첫번째 부인인가?”
“네?”
“셋 다 그대 부인 아닌가? 누가 첫번째 부인인지 묻는걸세. 방금 자네에게 말을 걸었던 여인은 딱 봐도 막내 부인 인듯하군.”
무서운 소릴 아무렇지 않게 하는 빈사르를 향해 격하게 손사래를 쳤다.
“그, 그런 거 절대 아닙니다! 그냥 전부 아는 동생들입니다. 한국에서 그랬다간 저 경찰서 끌려갑니다.”
“그런가? 흐음···. 그렇군.”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빈사르와 다르게 내 등허리에선 식은땀이 또르르 흘렀다.
“세상에, 대한민국 톱 여배우에, 북산가 재벌 4세에, 요즘 제일 잘 나간다는 아이돌이 부인이라니, 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말도 안 되는 가정에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바다 저 너머 수평선이 석양으로 인해 붉게 물들어갔다.
나는 아이들과 여자들을 챙겨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와아···. 완전 좋아!”
온갖 산해진미가 총출동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어마어마한 음식들이 나열되어있는 식당을 보고 환호를 지른 아이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갔다.
“맛있게들 먹어라.”
“네에!”
“여기 계신 턱수염 아저씨가 사주신 거니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감따합니다!”
돌아가며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며 빈사르가 희미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왕세자님은 식사 안 하십니까?”
“점심을 거하게 먹었더니 저녁은 생각이 없군. 나는 먼저 들어가 쉬겠네.”
그렇게 빈사르가 자리를 떠났고, 드디어 기회를 포착한 나는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목표물을 향해 걸어갔다.
외딴 섬처럼 홀로 동떨어져 황홀한 황금빛을 흩뿌리던 까무잡잡한 사우디 소년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