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45)
245화 너는 꿈이 뭔데?
“안녕?”
아이에게 다가가 최대한 해맑게 인사를 건넸지만, 아이는 마지못해 한다는 듯 고개를 꾸벅했다.
“여기 좀 앉아서 같이 먹어도 되겠니?”
끄덕끄덕.
아이의 허락이 떨어지자 나는 녀석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음식은 입에 맞아?”
“뭐든 맛있게 먹어야죠···.”
어째 대답이 좀 이상했다.
맛있다는 것도 아니고, 맛있게 먹어야 한다니.
숟가락을 뜨며 아이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나이는 13세에서 15세 사이 정도로 보였고, 깡마른 체격에 커다란 코가 인상적이었다.
특징적인 부분은 아랍인 특유의 이목구비는 그대로 보였지만, 피부색은 흑인의 그것에 가까웠다.
‘아랍 흑인인가 보네.’
아랍 흑인은 아프리카에서 아랍 국가로 이주한 흑인을 의미하지만, 흑인 혼혈도 아랍 흑인으로 정의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구 10% 정도가 아랍 흑인이라고 하니, 딱히 이상할 건 없었다.
녀석의 주변을 한번 쓱 훑었다.
근처에 아이들이 붙어 있지 않을 걸 보니, 그리 사교적인 성격은 아닌듯했다.
“나 누군지 알아?”
“잘 알고 있어요. 이사장님이시잖아요.”
아이답지 않은 딱딱한 말투.
일찍 철들어서 어른 행세하는 전형적인 어른아이었다.
“이사장님은 무슨 이사장님이야. 그냥 형이라고 해.”
“제가 먹고, 자고 할 수 있는 게 이사장님 덕분인데 배은망덕하게 그럴 수야 있나요. 주변에서 좋지 않게 볼 거에요.”
녀석의 말에 나는 잠깐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 녀석이길래 이리도 속 늙어버린 걸까?
황금빛은 왜 이 아이에게 흘러나온 것이고?
녀석의 경계 어린 태도가 내 호기심을 더욱 부채질을 했다.
“그럼 그냥 너 편한대로 불러. 나는 널 뭐라고 불러야 하니?”
“저는···. 다우드라고 합니다.”
“다우드? 멋진 이름이네.”
“감사합니다···.”
이름을 칭찬하자 좋아하는 듯하더니 빠르게 표정을 수습하고선 고개를 푹 숙였다.
왜 나는 이런 애들만 보면 저 포커페이스를 깨버리고 싶은 욕구가 드는 걸까?
나 변태는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내 이름이 이사장은 아니니깐, 딜런이라고 불러줘. 그 정도는 괜찮잖아?”
“예. 딜런님.”
“오케이. 일단 밥부터 먹을까? 괜히 나 때문에 밥 먹다 끊겼네.”
“괜찮아요. 거의 다 먹었어요. 저는 먼저 이만···.”
황급히 자리를 정리하려는 다우드를 보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와! 다우드 그렇게 안 봤는데 영 의리가 없구만. 적어도 이 형님 먹는 건 기다려줘야지.”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보육원 생활 끝나나?”
“아, 아닙니다.”
뉘앙스는 장난조였지만, 이런 건 처음 겪어보는지 다우드의 무표정한 얼굴에 당황이라는 감정이 깃들었다.
“그럼 기다려 줄 거지? 혼자 밥 먹는 거 엄청 외롭단 말이야. 네가 말동무 좀 해줘라. 부탁 좀 할게.”
“그렇게 할게요.”
“그래도 너무 멀뚱멀뚱 있는 건 좀 그러니깐···. 이거라도 먹어.”
나는 접시에 담겨있던 과일들을 다우드의 접시에 옮겨담았다.
“감사합니다.”
“다우드 넌 인사성이 참 좋구나?”
“그래야 덜 미움받으니까요.”
“왜? 어디서 미움받는 편이야?”
“제 피부색도 그렇고, 제 성격도···. 좀 애들이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아요.”
“흐음···. 그래보이긴 하네.”
내 말에 다우드의 얼굴이 살짝 시무룩해졌다.
“근데 이상하게 난 네가 마음에 드는데?”
슬그머니 고개를 든 다우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째서요?”
“이유가 있어야 하니?”
“이유도 없이 사람을 좋아할 수가 있나요?”
“그냥 사람 자체가 좋을 수도 있지.”
“어···. 음. 잘 모르겠어요. 그게 어떤건지.”
어쩐지 이 녀석은 사람에게 필요한 무언가가 살짝 결여된 느낌이었다.
나는 다우드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살짝 흐리멍덩한 눈빛에서 내가 엿 볼 수 있던 건···.
‘슬픔, 공허, 우울, 좌절.’
한창 잼민스러운 모습을 보여야 할 나이에 저런 눈빛이 가당키나 한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그럼 오늘부터 알면 되겠네.”
“아···. 네.”
별로 이해한 눈치는 아니었다.
“다우드 너는 이곳에 온 게 별로 기쁘지 않은 모양이네?”
“그럴 리가요. 제 주제에 아주 분에 겨운 호사를 누리고 있는걸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로봇 같은 거짓말은 입에 침이나 바르고 해라. 친구들이랑 노는 게 별로 재미없어?”
“아뇨. 그런 건 아닌데···. 뭐랄까···.”
주저하는 듯하던 다우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단 아이들이 저를 불편해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지금 누리고 있는게 제 것은 아니잖아요.”
“응?”
“이사장님과 왕세자님의 호의로 만들어진 정말 특별한 경험인 거잖아요. 여기에 너무 빠져버리면 다시 돌아갔을 때 힘들 것 같아서···.”
“아···.”
상처가 많고, 쓸데없는 잡념이 많은 아이는 이렇게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기 마련이었다.
“저···. 식사 다하신 것 같은데 이제는 먼저 일어나도 될까요?”
“응? 아, 그래. 기다려줘서 고마워.”
더는 붙잡을 명분이 없었기에 다우드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녀석의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묘한 녀석이네···.”
말 그대로 묘했다.
보육원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애늙은이 스타일인 건 확실히 알겠는데 단지 그것뿐.
왜 저 녀석에게 황금빛이 터져 나왔을까에 대한 단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니깐.”
조급해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일단은 시간을 두고 조금씩 다가갈 필요가 있었다.
나는 아직 다우드에 대해 아는 게 전무하다시피 했으니.
보아하니 속 얘기를 쉽게 털어놓을 스타일도 절대 아니…
찰싹!
“아야!”
“와! 이 오빠 보소. 우리 왔는데 반가운 척도 안 하고, 그냥 아예 아웃 오브 안중이네. 밥은 또 왜 엄한 데에서 혼자 먹고 있어? 오빠 우리 왕따시키는거야?”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는 유라를 보며 심드렁하게 답했다.
“손 흔들면서 인사했잖아. 그 정도면 됐지.”
“비키니 입은 거 보고 헤벌쭉 한 것도 인사야?”
“이, 이 기집애가 큰일 날 소리 하고 앉아있네! 너 어디 가서 그런 얘기 하지 마라. 근면성실하게 잘 살고있는 오빠 매장하고 싶지 않으면.”
“매장당하고 싶지 않으면 과일이나 같이 먹어. 슬기 언니랑 지원 언니도 오빠만 기다리고 있잖아.”
“나를 기다린다고?”
유라의 어깨너머로 내 쪽을 훔쳐보는 두 여인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자 살짝 미안함이 들긴 했다.
어찌 됐건 내 주관으로 만들어진 바캉스인데 손님 대접을 등한시 한 것도 있으니.
“그래 가자 가.”
“헹. 진작 그럴 것이지.”
그렇게 나는 유라의 손에 이끌려 두 여인이 있는 테이블로 발걸음을 옮겼다.
“죄송해요. 너무 정신이 없어서 미처 신경을 못 썼네요.”
“호호, 그럴만하죠. 이 좋은 곳까지 와서도 일을 하셨으니.”
역시 이해심이 많은 홍슬기였다.
“진짜 업무 본 거 맞아요? 무슨 업무를 휴대폰 두드리면서···.”
이지원은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고.
“내 말이. 아까 그 무섭게 생긴 아랍 아저씨랑 겁나 살벌하게 휴대폰 두드리던데 누가 보면 게임이라도 하는 줄?”
고유라 이 기집애는 은근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다.
“어른들의 사정이란게 있는거야 인마.”
“웃겨! 나도 어른이거든?”
“몸만 컸지 니가 무슨 어른이냐? 어른다워야 어른인 거지.”
“으엑. 방금 완전 꼰대스러웠던거 알지 오빠?”
유라 이 녀석은 처음 봤을 때는 세상 불만 혼자 다 품고 있는 까칠한 불량 청소년 같더니, 지금은 완전 왈가닥 소녀가 다 됐다.
“그런데 아까 앞에 있던 아이는 누구에요? 되게 심각한 얼굴로 대화 주고받던데.”
“아···. 괜히 신경이 쓰이는 아이. 도통 마음의 문을 안 여네.”
“왜 신경이 쓰이는데요? 오늘 처음 본 아이 아닌가요?”
이지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글쎄다···. 괜히 마음이 쓰이네.”
“흐음···. 마음의 문이라···. 딱 보니 쟤는 기겁하고 도망가는 것 같던데 대체 뭘 한 거야?”
“그냥 친해지고 싶어서 막 친근하게 굴었지. 그런데 애가 낯을 심하게 가리네.”
“그러니깐 더 그러지. 이 오빠 옛날 생각 못하나 보네.”
“뭐가? 나름 최선을 다했구만.”
“오빠 옛날에 기억 안 나? 보육원에 되게 높은 사람이라고 왔을 때, 그 아저씨가 오빠한테 엄청 친한 척하고 막 그랬잖아. 오빠는 막 싫다고 도망 다니고. 그때 오빠 표정이랑, 방금 쟤 표정이랑 되게 비슷했어.”
“그거랑 이거랑 같냐?”
“쟤 입장에선 별다를 게 없을걸?
“그···. 런가?”
가만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었다.
다우드와 나의 위치는 마냥 편하게 지내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이 있었으니.
“하아···. 그럼 어쩌지?”
난감했다.
어찌 됐건 저 아이에게 황금빛을 본 이상, 쌓여있는 벽부터 허물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홍슬기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제가 어디서 들었는데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바깥쪽이 아닌 안쪽에 있데요. 저 아이가 스스로 손잡이를 잡아 돌려 마음의 문을 열고 나올 수 있도록 하는게 우선일 것 같아요.”
“슬기씨 보기보다 되게 감성적이시네요.”
“어머, 칭찬 고마워요 지원씨.”
처음에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니 저 둘은 또 언제 저렇게 친해진 거래?
“슬기 언니 말이 맞아. 오빠가 저 아이에게 왜 관심 가지는지는 모르겠는데, 내 마음을 상대에게 전하려면 진정성을 가지고 오빠 마음의 문부터 열어 보여야 하지 않겠어?”
“흐음. 내 마음의 문부터라···”
그녀들의 말이 틀린 게 없었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면,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어른이 일방적으로 친한 척 굴면 나 역시 부담스러워 더욱 거리를 벌릴 것 같았다.
“세 사람 말이 맞네. 고마워. 큰 도움 됐어.”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네요.”
“고마우면 나중에 고양이 가족들 만남권 추가 발급해주세요.”
“그럼 나는 괴롭힘 허용권!”
그건 원래 허용권 없이 해오고 있었잖아 유라 이 기집애야.
아무튼, 그녀들 덕분에 시야가 트인 건 사실이었기에 감사를 전했고, 심기일전하여 다우드에게 다시 한번 다가갈 계획을 세웠다.
***
철썩철썩
종일 시끌벅적했던 해변에 어둠이 내려앉으며, 거칠게 일던 파도가 어느새 잔잔해졌다.
청록빛 바다는 짙은 밤안개 속에 잠겨버렸고, 노랗고 파란 별들이 칠흑 같은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그리고 왜소한 체구의 소년이 가로등에 기대서서 끝도 없이 펼쳐진 어두운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왜 혼자 몰래 나와서 궁상맞게 그러고 있냐?”
낯선 목소리에 흠칫한 다우드가 내 존재를 확인하곤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죄,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
“말도 안 하고 몰래 나와서 죄송해요.”
“넌 죄송할 것도 많다. 나도 어릴 적 보육원에서 지낼 땐 땡땡이 많이 쳤어 짜샤.”
“보육원···. 이요? 이사장님이요?”
“응. 나도 보육원에서 자랐거든. 갓난아기 때 버려져서. 난 낳아준 부모 얼굴도 몰라.”
그제야 다우드의 얼굴에서 살짝 호기심이 묻어나왔다.
나는 칠흑과도 같은 바다를 바라보며 독백하듯 말했다.
“나도 바다를 좋아했어. 그래서 혼자 이렇게 바다를 보면서 세상을 원망하기도 하고, 얼굴도 모르는 부모 원망도 하고 그랬지.”
멍하니 나를 쳐다보는 다우드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왜? 그렇게 봐? 불쌍한 것 같아?”
그러자 다급히 도리도리 고개를 내젓는 다우드.
“아, 아뇨! 그냥···. 놀랍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고···.”
“뭐가 대단해?”
“그런 환경에서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되셨잖아요. 정말 대단한거죠···.”
“너도 이렇게 될 수 있어. 아니, 누구나 될 수 있어.”
“저도···. 이사장님처럼 될 수 있다고요?”
“당연하지. 내가 방법 알려줄까?”
“네···. 알고 싶어요.”
내 물음에 다우드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이제야 좀 제 나이처럼 보이는구만.
“그럼 형···. 아니, 암문(삼촌)이라고 부르면 알려주지.”
차마 양심상 형이라 부르라고는 못 하겠다.
“암문···.”
잠깐 고민하던 다우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둘이 있을 때만 그렇게 할게요.”
“오케이. 좋아. 그럼 이제 우리 비밀 가족이 된 거네.”
“비밀 가족···.”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여운이 좋았던지 다우드가 단어를 곱씹었다.
그렇게 나는 내 이야기는 먼저 푸는 식으로 대화를 이끌었고, 덕분에 단단히 빗장을 걸어 잠근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려갔다.
“삼촌은···. 결국 꿈을 이루신 거네요. 다른 것보다 그게 정말 부러워요···.”
뭔가 아련함이 묻어나오는 얼굴로 밤바다를 바라보던 다우드를 향해 넌지시 물었다.
“다우드 너는 꿈이 뭔데?”
“제 꿈이요···?”
살짝 머뭇거리던 다우드가 이내 이를 꽉 물더니 어둠이 내려앉은 바다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버지라는 사람한테 복수하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