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73)
273화 하버드에서 생긴일
스타트업(Startup)이라는 어원의 시초를 만든 국가답게 미국의 창업 역사는 꽤나 유서가 깊은 편이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대한민국이 치열한 독립운동을 펼치던 1930년대.
당시 스탠퍼드대 출신의 창업자가 설립한 기업은 자그마치 3만9900개에 이르며 54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하버드 대학의 마일스 메이스 교수가 1945년에 처음 창업 과정을 도입한 이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대학에 기업가 정신 교육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이후, 대학가에 닷컴 창업 열풍이 불면서 하버드 대학은 기숙사 내에서 학생이 돈을 버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종래 규정까지 바꾸는 상황까지 벌어졌으니 그 인기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었다.
***
‘무슨 검은 빛이···?’
밝고 명쾌한 분위기가 흐르는 강의실 분위기와 달리 곳곳에 피어오르는 어둑한 검은빛은 기괴하기까지 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재들로 가득한 하버드에서 이토록 많은 검은빛을 보게 될 줄이야.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다가 라파엘 교수의 터치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아,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긴 했지만, 이 정도로 사고가 마비되기엔 그동안 쌓인 짬이 허락지 않았다.
“자네가 이런 모습을 보일 때도 있구만. 하긴, 나도 놀랐네. 특강 공지를 올리자마자 5분 만에 130석이 모조리 차버릴 줄이야. 내 강의에선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야.”
익살스러운 미소를 그린 라파엘이 강단에 서서 마이크를 잡았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늘은 예고했던 대로 특별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아마 여기 계신 학생 대부분은 창업을 꿈꾸거나, 이미 창업을 하고 있는 분들일 겁니다. 창업자에겐 팝스타보다 더 만나보고 싶은 인물이죠?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딜런 대표 모셨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짝짝
라파엘 교수의 장황한 소개와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강단에 서서 마이크를 잡은 나는 좌중을 한번 쭉 훑었다.
“반갑습니다. 벤처캐피탈리스트 딜런이라고 합니다. 음···. 솔직히 처음 특강 제안을 받았을 땐 많이 망설였습니다. 스스로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기에 뭔가를 알려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제 말 한마디가 여러분의 기업가 정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강연을 맡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넓은 강의실에 침묵이 내려앉았고, 학생들의 반짝이는 시선이 내게 쏟아졌다.
“며칠 밤을 고민했습니다. 과연 여러분께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제 어떤 경험이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결론 내렸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어떤 투자의 기법, 혹은 이론적인 무언가를 전하진 않을 겁니다. 사실 그런 건 허상에 가깝고, 이 기오막측한 창업계에서 그런 건 절대 정답이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을 이어가면서 계단식 영농처럼 칸칸이 앉아있는 학생들을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시커먼 빛을 내뿜는 학생들의 얼굴을 눈에 담기 위해서.
“제가 하는 말 역시 정답이라 볼 순 없습니다. 아니, 애초에 이 업계에 정답이란 건 없습니다. 자신의 철학이 정답이었음을 결과로 입증하는것 뿐이죠. 때문에 다시 한번 당부드립니다. 제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마시고, 그저 저 인간은 저렇게 생각하고, 저런 경험을 해왔구나! 정도로 생각해주십시오. 괜히 저 따라 했다가 쫄딱 망해서 찾아오셔도 책임 안집니다.”
“하하하.”
아재스러운 소소한 농담에 미약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은 당연하지만, 모두가 잊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나 여러분처럼 똑똑한 사람일수록 쉽게 빠지기 쉬운 무서운 함정이죠. 바로 아이디어라는 것은 절대 완벽한 상태로 떠오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단지 실행하는 과정에서 완벽에 가까워지는 거죠.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은 완벽한 아이디어, 완벽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자 합니다. 방구석에 혼자 박혀서 끊임없이 궁리하고 또 궁리하죠. 하지만 제가 만나본 성공한 창업가들은 어땠는지 아십니까?”
누가 음소거 버튼이라도 누른듯 강의실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 순간에 길거리에 나가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생각만 하지 말고 당장 몸으로 실천하라는 말입니다. 창업에 정답은 없다고 했지만 가장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진리입니다. 누군가는 어떻게 원가를 절감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또다른 누군가는 하루에 수 십 통씩 공장에 전화를 돌립니다. 그 작은 차이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걸 저는 수도 없이 많이 봐왔습니다.”
이건 내가 VC로서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얘기였고, 이를 가능케 하는 동력은 결국 ‘동기’였다.
막연히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일 수도 있고, 내 아이디어가 세상을 이롭게 했으면 하는 바람일 수도 있었다
요지는 머리 그만 굴리고 당장 튀어나가라는 것이었다.
“여러분들은 저를 잘나가는 VC 정도로 보시겠지만, 사실은 저도 창업자에 가깝습니다. 애초에 벤처 캐피탈에서 VC를 시작한 게 아니라, 우연히 해커톤에서 만난 팀원에게 제 사비를 털어 투자함으로써 시작된 것이니까요. 그게 바로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베슬로’ 창업자와의 첫 만남이자 제 첫 엔젤투자였습니다.”
옅은 탄성과 함께 커다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역시 미국 학생들답게 리액션이 좋구만.
“이제 막 태동하는 스타트업의 성장을 도우며 어마어마한 성취감과 고양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확신했죠. 아! 이게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업(業)이구나! 그때부터 벤처캐피탈과 액셀러레이터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결국 회사까지 차리게 되었습니다. 아! 한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그전에 저는 이미 코인 투자로 큰 돈을 벌었습니다. 혹시나 제 얘기 때문에 코인에 관심 가지시는 분은 없으셨으면 좋겠군요. 투자했던 코인이 몇시간 뒤에 상장폐지 되는 걸 보고선 다신 코인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까요. 기적의 투자자라 불리는 저도 학을 뗀 게 코인 투자입니다.”
“하하하하.”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100% 진심이었다.
요행으로 큰돈을 벌긴 했지만 코인 투자는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은 아직도 확고했다.
그렇게 나는 이제껏 VC로서 겪어왔던 많은 경험과 느낀 점들을 가감 없이 풀어냈고, 학생들은 눈에서불이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몰입해 있었다.
“누군가는 그럽니다. 이미 돈 벌 기회는 모두 지나갔고 창업 역시 레드오션이라고. 전 그 말에 반대합니다. 바야흐로 지금은 창업의 시대입니다. 물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잘나가던 대기업도 한순간에 몰락할수 있는 불안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역사에 남을 위대한 성공은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에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끊임없이 도전해야 합니다. 실패해도 좋습니다. 대신 목표는 명확히 하십시오. 언젠가는 그 노력이 빛을 발하는 날이 오게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휘이이익!
짝짝짝짝
짤막했던 강연이 그렇게 끝이 났다.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와 함께 강의실 전체를 울리는 박수 세례가 쏟아졌다.
자리에 일어서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오는 학생들을 보니 감사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인생 낙오자가 될 뻔한 놈이 세계 최고 명문대 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했다는 사실이 새삼 감개무량하게 느껴졌다.
앞자리에서 흐뭇한 미소로 강연을 듣고 있던 라파엘 교수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솔직담백하면서도 아주 유익한 강연이었고, 저 역시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고생한 딜런에게 다시 한번 힘찬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짝
이후, 본격적인 질의응답 시간이 시작됐다.
“여러분 모두 이 시간만 기다렸을 겁니다. 지금도 어떻게든 질문하고 싶어서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학생들이 여럿 보이는군요. 제발 제 수업 때 그런 태도를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하하하.”
“자!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VC이자, 기적의 투자자로 불리는 딜런 대표에게 궁금한 점 있는 학생은 손을 들어 질문해주시길 바랍니다.”
라파엘 교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번쩍 들리는 손들.
얼핏 보기엔 130명이나 되는 학생 모두가 손을 든 것 같았다.
그 광경에 압도된 나는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기왕이면 검은빛을 흘리던 학생 위주로 질문받아보자.’
궁금했다.
대체 왜 저런 수재들에게 불길한 검은빛이 흘러나온 것인지.
고민 끝에 체크 무늬 남방 차림의 한 백인 남학생을 지목했다.
반색한 사내가 냉큼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경영학과 이안이라고 합니다. 저는 학업과 창업을 병행하며 친환경 공유 사무실인 ‘에코 데스크’를 창업했습니다. 이후, 파이어브릿지 캐피탈로부터 1,400만 달러(약 180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했고 현재는 4,200만 달러(약 550억 원)의 가치를 지닌 회사가 됐습니다.”
“오오!”
이안의 자신감 가득한 소개에 주변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딜런 대표의 강연을 들으며 많은 부분을 공감했습니다. 저 역시 수많은 실패를 겪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모든 것들이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었고,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조곤조곤한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사람을 몰입시키는 매력이 있었다.
“딜런의 투자에는 실패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때문에 스타트업들 사이에선 그런 말이 있죠. VC 딜런에게 선택받은 스타트업은 반드시 성공한다고.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저희 에코 데스크는 현재 추가 투자 유치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혹시 저에게 투자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젊은 대학생답게 패기가 흘러넘쳤다.
마치, 네가 나한테 투자를 안 하고 배겨? 뭐 이런 자신감이 보인달까?
안타깝게도 투자는커녕 엮이기도 싫은 게 내 속마음이었다.
꼭 검은빛이 아니더라도 저런 겉만 번지르르한 창업가는 내가 별로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니기도 했고.
“하하. 아주 패기 넘치는 대표님이시군요. 음···. 우선 답변드리자면 투자 생각은 없습니다.”
화끈하게 돌아온 답변에 이안의 안색이 살짝 굳었다가 곧 원상태로 돌아왔다.
싱긋 미소를 지은 이안이 내게 물었다.
“어째서입니까?”
“우선 이런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투자 결정을 내리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 제가 들은 거라고는 이안 대표님이 일방적으로 주장한 성과뿐이지 않습니까?”
1,4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느니, 기업가치가 4,200만 달러가 넘는다느니 이런 말은 듣기엔 그럴싸 해보였지만, 유심히 들어보면 직원의 규모나, 실질적인 수익에 관한 내용은 쏙 빠져있었다.
“물론 무일푼으로 시작하여 그 정도까지 회사를 키워낸 건 대단한 업적이라 생각합니다. 대단히 존경스럽구요. 하지만 제 투자 방식은 일반적인 벤처캐피탈과는 조금 다릅니다. 투자하고 싶은 창업자가 보이면 일단 그 사람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하죠. 학벌? 지식? 가진 재산? 그런 건 제 머리에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이 사람 얼마나 절박한 마음으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부터 봅니다. 그리고 여기엔 다소 시간이 필요하죠. 이안이라고 했습니까? 앞으로 종종 볼 것 같은데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그래도 내 강연 듣겠다고 찾아온 학생인데 차마 매몰차게 대할 순 없어서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마무리했다.
다행히 이 정도로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자리에 앉았다.
‘어후, 시작부터 진땀뺐네. 다음은 그냥 무난해 보이는 학생으로 가야겠다.’
마침, 딱 눈에 띈 학생이 있었다.
작고 왜소한 체구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지적인 이미지를 더하는 검은 뿔테 안경까지.
한눈에 봐도 예의 바르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것 같은 동양인 여학생이었다.
같은 동양인이라는 동질감이었을까?
나는 망설임없이 그 여학생을 지목했다.
조신하게 앉아있던 여학생이 묶었던 머리를 풀어헤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경제학과 2학년 슈잉입니다. 조금 전 강연에서 딜런 대표는 한국의 폭발적인 경제 성장에 대해 잠깐 언급했는데요. 저는 거기에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한국은 철저히 중국에 의지하여 성장했습니다. 그 근거는 한국 무역 대부분은 중국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말인즉슨 중국이 한국의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면 한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은 중국 경제에 기생하는 겁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를 절대 인정하지 않죠.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어쩐지 남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