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74)
274화 너무 세게 팼나?
세상 차분해 보이던 여학생이 느닷없이 특강 온 연사를 공격하자 다들 당황한 눈치였다.
시종일관 헤실헤실 웃던 라파엘 교수까지 표정을 굳힐 정도였으니.
“슈잉 학생. 방금 그 질문은 이 강연의 취지와도 맞지 않고 무엇보다 굉장히 예의에 어긋나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라파엘 교수를 만류했다.
“괜찮습니다 교수님.”
정말 괜찮냐는 눈빛을 보내오는 라파엘 교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라. 너 이 녀석 잘 걸렸다.
나 홀로 느낀 배신감도 있었지만, 세계적인 명문대에 다니는 중국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계속해보시겠습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요지가 뭐죠?”
“한국은 중국의 뜻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야.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안 어울리게 맵다 매워.
그런데 더 소름 끼치는 것은 정말 단 한 치의 의심 없는 확신과 신념으로 가득 찬 얼굴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소국이 대국의 명령에 따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그런 이치가 있었나요? 그리고 한국은 소국이라고 하긴 좀 그렇습니다만. 설마 땅덩어리 크기로 소국 대국 나누자는 건 아니겠죠?”
“물론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하는 모든 행동들이 아주 가소로울 뿐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한국은 중국에 기생하여 성장한 나라일 뿐입니다.”
역시 여자는 얼굴보다는 인성이라는 걸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산뜻한 미소로 마이크를 잡았다.
“최근 들었던 말 중에 가장 황당하군요.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어찌 됐건 질문해주셨으니 답변하자면···. 음. 기생 얘기를 하셨는데 아마 중국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알고 있을 겁니다. 진짜 기생하는 나라가 어딘지.”
입이 좀 풀렸으니 본격적으로 놀아봐야겠다.
“중국은 경제 대국 맞습니다. 그걸 부인할 사람은 없죠. 하지만 그건 넘쳐나는 노동력 때문이지 어떤 혁신적인 기술 때문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뭐라고요?”
거참, 체격은 왜소한데 목소리는 참 앙칼지구만.
“슈잉 학생은 많은 나라들이 중국과 거래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남다른 기술력 때문에? 누구나 우러러보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가져서? 아니요. 오직 값싼 노동력에서 오는 가격 경쟁력뿐입니다.”
“그건 옛날얘기······.”
나 아직 말 안 끝났다 이 여자야.
“중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어떨까요? 좁디좁은 땅덩어리에 인구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꿋꿋이 버텨내어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경제 대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자원하나 나지 않는 나라에서 오로지 ‘기술력’ 하나만으로 말이죠.”
당장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지 슈잉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중국인들은 자꾸 한국 보고 도둑질을 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한국의 기술을 도둑질하는 곳은 중국 아닐까요? 중국은 수도 없이 산업스파이를 심어왔고, 한국의 인재들을 비싼 값에 데려와 기술만 빼먹고 버리는 행위를 반복해오지 않았습니까? 거짓이라고요? 이런 건 인터넷 검색만 조금 해봐도 관련 기사가 수두룩하니 직접 찾아보시길.”
듣기론 최근 국가 핵심 산업 기술을 포함한 기술 해외유출 적발사례가 10년 내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작년만 해도 146건이 적발됐다고 하니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명확한 팩트가 있음에도 애국심 넘치는 슈잉 학생은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가보다.
“지금 딜런 대표는 심각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런 건 극히 일부 사례일 뿐, 중국은 한국보다 기술력이 더 뛰어납니다. 현재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잘살게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좋습니다. 그럼 하나하나 따져볼까요? 지금 중국의 지방 정부 재정은 연쇄적으로 고갈되고 있습니다. 그것까지 부정하지 말아 주시길. 이것 또한 팩트로 밝혀진 사실이니까요. 아! 슈잉 학생은 집이 잘살아서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뭐 어쨌든 기본적인 서비스조차 제공할 수 없는 곳이 늘어나고 채무 불이행의 위험성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미 지방 정부는 임금을 삭감하고 있으며 교통서비스를 줄이고 연료 보조금까지 줄이고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부동산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경제는 극도로 위축되었죠.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중국 인민 대학 경제학 교수 이런 발표를 했습니다.”
“대체 무슨 발표를 했다는 겁니까?”
“한국 1인당 GDP 성장을 논하며 중국 상황을 설명했죠. 전공 서적만 보시지 마시고 신문도 같이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내 귀여운 디스에 소소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경제 규모 면에서 일본과 한국의 GDP는 대략 2.73배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직도 꽤 차이가 있죠? 하지만 1인당 GDP는 일본을 추월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어떻습니까?”
“중국도 어마어마한 성장을 했습니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미국 다음의 경제 대국이 되었겠죠. 그런데 슈잉 학생은 중국이 한국을 먹여 살린다고 주장하지 않으셨습니까? 근데 중국 1인당 GDP는 어떠하죠? 한국과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입니다. 중국이라는 국가는 잘살지 몰라도 빈부격차는 말도 안 되게 심하다는 뜻이죠.”
“어떤 나라도 빈부격차는 존재합니다!”
“중국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합니다. 중국 인구의 40%에 달하는 6억 명이 월수입 140달러가 되지 않습니다. 이는 전 국무원 총리가 했던 발언이니 이의는 없을 겁니다. 40여 년간 무섭게 달려온 중국의 1인당 GNP는 1만 달러를 넘어섰지만, 도농, 지역, 계층 간 소득 격차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가난한 중국인들은 자조적으로 이런 말을 한다죠? 有錢能使鬼推磨(돈만 있으면 귀신을 불러 맷돌을 갈게 할 수도 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레닌주의 국가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배금주의의 나라가 돼버린 너무나도 아이로니컬한 상황 아닙니까?”
여기에는 할 말이 없던지 슈잉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기세가 넘어왔으니 여세를 몰아 밀어붙일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지표가 하나 나왔죠? 지난달 중국 소비자 물가와 생산자 물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고?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른 나라들은 마이너스는 커녕 물가 상승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마이너스라뇨? 경제학도시니 잘 아시겠지만 지금 시기에 물가가 마이너스라는 건 그만큼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소비뿐 아니라 투자도 하지 않는다는 소리죠. 결국, 디플레이션이라는 소린데···.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이 더 무서운 건 잘 아시죠?”
이건 진짜다.
물가가 떨어지면 좋은 거 아냐?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전쟁보다 무서울 수 있는 게 디플레이션이다.
“이러면 결국 사람들의 사고가 경직되어 소비는 더욱 위축될 겁니다. 수요가 받쳐주질 않으니 기업들도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당연히 매출도 떨어지겠죠. 이게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경제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는 소립니다. 중국의 40년 호황 파티는 이제 끝이 났습니다. 곳곳에서 경기 위험신호에 적색 불이 들어오고 있는데 어째 중국인들만 그걸 모르는 것 같군요.”
팩트를 기반으로 여기저기 급소만 찔러주니 많이 아팠던지 슈잉이 태세를 전환했다.
“지금 거시적인 경제를 논하는 자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딜런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 아닙니까? 그러면 기업에 관련된 얘기를 하셔야죠.”
“거시적인 얘기는 슈잉 학생이 먼저 꺼냈습니다만? 뭐···. 그것도 나름 재밌겠네요. 또 뭐가 그렇게 억울하고 불만이십니까?”
이쯤 되자 라파엘 교수도 책상에 턱을 괴고 흥미진진하게 우리 두 사람의 설전을 관전했다.
“저는 한국에서 자랑하는 오성페이(Ohsung Pay) 서비스가 정말 파렴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중국의 알리페이를 따라한 결제 플랫폼입니다.”
“신박한 주장인데요? 계속해보시겠습니까?”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카드나 현금으로 결제하지 않았습니다. 의심된다면 중국으로 가서 직원에게 현금을 건네줘 보세요. 아마 벙찐 얼굴로 현금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할 겁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죠?”
슈잉이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했다.
“왜냐면 우리는 외출할 때 지갑을 들고 다니지 않거든요. 휴대폰 하나면 어디서든 결제할 수 있으니까요. 그에 반해 한국은 어떻습니까? 아직도 덜 진화한 것처럼 카드와 현금을 사용하고 있죠. 심지어 현금만 받는 곳도 있더군요. 현금이 위생적으로 얼마나 더러운지도 모르고 좋다고 웃으며 넙죽 받는 한국인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시네요. 별 쓸데없는 걸로 마음까지 아프시다니. 그런데 중국의 간편결제 서비스가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상용화된 이유는 따로 있지 않나요?”
“무슨 소리죠?”
“넘쳐나는 위조지폐와 신용카드 복제 때문에 현금에 대한 신뢰가 낮기 때문 아닙니까? 중국 인민은행에서 밝혔죠? 중국에서 수거되는 가짜 지폐의 총액이 연평균 8억 3000만 위안에 달한다고. 그래서 중국의 길거리 노점상들은 현금을 받으면 꼭 손전등으로 비춰보더군요. 뭔가 했더니 위조지폐 감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카피(Copy)의 나라답다는 감탄이 흘러나오더군요.”
“하하하!”
뭐가 그리 재밌는지 강의실에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신용카드는 또 어떻습니까? 자국민들도 발급하기 까다로워서 대다수는 발급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중국에 간편 결제 시스템이 정착된 배경을 안다면 그렇게 자랑스레 얘기하기 힘들 텐데···. 슈잉 학생은 굉장히 낙천적인 성격이시군요.”
이쯤 되자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진 슈잉이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결국 자리에 앉았다.
짝짝짝짝
설전이 끝나자 주변에서 박수 세례가 쏟아졌고 그제야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세게 팼나?’
강연자 신분에 참가 학생을 너무 심하게 뚜드려 팬 게 아닌가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지 무덤 지가 판 것을.
‘그나저나 왜 쟤내들은 상태가 다 저러냐?’
중화사상, 중화사상하더니 어째 만나는 중국인마다 다 저 모양일까?
한편으로는 살짝 연민의 감정도 들었다.
저런 천상천하 유아독존식의 중화사상이 결국 자신들을 고립시킨다는 사실을 정녕 모르는 걸까?
아무튼, 예상치 못한 빌런 하나를 물리친 이후에는 다행히 순탄한 질문이 이어졌다.
내가 스타트업을 선별하는 기준에 관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흐음···. 학생 같은 경우에는 중국계 벤처캐피탈이 잘 어울릴 것 같군요.”
“이유가 있습니까?”
“학생이 말한 사업군은 한번에 많은 자금이 투입되어 단번에 시장 점유율을 장악해야 하는 아이템입니다. 그리고 그런 쪽으로는 단연 중국이 독보적입니다.”
“아! 역시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시커먼 빛을 흘리는 창업자들은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몰고, 진심으로 창업에 대한 열망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주었다.
시간은 유수처럼 흘렀고 어느새 강연 시간보다 질의응답 시간이 더 길어지게 되었다.
시계를 쳐다본 라파엘 교수가 이만 끝내라는 사인을 보내왔다.
고개를 끄덕이고선 마무리 멘트를 치려던 그때, 이상하게 눈에 밟히는 학생 하나가 있었다.
가장 뒷 열, 구석 자리에 모자를 눌러쓴 남학생이었는데, 내게 쏘아대는 눈빛이 너무도 간절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마지막으로 그 남학생을 지목했다.
“마지막 질문받도록 하겠습니다. 맨 뒤에 남학생분?”
내 지목에 남학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순간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화, 황금빛?’
창문 너머로 강렬히 내리쬐는 햇살을 정면으로 받고 있어서 미처 알지 못했다.
남학생의 몸에서 은은한 황금빛이 넘실대고 있다는 사실을.
재빨리 표정을 수습한 나는 남학생에게 말했다.
“간단한 자기소개 후에 질문 해주시겠습니까?”
마이크를 잡고 한동안 머뭇대던 남학생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아···. 저는···. 제이미라고합니다. 사실 하버드 학생은 아니고···. 꼭 딜런 대표님을 만나뵙고 싶어서···.”
그렇다. 이번 황금빛의 주인공은 강의실로 몰래 침투한 도강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