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75)
275화 황금 명함
“아···. 저는···. 하버드 학생은 아니고···. 꼭 이 강연을 듣고 딜런 대표님을 만나 뵙고 싶어서···.”
난데없는 도밍아웃에 강의실 내 웅성거림이 커져갔다.
‘뭐야. 도강생이었어?’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기껏 발견한 황금빛 주인공이 하필이면 도강생이라니.
어째 이번에도 쉽지 않겠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뭐 좋습니다. 일단 그 문제는 차후에 얘기 나누는 걸로 하고 제게 궁금한 게 무엇입니까?”
한껏 긴장한 기색으로 제이미가 마이크를 입에 가져갔다.
“우선 여기 계신 모든 분께 사과드리겠습니다. 이 기회가 아니면 도저히 딜런 대표를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아 앞뒤 가리지 않고 오게 됐습니다. 이에 대한 처분은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차분한 제이미의 사죄에 어수선하던 분위기는 일단 수습되는듯 보였다.
“딜런 대표에게 여쭙고 싶습니다. 농업도···. 스타트업이 될 수 있을까요?”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물론입니다. 질문하신 분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무래도 빠른 변화와 성장이 특징인 스타트업의 속성을 고려할 때 농업은 거기에 부합되지 않다는 인식이 팽배하더군요. 처음엔 농업도 스타트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스타트업 행사를 가도 외면받기 일쑤여서 이제는 저조차도 확신이 들지 않아 이렇게 대표님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대표님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 폭넓은 견해와 안목을 자랑한다고 들었거든요.”
“흐음···. 농업이라···.”
전혀 생각지 않던 분야였다.
그래서 더 호기심이 생겼다.
“제이미씨는 지금 농사를 짓고 있습니까?”
“예. 저는 농부입니다.”
“무슨 작물을 키우시는 겁니까?”
“밀, 옥수수, 콩, 카놀라를 키웁니다.”
어째 강의실 분위기가 축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껏 최첨단 기술을 응용한 기술 스타트업이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서비스 스타트업만 등장했다가 뜬금없이 농사가 나와버리니 흥미를 잃은 기색이었다.
“스타트업이라함은 결국 남들과는 다른 차별점을 가지고 혁신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때문에 일반적인 농사는 스타트업이 될 수 없습니다. 제이미씨는 어떤 사업을 하고 싶은 겁니까?”
“저는······.”
하지만 제이미의 말은 마이크를 잡은 라파엘 교수에 의해 무참히 잘려버렸다.
“죄송합니다만 오늘 질의응답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미 공지한 시간을 한참 넘어섰고, 규정상 재학생이 아니면 질의도 할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남성분은 저와 따로 얘기를 나눠야 할 겁니다.”
이런 부분에서는 한없이 냉정한 라파엘 교수였다.
결국, 체념한 제이미가 그늘진 얼굴로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마이크를 잡은 나는 좌중을 훑으며 마지막 한 마디를 건넸다.
“아쉽지만 오늘 강연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에게 질문 주셨던 분들은 앞으로 나와주시겠습니까? 선물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제 명함이라도 드리고 싶군요.”
말 끝나기 무섭게 강의실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질문했던 학생들의 얼굴에선 들끓는 희열이, 그렇지 못한 학생들 얼굴에선 짙은 실망감이 떠올랐다.
우르르 몰려나온 학생들이 희희낙락하며 내가 내민 명함을 한 장씩 받아갔다.
‘이 친구는 밑에서 한 장···. 얘도 밑에서 한 장···. 얘는 위에서 한 장.’
흡사 타짜를 연상케 하는 현란한 손놀림으로 철저히 구분되어 명함이 건네졌다는건 나만 아는 사실이었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만들어 놓은 세 종류의 명함.
검은빛을 내뿜던 학생들에게는 한쪽 면이 검게 칠해진 명함을 건넸고, 일반 학생에게는 순백의 명함이 건네졌다.
아마 내 명함을 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들은 여러 투자자에게 꽤 많은 관심을 받게 될 것이다.
특히나 내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살피고 있는 중국 벤처캐피탈들에게는 더더욱.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명함을 다 받아간 후에 나는 구석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제이미를 올려다봤다.
“제이미씨는 뭐합니까? 명함 안 받아가고.”
“저, 저도요?”
“제이미씨도 질문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당연히 받을 자격이 있죠.”
내 말에 반색한 제이미가 헐레벌떡 뛰어나와 내가 내민 명함 한 장을 받아갔다.
그리고 그 명함은 다른 사람과 다르게 한쪽 면이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명함이었다.
“자! 이것으로 오늘 강연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몇 시간 동안 강의하고 질문받아 준 딜런 대표에게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짝
그렇게 그날의 강연이 마무리되었고, 나는 다시 라파엘의 교수실로 돌아왔다.
***
“오늘 정말 수고 많았네.”
“잘했는지 모르겠네요. 혼자 떠든 것 같아서 영···.”
내 넋두리에 라파엘이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소린가? 나조차도 자네 강연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자네가 겪은 경험을 소소하게 푸는 게 어찌나 재밌던지. 크흐흐, 내 수업 듣는 학생들이 그 정도로 집중하는 모습은 또 처음이었네.”
“도움이 됐다고 하면 다행이네요. 아! 그리고 아까 그 제이미라는 남자 있지 않습니까? 몰래 들어와서 강연 들었던.”
“아! 그 사람 처벌에 관해서는 내가 직접······.”
“그러지 말고 한번 눈감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응? 그럴 이유가 있는가?”
“얼마나 절박하면 그렇게 해서라도 저를 만나러 왔겠습니까. 부탁 좀 드릴게요.”
“흐음···. 뭐 굳이 그렇게까지 빡빡하게 굴 필요는 없겠지. 알겠네. 자네 부탁이니 그 정도는 넘어가는걸로 하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유독 그 남자에게만 관심을 갖는 것 같던데···. 이유가 있나? 솔직히 우리 학교 학생이 맞다 아니다를 떠나서 그냥 평범한 청년 농부일 뿐이지 않은가? 특별할 게 전혀 없어 보이던데···.”
“특별합니다. 그 친구.”
“뭐가 특별하다는 건가?”
“누구보다 절실해 보였거든요. 저는 기본적으로 그런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나?”
지이이이잉
때마침 내 휴대폰이 요란스럽게 울려댔다.
씨익 미소를 지은 라파엘 교수에게 말했다.
“절실한 사람은 물불 가리는 게 없는 법이거든요.”
***
하버드대 인근 카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벌떡 일어선 제이미가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지, 진짜로 와주셨군요.”
“하하하. 그럼 가짜로 올 줄 알았습니까? 참고로 저는 거짓말 안 합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내게 사과를 건네는 제이미.
“죄송합니다.”
“뭐가요?”
“저 때문에 괜히 강연 분위기를 망친 것 같아서···.”
“어차피 강연도 끝나가는 분위기였고, 별로 연연치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위험한 짓은 하지 마십시오. 자칫하단 큰 벌금을 물 수도 있습니다.”
“무, 물론입니다. 제가 한 행동이 잘못됐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뭐···. 반성하고 있다니 됐습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아! 제 사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드리자면···.”
나는 손을 들어 제이미의 말을 제지했다.
“아뇨. 그런 것보단 저는 제이미씨의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제···. 얘기요?”
“제이미씨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합니다. 아이템에 관한 내용은 차후에 듣는 걸로 하죠.”
“아···.”
잠깐 말없이 벙쪄있던 제이미가 뭔가 결심한 듯 힘들게 입술을 뗐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농부가 맞습니다. 가업을 이어 소규모 농장을 운영하고 있죠. 그리고···. 원래는 저도 하버드 재학생이었습니다. 자퇴하긴 했지만요.”
“자퇴는 왜 하게 된 겁니까?”
“집에 문제가 생겨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어음···. 부모님이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형편이 안 좋아졌거든요.”
“아. 죄송합니다. 아픈 상처를 건드렸군요. 근데 하버드는 장학 제도가 잘 되어있지 않나요?”
“물론 장학금을 받고 다닐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연로하신 할머니와 어린 동생들입니다. 제가 문제가 아니라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거든요. 그래서 부모심이 운영하시던 농장을 이어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해했습니다. 그럼 농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하게 된 거군요.”
살짝 떠보는 질문에 제이미가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저는 농장에서 자라왔고, 어릴 때부터 부모님 일손을 도와드리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농업에 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더 많이 배워서 제대로 된 농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래도 과도 화학생물학과로 택한 것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업에 대한 진정성은 있어 보였다.
“잘 들었습니다. 제이미씨는 어떤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고 계신 겁니까?”
“저희 농장은···. 규모가 작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생산성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이대로는 답이 없겠다 싶어 전공을 살려 씨앗에 미생물을 감싸는 기술을 활용해보기로 했습니다. 종자코팅(Seed Coating)이라고도 불리는데 미생물이 씨앗에 영양분을 제공하기 때문에 양분이 적은 토양에서도 잘 자라날 수 있고, 화학 비료를 쓸 필요가 없어 비용도 절감되고 환경에도 무해합니다.”
“종자 코팅이라···. 그 기술 자체를 개발한 건 아니죠?”
“이미 많은 기업들이 종자 코팅 기술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내세울 수 있는 건 직접 배양한 미생물들입니다.”
“미생물이요?”
자신의 전공 분야가 나오자 제이미의 눈빛에 자신감이 들어찼다.
“종자에 코팅할 미생물은 해당 지역의 온도, 습도, 수분, 염도, 토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선정해야 합니다. 같은 작물이라도 작은 변수에 의해 성장하는 게 다르거든요. 저는 미 전역에 있는 농장 데이터를 수집 분석해왔고, 작물 및 기후별 최적화된 정보를 끌어내 거기에 맞는 종자 코팅 기술에 관한 연구해왔습니다.”
“핵심만…설명해주시겠습니까?”
“간단히 말해 제가 배양한 곰팡이 액을 코팅하고, 파종하면 종자뿐 아니라 곰팡이까지 흙 속으로 들어갑니다. 일종의 미생물 처리제 역할을 하는 거죠. 씨앗이 발아하여 광합성을 하게 되면 잎에서 고정된 탄수화물을 뿌리로 내려보냅니다. 이때 이 뿌리 배출물을 곰팡이가 이용하면서 부식성 물질을 배출하고, 이 물질이 토양의 미세응집체와 결합하여 탄소를 불용화시키는 겁니다. 즉 토양의 입단 형성에 기여함으로써 토양을 더 비옥하게 하는 건 물론, 탄소격리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는 겁니다.”
전혀 간단하지 않았지만 어찌 됐건 생산량은 늘리면서, 온실가스 발생은 낮춰 환경보호에도 좋다는 말 같았다.
“훌륭하네요. 그럼 연구는 완전히 끝난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사실 이론적인 연구와 간단한 가설검증 정도만 했을 뿐이지 제대로 된 시설과 비용이 없어서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그럼 투자하는 걸로 하죠.”
“네?”
“투자하겠다고요. 제이미씨한테. 제대로 한번 해봅시다.”
“아? 아! 허억···!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제이미가 연신 내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우선 엔젤 투자로 시작해 단계별로 조금씩 늘려가는 거로 하죠.”
“네! 무, 물론입니다. 제대로 된 장비만 갖춰지면 자신 있습니다!”
“자신감 좋네요. 그럼 제가 내일 농장을 한번 방문해도 되겠습니까? 명색이 투자자인데 어떤 농장인지는 한번 봐야 하지 않겠어요?”
어쩐 일인지 흔쾌히 승낙할 것 같던 제이미가 곤란한 기색을 내비쳤다.
“저···. 내일 말고 다른 날 괜찮으시겠습니까?”
“내일 무슨 일정 있으십니까?”
“저···. 그게 다름이 아니라···.”
잠깐 머뭇대던 제이미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사실 내일 드레퓌스(Dreyfus) 측과 미팅이 잡혀있어서요.”
“미팅이요? 무슨 미팅을?”
“그게 사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투자받기는 글렀다 싶어서 자포자기하고 있던 차에 드레퓌스 측에서 제 아이디어에 관심이 있다고 연락이 와서···. 아! 물론 지금은 입장이 다릅니다. 딜런 대표님이 투자해주신다고 했으니 거절 의사를 밝히고 오겠습니다.”
혹시나 내가 투자를 철회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같이 가시죠.”
“네?”
“저도 그 미팅에 같이 가겠습니다. 이제는 관계자가 됐으니 상관없겠죠?”
드레퓌스에 대해 들은 게 있는 나로서는 저 순진한 어린양을 혼자 보내기엔 찝찝한 구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