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76)
276화 친한척 금지
미국 케임브리지 위치한 드레퓌스(Dreyfus) 사옥.
미국 거대 곡물 기업 중 한 곳답게 거대한 성채를 연상케 하는 고딕 건축물은 남다른 웅장함을 자랑했다.
한껏 긴장한 제이미가 연신 침을 꼴딱 삼키며 어색한 걸음걸이를 선보였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제법 널찍한 미팅룸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곧 담당자께서 도착하실 겁니다.”
그렇게 회의실에는 덩그러니 남겨진 우리 두 사람.
“후우···. 딜런과 함께 오길 잘했네요. 혼자 왔으면 엄청 긴장했을 것 같아요.”
“지금도 충분히 긴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에이. 설마요. 그냥 미팅일 뿐인데 긴장할 게 있나요.”
“지금 손 덜덜 떨고 있는 건 추워서 그래요? 여기 지금 되게 더운데.”
흠칫한 제이미가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슬그머니 책상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나저나 드레퓌스와는 어떻게 접점이 생겼어요? 스타트업이 만나긴 쉽지 않은 곳인데.”
“아···. 그게. 우연히 창업 행사 갔다가 네트워킹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한 액셀러레이터 직원이 주선해주신 겁니다.”
“그 액셀러레이터가 어디죠?”
“스타테크입니다.”
“스타테크라···.”
얼핏 들어본 적 있었다.
미국 태생의 액셀러레이터인데 그리 인지도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듣기로는 보육 프로그램도 엉성한 편이었고, 자신 있게 들이밀 만한 성과도 아직 없는 곳이어서 스타트업들이 별로 선호하는 기관은 아니라고 들었다.
“그들이 제이미에게 원하는 게 뭘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고 하더라고요.”
“흐음···. 그럼 조금 있다가 알게 되겠네요.”
굳이 이 자리에 따라올 이유는 없었지만, 제대로 된 팀원도 없는 제이미의 상황에서 이런 대기업과의 미팅은 위험할 수 있었다.
시가총액만 100억 달러에 달하는 거대 기업이 예비 창업자를 상대로 뭘 하겠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벼룩의 간도 맛있게 냠냠 하는 인간들이 꽤나 많단 말이지.’
물론 순수한 호의로 접근할 것일 수도 있다.
어차피 제이미에게 투자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혹시 모를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따라 온 목적이 컸다.
똑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회의실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십 대 정도로 보이는 멀끔한 백인 남성들이었는데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굉장히 깐깐한 인상이었다.
“반갑습니다. 드레퓌스 종자개발사업부 디렉터 로이라고 합니다.”
“매니저 데니얼입니다.”
두 사내가 명함을 건네자 당황한 제이미가 허둥지둥 바지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
확실히 비즈니스 경험이 적은 티가 팍팍 흐르는구만.
“아···. 예. 저는 ‘Blue Earth’ 대표 제이미라고합니다. 그리고 여긴···.”
“딜런이라고 합니다. 명함은 아직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동료분이신가보군요. 괜찮습니다. 일단 앉아서 얘기 나누실까요?”
자리에 앉은 나는 두 사람의 면면을 유심히 살폈다.
자신을 디렉터라고 밝힌 로이는 내 쪽으로는 아예 관심도 두지 않고 오로지 제이미만 쳐다보고 있었다.
‘디렉터라고 했으니···. 한국으로 따지면 차, 부장 쯤 되겠고, 나머지는 과장 정도 되겠구만.’
이 정도 규모의 회사에서 디렉터 정도 직급이라면 그래도 나름 힘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저···. 어떤 연유로 저를 만나보고 싶다고 하신 건지···?”
조심스러운 제이미의 물음에 디렉터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무슨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비슷한 사업 영역에서 일하는, 어떻게 보면 후배 아닙니까? 스타테크에서 일하는 제 친구가 하도 호들갑을 떨길래 제이미씨 발표 영상을 보게 됐는데 정말 감탄했습니다. 젊은 친구답게 아이디어가 돋보이더군요. 제이미의 발표를 보고 있자니 제 사라진 열정이 다시 들끓는 기분이랄까? 하하하.”
“아···. 그런가요?”
디렉터의 말에 쑥스러워하며 머리를 긁적이는 제이미.
나는 돌아가는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설마 그런 사적인 이유로 부르신 건 아니시죠? 저흰 사업에 관한 공식적인 미팅 자리로 알고 왔습니다만 단순히 격려를 위해 부르신 거면 굳이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아···. 그게 아니라.”
단도직입적인 입장표명에 두 남자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비즈니스 자리에서, 더구나 초면인데 후배 운운하는 건 상황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설마 대기업이라고 스타트업을 무시하는 건 당연히 아닐 테고···. 그냥 외향적인 성격이셔서 그랬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아···. 그렇게 받아들이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런 의미는 아니었고 서로 어색할 수 있으니 아이스 브레이킹하자는 의미로 건넨 말이었습니다. 하하하. 동료분이 이런 부분에서 상당히 민감하시군요.”
말로는 사과를 언급했지만, 얼굴은 살짝 언짢은 기색이 묻어나왔다.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여기는 염연히 비즈니스를 논하는 자리였다.
애초에 상대를 후배니, 젊은 친구니 하면서 은근슬쩍 하대 포지션을 깔아버리면,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갑과 을 포지션으로 바뀔 수 있었다.
저쪽의 의도가 정확히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굽히고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디렉터와 매니저가 자기들끼리 눈빛을 주고받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소개드렸다시피 저희는 종자개발사업부 소속입니다. 그리고 제이미 대표님이 고안하신 종자 코팅 기술을 무척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였고 무엇보다 우리 회사가 연구 중인 프로젝트와 상당히 유사한 면이 많아 놀랐습니다.”
“유사하다고요? 그럴 리가···.”
혼을 바쳐 파고들었던 연구를 대기업이 똑같이 하고 있다 하니 제이미의 멘탈이 살짝 흔들린게 보였다.
“종자코팅이야 이제는 상용화가 된 기술이고, 결국 거기서 어떤 차별점을 만드냐의 싸움인데, 저희 드레퓌스 역시 토양에서 탄소를 격리시키는 기술 연구를 지난 5년간 매진해왔습니다. 들어간 사업비만 자그마치 1,000만 달러에 달하죠.”
“아···. 그렇습니까?”
잔뜩 주눅이 든 제이미가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 슬쩍 내 눈치를 살피는 걸 보니 혹여나 그것 때문에 투자를 철회할까 전전긍긍한 모습이었다.
“같은 카테고리를 연구할 뿐이지 내용까지 같진 않을 텐데요?”
디렉터의 서늘한 시선이 다시 한번 나를 한번 스쳐 갔다.
눈엣가시처럼 무척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그냥 그렇다는 걸 전해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자꾸 말이 헛도는 것 같네요.”
“동료분 성격이 무척 급하시군요. 좋습니다. 저희도 시간이 그리 많진 않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지금 하고 계신 연구, 저희 드레퓌스와 함께 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제안이었다.
“그 말은···. 업무 제휴를 맺자는 얘깁니까?”
어리둥절해 하는 제이미의 표정을 본 디렉터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건 대표님의 의중이 중요합니다. 베스트는 제이미 대표가 이제껏 연구해온 자료와 기술을 저희 드레뷔스에 파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죠.”
디렉터의 말에 제이미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기술을 팔라고요?”
“그렇습니다. 원하신다면 우리 드레뷔스의 수석 연구원 자리를 드릴 용의도 있습니다. 제가 알기론 제이미 대표의 학력이 고졸로 알고 있지만, 저희 회사는 그런 사소한 부분 때문에 장벽을 세우지 않습니다. 그만큼의 능력을 보여준다면 말이죠.”
“어···. 음. 당황스럽네요.”
설마하니 연구 자료를 팔라고 제안할 줄은 몰랐던지 제이미의 얼굴에 혼란이 깃들었다.
“얼마나 쳐주시는 겁니까?”
내 질문에 디렉터가 씨익 웃으며 서류 파일 하나를 건넸다.
“세부적인 내용은 안에 다 적혀있습니다만. 금액만 말씀드리자면···. 2만 3천 달러 제시드리겠습니다.”
2만 3천 달러. 한화로 3,000만원 정도 되는 돈이었다.
어떻게 보면 적지 않은 돈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무려 황금빛 주인공이 공을 들여 연구한 자료인데 내 입장에서는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흐음···. 그 돈이면 굳이 기술을 넘길 일은 없겠군요.”
단언하는 내 말에 두 사람이 픽 웃음을 흘렸다.
“뭔가 대단한 기대를 하신 것 같은데 냉정하게 얘기해서 그 정도도 정말 잘 쳐 드린 겁니다.”
“그건 그쪽들 생각 아닙니까?”
“하나하나 따져볼까요? 제이미 대표님.”
“네?”
“종자 코팅에 관해 연구하신 지 얼마나 되셨죠?”
“어···. 음. 제대로 연구한 건 3년 정도 됐습니다.”
“3년이라···. 그 안에 무슨 성과를 달성한게 있나요? 예를 들어 특허 등록을 했다든지, 고안하신 종자 코팅으로 키워낸 작물이 있으시다든지?”
꼬치꼬치 따져 묻는 디렉터의 말에 제이미의 어깨가 조금씩 축 처져갔다.
“아뇨···. 없습니다.”
“추궁을 하는 게 아니라 팩트를 따지자는 겁니다. 냉정히 얘기하면 저희로선 영세 농부의 공부 노트를 자그마치 2만3천 달러에 사겠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부족합니까?”
새삼 제이미를 따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없었다면 얼떨결에 도장 찍고 홀라당 연구 자료를 넘겼을 수도…?
“네. 부족합니다. 아니, 터무니없습니다. 그런 단편적인 요소만 가지고 가격을 책정을 하는 건 말이 안 되죠.”
“그럼 저희가 무얼 더 고려해야 하지요?”
“그쪽들은 모르지 않습니까? 왜 제이미 대표가 종자코팅이라는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현재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으며, 세상에 전하려고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리는 두 사람.
“비즈니스 하는데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합니까?”
나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습이 신경 쓰였던지 제이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기술을 넘길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이 연구를 완성할 겁니다.”
“무립니다. 종자 연구라는게 무슨 학교 과학 시간에 하는 소꼽놀인줄 아시는 건 아니겠죠?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있는 저희 드레퓌스 연구소에서도 5년간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 같습니까?”
“이제는 가능합니다. 제대로 된 투자를 받기로 했으니까요.”
“투자요? 어디서 말입니까?”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입니다.”
“예?”
두 눈을 부릅뜬 디렉터가 믿을 수 없다는듯 말을 더듬었다.
“정말 그곳에서 투자받기로 했다는 겁니까?”
“예. 명함까지 받았습니다.”
제이미가 내게 받은 명함을 보여주자 유심히 살피던 디렉터가 이내 실소를 터트렸다.
“이거 제대로 속으셨군요.”
응? 이건 또 뭔 개소리야?
“딜런 대표의 명함은 이런 골드 컬러가 아닌 화이트 컬러입니다. 어디서 사칭범의 명함을 받아온 듯하군요.”
“딜런 대표랑 잘 아세요?”
내 물음에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디렉터.
“물론입니다. 업무 때문에 식사 몇 번 했죠. 그는 무척 괴짜 같은 인물이라 그렇게 함부로 명함을 남발하지 않습니다.”
“잘 아시네요. 저는 그쪽을 난생 처음 보는데 왜 제 명함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 괜한 헛된 바람 들지 마시고······. 네?”
대화에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디렉터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당신을 처음 보는데 왜 자꾸 저랑 친한 척하시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