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78)
278화 원래 세상은 미친놈이 바꾸는 겁니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농장이 아닌데?
“하하하···. 좀 초라하지요···?”
민망한 듯 제이미가 머리를 긁적긁적했지만, 웬걸?
나는 전혀 반대의 이유로 놀란 것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전체적인 농장 전경을 훑었다.
끝없이 펼쳐진 묘망한 평야에는 온갖 작물들이 빼곡히 심겨 있었는데, 그 땅이 어찌나 광활한지 사방을 둘러봐도 전부 지평선이 보일 정도였다.
“저···. 제이미? 분명 본인 입으로 영세한 소농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내 물음에 고개를 갸웃하는 제이미.
“맞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소농 중에서도 규모가 작은 편이죠.”
“이게요? 농지 크기가 어떻게 되는데요?”
“41에이커 정도밖에 안 됩니다.”
“어디 보자···. 41에이커를 평수로 따지면···.”
전자두뇌가 빠르게 돌아가며 에이커를 평수로 전환해보니···.
“컥! 5만 평···?”
제이미는 되려 의아한 기색이었다.
“왜 그렇게 놀라시는지···? 미국의 평균 농지 사이즈인 440에이커(54만평)에 비하면 민망한 수준이죠.”
“아···. 그래요?”
내가 알기론 한국 농부의 평균 농지 사이즈가 대략 3,000평 정도된다고 들었는데 140배가 넘는 차이였다.
‘역시 미국은 땅덩어리가 어마어마하게 넓구나···.’
자꾸 소농이니, 영세 농부이니 이런 말만 해대니 기껏해야 텃밭 정도 가지고 있는 줄 착각했다.
“큼큼···. 아무튼 생각보다···. 농장이 멋지네요. 감탄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내 칭찬이 기분 좋았던지 제이미의 입꼬리가 씰룩쌜룩 댔다.
하지만 마냥 공치사가 아닌 게 저 드넓은 대지에 오와 열을 딱 맞춰 빼곡히 들어차 있는 농작물과 알알이 잘 여문 탐스러운 결실은 농사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관리가 무척 잘되어있다는 느낌이었다.
“이 넓은 곳을 혼자 다 관리하시는 겁니까?”
“동생들이 조금씩 도와주긴 하는데···. 아직 어려서. 하하. 거의 혼자 다 한다고 봐야죠.”
“세상에···.”
이 넓은 구역을 어떻게 혼자 다 관리 한다는 건지 잘 상상이 되질 않았다.
‘걸어만 다녀도 하루가 다 끝날 것 같은데?’
한국의 아담한 논밭만 봐왔던 나에게 미국의 농장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상식적으로 이 많은 농작물을 혼자 관리한다는 게 가능합니까? 예를 들어 새들이 농작물을 망치면 어떡할 것이며, 농약 치는 거랑 수확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은데···.”
“하하하. 생각보다 할 만합니다. 작물용 센서를 부착해서 작황 상태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드론을 날려 농지 전체를 모니터링 하거든요. 그리고 새 문제는 종자에 철분을 코팅하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새들이 철분 냄새를 싫어하거든요. 그리고 저흰 농약도 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병해충을 내쫓는 미생물을 코팅하면 되거든요.”
“아···.”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하는 태도가 어이없었다.
이게 어디 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영역이던가?
여러 상념이 드는 와중 드디어 우리는 건물이라 할 만한 구조물이 쭉 나열되어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이건···?”
겉보기엔 유리온실처럼 보였는데 내부로 들어서니 정체 모를 푸룻한 식물들이 물류센터에 진열된 상품처럼 층층이 쌓여있었다.
“여긴 스마트팜 기술을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일종의 연구소입니다. 하하하. 역시나 볼품없죠?”
“혹시 당신은 농사에 미친 인간인가요?”
“네?”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소리에 다급히 수습을 해야 했다.
“아니, 이런 걸 어떻게 다 혼자 하냐고요. 제이미는 잠도 안 잡니까?”
“하하하.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지만 노동력이 들어가는 부분은 생각보다 제한적입니다.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관리할 수 있거든요. 무엇보다 여긴 연구소다 보니 관리랄 것도 없는 규모죠.”
“이게요···?”
아무래도 저 인간과 나 사이에는 사이즈 인지 능력에 차이가 있는듯했다.
“그나저나 이런 스마트팜 쪽으로도 조예가 있으신 줄은 몰랐네요.”
“사실 스마트팜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한 수준입니다. 하이테크 기술이 적용됐다고 보긴 힘들고 그냥 가장 기초적인 것만 따라 한 수준입니다.”
“흐음···. 요즘 농업이 추구하는 트랜드이다보니 제이미도 그쪽으로 방향을 잡으셨나 보군요.”
하지만 의외로 제이미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이건 경험에 차원에서 한번 시도해봤을 뿐, 별로 유익한 농업 방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째서요?”
“물론 스마트팜, 애그테크 같은 것들이 미래 농업이 지향해가야 하는 방향 중 하나인 건 부인할 수 없지만 제 가치관과는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흐음···. 자세히 설명 가능할까요?”
제이미가 푸릇한 잎사귀를 매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사람들은 흔히 착각합니다. 스마트팜을 도입하면 생산량은 늘고, 노동력은 줄일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생산량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늘이 주는 당해의 기상조건입니다. 그래서 농업은 ‘하나님과 동업 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죠. 무엇보다 제가 문제 삼는 것은 스마트팜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제가 계산해보니 온실 내부 에너지 공급 비용이 작물 생산 원가의 40%에 육박했습니다.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면 당연히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증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제가 회사 이름을 ‘블루어스’라 지은 이유도 더 이상 지구온난화, 기후변화를 막는 데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팜은 제가 추구하는 농업 방식과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종자코팅 연구에 더욱 매진한 것이기도 하고요.”
“흐음···. 그렇군요.”
그러더니 갑자기 땅이 꺼져라 푹 한숨을 내쉬는 제이미.
“주변 농부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도 다들 콧방귀만 낄 뿐입니다. 아니, 애초에 미국의 농부나 농장주들은 기후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기후변화 얘기만 꺼내면 저를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하는 게 대부분이었죠. 아무래도 새파랗게 젊은 놈이 어쭙잖은 조언이나 하고 앉아있으니 꼴 보기가 싫었나 봅니다.”
“흐음···. 어렵겠군요.”
“하지만 현실은 농업 부문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전체의 15%를 차지합니다. 여기서 미국이 9%를 차지하고 있고요. 이는 정말 어마어마한 수치입니다. 그래서 농업이라고 마냥 기후변화 문제에 팔짱만 끼고 있을 순 없다는 겁니다.”
이제껏 수줍은 모습만 보이다가 시뻘게진 얼굴로 열변을 토하는 제이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솔직히···. 제이미가 그렇게 해도 바뀌는 건 없지 않습니까?”
“아니요. 당장은 몰라도 언젠간 바뀔 겁니다. 해도 안될 거라는 생각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뭐라든 저부터라도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끝으로 제이미가 조금씩 붉게 물들어가는 농장 전경을 눈에 담았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늘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농부는 볕에 감사하고, 바람에 감사하고, 비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자연이 주는 은혜를 절대 무시해선 안 되며, 자연의 은혜를 아는 것이 농부의 지혜라고 하셨죠.”
“아버지는 정말 멋진 농부셨군요.”
제이미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저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동양의 한자로 농(農)이라는 글자는 ‘별 신(辰)’자에 ‘노래 곡(曲)’자가 합쳐진 글자라죠? 해석하면 ‘별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농사란 하늘의 기운을 따르는 일이라는 거죠. 그래서 농부들은 아주 작은 한 알의 씨앗이 땅의 기운으로 싹을 틔우는 것을 보면 생명의 신비로움에 절로 겸허해집니다.”
제이미가 흡사 자식을 보는 따스한 눈빛으로 옥수수 이파리를 만지작거렸다.
“농부의 진정성은 수확량에 있는 게 아니라, 땅속 깊이 씨앗을 묻어 버릴 줄 아는 그 마음가짐에 있는 것이며, 심지 않은 것을 거두려는 허황한 기대를 가져선 안 되고, 급한 마음으로 결실을 재촉하지 않게 늘 여유를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씨앗이 썩어질 걸 알지만, 그 과정이 있어야 열매를 맺을 것도 알기에 땀 흘려가며 씨를 뿌리고 과감히 흙을 덮어버리는 겁니다. 그게 농부의 믿음인 거죠.”
크지 않은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나는 빨려들듯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농사라는 것이 어찌 보면 내가 하는 업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어쩐지···. 제이미를 만나게 저에게 행운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제이미가 허둥지둥 발걸음을 옮겼다.
“죄, 죄송합니다. 사업 얘기를 해야 하는데 쓸데없는 얘기나 주절거렸네요.”
“아니요. 오히려 이런 얘기가 듣고 싶었습니다. 오늘 여기 오길 잘했네요. 하하하. 계속 그 마음가짐 변치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허풍이나 떠는 미친놈 같아 보이지 않던가요?”
“원래 세상은 미친놈이 바꾸는 겁니다. 그리고 저도 어디 가서 미친놈 소리 남 부럽지 않게 듣는 편이죠.”
“하긴···. 이해할 것 같습니다.”
뭘 이해한다는 겁니까 제이미?
따져 묻고 싶었지만, 어느새 제이미는 한두 발짝 앞서 걷고 있었다.
그런 제이미의 뒤통수를 지그시 바라보며 느낀 점이 있다면.
‘제이미는 천재다.’
일반적인 범주의 천재라기보다는 농업에 특화된 천재랄까?
물론 하버드에 입학했을 정도라면 학업 수행능력도 뛰어났겠지만, 그런 부분보다는 농사에 임하는 진정성과 그 창의성이 내가 봐도 남달라 보였다.
‘저런 사람이면 황금빛이 아니어도 투자했겠는데?’
그와 대화 나누면서 느낀 게 있다면, 평소에는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지만 농사 얘기만 나오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자신감이 차오르며 두 눈이 별처럼 반짝반짝 빛난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제이미라는 인물에 대한 데이터를 차곡차곡 정리해가던 중, 가정집으로 보이는 벽돌 건물 앞에 도착했다.
“여기가 저희 집입니다. 시간이 늦었으니 주무시고 가시죠. 오늘 시내까지 가기엔 무리입니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내심 그럴 생각이었기에 기꺼이 호의를 받기로 했다.
철컹
우다다다다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경박한 발소리.
그리고 짤막한 그림자들이 맹렬한 기세로 제이미를 덮쳤다.
“엉아!”
“오빠아!”
“왈왈!”
“어이구.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었지?”
자신에게 안긴 두 동생을 제이미가 따듯하게 미소로 맞아줬다.
제이미의 품에 안겨 내 존재를 인식한 두 미국 잼민이들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형아. 저 사람은 누구야?”
“응? 아! 투자자···. 가 아니고. 어···. 음.”
나를 뭐라 소개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제이미를 대신하여 내가 나섰다.
“제이미 친한 형이야.”
“형아의 형아야?”
“오빠 오빠야?”
“응. 반가워 얘들아.”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뽀글뽀글한 머리가 미치도록 귀여운 녀석들이었다.
보육원 동생들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곧장 무장해제 되어 버렸다.
그때 저 멀리서 지팡이를 짚고 다가오는 백발의 노모.
“제이미 왔느냐?”
“할머니! 별일 없으셨죠?”
“오홍홍. 그럼. 잘 지냈단다. 그런데 저 청년은 누구니?”
“아! 새로 사귄 형님이에요. 인사시켜드리고 싶어서 데려왔어요.”
“아! 그래? 그거 정말 잘 됐구나!”
다리가 불편하신지 지팡이에 의지하며 힘겹게 다가오는 할머니를 보자 원장 어머니 생각이 나서 괜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딜런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캐서린이라고 해요.”
내 앞으로 다가온 할머니가 주름진 손으로 내 두 손을 잡아주셨다.
‘이런 게 가족인가? 역시 세계 어딜 가도 가족의 정이라는 건 다 똑같은 거구나.’
가슴이 훈훈하게 데워지는 기분에 할머니를 한번 꼬옥 안아드렸다.
“우리 제이미가 사람 보는 눈이 있구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굳이 식은 올리지 않아도 된단다. 두 사람만 괜찮다면.”
“네 저도 식은 생각하고 있지······.”
대화에 위화감을 느낀 나는 고개를 갸웃했고, 캐서린 할머니는 해맑은 얼굴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도 둘만 살면 적적할 수 있으니, 입양을 고려해보는 건 어떠니?”
“………….예?”
황당함에 그대로 얼어붙은 나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뭔가 어마어마한 오해를 하신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