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사자는 하이에나 밑으로 못들어간다
똑똑똑
숨 막히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던 그때.
“계십니까? 인젠타에서 왔습니다.”
“인젠타···?”
낯선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제이미는 아는 이름인 듯 얼굴을 굳혔다.
“할머니. 아는 사람인것 같으니 애들 데리고 잠깐 들어가 계실래요?”
“아는 사람들이라고···? 누군지는 몰라도 참 경우가 없구나. 이 시간에 찾아올 생각을 다하고 말이야.”
손에 든 샷건을 내린 캐서린 할머니가 투덜대며 로키와 로라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딜런도···.”
“아뇨. 전 옆에 있겠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혼자보단 둘이 나을 겁니다.”
딱 봐도 뭔가 사연 있어 보이는 상황에 옆에 남아있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체념하듯 짧은 한숨을 내쉰 제이미가 현관문 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철컥
모습을 드러낸 건 멀끔한 양복 차림의 남자였다.
나이는 사십 대 정도로 보였는데 백인의 이목구비를 가졌지만 옅은 갈색 피부를 가진 것이 히스패닉계 혼혈처럼 보였다.
“지금 제정신입니까? 이 시간에 가정집에 들이닥치는 건 대체 어느 나라 예절입니까?”
“하하하. 죄송합니다. 통 전화를 안 받으셔서 무례인 줄 알면서도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휴, 그나저나 여긴 정말 찾기 힘든 곳이군요. 같은 미국 땅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돕니다.”
“대체 무슨 용건으로 여기까지 찾아오신 겁니까?”
“뭐 대충 예상하시지 않습니까? 그나저나 나름 멀리서 온 손님인데 앉아서 대화 나누면 안 되겠습니까? 운전을 오래 했더니 온몸이 뻐근하군요.”
정확한 정체는 모르겠지만 꽤나 뺀질거리는 캐릭터였다.
뭔가 사람의 복장을 뒤집는 화법을 구사한다고나 할까?
남자의 말에 입술을 짓이긴 제이미가 마지못해 그를 안으로 들였다.
“들어오시죠.”
집안에 들어온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이야. 아늑하니 좋군요. 예전에 시골에 사시던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어릴 땐 그렇게 시골 가기가 싫었는데 나이를 먹으니 종종 생각이 나더군요. 외람되지만 따듯한 차 한 잔만 주시겠습니까?”
이건 뭐 주객이 전도된 꼴이었다.
집주인에게 당당하게 차를 요구하는 모양새라니.
“그나저나 이곳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손님이 한 분 계시는군요? 누구신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보는 남자의 시선에 간단히 내 소개를 했다.
“동업자입니다. 저야말로 처음 뵙는 분이군요.”
“동업자요? 아! 외국인 노동자인가 보군요. 반갑습니다. 크리스입니다.”
남자가 씨익 웃으며 내 손을 맞잡았다.
“그러는 크리스씨는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영어를 참 잘하시는군요.”
“예?”
천진난만한 물음에 남자의 얼굴에 살짝 균열이 갔다.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입니다만.”
“아? 그렇습니까? 제가 실수했군요. 미국인 친구들이 많은데 느낌이 좀 달라서 오해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보는 눈을 좀 키우셔야겠습니다. 살면서 그런 소리는 또 처음 듣는군요.”
뺀질거리기 바빴던 남자가 나에게 가시를 세웠다.
물론 남자를 긁기 위해 의도한 멘트였다.
나 역시 눈앞에 저 무례한 남자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깐.
잠시 후, 제이미가 찻잔을 가지고 오자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제이미씨? 제 전화는 왜 자꾸 피하는 겁니까?”
“말 같지도 않은 말만 해대니 안 받는 것 아닙니까? 대기업이면 답니까? 우리 같은 영세 농부들을 핍박하는 저의가 뭡니까 대체?”
평소 소극적인 태도의 제이미답지 않게 격양된 모습이었다.
추정컨대 눈앞에 남자는 인젠타라 불리는 거대 기업의 직원인 듯 보였다.
“핍박이라뇨.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습니다. 제이미씨가 엄연히 불법으로 저희 GM(유전자변형) 캐놀라를 재배하지 않았습니까?”
“하!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십시오. 전 그런 적 없습니다.”
“명백히 증거가 있는데도 발뺌하는 겁니까? 아버님도 그러시더니 보기보다 뻔뻔하시군요. 부전자전인 건가요?”
“뭐라고요? 지금 말 다 했습니까?”
얼굴이 시뻘게진 제이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일단은 내가 나서서 말렸다.
“워워 제이미. 흥분하지 말아요. 그래봤자 좋을게 없습니다.”
그제야 내 존재를 인지한 제이미가 주먹을 불끈 쥐고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제이미를 진정시킨 나는 크리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크리스씨라고 했나요? 정확히 어떤 불법을 저질렀다는 건지 상세히 설명부터 해주시죠.”
“동업자라도 자세한 내막은 모르시나 보군요. 하긴 어디 가서 떠들고 다닐 얘기는 아니겠죠. 이곳 블루어스 농장은 종자 특허를 가지고 있는 저희 인젠타의 허락도 없이 GM 캐놀라를 재배했습니다. 이는 명백히 특허 침해이며 이에 대한 손해 배상을 청구할 생각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네 종자를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캐놀라가 여기에 심겨 있는 겁니까? 너무도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발뺌한다는 건 자신의 추악함만 더 들어낼 뿐입니다.”
“뭐라고요?”
“일단 침착해요 제이미. 저한테 정확한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시겠어요?”
차분한 내 말투에 옅은 한숨을 내쉰 제이미가 사건의 전말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우리 농장은 할아버지 때부터 60년간 지켜온 우리의 터전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축 사료와 오일을 얻기 위해 매년 경작해오던 캐놀라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죠. 전신주 주변을 정리하기 위해 제초제를 뿌렸는데···. 다른 잡초들과 함께 죽었어야 할 캐놀라가 살아남았던 겁니다.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어느 날 인젠타 측에서 자신들의 캐놀라를 불법으로 재배했다고 딴지를 걸며 막대한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막무가내로 요구해왔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크리스가 불쑥 끼어들었다.
“기술 특허라는 게 왜 있는 것 같습니까? 허락도 없이 남에 종자를 사용했으면 응당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입니다.”
“아 글쎄! 우리는 그 종자를 사용한 적이 없다니까요!”
“그럼 저 밭에 심긴 캐놀라는 대체 뭡니까?”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정말 모르는 걸 어떡하란 말입니까?”
“잠깐 잠깐! 일단 진정들 하시고요. 제이미는 정말 그 캐놀라를 심은 적이 없다는 말이죠? 혹시 추정되는 거라도 없습니까?”
“아마 바람에 씨앗이 날아들었을 가능성이 크겠죠. 근처에 그 캐놀라를 키우는 농장들이 적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그 GM 캐놀라 때문에 농장 피해가 막심합니다. 기존에 저희가 키우던 캐놀라가 모두 오염되었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막대한 보상금까지 지급하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이번에는 크리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체 얼마의 보상금을 원하는 겁니까?”
“40만 달러입니다.”
40만 달러면 원화로 5억이 넘는 돈이었다.
현재 제이미의 경제 상황에서 낼 수 없는 돈이기도 했다.
“저희가 그런 돈이 어딨습니까?”
“그래서 다른 대안도 드리지 않았습니까? 여기 땅을 넘기시던지, 아니면 제이미씨가 그만큼의 노동을 하시던지 양자택일하시라고.”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아하. 진짜 목적은 이거였구만.
애초에 이 회사도 알았던 것이다.
제이미가 그만한 보상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만약 제시한 요구 조건을 수용하지 않는다면요?”
내 물음에 크리스가 눈썹을 치켜뜨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저희 입장에서야 법무팀을 통해 소송전으로 갈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저희도 원치 않습니다. 원래 대중은 약자의 편이고, 인젠타 같은 대기업이 영세 농장을 핍박하는 모양새로 밖에 비치질 않을 테니 회사 이미지에도 좋지 않을 테죠. 그래서 저희도 가능하면 원만하게 해결하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냥 한 번쯤 넘어가는 것도 어떨까요? 앞으로 그쪽 캐놀라를 재배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저야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안타깝게도 회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군요. 한 번의 선례를 남기면 그걸 악용하는 사례들이 넘쳐나게 될 테니까요. 비정해 보일지라도 안 좋은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단호히 대처하라는 지시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예상했던 답변이네요.”
한 치도 물러섬이 없어 보이는 크리스의 기세에 제이미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졌다.
제이미의 얼굴을 확인한 크리스가 태세를 전환하며 살살 달래듯 말했다.
“그러지 말고, 딱 10년만 저희 인젠타에서 근무하시는걸로 하시죠? 냉정하게 얘기해서 만약 소송까지 가버리면 제이미씨는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그건 단언할 수 있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 아닙니까? 이 기회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희 인젠타에는 많은 우수한 연구원들과 훌륭한 인프라가 깔려있습니다. 좋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겁니다.”
제이미로선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는 덫을 밟은 기분이리라.
누가 봐도 대기업과의 소송전에서 이길 가능성은 전무했고, 그렇다고 막대한 보상금을 지급할 여력은 더더욱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자신을 고소하려는 회사에 입사해서 개처럼 구르는 것뿐이란 소리였다.
이쯤 되자 제이미의 얼굴에도 짙은 혼란이 깃들었다.
더 이상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어진 나는 제이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선 승자의 미소 짓고 있는 크리스를 응시했다.
“아뇨. 제이미는 인젠타에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최악의 수를 택하겠다는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자가 어떻게 하이에나 밑으로 들어갑니까?”
“뭐, 뭐요?”
“그냥 그쪽들 하고 싶은데로 다 하세요. 우리도 우리 하고 싶은데로 할라니까.”
“저 오기 전에 거하게 술자리라도 한 겁니까?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러려고 했는데 당신 때문에 산통 다 깨지지 않았습니까? 마저 술자리 이어가야 하니깐 용건 끝나셨으면 이제 좀 가주시겠습니까?”
명백한 축객령에 크리스가 제이미를 바라봤다.
“결국, 저희 인젠타랑 척을 지겠다는 말이지요?”
크리스의 경고성 발언에 제이미가 묘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내 끄덕여지는 그의 고개.
“네. 저는 굴복할 생각이 없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인젠타의 종자를 사용한 적이 없고, 오히려 인젠타의 GM 캐놀라 때문에 피해를 본 입장입니다. 보상을 받을 건 오히려 접니다.”
“사탕을 건넸는데도 굳이 독약을 먹겠다라···. 그 젊은 혈기가 당신들의 창창한 미래를 막게 될 거라는 걸 곧 알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협상은 결렬이로군요. 저도 더 이상 설득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만 용건 끝났으니 가보도록 하죠.”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크리스의 표정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다.
저기 북쪽 사람들도 놀랄 정도의 화전양면술이었다.
그렇게 크리스는 들어올 때와 달리 찬바람 쌩쌩 날리며 떠나갔고, 식탁에는 우리 두 사람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참 별일이 다 있네요. 그래도 대기업이라는 족속들이.”
“딜런은···. 저를 믿습니까?”
“뭐가요?”
“혹시 제가 저들의 캐놀라 종자를 몰래 들여와서 키운 것일 수도 있잖습니까?”
“에이. 그게 말이 됩니까? 애초에 자연과 환경 보호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 사람이 유전자 조작 작물을 키울 리 없잖아요. 듣기론 GMO 작물이 환경에 그리 좋은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고 들었는데요?”
“맞습니다. 유전자조작 식물이 자란 토양에서 곤충 개체 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등 여러 생태계의 악영향이 확인되었습니다. 물론 장점도 있지만 제가 추구하는 방향과 맞지 않는 형태입니다.”
“그럼 됐습니다. 저는 전적으로 제이미를 믿습니다.”
확신이 담긴 말에 잠깐 말없이 나를 응시하던 제이미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까랑 같은 사람 맞습니까? 방금 전까지는 마치 싸움닭처럼 구시더니.”
“크흠···. 그건 그쪽에서 먼저···. 하아. 그나저나 걱정이네요. 인젠타에서 소송을 걸게되면 여러모로 피곤해질 것 같은데···.”
“그 전에 무슨 수를 써야죠.”
“무슨 수를···?”
“가서 잘 타일러야죠. 소송하지 말라고.”
“그게···. 될까요?”
“되게 해야죠. 일단 저랑 같이 가시죠.”
“어딜요?”
“어디겠습니까? 인젠타 본사죠.”
자고로 약은 약사에게, 골리앗은 다윗에게 맡겨야 하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