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82)
282화 원기옥을 아시나요?
“자, 잠깐만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뒤통수 너머로 애타게 나를 부르는 잭 그랜트의 목소리에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다.
하지만 짐짓 모른척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그러시죠? 아직 볼일이 남았습니까?”
“벌써 가시다니요. 아직 풀어야 할 대화가 많이 남았는데.”
“협상은 결렬되었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법정에서 보자고 하셔놓고선 갑자기 왜···?”
“하하하. 괜히 서운한 마음에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고작 40만 달러 가지고 서로 얼굴 붉힐 일 만들겠습니까? 좋은게 좋은 거라고 다시 한번 차분히 얘기나눠보시죠.”
이야. 놀라운 태세전환이다.
시종일관 거드름만 피우더니, 이제는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 마냥 다급한 모습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맷돌 손잡이를 세 개나 준비해왔는데.’
왜 예전에 매튜가 한번 언급한 적 있지 않은가.
맷돌 손잡이인 어처구니가 없어서 정작 맷돌을 사용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그 어처구니들이 내가 준비한 회심의 패(霸)였다.
솔직히 시가총액 200억 달러 정도 기업이면 웬만해선 아쉬운 소리 할 일이 없는게 정상이다.
하지만 악어에게 악어새가 필요하고, 말미잘에겐 흰동가리가 필요하듯, 아무리 거대한 기업이라도 반드시 필요한 공생관계는 존재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유전자 교정 전문 기업인 시저스젠이었다.
3년 전, 매튜가 발굴하여 시리즈B 투자와 후속 투자까지 집행했던 곳이기도 했다.
시저스젠은 독자적인 기술력이 들어간 유전자 가위의 원천 특허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유전자 교정 기술의 핵심도구로써 세포 내 특정 유전 정보를 선택적으로 교정할 수 있었다.
특히나 농업 분야에서 안전하고 효율적인 품종개발을 가능케 해서 없어서는 안 될 주요 기술이었다.
“아멜리아 대표한테 들었는데 식물 분야에 대한 독점적 글로벌 통상실시권을 부여받으려고 협상중이라죠?”
“그, 그건···.”
“흐음···. 안 그래도 오늘 인젠타 간다니까 아멜리아 대표가 회사 분위기가 어떤지 말 좀 해달라고 하던데···. 덕분에 할 말이 무척 많겠네요.”
“…………..”
애써 의연한 척하느라 고생들 하고 있지만 다 보인다 이 양반들아.
다리는 왜 그렇게 떠는 겁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해야죠 뭐. 우리 같은 영세 기업인들은 무참히 즈려 밟아주겠다면서 아주 무섭게 말씀하셨다고.”
“저희가 언제!”
“영세 농부들하고 소송해서 다 이겼다고 자랑까지 하셨으면서 갑자기 왜 발뺌이실까?”
“하하하···. 저흰 그런 의도로 말씀드린 게 아니라···. 일단 자리에 다시 앉으시죠. 저희가 손님 대접을 영 잘못한 것 같습니다. 요즘 워낙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경황이 없었군요.”
“손님이요? 아까는 원수처럼 대하시더니? 흐음···. 그럼 조금만 더 있다 갈까요 제이미?”
“네? 아! 네! 그러시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파악한 제이미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자리에 착석하자 회의실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이전에는 우리를 맛있는 먹잇감 정도로 봤다면, 지금은 그 먹잇감이 날카로운 독 가시를 감추고 있다는 걸 알고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내가 먼저 입을 뗐다.
“오늘은 아멜리아랑 술 한잔하고 다음 주에는 씨더스에 미카엘이랑 미라클푸드 앤드류 대표까지 싹 모아서 회식이나 해야겠네요. 나름 초기 투자자인데 요즘 너무 소홀했어. 아무리 우리가 ‘죽고 못 사는 끈끈한 관계’더라도 사람이 참,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자주자주 봐야 정도 더 쌓이고 그러죠. 언젠간 나도 그 친구들한테 ‘부탁’할 일이 있을 줄 어떻게 알겠어요? 안 그래요?”
“정말···. 딜런 대표가 그 회사들의 대주주란 말입니까?”
인젠타 측 간부의 물음에 나는 쯧쯧 혀를 찼다.
“이거 괜히 섭섭하네. 저에 대해서 너무 설렁설렁 조사한 거 아니에요? 아니면 무시하는 건가? 아! 무시에 가깝겠네요. 이야. 요즘 미국을 좀 뜸하게 왔더니 VC딜런도 많이 죽었네. 주변에서 기적의 투자자니, 실리콘밸리의 현자니 이런 얘기만 하면 뭐해? 막상 현장 나와보면 이렇게 개무시 당하는데. 안 그래요? 부사장님?”
“아, 아니···. 저는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니고,”
내 어마어마한 과대해석 스킬에 질문했던 부사장이 진땀을 흘렸다.
그 사이 어느 정도 평정을 되찾은 잭 그랜트 회장이 내게 물었다.
“그들을 움직여 저희를 압박이라도 할 생각입니까?”
“제가 그런 말을 했었나요?”
“뉘앙스가 그렇지 않습니까? 뭔가 대단히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우리 인젠타는 세계 곡물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상어입니다. 잡고기 좀 달라붙는다고 나아가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뜻입니다.”
“아 그러세요? 근데 아무리 상어라도 몸에 빨판상어가 붙지 않으면 힘들 텐데요? 독불장군은 오래 살 수 없는 법입니다. 그건 역사가 증명하죠. 막말로 제가 시저스젠의 유전자가위 특허와 씨더스의 표현체 분석 소프트웨어 라이센스를 못쓰게 방해라도 하면 어쩌실 겁니까? 물론 당장 회사 운영에는 크게 지장 없겠죠. 하지만 경쟁사와 치열한 기술전을 벌이고 있는 현 상황에···. 지금의 그 작은 문제가 향후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기업의 대표이신 잭 그랜트 회장님이 더 잘 아시지 않나요?”
“크흠···.”
잭 그랜트가 불편한 침음을 삼켰다.
“더구나 씨더스의 표현체 분석 소프트웨어는 현시점에서 더 절실하실 텐데요?”
내 깐족거림에도 잭 그랜트는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겠지.
현 농업 기업의 경쟁력을 판가름하는 요소는 작물의 재배환경, 유전형 등에 대한 빅데이터를 누가 얼마나 많이 수집해서 적절히 활용하냐의 싸움이다.
하지만 벼, 콩, 밀 같은 작물은 크기, 색, 수확량, 맛, 병충해에 대한 내성, 가뭄에 견디는 저항성 등과 관련된 표현형 데이터 생산이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고 효율이 낮았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간격을 메우기 위해 개발된 것이 바로 표현체(Phenomics) 기술이다.
표현체 기술은 가시광, 근적외선, 적외선 카메라 등 여러 가지 영상장비를 활용하여 농작물의 이미지를 대량으로 획득하고, 전용 소프트웨어를 통해 영상정보를 디지털화하여 작물의 데이터를 생산하는 기술이다.
굳이 따진다면 x-ray, CT, MRI 등의 의학 영상장비를 활용하여 데이터를 획득하고 분석, 진단 처방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이해하면 쉬웠다.
씨더스는 우리 회사의 파트너 VC 중 하나인 스테파니가 발굴한 스타트업이었다.
아니, 이제는 스타트업이라 불리기 민망할 정도로 기업가치가 폭등하여 어느새 건실한 기업이 되어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모두에게 외면받던 씨더스였지만, 그 잠재가치를 꿰뚫어 본 스테파니가 투자 집행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이후, 투자금을 받자마자 날개를 펼치더니 이제는 농업 기업에겐 없어선 안 될 감초 포지션으로 단단히 자리 잡은 상태였다.
‘그래서 씨더스가 왜 특별하냐고?’
기존의 표현체 분석 툴은 식물체 영상에서 잎과 줄기, 열매 등을 구분하지 못했다.
이러한 요소들은 농작물의 수확량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특성들이었는데 이걸 가능케 한 게 바로 씨더스였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독자적인 알고리즘 개발로 각 요소를 분간해낼 수 있는 기술을 만들었고, 이 밖에도 초분광을 이용한 표현체 기술 개발, 노지에서의 표현체 기술 개발 등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농업계에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쓰윽 입꼬리를 말아 올린 나는 인젠타 임원들에게 말했다.
“표현체 분석 툴이 있어야 내재해성 품종개발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미간에 내천(川)자를 그리며 생각에 잠겨있던 잭 그랜트가 한 사내를 불렀다.
“로건 소장. 다른 대안은 없나?”
보스의 부름에 당황한 남자가 이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 음. 솔직히 말씀드리면 타사 툴을 써도 진행은 가능합니다만 신뢰성이 매우 낮을 겁니다.”
연구소장의 말에 잭 그랜트의 수심이 한층 더 깊어졌다.
“그리고 인젠타 주요 거래처 중에 ‘미라클 푸드’가 있더라고요? 뭐, 인젠타 정도의 대단한 기업이면 거래처 하나 끊긴다고 눈 하나 꿈쩍하지 않겠죠?”
“그, 그건···.”
미라클 푸드까지 언급하자 더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던지 잭 그랜트가 말끝을 흐렸다.
몇 년 전, 한영대 실리콘밸리 연수를 왔다가 투자하게 된 대체육 제조 기업 미라클 푸드를 기억하는가?
우습게도 미라클 푸드가 밀 글루텐과 콩 단백질을 공급받는 곳이 바로 이곳 인젠타였다.
내가 뚫어준 판로와 투자금으로 창공 높이 날아오른 미라클 푸드는 지난 몇 년 사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며 기업가치가 30억 달러(약 3조 9천억 원)에 이르는 유니콘 기업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인젠타 같은 거대 곡물 기업도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체급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물론 당장 비즈니스가 단절된다고 인젠타가 휘청이진 않겠지만 매출에 타격이 있음은 분명했다.
‘단순히 매출 문제가 아니라, 주주들 지지를 잃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겠지.’
이미 사전 조사를 통해 꿰뚫고 있었다.
회장직을 유지하기 위한 잭 그랜트의 지분이 다소 빈약하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주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만약 이번 일로 미라클 푸드라는 우량 거래처를 잃게 된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잭 그랜트 회장이 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회만 노리던 승냥이 떼에게 물어 뜯겨 회장직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로서는 굳이 이런 악수를 둘 이유가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정녕 그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먼저 시작한 건 인젠타입니다만?”
“정말 끝까지 한번 가보자는 거지요? 정녕 인젠타와 적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차갑다. 잭 그랜트 회장의 분위기가 한없이 차가워졌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기서 절대 기세에 밀리면 안 된다.
“말은 바로 해야죠. 인젠타와 적이 되는 게 아니라, 여기 있는 여러분들과 적이 되는 겁니다.”
“여기 있는 이들이 인젠타 그 자체입니다.”
“맙소사.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회사의 주인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겁니다.”
“나 잭 그랜트가 이토록 건재한데 누구 마음대로 바꾼단 말입니다!”
“제가 합니다.”
“뭐라고요?”
“제가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하고자 마음먹으면 하는 겁니다.”
“………”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린 잭 그랜트.
“또 그 말 같지도 않은 적대적 M&A 얘기를 꺼내는 겁니까?”
“아까부터 거슬리던데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설치류는 절대 공룡을 삼킬 수 없다고. 제가 그쪽 회사 자본력을 아는데 그게 가능할 것 같습니까?”
“불가능하겠죠.”
칼 같은 대답에 잭 그랜트의 얼굴에 황당이 깃들었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럽니까?”
“혹시 원기옥이라는 기술을 아십니까?”
“뭐라고요?”
내 입에서 튀어나온 뜬금없는 단어에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벌떡 일어난 나는 양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드래곤볼이라는 만화에 나오는 기술인데 이런 자세로 자연과 생물들에게 조금씩 힘을 빌려 에너지를 모으는 겁니다.”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버럭 소리를 내지르려던 잭 그랜트는.
“제가 만약 제 이름을 걸고 M&A(인수합병)을 위한 펀드를 결성하고 펀드레이징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내 말 한마디에 그대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