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9)
29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아서요
한국대 창업 해커톤 마지막 날.
최종 발표를 앞두고 스물다섯 개의 팀은 작업 마무리에 여념이 없었다.
광대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에 푸석해진 피부.
까치집 진 머리에 거스라미 돋은 입술까지.
나흘 동안 모두가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는지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경쟁자라는 개념은 많이 희석되었고, 이제는 전우애가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해커톤 참가자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진행자인 이존호가 마이크를 들고 단상 위로 올라섰다.
“반갑습니다. 이존호입니다. 나흘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갖은 노력 끝에 만든 그 결과물을 사람들 앞에 선보일 차례입니다. 다들 자신 있으시죠?”
소리 없는 아우성에 이존호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너무 자신 있어서 대답조차 필요 없으시군요. 좋습니다. 우선 최종 발표에 앞서 심사 위원부터 소개드리겠습니다. 한국대 산학협력단 김홍길 단장, 최명구 변리사, DUK벤처스 장석현 VC,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차기사’를 창업하여 성공적으로 엑싯까지 마치신 박민수 대표까지 총 네 분입니다.”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심사 위원석에서 한 사람씩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저 사람이 ‘차기사’만든 사람이야? 생각보다 젊네.”
“그게 웨이버에 얼마에 팔렸지?”
“내가 기억하기론 800억 정도에 팔렸을걸.”
“허억! 미쳤네. 그럼 저분이 못해도 500억 이상은 가져갔다는 말이잖아.”
옆 테이블에 앉은 이들의 잡담이 내 귀를 간지럽혔다.
500억이라니.
백억 이상의 자산을 소유한 나였지만 500억이란 숫자 앞에선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스텝 하나가 올라와 이존호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아! 특별 심사 위원 한 분이 더 계셨군요. 저 멀리 아랍에미리트에서 오신 노룩(Norooq)파트너스에 술라이만 VC이십니다.”
흰색 터번을 쓰고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한, 누가 봐도 아랍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눈웃음을 지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옆에는 통역사로 보이는 남자가 함께 앉아 있었다.
“여러분들의 관심은 역시 수상 관련이겠죠? 금상 하나, 은상 둘, 동상 셋에 장려 셋 해서 총 9개 팀이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될 겁니다. 금상을 받는 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과 함께 천만 원 원의 상금을. 은상 수상팀은 한국대 총장상과 더불어 삼백만 원 상금을, 동상 이하는 산학협력단장 상과 함께 백만 원의 상금이 수여될 예정입니다.”
이존호가 참가자들을 둘러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 그리고 추가로 하나 말씀드리면 금상 팀은 국내 최대 규모의 창업경진대회죠? ‘챌린지 K-스타트업’ 본선에 바로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웅성웅성
“헐. 거기는 상금만 억 단위 아냐?”
“아서라. 거긴 대한민국에서 날고 긴다는 괴물들만 모이는 곳이야. 개발 단계 팀은 껴주지도 않을걸? 어느 정도 사업화를 구축한 팀들이 대거 참여했다고 들었거든.”
“자! 그러면 중간발표와 동일하게, 공정성을 위해서 발표 순서는 무작위 선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 스크린에 발표 순서가 게시되었고, 곧 희비가 교차하였다.
“오우 쉣! 일빠따라니.”
“너무 뒤도 안 좋아. 듣다 지치거든.”
“미운 오리···. 미운 오리······. 어! 저깄다. 우린···. 마지막이네요.”
“좋네. 대미를 장식할 수 있겠구만.”
드디어 각 팀의 최종 발표가 시작되었다.
“저희 팀이 만든 프로토 모델입니다. 스마트폰 사용이 쉽지 않은 노인 혹은 장애인을 위해 동작감지 센서를 활용하여 스마트폰 이용을 돕는 어플입니다.”
많은 팀이 있었던 만큼 훌륭한 성과물도 많이 나왔다.
기능 구현이 매끄럽게 잘 나온 완성도 높은 어플을 만든 팀들도 많았고, 아두이노를 활용한 사물인터넷 시제품을 만들어온 팀도 있었다.
중요한 건 그들의 발표가 굉장히 있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골절상을 입었을 때 올바른 착용을 유도하는 스마트 웨어러블 장치입니다. 저주파와 자이로 센서, 블루투스를 통해 연동되는 어플입니다.”
하지만 심사 위원 눈에는 전혀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심드렁한 얼굴로 발표를 듣고는 폐부를 찌르는 송곳 같은 질문을 던져댔다.
“판매루트는 어떻게 할 생각이죠? 보아하니 일반적인 세일즈는 불가능할 듯한데.”
“겉만 번지르르한 느낌이고 알맹이가 없어요. 그래서 그 서비스가 지닌 핵심 가치가 뭐죠?”
“그 분야에 대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는지는 잘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어떻게 팔 생각입니까? 포지셔닝은 어떻게 잡으실 생각이죠?”
심사 위원의 날 선 질문에 발표자들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쩔쩔맸다.
영혼까지 탈탈 털려 내려오는 발표자들을 보며 다음 순번 발표자들은 마른침을 꿀떡 삼켰다.
“겁나 살벌하네. 해커톤에서 이 정도까지 해야 하나?”
“그냥 해커톤이냐? 무려 한국대 해커톤인데 이 정도 긴장은 있어 줘야지.”
그렇게 심사 위원의 날카로운 혀에 차례대로 썰려나간 팀들이 과반을 넘어, 어느덧 우리 차례까지 다가왔다.
손바닥에 고인 땀을 바지에 닦은 이장원이 입술을 짓이겼다.
“긴장 풀어 인마. 나보다 더 긴장하고 있으면 어쩌냐?”
“팀은 이심전심이잖아요. 헤헤. 떨리는 걸 어떡해요.”
이제는 많이 편해졌는지 이장원이 빙구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제 마지막 한팀 남았네요. 미운오리쉐끼 팀은 올라와서 발표 시작해주세요.”
“형. 화이팅!
“잘하고 와요.”
두 동생의 응원을 받으며 단상 위로 올라서자 발표 자료가 스크린에 띄워졌다.
“안녕하십니까. 미운오리쉐끼 발표자 송대운 입니다. 저희가 개발한 서비스는 신개념 SNS ‘따봉’입니다. 따봉은 혐오가 만연한 요즘 시대에 ‘서로를 칭찬하고 스스로에 대해 좀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에서 출발했습니다.”
차분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여러분도 그런 기억 있으실 겁니다. 학창시절. 학년이 끝나면 학급지 같은 곳에서 설문 조사를 하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나중에 누가 제일 부자가 될 것 같은지.’, ‘누가 제일 빨리 결혼을 할 것 같은지’ 같은 것들 말이죠. 따봉은 그걸 소셜 미디어화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후 따봉의 주요 기능과 시장분석에 관한 설명을 이어갔다.
처음엔 흥미를 느끼던 심사 위원들의 표정이 갈수록 심드렁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상 ‘따봉’에 관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짝짝짝짝짝
영혼 없는 박수 소리가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고, 심사 위원들은 잡아먹기라도 할듯한 얼굴로 마이크를 잡았다.
“마지막 발표 잘 들었습니다. DUK벤처스 장석현입니다. 결국 ‘따봉’이라는 서비스가 기존에 있는 SNS를 변형한 형태라고 봐도 무방한데···. 아무리 틈새시장을 공략한다 치더라도 너무 작은 시장 아닙니까? 칭찬을 독려하는 서비스라니 취지는 참 좋습니다만 이용자가 없으면 그게 무슨 의미 있겠습니까? 미운오리새끼팀은 이와 관련된 대책이 있으십니까?”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아니 오히려 의도한 상황이었다.
상대의 혼을 빼놓을만한 한방을 위해서는 들어온 공격을 맞받아치는 카운터가 치명적이었으니깐.
“우선 좋은 질문 감사드립니다. 지당하게 옳은 말씀입니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이용자가 없으면 허공에 삽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죠. 그래서 검증하고 싶었습니다. 과연 저희 서비스에 대한 니즈가 있는지 말이죠. 다음 자료를 주목해주십시오.”
리모컨을 누르자 숨겨져 있던 PPT 자료가 스크린에 띄워졌다.
자료를 본 장석현의 목소리가 잘게 떨려왔다.
“이건···?”
“저희 팀은 이틀 차에 최소기능만 구현한 MVP 개발을 끝내고, 3일 차부터 대대적인 유저 모집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저희 ‘따봉’에 방문해주신 방문자가 단 이틀 만에 1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시, 십만?”
“이틀 만에 10만? 이게 말이 돼?”
웅성웅성
충격적인 로그 분석 지표에 소란이 커져갔다.
차기사를 창업한 박민수가 다급히 마이크를 잡았다.
“어떻게 이틀 만에 10만이라는 유저를 모을 수 있었던 거죠?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아서요.”
“바이럴 마케팅의 힘입니다.”
“바이럴 마케팅이라···.”
“서울 경기 지역에 학생 수가 많은 학교를 리스트업했고, 별스타그램 마케팅을 활용하여 저희 웹서비스로 자연스럽게 유입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주목해주실 부분은 바로 이것입니다.”
리모컨 버튼을 눌러 페이지 한 장을 더 넘겼다.
“여기 로그 지표를 보시면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몇 군데 있습니다. 단순히 방문자 만 증가하는 게 아니라 페이지뷰도 함께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저희 서비스에 대한 방문객의 만족도가 높고 재방문율도 높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드렁하게 앉아 있던 심사 위원들이 눈을 반짝이며 의자를 바짝 당겼고, 단 한 번도 펼치지 않았던 다이어리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틀 만에 10만이라는 방문자를 기록할 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는 유입경로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여기 보시면 가장 최근에 유입된 방문자들의 유입경로가 대부분 동일합니다.”
“깨톡?”
“맞습니다. ‘따봉’ 서비스가 재밌다 보니 깨톡을 통해 친구들에게 링크를 보내며 해보라고 권하는 거죠. 혹은, 반 단톡방 같은데 올리면서 무섭게 바이럴이 된 겁니다.”
“맙소사···.”
시종일관 고고하게 앉아 있던 심사 위원들의 입이 떡하고 벌어지는 게 보였다.
표정을 수습한 박민수가 날카로운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일단 고객의 니즈를 이렇게 직관적이고 빠르게 검증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따봉’은 중요한 문제 하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이 서비스로 어떻게 돈을 벌 생각입니까?”
이것 역시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던 질문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스크린 화면을 넘기며 모두를 주목시켰다.
“화면을 봐주시겠습니까? ‘따봉’을 이용한 유저들이 대체 누가 나를 찍었는지 궁금해하며 고객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돈이라도 지불할테니 누가 나를 찍었는지 알려달라는 요청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고객 게시판에 수도 없이 쌓인 게시글을 보여주자 심사 위원 손에 들린 펜이 다시 한번 분주해졌다.
“이렇듯 유저들은 득표에 기뻐하면서도 막상 누가 나를 찍었는지가 궁금해 잠 못 이룰 겁니다. 예전에 미니홈피가 유행했던 시절. 방문자 추적기가 유행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실 겁니다.”
납득이 갔던지 청중들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이렇듯 차후 유료 결제를 한 유저에게는 누가 자신을 찍었는지에 대한 단계별 힌트를 제공할 생각입니다. 물론 UI/UX를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광고도 붙일 생각이구요.”
그때였다.
조용히 화면만 쳐다보던 노룩 파트너스의 술라이만이 터번을 펄럭이며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커다란 두 눈이 흥미로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마이크를 든 술라이만이 입을 열었다.
“يا لها من خدمة رائعة. هل تعتقد أن هذه الخدمة يمكن أن تنتشر في جميع أنحاء العالم”
(정말 멋진 서비스입니다. 이 서비스가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스피커를 타고 울리는 아랍어의 향연에 모두의 얼굴이 어리둥절해졌다.
당황한 이존호가 통역사를 찾았지만 안타깝게도 잠깐 화장실을 간듯싶었다.
“بالطبع. من الشائع عالميًا أن تريد الثناء.”
(물론입니다. 칭찬을 바라는 건 만국 공통이니까요.)
내 입에서 느닷없이 터져 나온 아랍어에 술라이만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장내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탔던 제우스 호에는 아랍어를 모국어로 쓰는 모로코인과 이집트인이 많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