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90)
290화 이대로 넘어갈 순 없지
[한국거래소 “로열헬스케어, 주권매매거래 정지, 상장폐지 가능성도 무시 못 해.]“응?”
아침 일찍 출근하여 평소 루틴대로 오늘 자 경제 신문을 쭉 읽고 있었는데 익숙한 업체명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상호명이 비슷한 곳인가 싶었지만, 눈을 비비고 봐도 분명 며칠 전 내가 다녀왔던 ‘로열 헬스케어’가 맞았다.
“뭐지?”
순간 사고가 정지된 듯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머릿속을 스치는 최원우의 음성.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농담을 한 적이 없습니다.]“농담이···. 아니었어?”
설마하니 정말로 회사가 망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사업자만 툭 내놓은 페이퍼 컴퍼니도 아니고, 엄연히 코스닥에 상장이 되어있는 상장사가 이리도 허무하게 나락을 가버리니 뭔가 현실감이 없다고 해야하나?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일단 무슨 이유로 거래정지가 됐는지부터 찾아봤다.
[로열헬스케어, 회계감사서 ‘의견거절’ 받아]“감사의견거절이라···.”
일정 규모 요건이 되는 주식회사는 재무제표가 회사의 재무 상태와 경영 성과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공인 회계사를 통해 감사를 받고, 감사 의견을 표명하도록 되어있다.
감사의견에는 ‘적정의견, ‘한정의견’, ‘부정적 의견’, ‘의견거절’ 이렇게 4종류가 있는데 의견거절이 나왔다는 말은 감사보고서를 만드는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하여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한 경우라는 뜻이었다.
한 마디로 회사의 재무 및 회계 상태가 엉망진창이란 말이기도 했다.
“뭐지···? 나름 선무 그룹 삼남이 대표로 앉아있는 곳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회사가 망한다고?”
헛웃음을 터트린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최후의 발악을 한 건가?”
회사가 곧 망할 것 같으니 스타트업 아이템이라도 베껴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했던 것일까?
하지만 나는 곧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아냐. 그런 느낌은 없었어. 심지어 직원들까지도.”
애초에 그런 조짐이 있었다면 어쩔 수 없이 분위기에서 드러났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방문했을 당시 회사가 망해가서 분위기가 어둡다거나 하진 않았다.
최원우의 얼굴만 떠올려봐도 그게 어디 망해가는 회사 대표의 얼굴이던가?
재벌 부모 도움 없이 내가 이만큼 이루었다는 자부심이 철철 흐르는 얼굴이었지.
“그런데 왜···?”
도무지 답이 나오지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전화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머리 하나로 안되면 넷으로 해야지.”
***
잠시 후, 대표실로 김선기, 매튜, 스테파니 세 사람이 들어왔다.
“어서들 오세요.”
우리 회사의 기둥들이 들어오자 지끈거리던 머리가 한결 편해진 느낌이었다.
이래서 혼자보단 둘, 둘보단 셋이 나은 법이었다.
“다들 제가 보낸 기사는 보셨죠?”
“네 봤어요.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스테파니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며칠 전에 최원우 대표를 만나보셨다고 하셨죠? 어떤 낌새는 없었나요?”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지만 나는 그저 어깨만 으쓱했다.
“전혀요. 굉장히 두꺼운 가면을 쓴 능글맞은 캐릭터이긴 했지만, 본인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한 인물이었고, 회사 분위기 역시 제가 둘러봤을 땐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흐음···. 대표야 속내 감추는 거에 능숙하다 쳐도 직원들 분위기에 이상이 없었다면 답은 하나군요.”
“뭔가요 그게?”
안경을 고쳐세운 매튜가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우선 팩트는 ‘감사거절의견’으로 코스닥 거래정지가 됐다는 겁니다. 회사가 낸 이익이나, 손실, 채권발행 등의 내용에 대해 회계사가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는 얘기지요. 이는 명백히 회사에 문제가 있어 왔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리고 직원들은 이에 대해 낌새조차 느끼지 못한 것 같군요.”
“그 말은···?”
“최원우라는 사람이 회사 내 모든 정보를 쥐고 흔들었다는 얘기겠죠.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직원들 사이에 정보가 교류되는 걸 통제하고, 모든 정보는 자신을 통해 흘러가게끔 만들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매튜의 말에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침음을 흘렸다.
“흐음···. 거참. 알면 알수록 이상한 놈이네요 정말. 직접 얼굴 마주 보고 있어도 속내 파악하기가 힘들더니···.”
“어쨌거나 잘 된거 아닌가요? 이렇게 되면 원스닥터를 도용한 서비스도 물거품이 된거 잖아요.”
“물론 그렇기야 하지만···.”
찝찝하다.
뒷간 갔다가 뒤처리를 안 하고 그냥 나온 것 마냥 무진장 찝찝했다.
몇 번을 다시 곱씹어봐도 최원우의 마지막 말은 분명 회사가 저렇게 될 줄 알고 있는듯한 뉘앙스였다.
아니, 마치 그걸 자랑이라도 하는듯한 느낌이었다.
‘자기 회사가 망했다고 나한테 자랑을 한다고?’
어떤 미친놈이 자기 회사 망했다고 남들 앞에 자랑을 한단 말인가.
어째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에 머리는 더 복잡해져 갔다.
“분명 최원우 대표는 알고 있었을 겁니다. 회사가 상장폐지의 기로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도용이라는 무리수까지 두며 런칭을 서둘렀을까요?”
김선기의 물음에 스테파니가 콧방귀를 꼈다.
“흥! 궁지에 몰리니깐 도용이고 뭐고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든 거겠죠. 어이가 없어서. 자기들 급하면 남한테 피해줘도 된다는 마인드야 뭐야? a selfish concern!(이기적인 놈)”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이상한 것 투성이네요. 최원우라는 사람, 선무 그룹 삼남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 사람 회사가 이렇게 허무하게 망해도 되는 건가?”
“알아보니 지분 상으로 선무 그룹과는 전혀 무관한 회사더군요. 아마, 대부분 사람은 최원우가 선무 그룹 사람인지도 모를 겁니다.”
그때 김선기가 휴대폰을 꺼내어 우리에게 뭔가를 보여줬다.
“다들 그 로열 헬스케어에서 런칭했다는 ‘홈닥’인가? 그거 제대로 써보신 적 없죠?”
“그렇죠···? UI/UX만 확인하고 기분나빠서 바로 지워버렸으니.”
“이거 완전 깡통 어플입니다.”
“깡통 어플이요?”
“그날 퇴근하고 집에서 얼마나 잘 만든 어플인지 한번 샅샅이 훑어봤는데 이거 완전 빛 좋은 개살구던데요? 제대로 기능이 구현되는 것도 거의 없고, 서버를 뭐 어떻게 한건지 자꾸 앱이 꺼져버리더군요. 여기 앱스토어에 올라가 있는 리뷰를 한번 봐보세요.”
[와. 대체 이딴 쓰레기 앱은 왜 만든거임? 제대로 돌아가는게 하나도 없음.] [대표 혼자 취미로 만든 어플이냐? 대학생이 만들어도 이것보단 잘 만들겠다.]실제로 어플의 평점은 곤두박질쳐져 있었고, 리뷰 역시 신랄한 악평밖에 없었다.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요?”
이번에는 매튜가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었다.
“작년부터 로열 헬스케어에서 올려온 공시와 뉴스들입니다.”
[“5년 뒤 시장 규모 826조 원” 로열 헬스케어, 디지털 헬스케어 선점을 위한 신사업 진출] [로열 헬스케어, 일본 거대 기업으로부터 투자 제의받아······.] [로열 헬스케어 케냐 구리 광산 매입을 위해 유산증자······.]다들 할 말을 잃고 매튜의 휴대폰만 멍하니 쳐다봤다.
“뭐지? 이 조화로움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이 난잡한 활자 조합은?”
“맥락이 일치하는 게 단 하나도 없어요. 말만 헬스케어지 이건 뭐···. 혼종도 이런 혼종이 없네요.”
“이 차트도 한번 봐주십시오.”
이어서 매튜가 차트 하나를 보여줬다.
“헐···.”
평소 주식에 관심이 많은 김선기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미동도 없이 죽어있던 로열 헬스케어 주식에 2년 전부터 야금야금 거래량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1,000원대였던 주가가 15,000원대에 이르렀다.
그리고 거래정지가 내려지기 며칠 전, 나이아가라 폭포를 연상케 하는 기다란 장대 음봉이 연이어 흘러내린 형태의 차트였다.
“이건 누가 봐도 작전 차트인데요?”
“너무 노골적이어서 놀라울 정도예요.”
주식에 조예가 깊은 김선기가 차트를 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 보시면 세력들이 개미를 꼬시기 위해 통정거래를 한게 분봉에서 뻔히 보이네요.
“통정거래요?”
“간단히 설명드리면 주식을 보유한 A가 B에게 1주당 만 원짜리 주식을 11,000원에 넘깁니다. 그럼 B가 C에게 12,000원에 넘기고, C는 다시 A에게 13,000원에 넘겨서 주식이 다시 A의 손에 들어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만 원짜리 주식이 13,000원이 되어 돌아오게 되는 거죠. 정해진 시간에 세력들끼리 짜고 치는 거라 개미들이 올라탈 시간도 없습니다. 이를 보는 개미들은 엉덩이가 들썩이기 시작하죠. 여기 보시면 특정 시간에만 거래대금이 터진 게 딱 보이죠?”
“이건 뭐 빼박이네요. 정리하면 최원우는···. 로열 헬스케어를 통해 한탕 거하게 해 먹었다는 거네요?”
“그렇게 해석해야겠죠.”
“대체 왜···.”
모두의 머리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의 진정한 정체는 재벌가 삼남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신분이었다.
선무 그룹에 작은 계열사 하나만 물려받아도 로열 헬스케어보다 훨씬 규모가 클 텐데 왜 저런 짓을 했는지 의문이 든 것이었다.
“근데 이러면 추징금 같은 거 세게 두들겨 맞지 않나요?”
스테파니의 물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김선기.
“그 사람들 추징금 따윈 콧방귀도 안 뀔걸요? 설령 재판받는다고 쳐도 2년 정도 썩고 나오면 그만입니다. 그마저도 대부분 집행유예로 그치긴 하지만.”
“홀리쉣! 정말인가요? 주주들에게 수백억 이상의 손실을 입혔을 텐데요 겨우 처벌이 그거라고요?”
“미국은 어떤데요?”
“미국에선 대규모 금융사기를 벌였다가 수백 년 징역형을 받은 사람도 많아요. 자본시장 자체는 자유로운 편이지만 일단 법을 어기면 인생 완전히 끝나버리는 거죠.”
“수백 년 형이요? 허어···. 아예 클라스가 다르군요.”
묵묵히 듣고 있던 매튜가 말을 덧붙였다.
“첨언하자면 미국은 형량 산정에 ‘병과(倂科)주의가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징역 10년짜리 범죄를 10번 저지르면, 100년 형을 선고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한국은 가중(加重)주의가 적용됩니다. 여러 차례 죄를 범하는 경우 형량이 가장 높은 혐의에 대해 형량을 50% 가중하는 원칙이죠. 똑같이 10년형짜리 범죄를 10번 저질러도 15년형이 최대인 겁니다.”
김선기도 지지 않겠다는 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한국에선 천문학적인 벌금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법률상으론 부당이득의 3~5배 정도로 적진 않지만, 부당이득 산정이 어려울 경우 상한선이 고작 5억 원이기 때문이죠. 반대로 미국은 부당이득의 최대 4배를 ‘벌금’이 아니라 행정처분인 ‘과징금’으로 징수할 수 있어 불법 이익 환수가 비교적 쉬운 편입니다. 이런 건 빨리 좀 개정을 해야 하는데 참···.”
확실히 범죄자를 다루는 부분에 있어선 미국이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벌이 미미하니 겁 없이 저렇게 설치는 것 아니겠는가?
주가로 장난질했다가 평생 감옥에 썩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면 확실히 지금보단 그 수가 줄어들 것 같긴 했다.
“대체 최원우라는 인간의 속셈이 뭔지 모르겠네요.”
김선기의 의문에 스테파니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뭐 알 필요도 없지 않나요? 이제는 망한 회사나 마찬가진데 엮일 일도 없잖아요.”
스테파니의 말에 김선기와 매튜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대로 넘어갈 순 없지.’
한명회 어르신의 푸른빛도 신경 쓰였고, 개인적으로 찝찝함도 남아있었다.
최원우에 대해 조금 더 파볼 필요성을 느꼈다.
***
약 이주 후, 나는 간만에 반가운 인물과 접선을 했다.
“여어! 이 싹수는 없지만 돈 많고 정은 있는 망할 동생놈아!”
멀리서 반갑게 손을 흔드는 자칭 서울 셜록 홈스 상철이 형을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