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93)
293화 귀가 좀 안좋으신가?
[4F 나이스 머니 대부]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여느 회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사무실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흐음···. 사채업자 사무실이라 해도 별건 없네.”
무슨 건달들 아지트 같은 분위기를 생각하고 왔건만, 투명창 너머로 십 여명의 사람들이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광경을 보니 사실상 콜센터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흐음···. 어디보자.”
무작정 찾아오긴 했지만, 생각보다 내부가 넓어 어디로 가야 이용상을 만날 수 있을지 판단이 안 섰다.
“켕기는 거 많다고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어째 대표실도 하나 안 만들어놨냐?”
우습게도 여러 사무공간 내에 대표실이라 적힌 방이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라도 붙잡고 물어 봐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뒤에서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면접 시간까지 좀 남았는데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네?”
“흐음···. 사진보다 얼굴이 영 들어 보이는데···? 하긴 뭐! 사진이란게 다 그렇지. 하하하. 아무튼, 반갑구만. 한종범 과장이라고 해.”
짧은 스포츠 머리에 하얀 새치가 가득한 각진 턱의 남자.
혼자 따발총처럼 떠들다가 친한 척 어깨동무를 하는 깍두기 사내 때문에 순간 벙쪄서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문득 인지하게 된 내 차림새.
오전에 중요한 외부 미팅이 있어서 간만에 제대로 차려입은 정장 차림이라는 걸 깜빡했다.
“왜 이렇게 얼어있어? 그런 자세로 스무스한 대출 상담이 되겠어? 자고로 대출은 기세야 기세! 이 말빨 하나로 사람들 혼을 쏙 빼놔야 한다 이거야.”
“아···. 그렇습니까?”
얼떨결에 대답하고야 말았다.
“목소리 와꾸는 괜찮네. 근데···. 흐음.”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는 낯선 남자.
‘이제야 사람 잘못 봤다는걸 안 건가?’ 싶었지만.
“이야. 복장은 완전 굿굿! 짝퉁 티는 좀 나지만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해. 대충 보면 아주 그냥 명품으로 도배를 한 줄 알겠네. 그래! 그것도 하나의 영업 전략이야. 큰맘 먹고 돈 빌리러 왔는데 하고 다니는 행색이 그지 같은 놈이면 돈 빌리고 싶겠냐? 적어도 부티가 좀 흘러줘야 돈 빌릴 맛도 나고 그러는 거지. 안 그래?”
“뭐···. 그렇겠죠?”
남자가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더니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교대 식사 시간이라 아직 시간 좀 남았거든? 오늘 기분도 좋은데 이 엉아가 단기간 속성 과외 해줄 테니까 옥상 가서 담배 한 대 피고 오자.”
“옙. 그러시죠.”
잘 됐다 싶었다. 이참에 이용상이란 놈에 대해 정보도 캐낼 겸 남자를 따라가기로 했다.
‘그나저나 내가 취준생 상인가? 왜 다들 나만 보면 면접자라고 생각하는 거야?’
북산솔라 방문 때도 그렇고, 어째 다들 나만 보면 입사 희망자로 생각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찌 됐건 나는 군말 없이 깍두기 사내를 따라나섰다.
***
닭장과 같은 답답한 사무 공간에서 업무를 해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옥상이란 존재는 잠깐의 안식을 주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그러다 보니 사막에서 물을 찾아 모여드는 날짐승들처럼 회사 옥상에는 늘 담배를 태우는 직장인들로 북적인다.
“뭐야? 너 담배 안 피냐?”
“끊었습니다.”
“쓰읍···. 그건 좀 마이너스인데. 다시 피워볼 생각 없어?”
“없는데요.”
비흡연자라는 게 입사에 마이너스 요소가 되다니.
놀라운 입사 규정이었다.
“뭐 괜찮아. 어차피 회사 들어오면 다시 피게 될 테니까.”
혼자 낄낄대던 한종범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선 바깥 전경을 내려다봤다.
“돈 관련된 일은 해봤지? 참고로 우린 경력직 우대다?”
“음···. 뭐 사람들한테 돈 빌려주고, 나중에 다시 받고 하는 일은 꾸준히 해왔죠.”
“오! 정말이야? 요즘 경력 있는 놈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긴데 잘됐구만. 뭔 애새끼들이 그리 근성이 없는지 3개월도 못 버티고 나가는 게 다반사라니까? 나떼는 말이야. 아무리 줫같은 일을 하더라도 반년 정도는 그냥 입 닫고 버티는 게 당연한 거였는데 요즘 것들은 근성이 없어 근성이 쯧쯧쯧. 그나저나 어디에서 일했어?”
“아···. 그건 말씀드리기가 좀.”
굳이 답할 필요가 없었기에 거부한 것이지만 한종범은 뭔가 내 말을 오해한 듯했다.
“너 혹시 불법 쪽에 있었냐? 이 새끼 이거 골때리네. 어린 새끼가 겁도 없이 그런데 붙어 있었어? 간땡이 큰 거 하나는 마음에 드네.”
내가 무슨 한마디만 하면 알아서 확대 해석하는 한종범 과장이었다.
“그래. 그런 건 지켜줘야지. 근데 그런 데는 원금에서 얼마나 해 먹냐?”
“글쎄요? 5배에서 많게는 20배?”
“와! 어메이징하네 어메이징해. 그거에 비하면 우리는 엔젤이다 엔젤. 크하하. 우린 엄연히 합법 대부업체니깐 이제는 당당히 어깨 펴고 다녀. 응? 어디 가서 누가 물어보면 금융권에서 일한다고 하고. 알겄냐?”
이것도 일종의 가스라이팅인가?
계속해서 대부업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시키려 애는 쓰는데···. 글쎄?
나로선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느라 고역이었다.
“하는 업무가 어떻게 돼요?”
“뭐야? 너 딴 데서 뛴 적 있다며?”
“업무 프로세스가 다를 순 있잖아요.”
“너 이 새끼···. 대학 나왔냐? 배운 티가 좀 난다? 큼큼. 뭐 아무튼. 그쪽에선 뭔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가 하는 일은 간단해. 전화 상담원들이 건수를 물어다 주면 그때 네가 나서서 중개대출 상담을 해주면 되는 거야. 쉽지?”
“사무실에 앉아서 그냥 상담만 해주는 겁니까? 답답할 것 같은데.”
“뭐야? 너 현장직 출신이었냐?”
“발바닥에 땀 날 정도로 열심히 돌아다녔죠.”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각종 창업 행사, 데모데이, IR은 물론 미국 실리콘밸리에 중동, 아프리카까지.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히도 돌아다녔다.
“와···. 이 새끼 이미지하고는 완전 다르네. 불법 쪽 추심이면 사실상 반건달이나 다를 바 없는데···. 너 설마 생활도 했었냐?”
“생활 열심히 했죠. 저만큼 열심히 생활한 놈도 드물걸요?”
나만큼 일상생활 열심히 하는 놈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라.
“그러냐···? 크흠. 마! 나도 소싯적에는 용산빽시디 파에서 스카웃 제의도 받고 그랬어 인마.”
“아 그러셨구나.”
깡패 조직 이름이 참 깜찍하기도 하다.
“그런데 돈은 얼마나 가져갈 수 있습니까?”
“크흐흐. 새끼. 왜 안 물어보나 했다. 전부 네가 하기 나름이야. 딱 심플하게 말해줄게. 1억까지는 1%, 1억이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1.5%로 올라가고, 2억 이상은 2%를 커미션으로 가져가는 거야. 네가 어디 호구 하나 물어와서 2억을 대출받게 만들면 한방에 400을 가져가는 거지. 어때 죽이지?”
“죽이고 싶긴 하네요.”
이쯤 되면 저 깍두기가 나를 완전히 오해한 것 같으니, 이제는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어낼 때였다.
“사실 제가 여기 온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호오. 입사 동기? 인마. 이 엉아 앞에선 그런 고리타분한 얘기는 안 해도 돼.”
“그게 아니고 여기 회사 실질적인 대표가 이용상 사장님이시죠?”
순간 얼굴이 돌처럼 굳어지는 한종범 과장.
“뭐야? 그걸 어떻게 알았어?”
너무 성급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알면 안 되는 겁니까?”
“사업자도 그렇고 홈페이지에도 다른 사람 이름이 대표로 올라가 있을 텐데 어떻게 알았냐 이거지.”
“에이. 업계 사람 중에 이용상 사장님 모르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솔직히 저 오라는데 많았습니다? 근데 기왕이면 제대로 한탕 땡겨 보자는 마음으로 여길 찾은 겁니다.”
“허···. 이 새끼···.”
한종범이 나를 매섭게 나를 노려봤다.
말도 안되는 개소리를 지껄였으니 결국 걸렸구나 싶었지만.
“진짜 제대로 된 물건이 찾아왔구만. 너 인마 마음에 든다. 엉아가 좀 있다가 좋게 말해 줄 테니까 그냥 붙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크하하. 너 들어오면 이 엉아가 책임지고 키워준다. 너 이게 얼마나 큰 기회인 줄 모르지?”
“감사한 일이지만 저는 이용상 사장님을 뵙고 싶은데요.”
“새꺄. 너 어디 가서 사장님 이름 함부로 입에 올리지마라. 큰 일 치르기 싫으면.”
“아니, 사장님을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게 죕니까?”
“우리 사장님은 공사가 다망하신 분이야. 관리하는 곳이 여기 한 곳뿐인 줄 아냐? 나도 사장님 얼굴 못 뵌 지 한 달이 넘었다. 무엇보다 사장님은 본인 이름이 어디 가서 언급되는 걸 극도로 싫어하시는 분이라고. 괜히 아는 척했다가 좃되지 말고 그냥 알면서도 모른 척 그러고 있어 인마. 이건 엉아가 싹수가 보이는 후배에게 해주는 충고야.”
나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업계 탑티어가 하는 말씀이니 무조건 맞겠죠. 충고 감사합니다.”
업계 탑티어라는 공치사 때문이었을까?
한종범의 입이 함박처럼 벌어지며 내 어깨를 사정없이 두드렸다.
“크하하. 자식 보는 눈이 있구만. 그래그래. 너는 이 엉아가 책임지고 키워준다.”
생긴 것처럼 무척이나 단순 무식한 캐릭터인듯 했다.
“그래도 궁금해서 그런데 이용상 사장님에 대해 말 좀 해주시면 안됩니까? 이 회사에서 과장님 정도 입지면 사장한테도 엄청 신임 받을 것 같은데···.”
입술을 닭똥집처럼 오므린 한종범이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이 나를 유독 총애하시긴 하지. 흐음···. 이거 참 난감하구만. 좋아. 대신 절대 어디 가서 나불대고 다니면 안 된다?”
“제 별명이 자물쇱니다 자물쇠. 한번 걸어 잠그면 열리지가 않아요.”
“어차피 내 밑에서 일할 놈이니 뭐 상관없겠지. 이용상 사장님은···. 명동 사채시장에서도 아주 입지전적인 인물이야.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독기랑 깡다구 하나로 그 자리까지 오르신 분이라고.”
“정말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다고요?”
내 격한 리액션에 흥이 났는지 한종범이 거침없이 정보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래 인마. 원래 강남연합파 건달 출신이셨는데, 그때 어마어마한 쩐주의 눈에 딱 든 거야. 그때부터 생활하던 거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사채시장에 뛰어든 거지. 나도 들은 얘기지만 우리 사장님···. 정말 어마어마했다? 첫 시작을 방금 얘기한 쩐주 밀린 채무 받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한번 현장 나가면 신체 포기각서라도 어떻게든 받아왔다고 하더라. 오죽했으면 그때 사장님 별명이 명동 독사였댄다. 독기가 세다고 말이야.”
“그 어마어마한 쩐주라는 사람은 누군데요?”
“모르지. 나도 궁금하네 그건. 아무리 취하셔도 절대 그분에 대해선 언급 안 하시더라고.”
시계를 들여다본 한종범이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던졌다.
“어이구!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내려가자. 지금쯤이면 슬슬 사람들 올라오겠구만.”
한종범을 따라 다시 4층으로 내려가니 확실히 종전보다는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그러더니 웬 정장 차림의 중년 사내가 한종범을 보고선 아는 체를 했다.
“이봐 한 과장! 대체 어디 처박혀있었길래 뵈질 않아?”
“아하하. 부장님. 그게 아니라 오늘 면접 보러 온 친구 데리고 잠깐 회사 소개 좀 시켜주고 있었습니다.”
한종범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부장.
“면접? 뭔 헛소리야. 어제 처먹은 술이 덜 깼어? 오늘 면접이 어딨다고 그래?”
“네? 아니···. 지난번에 분명 오늘 면접 보러 올 친구가 있다고···.”
“하아···. 이놈의 한 과장아. 어제 회식에서 면접 취소됐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나? 대체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부장의 말에 벙찐 한종범의 고개가 내쪽으로 삐그덕 돌아갔다.
“그럼 너는 누구···?”
“저요? 상담받으러 온 사람인데요?”
“…………..”
한종범의 얼굴이 똥이라도 씹은 것처럼 와그작 일그러졌다.
***
어색한 적막이 내려앉은 3번 상담 창구.
“상담받으러 왔으면 진작 얘길 하시지···.”
“얘기할 틈새를 주셨어야 말이죠. 저는 제 입으로 면접자라고 단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할 말이 없던지 한 차례 나를 노려보던 한종범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럼 아까 금융계에서 일했다는 건···?”
“거짓은 아닙니다만.”
“어찌 됐건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으니 그 부분은 사과드리겠습니다. 우선 빠른 상담을 위해 몇 가지 질문 좀 하겠습니다. 지금 하시는 일이 어떻게 됩니까?”
“음···. 그냥 사업하고 있습니다.”
“무슨 업종입니까?”
“그냥 고객들 케어하는 일?”
액셀러레이터 업무도 하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 두루뭉술한 답변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한종범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계속 그렇게 성의 없이 답변할 겁니까? 정확한 정보를 말하지 않으면 대출이 나갈 수가 없어요!”
“아예. 이제부터 성실 답변할게요. 거 보기보다 승질 있으시네.”
뭔가 자포자기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한종범이 다시 볼펜을 잡았다.
“하아···. 일년 수익이 얼마나 됩니까?”
“음…애매하긴 한데 들어오는 현금만 하면 못해도 700억?”
“예? 얼마요?”
인상을 찡그린 한종범이 내게 다시 한번 되물었다.
“귀가 좀 안 좋으신가? 700억은 번다고요! 칠.백.억!”
귀찮았지만 큰 목소리로 다시 한번 답변했고.
“………”
사방에서 떠드는 전화 상담 소리로 시장통을 방불케 했던 사무실 내에 순간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