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295)
295화 답장
“진심입니까···?”
“나 바쁜 사람이에요. 장난이나 치겠다고 여기 왔겠습니까?”
이용상이 손톱 끝으로 살짝 긁어 놓은 듯한 특유의 뱀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송 사장님 정도면 굳이 사채를 쓸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픽 웃음을 터트린 나는 앞머리를 쓸어올리고선 앞에 있는 예수님 조각상을 만지작거렸다.
“뭘 좀 설렁설렁 아시나 보네. 벤처투자 안 해봤죠? 아! 사채업자였지? 아무튼, 벤처투자는 한번 돈이 나가면 회수하기까지 못 해도 2~3년 이상은 걸립니다. 20개 정도 투자해서 하나 건질까 말까 하는게 현실이고. 매달 꼬박꼬박 이자에 원금까지 챙기는 사채랑은 아예 결이 달라요. 이해하셨습니까?”
대 놓고 무시하는데도 전혀 감정의 동요가 없다.
폭력적이고 기질 자체가 거칠지만, 상대를 봐가며 행동하는 눈치는 있는듯했다.
“다시 말해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자금은 그리 많지 않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제가 만든 법인이라고 해도 회삿돈을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거 잘 아시는 분이 왜 이러실까.”
그럼에도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는 이용상.
“은행에서 빌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송 대표님 정도면 어떤 은행이든 두 손 들고 환영할 텐데요?”
“거참. 아까부터 자꾸 답답한 소리만 하시네. 은행 대출은 기록이 남지 않습니까? 대출 기록이 남으면 안 되는 사정이 있으니 그냥 그런 줄 아세요.”
말없이 나를 응시하던 이용상이 소파 쪽으로 고갯짓을 했다.
“일단 앉아서 대화 나누시죠.”
일단 한 걸음 다가가는 데는 성공했다.
생긴 건 곰처럼 생겨서, 하는 짓은 여우보다 더 약은 놈이다.
조금만 낌새가 이상해도 바로 꼬리를 감춰버릴 게 분명했기에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냉장고 쪽으로 다가간 이용상이 캔 맥주 두 개를 가져와 탁자 위에 올려놨다.
“지금 근무시간 아닙니까?”
“제가 사장인데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낮술은 좀 그렇지 않아요?”
“맥주가 술입니까? 음료죠.”
허. 이 양반 보소? 지금 누구 앞에서 술부심을···?
딱 봐도 술 한잔하면서 진솔한 대화를 나눠보자는 의미인 것 같았다.
“그럽시다. 나도 오늘 조기 퇴근한 셈 치지 뭐.”
치익.
캔 뚜껑을 따자 허연 거품이 화산 터지듯 흘러나왔다.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킨 나는 입가에 묻은 거품을 소매로 쓱 닦아냈다.
“크으! 역시 맥주는 낮맥이긴 해.”
혼자서 온갖 주접을 떨어대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용상이 넌지시 물었다.
“총알은 몇 개나 필요하신 겁니까?”
“글쎄요? 못해도 한 3,000억 정도?”
“쿨럭. 커흡.”
맥주를 삼키다가 사레가 들린 이용상이 거친 기침을 토해냈다.
“술 좋아하는거 맞아요? 이 아까운 걸 다 뱉어내면 어쩝니까?”
“쿨럭쿨럭. 죄, 죄송합니다.”
각 티슈에서 휴지 몇 장을 빼낸 이용상이 흥건해진 탁자를 황급히 닦아냈다.
“그래서 대답은요? 가능합니까 3천억?”
“제 선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압니다. 그래서 제가 그 유명한 백 선생을 찾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분 아니면 솔직히 이 정도 총알 감당할 수 있는 사람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액수가 주는 위압감 때문이었을까?
나를 대하는 이용상의 태도가 한층 더 정중해졌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대체 백 선생님이란 양반을 찾을 수가 없네요? 아니, 무슨 유령도 아니고 당최 정보가 없어요 정보가. 실존하는 사람 맞아요?”
옷매무새를 깔끔히 정리한 이용상이 나를 바라봤다.
“백 선생님께서는 분명히 계십니다. 하지만 실무에 나서는 일은 절대 없으시죠. 사실 이렇게 언급하는 것도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걸 굉장히 싫어하시기에···. 뭐 아무튼, 어느 정도 알고 오셨다니 말씀드리지만 직접 백 선생님을 뵙게 만들어드리는건 현실적으로 힘듭니다.”
등받이에 몸을 기댄 나는 다리를 꼬고 픽 웃음을 터트렸다.
“이 사장님은 비즈니스를 원래 그렇게 합니까?”
“예?”
“아니, 무슨 일이 십억짜리 푼돈 빌리는 것도 아니고, 3천억을 빌리는 건데 쩐주 얼굴 한번 못 보고 그 돈을 빌린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 사장님은 빌딩 살 때 공인 중개사 얼굴만 보고, 바로 계약서에 도장 찍으시나 보네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까칠한 태세에 이용상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이봐요 이 사장. 잘 생각해봐. 사람에겐 일생에 3번의 기회가 온다고 하잖아요? 내가 볼 땐 오늘 이 사장이 그 기회 중 하나를 만났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거든?”
“무슨···. 말씀입니까?”
“당사자로서 얘기하긴 뭐하지만, 이 사장 입장에서 보면 자그마치 3천억짜리 매물 아닙니까? 모르긴 몰라도 이 정도로 큰 건수가 몇 건 되진 않을 텐데요? 병신처럼 눈앞에 떨어진 보물을 이대로 그냥 놓칠 겁니까? 그쪽 프로세스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중간 다리만 놓아줘도 이 사장이 챙겨가는 커미션이 상당할 텐데요?”
허를 찔렸던지 이용상의 몸뚱이가 순간 움찔했다.
“물론 이해합니다. 보스가 직접 나서는 걸 싫어하니 밑에 사람 처지에서는 당연히 눈치가 보이겠죠. 하지만 그것도 경우 따져가면서 지켜야 하는 겁니다. 내가 볼 땐 그 정도 액수면 용기 좀 가져도 충분할 것 같은데요? 설마 그 정도 배짱도 없는 분입니까?”
“아, 아니 그건···.”
“이 사장님도 평생 이런 사채놀이만 할 건 아니잖습니까? 언젠간 음지에서 나와 번듯한 사업체 하나 인수해서 제대로 된 대표님 소리 한번 들으셔야 하지 않겠어요?”
그 말에 이용상의 눈빛이 순간 번득였다.
‘간지러운 곳을 쓱쓱 긁어주니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
보통 음지에 있는 놈들이 양지로 올라오고 싶어 하는 건, 해바라기가 태양을 따라 고개를 돌리는 것처럼 당연한 이치였다.
“아무튼, 저는 백 선생이라는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는 이상, 무리하게 일을 진행할 생각은 없습니다. 뭐. 솔직히 백 선생에게 다리를 놓아줄 사람이 이 사장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다소 시들해진 스탠스를 취하자 이제는 이용상이 조급해졌다.
“아, 아닙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대신 시간을 조금 주십시오.”
“언제까지요?”
“조만간 명동에서 전체 회의가 소집될 겁니다. 그때 한번 잘 얘기해보겠습니다. 그때까지만 좀 기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흐음···. 뭐 그 정도야. 좋습니다. 그렇게 하는걸로 하죠. 사실 다른 사람 찾는 것도 귀찮거든요.”
“그런데···. 3천억을 빌려서 무얼 하실 생각입니까?”
“그게 왜 궁금합니까? 사채업자가 돈만 빌려주면 됐지, 돈의 사용처까지 밝혀야 합니까?”
“아, 아닙니다.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처음의 기세등등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VVIP 고객이라도 모시는듯한 영업사원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무심히 지켜보다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에이. 장난이에요 장난. 보기보다 소심한 면이 있으시네. 돈놀이하는 놈이 돈 빌려서 뭐하겠어요? 마음에 드는 기업이 하나 있는데 적대적 M&A라도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 사장님?”
“네?”
“이 정도면 우리 이제 파트너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아. 예···. 뭐 그렇죠.”
“그럼 한 가지만 좀 물어봅시다.”
“뭐든 말씀해보십시오.”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호구가 나타났는데 지금 눈에 뵈는게 없을 것이다.
“최원우 사장 말입니다. 비즈니스 때문에 알게 된 양반인데, 이 양반이 나름 재벌가 출신이라 이건가? 통 자기 얘기를 안 해요. 그래서 친해질 수가 없어. 나야 뭐 아쉬울 게 없으니 멀리하긴 하는데···. 내가 볼 땐 그 양반 쥐뿔도 없는 양반이거든? 그런데 어떻게 계속해서 상장회사 대표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냐 이말이지. 더구나 집안에서 팽까지 당한 인간이. 아버지 비상금이라도 털었나?”
“그거야 다 방법이 있습니다.”
“제가 궁금한 게 있으면 잠을 못 자는 병이 있어요. 그게 뭡니까?”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인 이용상이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혹시 무자본 M&A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무자본 M&A?”
“최원우 그 작자. 무자본 M&A 꾼입니다. 그것도 아주 선수에요 선수.”
“호오? 자세히 설명 좀 해주시죠? 제 분야와는 너무 달라서 굉장히 흥미롭네요. 이런 재밌는 얘기 들을 수 있는 게 제 주변에는 이 사장님 말곤 없습니다.”
“사실 별건 없습니다. 적당히 부실해 보이는 상장회사를 물색하고 인수준비에 들어가는 겁니다. 본인 수중에 돈이 없으니 사채 쪽에 돈을 빌리고, 그 돈으로 회사 대주주가 되어 대표 자리에 앉는 겁니다.”
“다 좋은데 이자 감당이 돼요? 그냥 이자도 아니고 사채 이잔데?”
“원래라면 불가능하죠. 대표 연봉이라 해봐야 어차피 정해져 있는 거니. 이자뿐 아니라 원금 상환에 자기 이윤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이니 회사에서 어떻게든 돈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게 가능해요?”
“가능합니다. 우선 제일 쉬운 방법이 그럴싸한 이유를 갖다 붙여서 유상증자나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겁니다. 그렇게 돈이 만들어지면 차명 계좌나 주변 사람 명의의 사업자를 이용해서 돈을 돌리는 겁니다. 그렇게 돌고 돌다 보면 어느새 그 돈은 대표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거죠. 그리고 이게 웃긴 게 무한으로 증식된다는 겁니다. 갖고 있는 주식을 담보로, 또다시 돈을 빌려서 다른 회사를 사들이고, 자기가 대표로 있는 회삿돈으로 그 주식을 사게 하는 거죠. 그러면 돈 한 푼 없이 벌써 회사 두 개를 가지게 되는 겁니다.”
“그게 그렇게 쉽게 됩니까? 어찌 됐건 내부 직원들 눈도 있을거고, 외부 감사도 있을 텐데?”
“그걸 잘 피해서 돈을 챙기는 게 진짜 선수인거죠.”
“한국 거래소 같은 기관에 걸릴 가능성은 없습니까?”
이용상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절대 없습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치밀한 계획하에 이루어지기에 놈들이 절대 적발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회사에서 빼먹을 수 있는 건 골수까지 빼먹고 버리는 겁니다. 회사가 망해도 어차피 다른 회사 대표 자리에 앉으면 그만이기에 아쉬울 것도 없겠죠. 낄낄낄. 그렇게 최원우가 말아먹은 회사가 못해도 6개는 될 겁니다. 아주 지독한 놈이죠.”
악명 높은 사채업자 입에서 지독한 놈이라는 말이 나오자 뭔가 아이러니했다.
어찌 됐건 이로써 왜 최원우가 내 앞에서 그토록 여유만만했는지 알 수 있었다.
‘여차하면 뛰어내릴 생각으로 낙하산을 둘러메고 있었으니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겠지.’
아주 악랄하기 그지없는 수법이었다.
회사는 당연히 거래 정지 혹은 상장 폐지를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피해는 오로지 주주들과 직원들이 떠안아야 했다.
멀쩡히 회사 잘 다니던 직원들은 급여도 제때 받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되었을 것이고, 뭣 모르고 주식 투자를 한 개미들은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보았을 것이다.
“아무튼, 뭐 최원우 그 사람. 법망 빠져나가는 거에는 일가견이 있는 양반이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혹시 송 대표님도 무자본으로 지분율을 늘리고 싶으면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아주 기깔나게 설계해드리겠습니다.”
이용상의 영업 멘트에 나는 대답 없이 남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늘상 먹는 맥주인데 오늘따라 왜이리 맥주 맛이 쓰게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
그렇게 이 주라는 시간이 흘렀고.
띠링.
[사채업자 대갈장군 이용상: 백 선생님이 접견을 허락하셨습니다. 시간 괜찮으실 때 연락 한번 주십시오.]마침내 기다리던 답장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