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300)
300화 이거 오보 아닙니까?
“한 실장아.”
홀로 앉아 소주를 홀짝이던 명오천이 나직이 한 실장을 불렀다.
“예. 회장님.”
“글마 그거 갔나?”
“예. 방금 막 저택을 빠져나갔습니다.”
“끌끌끌. 오랜만에 보는 제대로 된 똘아이데이. 오성의 임관훈이도 내 앞에서 그리하진 못할낀데, 어린놈이 깡다구 하나는 끝내주더만.”
무표정한 얼굴의 한 실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대로 돌려보내도 괜찮겠습니까?”
“안 돌려보내면? 잡아다가 겁이라도 줄라꼬? 끌끌끌. 아서라 한 실장아. 네 아직 내 밑에서 일 더 배아야겠다. 그래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우얄꼬?”
“죄송합니다 회장님.”
“죄송할 건 없꼬. 점마 저거, 잡아다가 겁 좀 준다고 굽힐 놈이 절대 아이다. 내 깜짝 놀랬다아이가. 이제 막 서른 넘은 애송이가 무슨 산전수전 다 겪은 노승 같은 눈깔을 하고 있데? 저런 놈은 어설프게 건드리는 게 아이다. 아마 우리가 허튼짓이라도 했으면 그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해놨을 기야.”
“그렇습니까? 저는 그냥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오만한 놈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니는 점마가 수십조가 넘는 부를 이룬 게 단순히 운처럼 보이드나?”
“물론 능력도 있겠지만, 솔직히 운이 좋았던 것 아니겠습니까?”
소주잔을 손에 든 명오천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운도 중요하지. 사업하는데 운만큼 중요한 것도 없으니까. 근데 말이다. 그 운도 결국 사람이 불러오는 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수백억 정도는 운으로 벌 수 있어도, 수천억, 그리고 조 단위가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운의 영역을 뛰어넘은 기라. 그 사람의 그릇이 그 정도가 됐다는 말이거든. 그리고 보통 그 그릇은 나이를 먹고, 많은 경험을 하면서 크고 단단해지는 긴데···. 점마 저거는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이미 그릇이 완성되어있단 말이지. 끌끌끌.”
단오천의 말에 한 실장은 터져 나오는 경악을 억눌러야 했다.
20년 가까이 명오천 곁을 지키면서 그가 이토록 타인을 높게 평가한 경우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계약서는 잘 챙겨놨제?”
“예. 금고에 잘 뒀습니다.”
“그거 잘 챙기라이. 그게 자그마치 1조가 넘는 계약서인기라. 껄껄껄. 깜냥이 남다른 놈이긴 한데 너무 일찍 영글었어. 제대로 된 실패를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놈들이 훽가닥 돌면 저놈처럼 되기 십상이다.”
“확실히···. 그렇게 보였습니다. 감히 회장님을 상대로 내기를 걸다니 말입니다.”
한 실장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실장아. 니도 앉아서 한잔 받아라. 혼자 마시려니 영 맛이 안 나는구마.”
“예 회장님.”
명오천의 맞은 편에 앉은 한 실장이 정중한 태도로 잔을 받았다.
“나도 소싯적에 노름에 빠진 적이 있었던거 아나?”
“몰랐습니다.”
“아주 제대로 돌아뿌찌. 쎄가 빠지게 일해가 푼 돈 몇 푼 벌면 고대로 투전판으로 쫄쫄 달리갔다 아이가. 근데 이 망할 놈의 도박이란 것이 꼭 처음엔 좀 따다가 끝에는 항상 돈을 잃을 거 아이겠나? 아주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데? 그러다가 깨달아뿟다 아이가.”
“뭘 말입니까?”
한입에 소주를 털어 넣은 명오천이 소매로 입가를 쓱 훔쳤다.
“크으. 오늘따라 소주가 와이리 다노. 전문 노름꾼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절대 따지 못한다는 걸 말이다. 그때부터 철저히 꾼들이 앉는 자리는 피하고, 호구들이 득실거리는 데만 찾아댕깄다 아이가. 그때부터는 내가 노름해서 돈을 잃은 적이 없데이.”
명오천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가장 쉽게 이기는 방법이 뭔지 아나? 지지 않는 상대만 골라서 조지면 되는기다. 송대운이가 내건 내기를 내가 와 받은 줄 이제 알겠나?”
“질 자신이 없기 때문이시군요.”
“끌끌끌. 송대운이 점마는 절대 내를 이길 수 없다. 돈은 내보다 많을진 몰라도, 이 대한민국에서는 그게 다가 아니그든. 글마는 그걸 몰라. 아마 두고 보면 알끼다. 앞으로 어떻게 될런지.”
명오천이 벽에 걸린 종이 달력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간은 충분하구마. 한 실장아.”
“예. 회장님.”
“오 전무한테 연락해가 다음 주에 저녁 한 끼 하자 케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끌끌끌. 뜻하지 않게 바쁘게 생겼고만. 적적하던 차에 잘됐지.”
그렇게 명오천은 간만에 주량 이상으로 술을 마시며 밤늦도록 너털웃음을 흘려댔다.
***
삐익
철컥.
“하아···.”
백 선생의 저택을 빠져나오고 나서야 마침내 긴장이 풀리며 깊은 한숨을 토해낼 수 있었다.
“겁나 쫄리네. 티는 안 났겠지?”
사나운 짐승들이 득실거리는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와서 평정을 유지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생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바로 잡아먹히게 될 뿐이란 것을.
“어쨌거나 계약서까지 썼으니 이제는 빼도 박도 못 하겠네.”
아마 며칠 내에 내 통장으로 명오천의 돈 3,000억 원이 입금될 것이다.
내가 소유한 SI하이텍 지분 전부를 담보로 한.
사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이 내기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강화도 조약과 맞먹을 정도의 불평등 조약이랄까?
하지만 이 정도 탐스러운 미끼를 던지지 않는 이상 명오천은 결코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자존심보다 최우선시 되는 게 돈이 되느냐 안되느냐의 여부였을 테니깐.
“법으로 접근하는 건 진정한 심판이 될 수 없어.”
모르긴 몰라도 명오천에겐 사기, 공갈, 살인교사 등등 드러나지 않은 죄가 한 트럭은 쌓여 있을 것이다.
수많은 서민들의 피땀 어린 돈을 빨아먹고선, 세금은 꼬박꼬박 내는 애국자라며 자랑을 해대던 명오천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마디로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쓰기만 하면, 그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은 정당화된다는 논리였다.
‘지랄하고 있네.’
저들은 돈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또 다른 유형의 살인자들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의 검은돈이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파멸시키고 있을 것이 자명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증거를 차곡차곡 모아 검찰에 넘길까도 생각했다.
‘근데 그게 과연 죗값을 치르는 게 될까?’
어차피 검찰 수뇌부에도 명오천의 영향력이 닿아있을 것이고,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려서 재판에 나서면 많이 나와봤자 징역 2, 3년 정도일 것이다.
그의 막대한 자산은 여전할 것이고, 이는 그의 영향력도 건재하다는 의미였다.
그런 건 진정한 의미의 단죄가 될 수 없었다.
‘진짜 단죄는 그에게 가장 소중한 ‘돈’을 빼앗는 것이지.’
어둠이 내려앉은 고요한 내리막길을 걸으며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게임은 시작되었고, 나는 이 대결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
며칠 후, 마포구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사옥.
“뭔가···. 너무 조용하니 왜 더 불안해지는 거죠?”
스테파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뭔 소리예요?”
“며칠 전부터 간헐적으로 오한이 들고 등골이 오싹한 게 뭔가 일이 터져야 하는데···. 뭐 별다른 게 없으니깐 괜히 불안하네요.”
나는 걱정어린 눈빛으로 스테파니를 바라봤다.
“병원이라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아무 일 없으면 좋은거지 무슨···.”
“제 감이 얼마나 정확한데요. 보통 이런 반응은 딜런이 무슨 사고를 쳤을 때나 나오는 건데···. 이상하네.”
그러면서 자신의 팔뚝을 들이 내미는 스테파니.
“이거 봐봐요. 아까부터 계속 닭살이 올라와 있잖아요. 분명 뭔가가 있다는 건데···.”
“스테파니? 몸이 안 좋으면 그냥 쉬어요. 누가 보면 일만 시키는 악덕 대표인 줄 알겠네.”
계속 자신의 팔을 쓰다듬는 스테파니를 외면하고선 김선기를 쳐다봤다.
“김 전무님?”
“예 대표님.”
“SI하이텍 실적 발표 후에 반응이 어떻던가요?”
“시장에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아무래도 과거보다 실적 개선이 많이 되면서 20,500원이던 주가가 장중에 23,900원까지 치솟았으니까요. 한동안 과도기를 거치다가 2만원 중후반대로 안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흐음···. 조만간 최춘길 대표 한번 만나러 가봐야겠네요. 아무튼, 김 전무님은 SI하이텍 주가 동향 좀 꾸준히 살펴봐 주세요. 조금이라도 이상이 감지되면 저한테 곧장 보고 해주시고요.”
“갑자기 SI하이텍 주가에 신경 쓰시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김선기의 물음에 모두의 시선에 내게 쏠렸다.
아무래도 의아할 테지.
내가 주가에 관심을 보인 적이 거의 없었으니깐.
“주변에서 말이 많다죠? SI하이텍이 저 송대운 커리어에 최초의 오점이 될 거라고.”
당사자가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던지 세 사람의 얼굴에 당황이 깃들었다.
“그런 헛소리는 신경 쓰지 마세요. 전부 다 대표님의 명성을 시기 질투하는 머저리들이 퍼트린 얘기니까요.”
“맞습니다 딜런. DS하이텍 시절의 그늘을 모두 벗어 던진 SI하이텍은 지금 충분히 유의미한 성과들을 보여오고 있습니다. 애초에 반도체 산업 자체가 단기간에 뭔가를 이루어 내긴 불가능한 산업입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게 될 겁니다.”
다들 내가 신경 쓸까 봐 전전긍긍하는 기색이었지만 정작 나는 별생각이 없었다.
이들에게 백 선생과의 내기에 대해 말할 순 없었기에 내뱉은 말이었을 뿐.
“신경 안 써요. 초심 잃지 않고 지금처럼만 꾸준히 간다면 포텐은 분명히 터지게 될 겁니다. 아무튼, 그 문제는 넘어가는 걸로 하고, 스테파니?”
“네?”
“원스닥터는 런칭 후에 동향이 어떤가요? 다른 특이사항 있나요?”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린 스테파니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비스 런칭 후, 한 달 동안 누적 가입자 수 10만을 달성했고, 제휴하고 있는 병원의 숫자도 꾸준히 늘고 있어요.”
기세에 비해 그리 괄목할만한 성적표는 아니었기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기대에는 못 미치는 수치인 건 맞아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좋은 호재가 터졌어요. 한국보다 미국 시장에서 더 좋은 반응이 나오고 있다는 거죠.”
“미국 시장에서요?”
“네. 다만 한국과는 다르게 미국 유저들은 원스닥터 앱을 다이어트용으로 많이 쓴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랄까···?”
“뭐 어찌 됐건 반응이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니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개발진에서도 미국 버전은 다이어트 유저들의 니즈에 맞게 빠르게 수정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건 잘했네요. 역시 배한슬 대표는 참 행동이 빨라요.”
다행히 그녀는 물 들어올 타이밍에 노 저을 줄 아는 여자였다.
스테파니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매튜가 긍정이 담긴 코멘트를 덧붙였다.
“오히려 미국 시장에 집중하는데 더 나을 수도 있겠군요.”
“어째서죠?”
“헬스케어 산업으로 한국 시장에서 이윤 얻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비하면 의료비가 워낙 저렴한 편이라 큰 수익 내기 어려울 겁니다. 한국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선 보험 외에 고용주에게 서비스를 판매하거나 B2C를 통해 수익 창출을 해야 하는데 두 형태 모두 한국에서는 잘 활용되지 않는 편이기도 합니다.”
“흐음···. 그렇군요.”
손가락으로 탁상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스테파니를 바라봤다.
“스테파니는 우리 미국법인 쪽과 연락해서 원스닥터에 도움 줄 수 있는 부분이 뭐가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네. 그렇게 할게요.”
다부지게 고개를 끄덕이는 스테파니.
미국법인을 책임지고 있는 피에르 로번의 인프라를 활용한다면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자! 오늘 회의는 여기에서 마치는걸로···.”
오늘 얘기할 안건은 모두 끝이 났기에 회의를 마치려던 찰나.
휴대폰을 확인하던 김선기가 놀란 기색으로 나를 쳐다봤다.
“대표님?”
“왜 그러시죠?”
“혹시···. 법원에다가 고소장 접수하셨습니까?”
“엥?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고개를 갸우뚱한 스테파니와 매튜가 김선기의 휴대폰을 확인했고, 이내 두 사람의 벙찐 시선이 나에게 닿았다.
“이, 이거 오보 아닙니까?”
김선기가 스마트폰을 내게 들이 내밀었고, 액정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기사 제목이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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