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301)
301화 딜런은 정말 다르네요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송대운 대표를 주축으로 조직된 주가 조작 피해자 모임. 선무 그룹 3남이자, ‘로열 헬스케어’ 최원우 대표 상대로 집단 소송 제기]합이라도 맞춘 듯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쏟아졌다.
“여기에 나오는 송대운이···. 제 눈앞에 있는 사람과 동일인 맞나요?”
스테파니의 물음에 김선기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친절하게 회사명까지 적혀있으니 맞지 않을까요···?”
매튜는 알수없는 묘한 미소로 나를 쳐다봤다.
“딜런이 정말 최원우를 고소했어요?”
“저만 한 건 아니고 피해 주주들이 모여서 집단 소송을 한 거죠.”
“어쨌거나 기사에는 딜런이 주축이 되어 고소를 진행 중이라고 나와 있는데요···?”
“그건 맞습니다. 고앤고 법무법인에 의뢰해서 아주 화려한 변호단으로 꾸렸죠.”
“허···.”
스테파니와 김선기가 말을 잃고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차게 식은 커피를 한 입 머금은 매튜가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굳이 그렇게 한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와의 껄끄러웠던 일은 로열 헬스케어가 상장 폐지 수순을 밟으면서 끝난 것 아니었나요?”
“물론 원스닥터와의 분쟁은 어영부영 끝이 났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거라는 것을.”
“어째서죠?”
“무한 환생이란 말을 아십니까?”
“무환 환생이요?”
세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갸우뚱했다.
“저 최원우가 무한으로 환생하는 CEO거든요. 회사는 죽어도 최원우라는 벌레는 또 어딘가에 나타나 빨대를 꽂고 똑같은 짓을 반복할 겁니다. 그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 월급 한푼 두푼 모아 주식 투자를 하는 주주들은 계속 피해를 보게 되겠죠. 회사가 망했다고 끝이 아닙니다. 근원이 살아있는 한, 악의 줄기는 계속 자라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참에 뿌리를 뽑아버릴 생각입니다.”
단호한 결의가 느껴지는 내 답변에 매튜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잘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분쟁···. 간단히 끝나진 않을 겁니다.”
“매튜의 생각은 어떤데요?”
“이제껏 있던 사례들만 살펴봐도 소송 자체가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2005년에 증권 분야에 관한 집단소송제가 도입된 이후, 원고 승소 판결이 확정된 건은 도우치뱅크 ELS 시세조종 사례가 유일합니다. 더구나 한국의 집단 소송 시스템은 많은 허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허들이요?”
우리의 지식 자판기 매튜가 안경을 끌어 올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소송허가제도와 이에 대한 불복절차, 비용예납 제도 등이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죠. 여타 소송과 달리 소송을 시작하려면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하고, 소송허가 결정에 대해서도 즉시 항고할 수 있어 본안 재판을 포함하면 사실상 6심제 구조가 되는지라 재판이 지나치게 길어지게 됩니다. 보통 5년 정도 걸릴 건 각오해야 합니다.”
매튜의 말에 김선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5년은 너무 기네요. 그때쯤이면 이미 사건도 시들시들해지겠는데요?”
“현실이 그러다 보니 한 해에 집단 소송 건은 10건이 채 되지 않습니다.”
스테파니가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그래도 괜찮은 거에요 딜런?”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매튜에게 물었다.
“그래도 집단 소송의 장점도 분명히 있겠죠?”
“물론입니다. 집단 소송은 소송에 참여하지 않아도 보상을 받을 수가 있어 피해자들을 결집시키는 효과는 확실합니다. 집단소송제가 활성화된 미국 같은 경우는 제외신청을 하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구성원 전부에 판결의 효력이 미치도록 하는 방식이 적용됩니다.”
“됐습니다. 제가 원하는 게 바로 그겁니다.”
“예?”
세 사람의 눈동자에 의문이 깃들었다.
“제가 집단 소송을 주도한 건 최원우 같은 잔챙이가 아니라 그 위를 잡기 위한 밑밥에 불과하니까요. 앞으로 지켜보시면 알 겁니다.”
동굴에 꼭꼭 숨어있는 사냥감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맛있는 먹이 냄새로 살살 유인하거나, 나오지 않으면 못 버틸 정도로 괴롭혀주거나.
그중 나는 후자를 택했을 뿐이었다.
***
일주일 후.
[황무성 칼럼 – 선무 그룹은 과연 친일 기업인가?] [선무 그룹 창업주 최양후의 친일 행각은 어디까지 진실일까?] [최원우 주가조작 사건, 선무 그룹은 어디까지 개입되어있나?]“미야오옹”
“알았어 인마. 잠깐 한눈팔았다고 디게 뭐라 그러네.”
품에 안긴 연탄이의 매끈한 등허리를 쓰다듬어 주며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포털 사이트 랭킹 뉴스에는 선무라는 단어로 도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어느새 선무 그룹은 뜨거운 감자가 되어있었다.
“이야. 댓글 한번 살벌하네.”
ㄴ 앞으로 선무 이름 붙은 제품을 절대 안 산다! 불매 운동 가즈아!
ㄴ 친일은 대대손손 잘살고, 애국인은 대대손손 못사는 아주 잘못된 나라.
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진짜 팥나누? 누가 친일 집안 후손이 아니랄까봐 하는 짓이 즈그 할애비랑 똑같네.
시작은 선무 그룹 3남 최원우의 로열 헬스케어 주가 조작 사건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쌓아온 업보가 부메랑이 되어 그들의 심장을 관통했다.
최원우가 이제껏 말아먹었던 회사들 역시 주가조작 의혹을 받으며 재조명받기 시작했고, 안 그래도 살기 팍팍한 시대에 대중들의 분노는 들불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검찰로선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수사할 수 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던 수많은 범죄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엮여 나오기 시작했다.
여론은 더욱 들끓기 시작했고, 최원우가 선무 그룹 자제라는 사실로 인해 그 불똥이 선무 그룹 전체로 번지기 시작한다.
이에 선무 그룹 측은 로열 헬스케어와 선무 그룹은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그 어떤 지분 관계도 갖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지만, 대중들은 그 말을 쉬이 믿지 않았다.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주워온 자식도 아니고 엄연히 친자식이 저지른 일인데 아예 관련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 [누가 앞잽이 후손들 아니랄까봐 발뺌하는 것도 선수들이네. 무조건 아니라고 우기면 되는 문제냐 이게?] [아니, 역사적으로 팩트 체크가 된 친일 기업이 아직까지 버젓이 떵떵거리고 사는게 이게 맞는거임? 리얼 헬조선! 탈출이 답이다!]이런 여론에 맞서 선무 그룹은 법무팀을 통해 악의적 허위 사실 유포에 관하여 강력한 법적 조치로 대응하겠다고 공표했다.
이후부터 확실히 비난의 댓글은 많이 줄었지만, 다른 부분에서 그 여파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최원우 게이트, 불매운동·집단소송···선무 그룹, 리테일 명가 추락 위기] [불매의 위력이 이 정도였나? 선무 계열사 매출 50% 급락.]“오우. 매섭다 매서워. 이게 이렇게까지 되네요?”
애초에 없던 불씨를 일으켜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 일이 커질 줄은 예상 못했다.
기껏해야 선무 그룹이 친일파 후손의 기업이라는 자각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반감이 커질 줄이야.
“원래 우리나라 국민들이 단합력 하나는 끝내주지 않습니까? 그게 빨리 식어서 좀 아쉬운 거지.”
김선기의 말에 모두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선무 그룹 입장에선 엄청 치명적이겠는데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거기 주력 계열사가 식품과 유통, 의류 브랜드 같은 것들이니.”
묵묵히 뉴스 기사를 읽던 매튜가 나를 바라봤다.
“애초에 이걸 노린 거였습니까 딜런?”
“일이 이렇게까지 될줄은 몰랐지만, 선무 그룹을 겨냥했던 건 맞죠.”
“어째서요? 딜런은 선무 그룹과 딱히 접점도 없잖아요.”
“그래서 지금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까.”
“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스테파니가 이내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하는 거예요? 미리 좀 언질이라도 줘요. 또 사람 심장 아프게 하지 말고.”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요 스테파니.
“사실 우리 회사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지극히 제 개인적인 이해관계죠. 여러분들은 크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괜히 걱정 끼칠까 싶어 던진 얘기였지만 세 사람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런 말이 어딨습니까? 딜런 일이 저희 일이나 마찬가진데.”
“맞습니다 대표님.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 돕겠습니다.”
“맞아요. 그렇게 말하면 서운해요. 이런 얘기하긴 좀 뭐하지만, 가끔 딜런이 또 무슨 사고를 칠까? 기대가 돼서 가슴이 쿵쾅쿵쾅할 때도 있다니까요? 이게 정상인지 저도 가끔 헷갈리네요.”
지극히 비정상입니다 스테파니.
괜히 내가 전도유망한 VC 하나 조져놓은 것 아닌가 싶어 살짝 죄책감도 들었다.
한편으로 세 사람이 보내오는 농도 깊은 신뢰에 가슴이 울렁이기도 했다.
‘나···. 그래도 나름 인생 잘살고 있구나.’
“감사해요 다들. 사실 엄청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닙니다. 나라를 팔아먹었던 친일파가 세운 기업이 지금도 그때와 비슷한 짓거리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죠.”
나는 이들에게 최대한 정제해서 내 속내를 담담히 털어놓았다.
“잘 압니다. 이 나라에서 아예 티끌 하나 없이 기업을 운영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제가 무슨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걸고넘어질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 주제도 안되고요. 하지만 친일파 기업은 다릅니다. 물론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나름의 방법으로 속죄하는 기업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무 그룹 같은 곳은 전혀 그러한 반성이나 속죄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알게 모르게 더 많은 악업을 쌓아왔더군요.”
이건 사실이었다.
선무 그룹에 대해 파고들다 보니 그들이 밟아 온 발자취가 범상치가 않았다.
선무 그룹은 다른 재벌 기업과 달리 골목 상권의 중소상공인들이 영위하는 도소매, 음식, 숙박업 등 생계형 업종에 주로 진출해있으며, 사회적 책임과 동반성장이라는 책무는 등한시한 채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반사회적인 경영행태를 일삼으며 골목 상권을 침해하고 서민경제를 망가뜨리는 작태를 보여왔다.
그리고 이건 나도 조사해보다 알게 된 사실인데 5년 전, 말레이시아에 공장 설립을 한 선무는 토목, 철골, 전기, 설비, 건축 등 거의 모든 공사를 일본 건설 회사인 시즈미 건설에 맡겼다는 사실이었다.
전체 사업비가 적지 않은 수주 건을 굳이 일본 건설사에 맡겼다는 건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제가 뭐 애국자나 그런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독립유공자 후손분들과 인연이 이어졌고, 이런저런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다 보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더군요. 사회적 책임이나 정의감 이런 건 아닙니다. 그냥 저라도 이렇게 해야 뭔가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을까 해서 나서는 것뿐이죠. 그냥 돈 많은 어린놈의 오지랖 같은 거라 보시면 됩니다.”
담담한 내 고백에 장내엔 깊은 침묵이 흘렀다.
“딜런은···. 정말 다르네요.”
“네?”
복잡한 감정이 깃든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스테파니.
“다른 재벌들하고는 아예 마인드 자체가 다르다고요. 대부분의 부자는 가진 게 많아질수록 소극적으로 변하고 가진 것을 어떻게든 지키려고 들기 바쁘거든요. 그런데 딜런은···. 아예 정 반대네요. 솔직히 미국인 정서를 가지고 있는 저로선 백 퍼센트 이해하진 못해요. 그래도···. 지금 딜런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쉽지 않은 일인지는 잘 알고 있어요. 저는 딜런을 믿어요.”
김선기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이래서 대표님을 존경하는 겁니다. 남의 시선 따윈 아랑곳없이 본인의 신념과 정의를 믿고 꿋꿋이 나아가는 그 모습···. 혹시 제가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앞뒤 다 제쳐두고 돕겠습니다.”
흐뭇한 미소로 우리를 바라보던 매튜도 입을 열었다.
“이상하게 적극적이다 싶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정의라···. 돈과 성취감만 보고 살아왔던 저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군요. 비록 저는 딜런처럼 할 수 있는 능력도, 용기도 없지만, 저 역시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은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세 분 모두···.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가 피를 나눈 가족은 없지만, 그에 대한 보상으로 인복 하나만큼은 남 부럽지 않다고.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인연.
만나면 행복해지는 사람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참으로 복 받은 놈이었다.
예부터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오복(五福)으로 꼽았다.
하지만 여기에 인복(人福)을 하나 더 추가해서 육복(六福)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마음 통하는 사람끼리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인정을 나누는 인복이야말로 최고의 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렇게 된 이상 선무 그룹에서도 더 이상 지켜보지만은 않겠군요.”
지이이이잉
매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칠게 울어대는 스마트폰.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였다.
“네. 송대운입니다.”
[나 선무 그룹 최양표라는 사람이올시다.]마침내 기다리던 사냥감이 괴롭힘에 못이겨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