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302)
302화 개망종
[나 선무 그룹에 최양표라는 사람이올시다.]기다리던 우두머리의 등장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어후, 이거 대단하신 분께서 연락을 다 주시고. 영광입니다.”
[허허허. 송 대표 위명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습니다. 대단한 투자가라지요. 젊은 나이에 그 정도로의 자수성가라니. 이거 오히려 제가 영광입니다.]그렇게 의미 없는 공치사가 몇 번 오간 뒤.
“그런데 어쩐일로 연락 주셨는지···?”
짐짓 모른 척하고 목적을 묻자 찰나의 침묵이 흐르고서 최양표가 입을 열었다.
[다름 아니라 우리 집 개망종 하나 때문에 송 대표와 뭔가 오해가 생긴 것 같아서 말입니다.]“오해요? 아! 로열 헬스케어 고소 말입니까? 어후. 저도 많이 놀랬습니다. 최양표 회장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아드님 하는 행동은 영 그게 아니더군요?”
[이게 다 자식 잘못 키운 아비 잘못입니다. 다만 한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최원우 그놈이 행한 짓거리는 그룹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아? 그렇습니까? 저는 뭐 그렇다 치더라도 여론은 또 그렇게 생각지는 않는 것 같더군요. 아무리 내다 놓은 자식이라도 천륜을 끊을 순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놈과는 모든 인연을 끊어버릴 생각입니다. 어릴 때부터 말도 안 되는 사고만 치고 다니더니 어쩌다 그런 미치광이가 돼버린 건지. 참···.]비록 통화상이었지만 최양표 회장의 목소리에서 깊은 빡침이 전해졌다.
[아무튼, 전화로 할 얘기할 일은 아닌 것 같고, 시간 한번 내주실 수 있겠소? 내 직접 송 대표. 얼굴 마주하고 긴히 얘기 나누고 싶은데.]“흠···. 잠시만요. 어디보자···. 내일은 미팅이 있고, 그 다음날도 일정이 있네요? 혹시 금요일 오후는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허면 장소는···?]“제가 찾아가겠습니다. 선무 본사 구경도 할겸 그게 좋겠네요.”
[그럼 그때 뵙는걸로 하지요.]그렇게 짧은 통화가 끝이 났고, 문득 얼굴이 따끔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세 사람.
“누구에요? 얼핏 들어보니 선무라는 단어가 나왔던 것 같은데.”
“선무그룹 최양표 회장이에요.”
“호오. 드디어 사고 친 아들을 대신해서 아버지가 나서나 보네요.”
“뭐라던가요?”
“만나서 오해를 풀고 싶다고 하네요. 뉘앙스를 들어보니 최원우는 애초에 내다 버린 자식이고, 분위기만 보면 호적에서도 파버릴 것 같던데요?”
“어후, 역시 살벌하네요.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그렇게 무참하게 버려버릴 수 있다니.”
스테파니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대충 들어보니 어릴 때부터 사고를 꽤나 치고 다닌 모양이더라고요. 선무 정도면 엔간한 건 아무렇지 않게 수습할 텐데 저렇게 학을 떼는 거 보니 사고도 보통 사고를 친 게 아닌 것 같네요.”
“와···. 소름. 목소리도 차분하고, 겉보기엔 되게 젠틀한 것처럼 보이면서 그런 이중적인 면이라니···.”
“그만큼 가면 쓰는 것에 능숙하다는 말이죠. 저런 인간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이 고통 받는 건 전혀 개의치 않죠. 저들의 시선에서 사람은 써먹을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만 중요할 테니까요.”
“으으. 뭔가 무섭네요.”
양팔을 교차하여 자신의 어깨를 감싸 쥔 스테파니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침묵을 지키고 있던 매튜가 나직이 내게 물었다.
“최양표 회장을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실 생각입니까?”
“글쎄요. 일단 오해를 풀고 싶다니깐 얘기나 한번 들어봐야죠. 그리고 찬찬히 한번 살펴보려고요. 최양표란 인물이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가졌는지.”
“그 생각과 가치관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면요?”
스테파니의 물음에 나는 턱을 긁적였다.
“뭐···. 그건 두고 봐야겠죠. 그렇다고 당장 제가 뭘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요.”
물론 당장은 그렇다는 얘기였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동 (주)선무 사옥.
“거참 특이하게도 생겼네.”
ㄴ자 형태의 건물은 주변 다른 건물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특이한 형태로 지어져 있었다.
본래 호텔 용도로 설계했다가 모종의 이유로 사옥으로 쓰게 됐다나?
내리쬐는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건물 외관을 올려보다가 당찬 걸음으로 회전문을 통과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멀끔한 양복 차림의 남자 하나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송대운 대표님 맞으십니까?”
“그렇습니다만.”
“비서실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남자를 따라 사람들로 북적이는 로비를 벗어나서 독특하게 생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남자가 카드를 갖다 대자 엘리베이터가 작동했고, 순식간에 꼭대기 층에 도착하며 문이 열렸다.
대충 200평 정도 되어보이는 공간은 임원 회의실과 응접실, 집무실 등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면 곳곳에 최양표 회장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있다는 것이었다.
“북한이야 뭐야? 자기애가 무척 강한 양반인가 보네.”
그렇게 나름의 감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기던 중, 안내 해주던 비서실 직원이 걸음을 멈춰 섰다.
“여기가 응접실입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응접실 내부는 도심의 빌딩 숲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통창과 함께 붉은색 가죽 소파로 꾸며진 공간이었다.
그리고 낯익은 두 사람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이렇게 만나 뵙게 되는군요. 선무에 최양표라고 합니다.”
“예. 반갑습니다. 송대운입니다.”
실물로는 처음 보는 최양표 회장은 허연 수염에 풍채가 좋은 노년의 신사 이미지였다.
그리고 맞은 편에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내 눈을 피하는 최원우가 있었다.
“최 사장도 오랜만이네요? 조만간 또 보게 될거라고 얘기는 했는데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또 몰랐군요.”
“예···. 잘 지내셨습니까?”
“잘 못 지냈습니다. 누구 덕분에요.”
“그···. 만나뵈면 어쭤보고 싶었는데 정말 로열 헬스케어 주식을 사셨습니까?”
“그러니깐 고소를 했겠죠?”
최양후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가를 찡그렸다.
“그럴 리가···. 그랬으면 제가 몰랐을 리 없었을 텐데···.”
“여윳돈 천만 원 정도 넣을걸로 주가가 들썩이진 않겠죠?”
벙찐 얼굴의 최원우가 내게 되물었다.
“겨우···. 천만 원입니까?”
“허. 겨어우? 천만 원이면 한우 몇 인분을 먹는지 아십니까? 고양이 간식 몇 개를 살 수 있는지 아세요? 지금 당장 놀이터로 달려가서 모래를 파보세요. 천원이라도 주울 수 있나. 최 사장은 돈의 가치를 뭘로 생각하시는 건지···.”
“아, 아니 제 말뜻은 그게 아니라···.”
당황한 최원우가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처음 봤을 때의 여유롭던 모습과는 천양지차의 모습.
인상을 찡그린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양표 회장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자식 잘못 키운 아비 탓입니다. 제가 대신하여 사과드리겠습니다.”
새치 가득한 정수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최양표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최원우씨와 따로 할 얘기가 있는데 잠깐 자리 좀 비켜주실 수 있겠습니까?”
감히 선무 그룹 사옥에서 총수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말할 사람이 있겠냐만 최양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집무실에 있을 테니 얘기 끝나면 불러주시지요.”
그렇게 최양표 회장이 나가자 물끄러미 최원우를 바라봤다.
“최원우씨?”
“예.”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거, 하나 물어봅시다. 대체 왜 그런 겁니까?”
“뭐가 말입니까?”
“재벌가 삼남 정도면 가만히만 있어도 떡고물 정도는 받아먹을 수 있었을 텐데,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녔길래 집안에서도 버림당한 겁니까?”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볼 줄 몰랐던지 최원우의 얼굴에 당황의 감정이 깃들었지만, 이내 이를 악물고선 한 서린 토로를 내뱉기 시작했다.
“이 집안은 썩어 빠졌습니다···. 시대가 어느 땐데 그놈의 장남 장남! 능력도 없는 버러지 같은 놈을 장남이라는 이유만으로 후계자 자리에 앉히는 게 맞습니까?”
그래도 피를 나눈 형제인데 버러지 같은 놈이라니.
가면을 집어 던진 최원우의 민낯은 추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릴 적부터 차별 아닌 차별을 받으면서 방황했던 건 사실입니다. 근데 그게 뭐 얼마나 큰 잘못이라고 나를 그렇게 몰아세우는지···. 하! 만약 형이 같은 짓을 했었으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을 겁니다. 삼남으로 태어난 게 죄라면 죄겠군요.”
“대체 뭔 짓을 했는데요?”
“학교 다닐 때 애들끼리 투닥투닥 싸우고, 자유로운 연애 하면서, 약 몇 번 한 게 그렇게 잘못입니까? 철 없을 때 한 번쯤 해볼 법한 실수 아닙니까?”
“그게 해볼 법한 실수입니까?”
완전히 미친놈이 따로 없구나!
더 소름 끼치는 것은 최원우 본인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느 날 최양표 회장이 저를 불러서 얘기하더군요. 저한테는 십 원 한 푼 물려줄 생각이 없으니 알아서 살라고 말이죠. 정말 치가 떨리고 이가 갈렸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애초에 이 집안에서 내가 설 자리는 없었다는 걸. 그때 결심했습니다. 집안의 도움 없이 내 능력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최원우의 흰자위에 조금씩 핏발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목표가 세워지자 오히려 머리는 차가워지더군요. 그때부터 방황은 멈추고 제 나름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선무 그룹 삼남이라는 허울뿐인 배경을 이용해서 쓸모 있을 것 같은 인물들과 두루두루 친해지기 시작했죠. 이후에 독립하고 나서는 여러 회사의 CEO 타이틀을 달게 됐습니다. 흐흐흐. 이거야말로 자수성가의 표본아닙니까?”
힐끔 살펴보니 최원우의 눈빛에 은은한 광기가 엿보였다.
“그룹의 후광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멍청한 형과는 달리 저는 제 능력만으로 그 자리에 올랐단 말입니다. 솔직히 이 정도 성과를 보이면 저를 인정하고 조금이라도 마음을 바꿀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 착각에 불과하더군요.”
속사포처럼 나름의 한을 쏟아내는 최원우를 보며 잠깐 할 말을 잃었다.
이 인간은 대체 어디서부터 어긋나버린 걸까?
태어난 기질 자체가 이런 것일까? 아니면 자라온 환경이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사채업자한테 빌린 돈으로 멀쩡한 회사 등골이나 빼먹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입니까?”
“사채하는 놈들이 아무한테나 돈 빌려주는 줄 아십니까? 더구나 법망을 피해 돈을 만들어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새끼···.
진심으로 자기가 해온 길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당신이 저지른 짓거리 때문에 피해 입은 사람들은요? 멀쩡히 회사 잘 다니는 직원들은 무슨 죄이며, 회사에 투자한 주주들은 무슨 죕니까?”
“그런 것까지 신경써야 합니까?”
“뭐라고요?”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최원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제가 왜 그자들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겁니까? 누가 투자하라고 등 떠밀었습니까? 결국, 그 사람들도 크게 한탕 챙겨보려고 투자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직원들이요? 제가 쭉 지켜보니 제대로 밥값 하는 인간들은 단 하나도 없더군요. 다들 하는 일 없이 월급만 축내는 밥버러지들 아닙니까. 그리고 솔직히 그 사람들은 회사가 망해도 다른 회사 가면 그만 아닙니까? 뭐가 그렇게 문젭니까?”
나도 모르게 상욕이 튀어나올 뻔한 걸 극한의 인내로 참아냈다.
아직 놈의 입에서 내가 기다리던 말이 나오지 않았기에.
“대체 당신의 목표를 뭡니까?”
내 질문에 최원우가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주지 않는다면 제힘으로 뺏을 겁니다. 아버지가 죽고 멍청한 형들이 선무 그룹을 나눠 갖게 되면 이 그룹은 무조건 망합니다. 저는 꾸준한 M&A를 통해 덩치를 키우고 선무 계열사를 하나씩 인수할 생각이었습니다. 오직 제 능력만으로 회장 자리에 앉는 겁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태연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최원우를 보자 질린다는 감정이 들었다.
과연 저런 자가 제대로 된 힘을 갖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당신이 하는 방법으론 절대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할 겁니다. 이제는 본인도 알고 있을 텐데요?”
의외로 최원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합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습니다.”
“생각을 바꿔요?”
과하게 흥분한 탓이었을까?
이미 최원우의 눈은 완전히 돌아가 있었다.
“만약에…머저리 같은 두 형이 세상에 사라진다면 모든 건 순리대로 흐르지 않겠습니까?”
“…..”
막장을 치닫는 멘트에 말문이 턱 막혔때쯤, 돌연 응접실 문이 벌컥 열렸다.
쾅!
“아, 아버지?”
한 손에 골프채를 든 채 흉흉한 기세를 내뿜는 최양표 회장을 보며 놀란 최원우가 말을 더듬었다.
“내 생각엔 너라는 새끼만 없으면 모든 게 순리대로 흐를 것 같구나.”
무섭게 달리는 화물 트럭과 마주한 고라니처럼 최원우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