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303)
303화 이건 예상치 못했다
당황한 최원우가 주춤 뒤로 물러서며 아버지인 최양표를 쳐다봤다.
“손님도 있는 자리에서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왜 이러냐고? 너는 대체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냐? 처음에는 그래도 어떻게든 너를 이해해보려고 했다. 집안을 욕 먹이는 사고를 쳐도, 사람 하나 반병신을 만들어와도, 마약이니 섹스파티니 그런 병신 짓거리를 하고 다녀도! 그래도 자식이니깐!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했단 말이다!”
“아, 아버지!”
당장 시체 하나 치울 것 같은 흉흉한 기세에 최원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여기가 어딘지 잊었나 보구나.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내 귀로 들어올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더냐?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너야말로 머저리가 따로 없구나.”
자신이 배설한 모든 얘기를 최양표가 들었다는 걸 깨달은 최원우의 얼굴이 푸르딩딩하게 변해갔다.
“아, 아버지! 다 오해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너랑 이제 할 얘기 없고, 앞으로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말거라. 부모 형제 잡아먹으려는 놈을 어찌 자식 취급할 수 있겠느냐? 네 속마음은 이제 잘 알았다. 그러니 나도 내 나름의 조치를 해야겠구나.”
“그, 그걸로 저를 패기라도 하시려고요? 아버지 체통도 생각하셔야···.”
“체통도 상황 봐가면서 부려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
골프채를 들고 조금씩 최원우 쪽으로 다가가던 최양표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죄송하지만 조금 시끄러울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시고 하고 싶은 대로 하셔도 됩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최양표가 별안간 최원우에게 달려들어 골프채를 휘둘렀다.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무척이나 민첩한 몸놀림이었다.
퍽!
“으악! 아, 아버지! 일단 고정하시···. 커헉!”
골프채의 헤드가 최원우의 정강이를 가격했고, 비명을 내지른 최원우의 육신이 그대로 허물어졌다.
“내가! 사람 새끼가 아니라! 짐승 새끼를 키웠구나! 응? 이딴 것도 자식이라도 밥 처먹이고, 옷 입히고 했다는 게! 최양표 인생에 가장 큰 오점이다!”
퍽!퍽!퍽!
“으헉!”
오우. 골프채로 사람 두드려 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다리만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걸 보니 도망갈 여지 자체를 없애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소파에 앉아 현직 재벌 총수가 본인 자식을 반 죽여 놓는 희귀한 광경을 본의 아니게 직관하게 됐다.
퍽!퍽!
“커헉···.”
얼마나 두들겨 맞았을까?
온몸이 걸레짝이 된 최원우가 꿈틀거리며 바닥을 기었다.
허옇게 뒤집힌 눈깔을 보니 아마도 정신을 잃은 듯 보였다.
“허억…허억…”
땡그랑.
거친 숨을 몰아쉰 최양표가 반쯤 휜 골프채를 바닥에 내던졌다.
창밖을 내다보며 숨을 골라 쉰 최양표가 휴대폰을 꺼내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애들 몇 데리고 지금 당장 올라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한 것일까?
채 몇 분이 되지 않아 응접실로 시커먼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벼락 맞은 쥐처럼 바닥에 뻗어있는 최원우의 처참한 몰골을 본 비서실장이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서늘한 눈으로 기절한 최원우를 바라본 최양표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당장 저 자식 끌어내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정신병원에 일단 처박아 놔.”
할 말이 많은 듯 입술을 오물오물하던 비서실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회장님···. 아드님이신데···.”
“사람 탈을 쓴 짐승 새끼한테 아들은 무슨 아들이야! 저런 정신병자 새끼는 절대 사회에 돌아다니게 해선 안 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나?”
최양표의 노호성에 움찔한 비서실장이 고개를 숙였다.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명심해! 앞으로 저 자식이 내 눈앞에 보이는 일은 없어야 할 거야. 징역살이 끝나더라도 앞으로 볼일 없게 만들라고.”
곧이어 건장한 체격의 두 사내가 최원우를 짐짝 들듯 끌고 나갔다.
냉기가 흐르는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양표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들어 불을 붙였다.
“일은 다 끝내신 거죠?”
“후우···. 본의 아니게 못난 꼴을 보여드렸군요.”
역시 이 양반도 정상은 아니었다.
타인이 보는 앞에서 친자식을 개 패듯 패고서 저토록 태연한 얼굴이라니.
“욱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인 것 같은 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금세 담배 하나를 태운 최양표가 재떨이에 꽁초를 던지고선 실소를 흘렸다.
“욱해서 한 말이 아닙니다. 저놈···. 분명 진심이었을 겁니다.”
내 맞은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최양표가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릴 적부터 남달랐습니다. 병아리를 키우고 싶다고 해서 사줬더니 며칠이 안돼서 발로 밟아 죽이질 않나, 강아지를 사 달라고 해서 사줬더니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가에 버리고 오질 않나.”
최원우의 어메이징한 유년 시절 썰에 나도 모르게 눈가가 찡그려졌다.
“그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뭣도 모를 나이니 그럴 수 있다 생각했죠. 하지만 광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같은 반 애 하나를 자살하게 만들질 않나. 갈수록 사고를 치는 빈도와 강도가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커졌습니다. 교정도, 교화도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놈을 밖에 풀어놓은 것이었습니다. 제 잘난 맛에 사는 놈이니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는 생각에.”
“본인 말로는 형제 중에 자신의 능력이 가장 뛰어난데 회장님이 무조건 장자승계 원칙만 고집한다고 불만이 상당하던데요?”
최양표의 입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하! 영리했다는 건 인정하겠습니다. 아니, 영악했다는 표현이 맞겠군요.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니. 물론 기업가에게 그런 면모는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유심히 지켜볼수록 알겠더군요. 놈에겐 우리 선무조차 자신의 목적을 이룰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최양표가 품에서 담배 하나를 더 꺼내 들었다.
“후우···. 아마 저놈이 선무에 남아있었더라면 그룹 자체가 산산조각이 났을 겁니다. 이해관계만 맞으면 회사를 파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넋두리하듯 토로하는 최양표를 보며 질문 하나를 던졌다.
“뭐···.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일은 줄 몰랐네요. 그런데 말이죠.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무감정한 최양표의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최근에 선무 택배에 벌어졌던 일만 봐도 알겠던데요? 영업소 소장에게 화물차 출고강요, 지게차 강매, 영업소 매장이 적으면 비인도적인 정신교육, 하청업체에게 과도한 할당량을 요구해 자살하게 만든 사건 등등. 회장님도 사실 못지않지 않습니까?”
꽤나 따끔했을 텐데 최양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픽 웃음을 내보였다.
“우리 송 대표는 수천 명의 직원을 밑에 두지 않아봐서 모르나 본데, 자기 밥값을 못하는 직원들에게 적당한 채찍을 휘두르는 것도 경영자가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입니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오냐오냐만 해선 말을 들어 먹지 않는 법이니까요. 무엇보다 그 모든 건 회사를 위한 일이었습니다. 회사가 잘되어야 월급 받아 생활하는 직원들도 잘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었다.
남이 하면 불륜, 지가 하면 로맨스의 표본이랄까?
역시나 이 인간도 정상은 아닌 게 분명해 보였다.
“아무튼, 이걸로 송 대표 화는 좀 풀리셨습니까?”
“흐음···. 글쎄요. 사과받아야 할 당사자가 개처럼 맞고 정신병원으로 끌려갔으니 이걸 화가 풀렸다고 해야 할지···.”
“저놈은 제가 책임지고 죗값 치르게 한 뒤, 사회에서 격리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합시다. 원인이 사라졌는데 피차 서로 얼굴 붉힐 필요 있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저는 송대표를 적대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재벌 회장님께서 저 같은 일개 투자자 정도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텐데요?”
“그럴 리가요. 앞뒤 꽉 막힌 놈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송 대표가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말이죠. 솔직히 대한민국에서 송대표가 마음먹고 달려들면 휘청이지 않을 기업이 있습니까?”
조금 전 자기 자식을 피떡으로 만든 인간답지 않게 저자세로 나오는 최양표 회장이었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니 나로서도 무작정 시비만 걸 순 없는 노릇이었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그러시죠.”
“세간에선 선무 그룹을 세운 최양후 창업주를 악질 친일파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내 질문에 최양표의 얼굴이 울긋불긋해지며 짙은 노기가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요! 아버님은 절대 친일파가 아닙니다. 이는 선친께서 이루신 업적을 시기 질투하여 폄하하려는 몰지각한 인간들의 음해일 뿐이지요. 참 웃기지 않습니까?”
최양의 입가에 냉소적인 비웃음이 그려졌다.
“드러난 행적만 가지고 친일이니 매국이니 손가락질을 해대는 행태들 말입니다. 왜 ‘인간적인’ 측면에서 이해하려는 접근은 하지 않는건지 쯧쯧.”
참신한 개소리에 절로 고개가 갸웃했다.
“인간적인 접근이요?”
“강자들과 협력해 부와 명예를 누린 경우가 비단 일제 시대에만 있었답니까? 그런 부류의 인간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습니다. 강요에 의해 마지못해서 했던 행동을 마냥 친일이라고 비난만 하고 앉아있는 게 맞는 겁니까?”
너무나도 뻔뻔하고 몰염치한 논리에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막말로 친일은 아무나 한답니까? 일본은 조선 침략과 지배에 유용한 사람들만 자기들 세력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누구든 그 자리에 앉아있어보라지요. 과연 똑같이 안 했을까? 못 배운 사람들이야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달려들겠지만, 당시 지식인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무식하게 저항만 할 게 아니라, 당시 상황에 순응하면서 기회를 엿보자는 생각인 게죠. 쯧쯧쯧. 우매한 인간들이 뭘 알겠냐마는.”
놀라웠다.
그래도 반성하는 척, 부끄러워하는 척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이리도 당당하다니.
언론 앞에서 보였던 태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 말인즉슨 최양후 창업주가 해왔던 행동들은 정당했다?”
“정당하다마다요. 저는 그런 아버님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선무가 대한민국 경제에 이바지한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왜 그건 몰라주고 과거의 행적만 들추면서 흠집만 잡으려고 하는지, 쯧쯧. 그런 거 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민족성이라는 것도 참···.”
미간을 찌푸리며 국민성을 운운하는 최양표를 보자 되려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여러모로 놀라운 답변이네요.”
“아무튼, 내 생각이 그러하다는 말이외다. 모든 건 아주 먼 훗날 역사가 판단해줄 일이지요. 얘기가 빙빙 돌긴 했는데 아무튼 우리 선무는 송 대표와 건설적인 관계로다가 앞으로 잘 지내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뭐···.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노골적으로 불편한 호의를 드러내는 최양표 회장을 향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골치 아프네 이거.’
최양표라는 인간이 얼마나 냄새나는 인간인지는 충분히 인지했으나 그렇다고 다짜고짜 적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릇 세상 이치가 그러하듯 모든 싸움에는 적당한 명분이라는 게 필요한 법이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머리가 복잡해지려던 차에 최양표가 의외의 제안을 건넸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내가 좋은 인연 하나 소개해줘도 되겠습니까?”
“좋은 인연이요?”
“혹시나 송 대표가 원우만 보고 우리 집안 식구들이 다 그렇다고 오해할까 두렵군요. 첫째는 꽤나 싹수 있는 놈이니 송대표 마음에도 드실게요.”
“아예. 뭐···. 그러시죠.”
솔직히 귀찮은 마음이 컸지만, 궁금증도 있었다.
최원우와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형이라는 작자는 과연 얼마나 다를지에 대해.
휴대폰을 손에 든 최양표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애비다. 지금 당장 회장실로 올라오거라.”
그렇게 십여 분 정도 흘렀을까?
똑똑똑
“아버지 접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거라.”
이내 문이 열리며 최원우와 비슷한 이목구비를 지닌 여리여리한 체격의 사내 하나가 응접실로 들어섰다.
“인사드리거라.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송대운 대표시다.”
“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최용우 부사장이라고 합니다.”
은은한 미소를 띤 최용우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나는 그 인사를 받을 새도 없이, 세 걸음 정도 뒤로 물러서서 그의 전신을 눈에 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겨울 밤바다처럼 음울하게 일렁이는 시커먼 빛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