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304)
304화 해결의 실마리
한겨울의 밤바다처럼 음울하게 일렁이는 암흑의 빛.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출현한 검은 빛에 당황했으나 일단은 태연하게 손을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좀 안 좋아서요. 송대운이라고 합니다.”
최용우의 손을 맞잡으며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축 처진 눈꼬리, 얇은 입술은 전체적으로 유약하다는 느낌을 풍겼다.
“원우 때문에 심기가 많이 불편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자식 언젠가는 크게 한번 사고 칠 줄 알았는데···. 어쨌거나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내게 고개숙인 최용우를 보며 최양표 회장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그놈은 우리 집안 식구가 아니다. 정신이 많이 아픈듯하여 정신병원으로 보냈으니 그런 줄 알 거라.”
“쯧쯧쯧. 결국, 그렇게 됐군요. 예상은 했습니다. 분수에 맞지 않게 시기, 질투가 어찌나 강한지. 하하하. 어릴 적부터 녀석이 치고 다닌 사고를 수습하느라 아버지와 제가 고생 꽤나 했습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실까요?”
“그러시죠.”
초면의 최원우가 그러했듯 최용우 역시 예절을 지키며 깔끔한 매너를 자랑했다.
하지만 저 집안의 기본 패시브가 저 가면이라는 걸 이제는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송 대표님을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저를요?”
“기업인들, 특히 재벌가 사람들에게 송 대표님이 얼마나 화제의 인물인지 모르십니까? 하하하. 웬만한 연예인은 저리 가라 할 수준일 겁니다.”
“그럴리가요. 제 소문이 그리 좋진 않을 것 같은데요?”
본의 아니게 여기저기 깽판을 치거나, 정신 못 차리는 망나니 놈들 혼을 내준 일이 있다 보니 별로 소문이 좋을 것 같진 않았다.
“시기 질투에 눈먼 자들의 영양가 없는 소문은 믿지 않는 편이라서요. 저는 오로지 팩트만 보고자 했습니다. 이제껏 송 대표님이 이뤄오신 믿지 못할 업적과 성과는 절대 운만으로 해낼 수 없는 위업이지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의미 없는 공치사가 남발됐지만 나는 그저 허허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왜 최용우에게 저토록 짙은 검은 빛이 흘러나온지에 대한 것만 초미의 관심사였으니깐.
“확실히 최원우씨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군요.”
“그런 배은망덕한 쓰레기하고 우리 용우를 비교할 순 없지요. 제 아들이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정말 성실하고 노력하는 녀석입니다. 직원들 평판도 좋은 편이고.”
흡사 매니저라도 된 것처럼 나에게 아들 어필을 하는 최양표 회장.
누가 보면 선 자리라도 되는 줄 착각하겠네.
“기획실에서 일하신다고 들었는데 대체로 무슨 업무를 하시는 겁니까?”
애초에 최양표 회장의 자식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검은빛을 보게 된 이상 얘기가 달라졌다.
잘만하면 좋은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저는 주로 신사업이나 인수합병 위주의 업무를 주도적으로 맡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저희 그룹이 인수한 맥커린도 제가 주도해서 진행한 프로젝트였습니다.”
맥커린이라면 나도 들어본 바가 있었다.
해외 프리미엄 골프 의류 브랜드로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선 제법 유명세가 있는 브랜드였다.
“거길 인수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습니까?”
“물론 우리 선무 모직도 골프 의류 브랜드를 가지고 있지만 다소 연령대가 있는 고객들 위주로 선호도가 높아서 타겟층이 좁은 편이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맥커린이란 브랜드는 이십 대부터 사십 대를 아우르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젊은 여성 고객을 타깃으로한 컴템포러리 필드 룩은 여성 소비층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죠.”
자랑이라도 하듯 주절주절 떠드는 최용우였지만 딱히 지금 내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지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저 맥커린 인수가 검은빛의 원천일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실제로 시장에서 맥커린의 기업가치와 평판은 나쁘지 않은 게 사실이었고, 무엇보다 여러 골프장을 가지고 있는 선무 그룹의 입장에서 확실히 좋은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많았다.
“이에 대해 송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훅 들어온 질문에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헛기침이 튀어나왔다.
“큼큼. 저요? 글쎄요. 제 생각이 의미가 있나요.”
“당연히 의미가 있지요. 적어도 투자 업계에서 송 대표님의 말을 허투루 들을 사람은 없을 텐데요.”
이렇게까지 말하니 나로서도 뭐라 답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충분히 좋은 M&A라고 생각합니다. 선무와는 좋은 시너지를 낼 만한 요소가 많으니까요. 맥커린을 노리던 기업이 적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대단하시네요. 그들을 다 물리치고 승리하셨다니.”
영혼 없는 치하에 최용우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다행이로군요. 안 그래도 맥커린을 기점으로 자신감이 많이 붙었습니다. 투자라는 게 뭔지, M&A라는게 뭔지 조금은 눈에 보인다고나 할까요? 하하하. 안 그래도 지금 또 다른 인수 건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건만 성사되면 우리 선무도 재계 10위안에 안착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조금 띄워주면 천지 분간을 못 하는 스타일인 걸까?
얼굴에 거만함이 깃든 최용우가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 눈동자 안에는 미약한 호승심도 얼핏 엿보였다.
그런데 의외인 점은 최양표 회장의 반응이었다.
“그 건은 백지화하기로 하지 않았나? 왜 이 자리에서 그 얘기를 끄집어내는 게야?”
노골적으로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최양표 회장.
“아버···. 아니 회장님! 거기는 반드시 우리가 가져와야 한다니까요. 왜 한 치 앞만 보시고 먼 훗날을 보지 못하는 겁니까? 충분히 저력이 있는 곳인데 왜 이렇게 반대만 하시는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뭐야? 감히 이 애비를 가르치려 드는 게야? 이런 고얀···!”
무슨 막장 가족도 아니고, 조금 전까지 막내아들을 정신병원에 처넣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큰아들과도 한바탕하려는 최양표 회장의 모습에 얼이 빠졌다.
가만히 보고 있다간 아까처럼 골프채라도 휘두를 것 같아 결국 중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내가 무슨 심판도 아니고 왜 자꾸 내 앞에서 쌈박질하는 건지.
“두 분 다 진정들 하시죠. 이거 무서워서 제가 제대로 얘기라도 하겠습니까?”
“큼큼···. 못난 꼴을 보여드렸군요. 이놈이 누굴 닮아서 똥고집이 저렇게 쎈지 원.”
누굴 닳았겠습니까?
유전자를 물려준 당신 탓이지.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애써 내리눌렀다.
“그래도 최 부사장님이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는 일 같은데 왜 그렇게 반대하시는 겁니까? 어찌 됐건 맥커린도 성공적으로 인수했으니 실적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들 부심을 부리던 양반이 이토록 격렬하게 반대를 하니 호기심도 들었다.
깊은 한숨을 토해낸 최양표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하아···. 텐트도 하나도 못 치는 놈이 뜬금없이 건설 회사에 관심을 가져서는···.”
“건설 회사요?”
“무슨 바람이 든 건지 난데없이 건설사를 인수하겠다고 나서지 않겠습니까? 해본 적도 없는 건설사를 사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되려 제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난색을 표하는 최양표를 보며 최원우가 열변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회장님. 대기업치고 건설사를 계열사로 두지 않은 곳이 몇이나 됩니까? 우리 선무도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건설사를 보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의 손익을 따지기보다는 백년대계를 바라보고 움직여야 할 때란 말입니다.”
묵묵히 최용우의 말을 듣다가 넌지시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냥 회사를 하나 만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지극히 비효율적인 일입니다. 86년에 건설시장이 개방되고 국내 건설시장 규모가 연간 100조 원을 넘어섰지만 왜 외국 건설업체들은 발도 못 붙이고 있을까요? 그만큼 입찰 때 시공 경험을 중시하는 관행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중국보다도 더 높은 수준이죠. 더구나 건설시장에서는 제대로 된 인력 구하기가 매우 힘든 편입니다. 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건 M&A 말고는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최양표가 혀를 쯧쯧 차며 최용우를 나무랐다.
“네 입으로 지금 얘기하지 않느냐? 건설업은 그만큼 돈도 많이 들고 진입장벽이 높은 산업이다. 단순히 회사만 인수한다고 굴러가는 곳이 아니야. 더구나 당장은 우리 그룹과 시너지를 이룰만한 부분이 크게 없어.”
“조금만 멀리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선무 그룹의 건설사가 아파트를 지었다고 가정했을 때 선무 계열사에서 만든 비데, 정수기, 공기청정기, 주방 가구 등이 공급된다면 그만큼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한번 믿어주시면 안됩니까? 2조 원 안팎인 그룹 매출을 향후 5년 안에는 20조까지 끌어올려서 재계 20위권 안으로 진입시킬 수 있습니다.”
호기로운 최양우의 포부에도 최양표를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건설업은 아니야. 지금 우리 상황에서 무리한 인수는 독이 될 수 있어. 맥커린 인수에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다. 지금 재정 상황으론 무리야.”
“도전 없이 도약은 없다고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하신 말씀아닙니까! 지난해 건설업체 ROE(자기자본이익률) 평균이 12%에 달했습니다. 앞으로 안정적으로 성장할 거라고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얘기하는데 왜 아버지만 고집을 피우시는 겁니까?”
“이놈이 정녕···.”
“저는 좁디좁은 한국 시장만 보고 있지 않습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선무는 중남미, 동남아 지역에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편이지만, 그 외 지역에는 브랜드 파워가 미약한 편입니다. 제대로 된 건설사만 확보한다면 향후 세계 시장에서 저변을 넓혀가는데, 아주 유리하게 작용할 겁니다.”
점점 얼굴이 달아오르는 최양표를 보지 못한 것인지 흥분한 최용우가 끊임없이 말을 쏟아냈다.
결국 참다못한 최양표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종이 쪼가리를 최용우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그렇게 잘났으면 어디 네 힘으로 알아서 한번 해보거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어림도 없으니 그리 알아!”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주운 최원우가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꼬리만 마니깐 우리 그룹이 도태되는 것 아닙니까? 아버지는 안 보이십니까? 이대로 가다가 그룹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뭐야!? 오늘 자식새끼들이 쌍으로 미쳤나! 아이고 뒷골이야. 요즘 오냐오냐했더니 아주 그냥 끝도 없이 기어오르는구나. 어디 네 마음대로 해보거라. 어차피 내 도움 없이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 네놈은 지금 알량한 성공 한번에 취해서 제대로 사리 분간을 못 하고 있어. 그걸 왜 모르느냔 말이다.”
그렇게 두 부자의 각축전을 지켜보다가, 뿔이 잔뜩 난 최용우가 자리를 박차고 나감으로써 논쟁은 일단락되었다.
유독 오늘 하루가 길게 느껴졌지만,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를 잡은 것 같아 충분히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
그렇게 며칠 뒤,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던 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대표님. 보고 드릴 사항이 있어 급히 찾아왔습니다.”
서류에서 눈을 뗀 나는 김선기를 쳐다봤다.
“얼마 전부터 SI하이텍의 주가 동향이 조금 이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