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310)
310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경기도 시흥시 SI하이텍 사옥.
[SI하이텍, 산화갈륨(GA2O3)을 활용한 신소재 전력 반도체 상용화 성공, ‘웨이비 테크놀로지’로부터 5,000억 규모의 수주 계약 체결] [SI하이텍, 하락세 멈추고, 20%대 급등, 단번에 1만 2천 원대 회복.]쏟아지는 기사들을 체크하고선 최춘길 대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전보다 얼굴이 새까매지고 야윈 느낌은 있었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은 지금 그의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듯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최 대표님. 괜히 저 때문에 제대로 잠도 못 주무시고···. 죄송하네요.”
“어후, 무슨 말씀을. 비행기에서 기절하듯 자는 바람에 지금은 아주 생생합니다.”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가 공항에서 바로 오는 길이라 피곤할 게 뻔한 데도, 전혀 그런 기색을 내비치지 않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고마웠다.
“아무튼, 일이 잘 풀려서 다행입니다.”
“이게 전부 송 대표님이 웨이비 쪽과 다리를 놔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몇 달 전 내게 연락해온 최춘길 대표는 웨이비 테크놀로지 측과 미팅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무언가 있는듯한 최춘길의 얼굴을 마주하고선 나의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하여 미팅을 주선한 것이었다.
웨이비 테크놀로지는 파워 디스크리트 시장을 주도하는 업체 중 하나로, 차량용 DC-DC 컨버터, 공조 시스템(HVAC) 컨트롤 등을 비롯해 TV·냉장고·세탁기 등 소비자 가전과 산업용 제품에 ‘전력 반도체’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기업이었다.
“그나저나 대단하시네요. 웨이비의 CEO 존 프랭크는 결코 상대하기 쉬운 인물은 아닌데.”
실제로 존 프랭크란 인물은 말 수도 별로 없고, 워낙 차가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서 보통은 말 한번 붙이기도 힘든 게 사실이었다.
“물론 안 힘들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절실함을 가지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니 결국 마음을 열더군요. 무엇보다 자신 있었습니다. 그만큼 우리 회사가 갖은 노력과 정성을 쏟아부은 제품이었으니까요.”
“결국엔 최 대표님이 생각하신 방향이 맞았군요. 대표에 취임하자마자 뚝심 있게 밀어붙이시더니 결국 빛을 보게 됐습니다.”
“하하하. 지겨우시겠지만 이 모든 게 송 대표님 덕 아니겠습니까. 전적으로 저를, 그리고 회사를 믿어주시지 않았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당시 분위기로 전력 반도체에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고 했을 때 누가 선뜻 지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로 인해 대표 자리에 취임한 최춘길은 팹리스 사업부와 어설프게 유지만 되고 있던 시스템 반도체,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모든 R&D를 멈추고, 오직 전력 반도체 분야에만 R&D 역량을 집중하여 개발에 나섰다.
“지금 와서 여쭤보는 건데 남들 다 하는 반도체를 제쳐두고 굳이 전력 반도체에 올인한 이유가 있으셨던 겁니까?”
“물론입니다. 전력 반도체는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전자 기기의 전력을 조절하기 위한 반도체를 뜻합니다. 가장 가까운 예로 공기 청정기의 전원 버튼을 누르면 소리와 함께 전원이 켜지지 않습니까? 이 전류의 흐름을 조절하는 장치가 바로 전력 반도체인 겁니다.”
고맙게도 문송한 나를 위해 눈높이 설명을 해주는 최춘길 대표였다.
“사실 반도체라고 전부 하이테크 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건 아닙니다. 복잡한 연산을 수행하기 위해 설계된 반도체가 있는 반면에,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주기만 하면 되는 반도체도 있기 마련이죠. 그러다 보니 전력 반도체는 다른 반도체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전체 반도체 시장 규모에서 전력 반도체가 차지하는 점유율이 7%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만 봐도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죠.”
입이 마르는지 최춘길이 커피 한 모금으로 입을 적셨다.
“하지만 저는 이를 다른 관점으로 봤습니다. 아직 7%밖에 되지 않기에 더 올라갈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이죠. 냉정하게 얘기해서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의 선두 기업을 우리가 따라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지는 무엇일까? 몇 날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제 결론은 ‘틈새시장’을 공략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남들이 버린 것이라도 어떻게 접근하냐에 따라 가치는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그럼 최 대표님의 생각에 전력 반도체의 위상이 앞으로 바뀌게 될 거란 말입니까?”
“바뀔 겁니다. 왜냐면 요즘 시장 트랜드가 전기차와 신재생 에너지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전기차와 신재생 에너지가 전력 반도체와 무슨 관련이 있죠?”
“어떻게 보면 ‘전력 반도체’ 시장과 ‘2차전지’ 시장은 유사한 면이 많습니다. 과거부터 휴대폰 배터리로 사용된 리튬이온배터리만 봐도 시장 규모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당시 2차전지 기업들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죠. 하지만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그 위상이 확 달라졌습니다. 1대의 전기차를 굴리기 위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수천 개에 달하는 양이 필요해진 겁니다. 당연하게도 전기차가 뜨면서 2차전지 시장 규모도 폭발적으로 성장했죠. 저는 전력 반도체 시장도 이와 비슷하게 흘러갈 거라 보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이해는 했습니다만···. 구체적인 근거가 있는 겁니까?”
“현재 가장 보편화되어있는 SIC 전력 반도체가 약 22억 8000만 달러(약 3조 원) 정도의 시장 규모를 갖고 있습니다. 크지 않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사실 이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40% 이상 성장한 수치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력 반도체가 가지는 강력한 강점 한가지가 있습니다.”
“강점이요?”
“기존의 실리콘 소재 반도체와 비교하여 극한의 환경에서 버틸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고온이나 고전압에 강한 모습을 보이죠. 실리콘 반도체는 고전압에서 전력 효율이 낮아지고, 온도가 150도 이상 올라가면 반도체 성질이 사라져버립니다. 쉽게 설명해서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을 가정집 전기 콘센트에 연결하면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 겁니다. 전압을 버터지 못하는 거죠.”
이 양반, 어려운 내용도 찰떡같이 설명하는 재주가 있으시구만.
“반면에 SIC나 저희가 주 소재로 쓰는 산화갈륨 전력 반도체는 이런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이죠. 뒤집어 얘기하면 자동차가 달릴 때 발생하는 열이나, 소음, 진동 등에 버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고전압에서 버틸 수 있다는 건 전기차의 충전 속도 단축과 직결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전기차의 수요와 인기가 올라갈수록 전력 반도체의 수요도 올라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최춘길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와 모터시스템은 일반적으로 400V에 작동되고, 고속 직류 충전기는 480V를 필요로 합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800V 이상의 고전압을 요구하게 될 거고요. 비단 전기차뿐이겠습니까? 풍력터빈, 태양광 발전기, 항공, 방산 분야 역시 수백에서 수천 볼트에 달하는 고전압을 요구하게 될 것은 정해진 수순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고성능의 전력 반도체의 수요 역시 증가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전력 반도체라는 게 기존에 없던 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미국의 라이온스피드나, TS일렉트로닉스 같은 곳이 있긴 합니다만. 이들 대부분 SIC 전력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는 곳입니다.”
“정확히 산화갈륨이란게 다른 소재와 어떤 차별점이 있는 겁니까?”
이 부분은 설명하기 어려웠던지 최춘길이 난감한 얼굴로 턱을 긁적였다.
“음···. 산화갈륨은 SIC(실리콘카바이드), GaN(질화갈륨)과 같이 와이드밴드갭(WBG) 물질에 해당합니다. 밴드갭은 전자가 모여있는 ‘전도대’와 전자가 비활성된 ‘가전자대’ 영역 간의 에너지 폭을 뜻하는데, 이 밴드갭이 넓을수록 전자의 움직임이 자유로워 더 높은 전압과 온도, 주파수에서 동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산화갈륨은 밴드갭이 SIC나 질화갈륨보다 높은 편이고, 제조비용은 더 저렴한 편입니다. 따라서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 산화갈륨 전력 반도체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이죠.”
자신감 가득한 최춘길의 목소리는 답답했던 내 속내를 뻥 하고 뚫어주는 듯했다.
“현재 산화갈륨 전력 반도체 기술 대부분은 일본이 가지고 있습니다만 과거에 송 대표님이 소개해주신 이지스 머터리얼즈와의 협업을 통해 산화갈륨이라는 소재의 한계성을 극복해낼 수 있었습니다.”
“아! 이지스 머터리얼즈···.”
“산화 갈륨은 화학적으론 안정적인 편이지만, 기존 전력 반도체 소재와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사실상 상용화의 관건이었는데 이지스 머터리얼즈 측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대표에 취임하자마자 최춘길 나에게 처음으로 부탁한 것이 신소재 개발 기술을 가진 업체를 소개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기업이 된 이지스 머터리얼즈를 연결 해준 게 바로 나였다.
그 작은 접점이 지금에 이르러서 이런 결과물로 나타나다니.
역시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그 산화갈륨 전력 반도체 덕분에 주구장창 떨어지던 주식도 반등하게 됐네요. 그동안 마음고생 심하셨죠?”
최춘길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럴 리가요. 애초에 송 대표님께서 미리 언질주시지 않으셨습니까? 특정 세력 때문에 주가가 내려갈 수 있다고.”
“제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최 대표님을 포함해서 노조 간부 분들의 소중한 퇴직금이 주식에 녹아있지 않습니까? 그런 주식이 반 토막이 되었으니 근심이 없진 않았을 것 같은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별문제 없었습니다. 비단 저뿐만 아니라, 직원 대부분이 주가가 떨어지는 것에 별 신경 안 썼을 겁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왜죠···?”
“저와 임원들은 전적으로 송대표님을 신뢰했고, 직원들은 회사를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알았던 거죠. 이 회사가 다시 비상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크지 않은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순간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온몸이 찌릿찌릿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투자를 끊을 수 없는 이유가.
나라는 사람에 의해서 죽어가던 회사가 살아나고, 그 안에서 희망이 피어난다.
텅 빈 껍데기에는 의욕이라는 살이 들어차기 시작하고, 그 작은 것들이 모여 기적을 만들어낸다.
마약을 해본 적은 없지만, 감히 약물에서 비롯되는 가짜 쾌락 따위가 이 묵직한 성취감에 비할 바가 될까?
“참···. 감사한 일이네요.”
민망함에 애꿎은 찻잔만 만지작거렸다.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느낌은 그 어떤 자양강장제를 뛰어넘는 충만감을 줬지만, 아직도 쑥스러운 마음이 없진 않았다.
“후···. 어쨌거나 공매도 공격으로 주가 만원이 깨질 뻔했는데 이걸로 금방 2만원까지는 금방 복구되겠네요.”
“그럴 리가요.”
“네?”
최춘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SI하이텍의 비상은.”
자리에서 일어난 최춘길이 명패에 새겨진 SI하이텍 로고를 만지작거렸다.
“앞으로 반도체 시장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뒤바뀌게 될 겁니다.”
최춘길의 예언은 곧 현실이 되었고, SI하이텍의 주가가 미쳐 날뛰기 시작하며 광기의 랠리가 시작되는 포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