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315)
315화 역습
서울특별시 중구 인터커티넨탈 호텔.
약속 장소인 호텔 내에 위치한 중식당으로 들어섰다.
주변을 한번 쓱 훑어보니 서빙하느라 바쁜 직원들과 창가에 앉은 몇몇 손님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한적한 분위기였다.
직원의 안내를 따라 널찍한 룸으로 들어서니 홀로 앉아 차를 홀짝이는 명오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도 나름 일찍 출발한다고 했는데 먼저 도착하셨네요.”
“끌끌끌. 속이 쓰리니 없던 아침잠이 더 없어졌다. 여 와서 앉아라.”
명오천의 맞은 편에 앉은 나는 눈앞에 놓인 짜사이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어후, 점심도 걸렀더니 배고파 죽겠네요.”
“와? 큰돈 따더니만 안 먹어도 배부르드나?”
“그럴리가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아무리 돈 많아도 안 먹으면 사람 골로 갑니다. 그나저나 안 본 사이에 얼굴이 많이 수척해지셨네. 영감님이야말로 끼니는 제때 챙겨 드시고 계세요? 얼굴이 반쪽이 되셨는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깊게 패인 눈두덩이와 한층 더 진해진 검버섯이 상태가 별로 좋아 보이진 않았다.
“길가에 나앉게 생깄는데 니 같으면 밥알이 목구녕에 곱게 넘어 가긋나?”
“에이, 무슨 그런 엄살을 부리세요. 기껏 3,000억 없다고 천하의 백 선생이 무너지겠습니까? 저 그 정도로 순진하진 않습니다. 아무튼, 제가 뽀찌는 못 드리더라도 밥은 거하게 살테니깐 드시고 싶은 거 마음껏 드세요. 비싼 고량주도 괜찮고요.”
덕분에 3,000억이라는 꽁돈이 생겼는데 그깟 고량주가 대수랴.
직원을 부른 나는 가장 고가의 코스 요리와 함께 마오타이 한 병을 시켰다.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던 명오천이 넌지시 한마디를 던졌다.
“HSSL에서 장비 받아온 거는 우연이가, 아니면 니가 힘을 쓴기가?”
“그런게 우연일리 없잖습니까? 당연히 제가 다리를 놓은 거죠.”
“거기랑은 어떻게 아는 거고?”
주변을 한번 둘러본 나는 한껏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건 비밀인데 영감님이니깐 특별히 알려드릴게요. 거기 높으신 양반이랑 저랑 베스트 프렌드입니다.”
놀린다고 생각했던지 입술을 꾹 닫은 명오천이 매서운 기세로 나를 노려봤다.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나저나 정말 막 날에 똥줄 제대로 탔습니다. 솔직히 기대도 안 했거든요? 아니, 만원이 깨질락 말락 했던 주식이 한 달 만에 10만원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허 참. 이놈의 주식 판 참 재밌어. 은근 내 스타일이야.”
“니는 대체······.”
무언가 말하려고 명오천이 입술을 꼼지락거렸지만,
드르르륵
문을 열고 들어 온 직원들에 의해 말이 끊겨버렸다.
달그락달그락.
어느새 커다란 원형 테이블에는 온갖 산해진미들로 가득 채워졌다.
술잔에 고량주를 따른 나는 테이블을 돌려 명오천 앞으로 친히 배달해줬다.
“중국에서 마셔본 고량준데 엄청 맛있더라고요. 한번 드셔보세요.”
술잔을 노려보듯 응시하던 명오천이 한입에 잔을 털어 넣었다.
“연세도 있으신데 그렇게 마시면 속 다 버립니다. 천천히 드세요.”
“이미 속은 배릴 만큼 배맀다. 눈앞에서 3,000억이 날아갔는데 제정신인 놈이 몇이나 되겠노.”
“저도 마음이 썩 좋지만은 않습니다. 제가 제안한 내기지만 진짜 이길 줄은 몰랐거든요.”
“참말로 몰랐다고?”
“석 달 안에 주가가 그렇게 오를 거라고 누가 자신할 수 있을까요?”
“니 돈 많다 아이가. 그 돈이면 안 될게 읍지.”
“에이. 아무리 우리나라 금융법이 허술해도 그렇지. 금감원이 무슨 빙다리 핫바지도 아니고, 그걸 두 눈 뜨고 지켜보겠어요? 영감님이야말로 아주 준비 철저히 하셨더만요. 아주 바쁘셨겠어요. 공매도 칠 수 있는 기관 수뇌부들한테 연락도 돌려야 했을 것이고, 증권사에다가 매도 리포트도 쓰게 했을테니. 연세답지 않게 부지런도 하십니다.”
침묵을 지키던 명오천이 옆에 정승처럼 서 있는 한 실장을 돌아봤다.
“한 실장 니는 나가 있으라.”
“예. 회장님.”
한 실장을 밖으로 내보낸 명오천이 잔을 치워버리고선 글라스에 고량주를 콸콸 따랐다.
“아니, 멀쩡한 잔 두고 왜 거기다 드세요? 상심이 크실 텐데 그러다 몸까지 상하십니다?”
내 말은 깔끔히 무시한 명오천이 고량주를 한입에 들이키고선 소매로 입가를 쓰윽 닦았다.
“크으···. 이제야 술맛이 좀 나는구만. 그래 찔끔찔끔 마셔가꼬 어느 세월에 취할라카노.”
“세상에나. 남자는 나이 들어도 똑같다더니, 그 연세에도 술부심을 부리는 겁니까?”
“끌끌끌. 불알 두 쪽 달고 태어나가 가오라도 없으면 고마 콱 뒤지삐야지. 안 글나?”
“글쎄요. 전 가오보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뭐. 좋습니다. 기분도 썩 나쁘지 않은데 저도 오랜만에 제대로 한잔하죠 뭐.”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명오천이 담배 한 개비를 품에서 꺼내 들었다.
“여기 금연인데요?”
“개안타. 뭐라 할 사람 읍다.”
치익.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드린 명오천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맹하게 굴더니 거기에 홀라당 넘어가뿐기라. 애초에 내한테 먼저 접근한 것도 이럴라고 그런기제?”
냅킨으로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낸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설마요. 저 그 정도로 치밀하진 못합니다. 다만···.”
“다만?”
“하하하.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자꾸 저를 무슨 아랫사람 보듯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볼 땐 저보다 딱히 잘나신 것도 없어 보이시던데···. 그래서 치기 어린 마음에 살짝 도발했던 겁니다. 그걸 홀라당 받으실 줄은 저도 몰랐지만.”
“겨우 그뿐이라고?”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돈 버는 능력은 제가 더 나은 것 같은데 자꾸 인정을 안 하시니깐···. 제가 승부욕이 엄청 쎄거든요. 제대로 불붙으면 눈깔이 돌아버려요. 소싯적에는 오락실에 끝판 대장 한번 깨보겠다고 학교까지 관둘 뻔했다니까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웃음을 흘렸지만, 굳은 명오천의 얼굴은 풀릴 기미가 없어 보였다.
“애초에 니는 이 모든 걸 계획하고 접근한기라. 이 명오천이를 한번 감아볼라꼬. 맞제?”
추궁하듯 묻는 명오천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아하니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생각이 없으시네요.”
“왜? 내 돈 뽈아먹어서 더 부자가 될라꼬? 내 돈은 먹어도 탈이 안 나니깐?”
“영감님도 참. 누가 들으면 오해하시겠네. 제가 영감님보고 내기 안하면 뭘 어떻게 한다고 협박이라도 했습니까? 심지어 내기 내용이 어땠는지 기억 안 나요? 길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볼까요? 애초에 이게 누구한테 유리한 조건이었는지? 저도 내뱉고선 아차 싶었다니까요. 그냥 7만원 정도로 얘기할 걸, 괜히 자존심 부린다고 10만원을 던져선 어휴.”
눈앞에 놓인 고량주를 한입 머금은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제껏 그런 짓 많이 하셨으면서 새삼스럽게 왜 그러세요.”
“뭐라?”
“급전이 필요한 기업 사장들한테 주식을 담보로 돈을 내줬을것이고, 이후에 공매도를 쳐서 인위적으로 주가를 떨어뜨려 수익도 먹고, 담보로 받은 주식도 먹고, 안 그래요?”
마찬가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린 명오천이 계속 해보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이자 감당하지 못하고 회사 뺏긴 양반들 여럿 죽어 나갔을 것이고, 남다른 멘탈을 자랑하는 우리 백 선생님은 상갓집에 찾아가 육개장이나 먹으며 혀나 쯧쯧 찼겠죠. 제 말 중에 틀린 게 있습니까?”
“아이다. 니 말이 다 맞다. 이야. 누가 보면 옆에서 지켜 봐온 놈인 줄 알긋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데 창의력 좀 발휘하시지 그러셨어요. 혹시 무슨 변수라도 있을까봐 전전긍긍했던 제가 뭐가 됩니까? 에이, 모양 빠지게.”
“그래서 아까 안 카드나. 니를 너무 봉으로 봤다고. 양의 탈을 쓴 뱀한테 지대로 당한거지.”
“제가 뭐랬습니까? 영감님은 저한테 안된다니까요. 그나저나 무리하게 공매도 치신 건 괜찮습니까? 보니깐 3,000억이 문제가 아닐 것 같던데요? 이거 뭐 대충 계산 때려봐도 손실이···. 어후.”
“당연히 안 괜찮지. 어떻게든 10만원 되는 건 막아볼라꼬,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와가 꼬라박았거든. 지금은 반 그지나 다름없다.”
“어이구. 저런···. 아! 그래도 성북동에 그 대궐 같은 집은 남아있으니깐, 그거 팔면 남은 여생 정도는 충분히 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설마 집문서까지 내다 판 건 아니죠?”
“그건 걱정 안 해도 된다.”
“다행이네요. 이참에 그 집에서 안 나오는게 낫지 않을까요? 백 선생한테 원한 품은 양반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빈털터리 됐다는 소문이라도 퍼지면 안 좋은 일이라도 당하실까 봐 제가 걱정이 됩니다.”
“오야. 조언 고맙다. 근데 걱정말그라. 내한테 원한 품은 놈은 아마 없을끼라.”
“그럴리가요. 대충 뒤져봐도 한 트럭은 나오겠더만.”
“아이다. 절대 나올 리 없다. 와 그런지 아나?”
명오천의 투명한 눈동자가 총알처럼 나를 관통했다.
“아마 저 어디 이름 모를 산에 묻혀있거나, 물고기 밥이 되어있을 거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순간 주변 공기가 서늘해지는 착각이 일었다.
분명 화를 내거나, 정색을 한 것도 아닌데 심장을 옥죄는 묘한 압박감이 전해졌다.
픽 웃음을 터트린 명오천이 글라스를 입에 대고 나를 쳐다봤다.
“니는 니가 이긴 것 같나?”
“당연히 제가 이겼죠. 설마 아직도 인정 안 하시는 겁니까?”
“크헐헐. 니 지금 뭔 소리하노. 이봐라 송사장아. 내가 살아보니까네 진짜 이기는 놈은 있다 아이가, 결국 끝까지 아둥바둥 살아남은 놈이드라. 니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조용히 술잔을 내려놓은 나는 얼굴을 굳히고 명오천을 쳐다봤다.
“왜요? 늘 했던 것처럼 저도 죽여 없애버리려고요?”
“내가 못할 것 같나?”
“설마요. 더 한 짓도 충분히 하실 분이죠. 근데 여기가 지금 어딘지는 알고 계시죠? 설마 서울 한복판에서 납치라도 하게요? 참고로 저 오늘 여기 온다는 거 아는 사람 적지 않습니다만.”
“아 글나? 그라모 안되겠네. 확 잡아 쥐기 삘라 했는데···.”
어쩐지 여유로운 기색의 명오천을 보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니 근데 뭔가 이상한 거 안 느끼나?”
“이상한거요?”
“밖이 지나치게 조용한 것 같지 않나? 가끔씩 들락날락하던 종업원들도 안 보이고.”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사람 다니는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지독한 적막.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이 호텔을 약속 장소로 니가 잡았제? 그래서 많이 방심한 모양인데, 근데 우짜노? 여기 호텔 사장이 내한테 꿔간 돈이 있거든. 그래서 내 말이라카믄 고마 꼼짝을 못 한다.”
내 얼굴이 굳어가는 걸 즐기듯 명오천이 실실 웃음을 흘렸다.
“내가 미친놈도 아이고 벌건 대낮에,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대 놓고 일을 벌이겠나? 천하의 백 선생이 그리 허술하게 일 처리 안 하지. 암.”
다 식은 군만두 하나를 집어먹은 명오천이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조금 있다가 이 호텔에서 강남 연합파하고 만식이파 놈들이 세력 다툼을 벌일끼다. 막 칼부림하고 난리도 아니겠지. 근데 마침 오늘 이 호텔에 송 사장 니가 있어뿠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구분 못 하는 모지리 하나가 니 몸에 칼을 쑤셔 넣을 기고. 아이고 어쩌노. 글마 그거는 징역 좀 살다 나와야겠구마”
“사고를 가장해서 나를 보내버리시겠다? 근데 깡패 새끼들이 바보도 아니고 시킨다고 그걸 하겠습니까?”
“아이고야, 참말로 순진하데이. 글마들이 내한테 받아가는 용돈이 얼만지 아나? 아마 더한 짓도 하라믄 군말 없이 할끼다.”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
“우짜겠노. 내가 살라믄 이 방법밖에 없는 것을. 아니믄 니가 살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뭡니까 그게?”
“니가 가진 거, 내한테 다 넘기라. 그라믄 내가 목숨만은 살리줄게.”
“결국 노리는게 그거였습니까? 너무 진부한데요?”
“끌끌끌. 지금 이 상황에서도 땡기 잡는기가? 돈은 다시 벌 수 있어도 목숨은 하나뿐인데 보전이라도 하는게 낫지 않겠나?”
“글쎄요. 저는 딱히 그렇게 생각을 안 해서.”
“쯧쯧쯧. 칼 몇 방 맞으면 울고 불며 빌 놈이 끝까지 자존심 부리기는. 고마 됐다. 나도 그런 건 딱 귀찮다. 그냥 깔끔하게 가자. 알긋나?”
와장창!
별안간 문밖 너머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요란스러운 고함이 들려왔다.
“끌끌끌. 우리 성격 급한 한 실장이 벌써 행동개시 해뿠나보네.”
드르륵
자리에서 일어난 명오천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무튼, 알게 돼서 반가웠고, 조심히 드가자. 멀리 못간다.”
옷걸이에 걸린 중절모와 목도리를 챙긴 명오천이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쾅!
부서질 듯 문이 벌컥 열리며 웬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살살해라. 문 뿌사지믄 물아줘야한다 아이가!”
혀를 쯧쯧차는 명오천을 바라보며 살벌한 인상의 롱코트 사내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비릿한 미소를 입에 내건 사내가 코트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명오천, 당신을 감금 빛 협박, 살인 교사 및, 불법도박자금 세탁···. 뭐 아무튼 존나게 많은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영장은 여기 있으니 나중에 알아서 보시던가 하고. 아무튼, 같이 좀 갑시다.”
“뭐, 뭐라꼬?”
경악한 명오천의 시선이 열린 문틈 사이로 향했고,
한 실장을 포함하여 다수의 문신 덩어리들이 무릎 꿇려져 있는 장면이 눈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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