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333)
333화 과연 그렇게 될까요?
나는 홀린 듯 슌사쿠 의장의 손에 들린 일장기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불길한 기운을 줄줄 흘리는 저 ‘빛’은 분명 미래의 불행을 암시하는 검은 빛이 분명했다.
‘근데 왜 저게 저기서 나와?’
‘사람’이 아닌 ‘사물’에도 ‘빛’이 나올 수 있다는 건 중국 경매장에서 이미 겪은 바 있었다.
덕분에 HSSL 세인트 케빈 회장과 친분을 다질 수 있게 됐으니.
‘뭐지? 저 일장기에 뭔가 있는 건가?’
유심히 살펴봐지만 시중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보급형 일장기였다.
뜬금없이 벌어진 상황에 머릿 속이 실타래처럼 엉클어졌다.
이런 내 심정과 상관없이 슌사쿠 회장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절대 일본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일본을 질시하는 나라들이 잃어버린 30년이니 뭐니 하면서 어떻게든 트집 잡으려 발악을 하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일본은 어마어마한 저력을 가지고 있고, 또다시 세계 최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투자자의 언어로 얘기하면 지금이 매수하기에 최적의 타이밍이란 말입니다 송 대표.”
검게 물든 일장기로부터 시선을 뗀 나는 표정을 정돈하고 슌사쿠 회장을 바라봤다.
“그래서 저도 일본과 좋은 관계를 맺어보려고 노력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깟 사과 한마디 하는 게 그리도 어렵습니까? 보상금도 솔직히 수요미씨 그룹 정도의 기업에게는 푼돈일 거 아닙니까?”
일단은 어떻게든 대화를 길게 이어나갈 생각이었다,
검게 물든 일장기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벌어야 했기에.
“생각보다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으시군요. 뭐 좋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요. 그깟 사과 한마디와 푼돈 몇 푼 건네는 건 사실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사과 한마디가 만들어내는 후폭풍이 감당하기 힘든 겁니다. 만약 일본 기업이 그런 결정을 내리면 단번에 우익들의 질타와 공격을 받게 될 겁니다. 그런 잡음이 없으려면 정부와 네마와시(사전조정)을 해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 중국은요? 중국 측 피해자들에겐 사과와 보상을 하지 않았습니까?”
실제로 수요미씨 그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징용 피해자 3675명에게 약 660억 원의 배상을 지급한 전례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기금을 조성해 기념비를 만들고, 추도 행사까지 진행했다고 들은 바 있었다.
“중국은 사정이 다르지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중국은 이제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강대국 아닙니까? 당연히 외교적, 경제적 문제를 고려하여 정부에서도 묵인한 겁니다.”
“강자에겐 숙이고, 만만한 한국에겐 계속 같은 자세를 유지하겠다는 말입니까?”
“틀린 말은 아니겠군요. 결국, 이 사회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고, 생태계라는 것 자체가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같은 인간이라면 일말의 죄책감 정도는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껄껄껄. 글쎄요. 팩트로만 얘기하자면 당시 조선인에 대한 강제 동원은 1938년 도입된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이뤄진 적법한 행위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강제 노역의 ‘강제성’은 인정하나, ‘강제노동’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조선인들은 우리와 같은 일본인으로 취급되었고 당시 일본 법에 따라 일본인도 강제 징용됐기 때문에 당시의 강제 징용을 불법으로 볼 순 없습니다. 그리고 자꾸 중국을 언급하시는데 당시 중국인 노역자들은 일본군에 포로로 붙잡혔던 국민당 병사였습니다. 2차대전 당시 한국과 중국의 법적 지위가 다르니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이 문제에 대해 과외라도 받은 건지 발뺌하는 수준이 일품이었다.
“대체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군요. 모두가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끌려와 학대에 가까운 모진 노동을 착취당 것 아닙니까. 그러지 말고 좋게좋게 풀어나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솔직히 슌사쿠 의장님 정도면 정부를 설득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를 높게 사주시는 건 감사합니다만 제가 함부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인들은 그렇다고 쳐도 국민들이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을 테니까요. 괜히 안 해도 되는 짓을 했다가 국민들이 들고 일어서기라도 하면 그건 저도 수습하기 힘듭니다.”
유들유들하게 돌려 말하고 있긴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을 밑으로 내리깔고 보고 있으며, 결코 사과할 마음 따윈 없다는 것을.
늙은 구렁이처럼 추악한 미소를 짓는 슌사쿠 회장의 모습이 눈에 담겼다.
“저는 그래도 최선의 합의점을 도출하려고 노력했는데 회장님은 그다지 협상 의지가 없으시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야말로 이해할 수 없군요. 왜 자꾸 비즈니스에 외교적 문제를 끼워 넣는 건지 말입니다. 그건 기업가가 가장 멀리해야 할 마음가짐입니다. 기업가는 돈만 따라가면 되는 거지, 거기에 어쭙잖은 애국심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불순물이 끼여버리면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뭔가 착각하시는군요. 저는 지금 기본적인 상식의 테두리 안에서 얘기하는 겁니다. 일본인들은 비즈니스에서 신뢰 관계를 중요시한다죠? 과거 자신들이 저질러놓은 명백한 과오를 외면하면서 대체 뭘 믿고 비즈니스를 하자는 겁니까? 슌사쿠 회장님은 신뢰를 이런 식으로 보여주나 봅니다?”
나도 말싸움은, 특히 지들이 가장 잘난 줄 아는 늙은이들에게만큼은 지지 않았기에 끊임없이 톡톡 쏘아붙였다.
다행히 효과가 없진 않았던지 슌사쿠의 주름진 얼굴이 조금씩 굳어갔다.
“그런 건 신뢰의 징표가 될 수 없습니다. 진짜 신뢰는 결국 서로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잘 맞느냐의 문제죠.”
“저희의 이해관계가 어떻죠? 저는 오늘 의장님을 처음 뵙는 겁니다만.”
“간단합니다. 송 대표는 우리 일본이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송대표가 원하는 건 뭐든 줄 수 있는 막대한 자본과 힘이 있습니다.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아쉽지만 저는 그 막대한 자본과 힘이 그다지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착각하시는 게 저는 ‘기업가’가 아니고 ‘투자가’입니다. 그늘 속에 가려져 햇빛만 기다리고 있는 새싹들을 찾아내는 게 제가 하는 업이죠. 우리 둘은 가는 방향이 너무도 다른가 봅니다.”
단호하게 선을 긋자 느긋한 분위기를 보이던 슌사쿠의 태세가 묘하게 뒤바뀌었다.
“이래서 제가 한국인들과 비즈니스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하죠. 무엇보다 평소엔 그렇게 자기 나라 욕을 해대다가 쓸데없는 타이밍에 튀어나오는 그 애국심은 민족적 특성입니까?”
“뒤집어 생각하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죠.”
“그 특유의 허세까지. 껄껄껄. 제가 알고 있는 한국인의 특성을 완벽히 가지고 계시는군요 송 대표는.”
“칭찬인가요? 감사합니다. 슌사쿠 의장님도 제가 알던 일본인의 특징을 그대로 갖고 계시네요. 아! 한가지는 좀 의아하네요. 일본에는 ‘폐 끼치지 않는 문화’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또 아닌가 봅니다.”
“그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하는 것뿐입니다. 한국은 그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 뿐이고요.”
“아주 삐뚤어진 사상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하지만 지금의 모습이 더 친근하긴 합니다. 애초에 그것이 가면을 벗은 슌사쿠 회장님의 본모습이겠죠?”
“멋모르고 초원을 뛰어다니는 야생마가 말을 들어 먹지 않는다면 채찍이라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애초에 그 야생마는 워낙 날쌔고 똑똑한 녀석이라 채찍 따위는 별로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크헐헐헐. 과연 그럴까요? 아무래도 송 대표는 우리 수요미씨의 저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나보군요. 뭐 좋습니다. 한가지 가정을 해볼까요? 만약 나 사가미 슌사쿠가 송 대표를 궁지에 몰기로 마음먹었다면 어디까지 가능할 것 같습니까?”
“글쎄요? 돈으로 해코지는 못 할 것 같고, 기껏해야 친일 성향이 있는 한국 정치인들을 움직여서 저에게 압박을 넣는 정도 아니겠습니까?”
“그게 상상의 한계입니까? 그런 유치한 짓거리 말고,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게 일본 경제산업성을 움직여 일본이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여러 핵심소재의 수출을 제한하는 겁니다. 뭐 탈일본화니, 자체 개발만으로 보완하겠다느니 그런 말들을 떠들어대지만, 그건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소재 부분에 있어서 한국과 일본은 20년 이상의 기술 격차가 벌어져 있기도 하고 일본에 100% 의존하는 프리미엄 핵심소재는 특허 이슈까지 있기 때문이죠. 특히 반도체 EUV 공정에 필요한 순도 99.999% 고순도 불화수소 같은 경우는 일본을 제외하곤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그렇게 되면 일본에는 타격이 없을 것 같습니까?”
“물론 완전히 없을 순 없겠죠. 하지만 그거 아십니까? 우리 일본의 수출규제로 반도체 소재가 30% 부족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한국의 GDP는 2.2% 감소하는 것에 비해 일본의 GDP는 불과 0.04%로 피해 규모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과연 누가 더 손해일까요?”
분하지만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두 국가가 맞붙어 서로에게 경제 보복을 가한다면 한국이 더 큰 피해를 보게 되리라는 것은 연구로도 잘 나와 있었으니.
“그럼 이런 건 어떻습니까? 일본 은행이 결산일에 한국에 나간 대출 자금을 일괄적으로 회수하는 겁니다. 아마 한국에 유례없는 금융위기가 닥치진 않을까요?”
“그게 가능할 것 같습니까?”
“불가능할 건 뭡니까? 실제로 일본 은행들은 한국은행의 건전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원화가 약세로 돌아섰고, 한국의 성장률 또한 저조해졌기 때문이죠. 자본은 성장률과 금리가 낮은 쪽부터 높은 쪽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감독 당국인 금융청을 움직여 일본 은행들을 은밀히 부추긴다면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 한 사람에 대한 압박이 아닌, 한국이라는 국가를 인질로 잡고 나를 협박하다니.
하회탈 같은 얼굴을 하고선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문제는 눈앞에 저 늙은이가 미친 척하면 그런 짓을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
“‘감성’이 아닌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하라고 일깨워주는 겁니다. 송 대표는 유명한 투자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뭐가 더 이익이 될지만 보면 되지 왜 쓸데없는 사족을 붙여서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어렵게 돌아가느냐 이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저는.”
“슌사쿠 의장님은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대단하시군요.”
“끌끌끌. 물론입니다. 일본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과거 메이지의 영광을 되찾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뜻이지요.”
“글쎄요…과연 그렇게 될까요?”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는 슌사쿠를 보며 내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메이지 영광 찾을 시간에 우선 자국의 안보부터 신경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뜬금없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내 어조가 다소 이상했던지 슌사쿠의 주름진 눈가가 한차례 꿈틀했다.
“일본은 곧 망하게 될 거라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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